the Brethren/연(輦)모임 메시지

하나님의 소유된 사람 되기(1)

Hernhut 2015. 2. 4. 11:26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에 관해 모세에게 내가 너희를 취하여 내게 한 백성으로 삼고 내가 너희에게 [하나님]이 되리니 내가 이집트 사람들의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는 {} 너희 [하나님]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6:7)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자손들이 모세의 리더쉽 아래에서 이집트에서부터 좋은 땅으로의 출애굽 되는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신의 백성들로 만드셔서 그들을 소유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단계입니다. 이 단계들은 오늘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 성장을 대표합니다. 모든 단계들은 그 특별한 환경이 있고, 그 특별하고도 거룩한 공급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정확하게 우리가 성장하는 방법을 알려주시는 것에 대해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이집트에서 처음 출발해서 이스라엘자손들은 8곳을 통과했습니다. 첫 번째는 이집트요, 두 번째는 홍해를 건넜습니다. 이 두 곳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우리의 여정의 시작을 대표합니다. 이곳은 우리의 구원과 침례를 의미합니다. 나머지 6곳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여정, 우리 삶의 휴식을 대표합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들이 되는 것입니다(9:24~26). 이스라엘 자손들이 단 한 곳씩만 통과했을지라도 우리는 몇 번이고 반복합니다. 홍해를 건넌 후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을 수르광야로 이끕니다. 수르광야는 세 번째 장소입니다. 네 번째 장소는 마라의 물이요, 다섯 번째 장소는 엘림이요, 여섯 번째 장소는 신광야요, 일곱 번째는 르비딤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내산에 이르렀습니다. 각 장소는 의미심장하고 중요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자손들이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들이 되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먼저 6단계를 다룰 것이고, 나중에 나머지 두 단계를 다룰 것입니다.

 

1. 이집트

이스라엘자손들은 이집트에서 여행을 시작합니다. 이집트는 괴롭히다, 불안한, 걱정거리가 있는것을 의미하고, 불안한 세상을 대표합니다. 세상은 특히나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게 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노예로 만들고, 이 세상의 파라오 곧 사탄을 섬기도록 종속시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런 문젯거리의 장소에서 떠나야 하는 이유입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모든 것은 아무것도 없고, 걱정과 괴롭게 하는 것들뿐입니다. 세상은 만족할 만한 것을 주지 않습니다. 아이들까지도 자신들의 관심을 붙잡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계속해서 옮깁니다. 그들은 항상 새로운 어떤 것, 더 만족스러운 것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장하는 만큼 이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차, 새로운 집, 전자제품, 새로운 직업까지도 구합니다. 세상이 약속한 헛된 모든 소망은 오늘날 충족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파라오 아래에서 이집트에 사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세상의 걱정거리에 쫓길 것입니다. 우리는 출애굽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살지만 세상의 것이 아닙니다. 한 예를 봅시다. 나는 빵집에 가기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신선한 빵을 먹기를 좋아합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을 즐기는 나를 비난할 수 있고, 내가 내 자아를 부인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아를 부인하기 위한 장소이기는 하지만 먹는 것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집 안에 살고, 차를 운전하고, 직업을 가져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먹어야 합니다. 나는 상한 빵만을 먹는 것으로 신선한 빵을 누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주님께서 내게 주시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단순하게 즐깁니다. 주님께서 내게 그것을 주시지 않으시면 나는 그분의 손에서 그것을 구합니다. 나는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받고, 그것에 만족합니다(4:11~12).

 

우리는 세상의 골칫거리와 노예화 하는 이집트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떠나간 후에 주님을 섬기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귀중한 것들이 이집트에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백성에게 말하여 남녀로 각기 이웃들에게 은, 금패물을 구하게 하라”(11:2)고 말씀하셨습니다. 금은 거룩한 것들을, 은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대표합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놔두고 떠날 수 있습니다.

 

파라오가 사람들이 이집트를 떠나는 것에 대해 거절하는 마음이 강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분께서 이스라엘의 전능하신 하나님이 되셨다는 것을 온 이집트가 알도록 하실 의도로 번갈아가면서 10가지 재앙을 보내셨습니다. 맏아들들을 포함한 모든 첫 것들을 죽이는 계속되는 재앙 후 파라오가 말하는 것이 너무 두려워 그들은 떠날 수 없었습니다. 이집트의 가족들은 맏아들들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올 것에 대해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떠나기만 했으면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지 못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집트사람들에게 있던 금과 은은 허가와 함께 빼앗겼었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인간 문화에서 사용하실 수 있는 것, 우리가 얻으려고 하는 가장 좋은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학생이라면 우리는 가장 좋은 교육을 받으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사람을 확장하고, 다르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이용해야 합니다. 많은 이스라엘 노예들은 백만장자로 이집트를 떠났습니다. 그들은 식량이나 물을 갖지 못했으나 많은 금과 은을 가졌습니다. 장막을 세울 때가 왔을 때에 그들은 넉넉하게 재정을 댈 수 있었습니다.

 

거듭남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집트에 있을 때에도 유월절 어린양을 먹었습니다. 이 그림은 우리의 거듭남의 체험을 상세함으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

각 가정은 그들의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를 발랐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죽음의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12:7). 그들의 집에 머물러 있으면서 그 피에 적용된 사람들에게만 죽음을 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초자연적인 사람들이 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그분의 증거로서 그분의 가정의 일부가 되는 것을 원하십니다. 구원받았다는 것은 사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구원받았다는 것은 증거의 문제입니다.

 

새 생명

하나님은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찌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12:11)고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먹는 것은 앞의 여행을 준비하고, 우리의 생명으로서 그리스도를 취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어린양을 먹는다고 말한 것은 우리가 어린양의 피 아래에 있어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교회생활

이스라엘 자손들의 체험은 교회생활의 모형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았을 때 우리 자신에 의해 구원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가정 안에서 구원받았습니다. 새롭게 구원받은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들의 가족들과 함께 그들의 가정에서 모든 어린양을 먹었습니다(12:3).

 

우리는 우리 자신에 의해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나고, 구원받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교회생활 안으로 가른 사람들과 함께 구원받았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달콤한지요!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고, 주님을 사랑할 수 있고, 그분을 열심히 섬길 수 있지만 우리의 교회생활은 어디에 있나요? 이것은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출애굽기에서 그려지고, 신약성경에서 알게 된 정상적인 상황은 교회생활 안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몸 생활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 어린 양에 대하여 식구가 너무 적으면 그 집의 이웃과 함께 인수를 따라서 하나를 취하며 각 사람의 식량을 따라서 너희 어린 양을 계산할 것이며”( 12:4)라고 지시하셨습니다.

 

때론 교회는 정말 작습니다. 작은 교회는 그리스도의 모든 풍성을 소비할 수 없습니다. 그 지시는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에 의해 주어졌습니다. 우리의 가족이 아주 작거나 어린 양이 너무 크다면 우리는 우리 이웃들에게 가서 우리와 함께 어린 양을 먹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의미심장한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시간 어린양의 모든 풍성을 완전하게 소비할 우리 이웃의 교회가 필요합니다.

 

항상 미국, 중국, 아프리카, 일본의 성도들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우리의 기도가 필요하지만 그들은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변에 있는 도시의 사랑하는 성도들을 상기시키실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그들을 방문했었습니까? 우리는 그들과 함께 어린 양을 먹었었나요? 방문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들이 왜 온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들과 함께 어린 양을 끝내러 왔다고 그들에게 말하라. 이것이 몸 생활을 누리는 것이다.

 

여러분과 가까운 교회들에게 주목하라. 주님께서 요한계시록에 있는 교회들에게 말씀하셨을 때조차도 그분은 이웃에 있었던 일곱 교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1:11). 그 교회들은 서로에게 아주 가까웠습니다. 예수님은 서로 그분의 편지로 교제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아주 의미심장한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자마자 우리는 어린 양을 먹어야 하지만 우리끼리는 아닙니다. 우리는 교회생활 안에서 어린 양을 먹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교회는 20명뿐이다. 어린 양은 정말 크고, 우리는 너무 작다. 우리는 많이 먹을 수 있다. 우리가 노력한다면 우리는 죽더라도 먹을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때에 우리의 교회는 곁에 있는 교회와 함께 먹어야 합니다. 이것은 성경의 생각입니다. 나는 나의 교회가 필요합니다. 나는 옆에 있는 교회가 필요합니다. 이런 방법만이 우리가 우리 어린 양의 모든 풍성을 소비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얼마나 좋은지요! 첫째로 우리는 어린 양의 피로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받습니다. 둘째로 그리스도는 우리의 자양분이시오, 공급이 되십니다. 셋째로 우리는 교회생활로 구원받습니다. 넷째로 우리는 교회들 안으로와 교회들과 구원받습니다.

 

2. 홍해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들의 가족들과 이웃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었지만 그들은 앉을 시간과 고기를 소화시킬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 같은 날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군대대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더라”(12:51) 우리가 구원 받자마자 세상으로부터 우리의 출애굽은 시작합니다.

 

성경은 모든 것이 순조롭고 질서 있게만 보이는 것 같지만 우리가 거기에 있었다면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것에 감사합니다. 큰 도시의 크기의 2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일어나 모두 함께 떠나야 했습니다. 여기에는 건강한 남녀뿐만 아니라 움직일 수도 없는 환자들과 노인들, 그리고 쉽게 지치는 아이들과 안고 다녀야 했던 영유아들도 포함되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이집트 사람들에게서 빼앗은 무거운 은과 금을 포함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날라야 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것들을 소달구지에 싣고, 등에 짊어지고, 손으로 들고 옮겼을 것 같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희생할 무수히 많은 양과 소떼들도 먹이와 함께 데리고 갔습니다. 심지어 그들이 가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혼란이 가득한 악몽과 같은 실행계획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파라오는 이스라엘을 가도록 하는 것에 관한 생각을 바꾸고, 그들을 추격하도록 그의 군대를 보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름기둥으로 군대를 막지 않으셨다면 그들은 분명히 살해당했을 것입니다(14:19~20).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제 홍해 둑에 섰습니다. 파라오와 그의 군대는 한 편에 있었고, 하나님의 약속과 목적은 다른 편에 있었습니다. 그들 뒤에는 이집트의 노예 신분과 골칫거리들이 가득한 옛 생명이 있었습니다. 그들 앞에는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가득한 새 생명이 있었고,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옛 생명에서 해방을 받아 새 생명 안으로 들어가는 그들은 홍해를 통과해야 했고,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침례

이것이 우리의 침례의 그림입니다.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고전 10:1~2),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6:4)라고 썼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다를 통과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새 생명 안에서 살기 위해 그분의 죽으심 안으로 침례를 받아야 합니다.

 

성경은 이 건넘을 쉬운 것처럼 표현합니다. 성경은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어민대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14:21~22)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늙고, 젊고, 병들고 한 수많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손과 등에는 무거운 짐들이 있고, 여러 소와 양떼들을 데리고 바다를 건넌다는 것을 생각해보십시요. 바닷물이 얼마나 오래 갈라져 있었어야 했을까요? 얼마나 넓게 갈라졌을까요? 아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서해와 남해에서 조수간만의 차로 섬과 섬 사이가 갈라지는 것을 경이로워하는데 이 홍해의 기적은 더 경이롭지 않았을까요?

 

앞에서 가는 사람들은 천천히 갔을 것이고, 사람들은 물 벽이 두려워 들어가는 것을 주저했을 것입니다. 뒤에 있는 사람들은 파라오의 군대가 다가오는 것이 두려워 앞에 가는 사람들을 밀었을 것입니다. 어떤 누가 떨어졌다면 그들은 그들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압사되었을 것입니다. 아이들은 울고 있었을 것이고, 양들과 소들도 울부짖었을 것이며, 짐들은 굴러내렸을 것입니다. 엉망인 것에 개의치 않고, 그들은 모두 다 함께 바다를 통과했습니다.

 

우리는 개인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침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지만 우리가 반대편으로 갈 때 우리는 우리 앞에 간 수백만의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침례는 몸 안에서의 체험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 모두가 함께하는 체험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3)고 썼습니다. 침례는 함께하는 동역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침례의 결과는 이스라엘의 홍해 건넘과 같습니다.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쫓아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였고 물이 좌우에 벽이 되었었더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의 애굽 사람의 시체를 보았더라”(14:28~30) 우리 위에서 힘을 발휘하려고 하는 사탄의 모든 군대는 우리 침례의 물속으로 매장되었습니다. 주께서 승리하셨음을 찬양합시다. 主護村

'the Brethren > 연(輦)모임 메시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의 소유된 사람 되기(3)  (0) 2015.02.07
하나님의 소유된 사람 되기(2)  (0) 2015.02.05
교회에서의 자매들의 역할  (0) 2014.12.27
사흘 밤낮  (0) 2014.11.14
요나  (0) 2014.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