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ethren/연(輦)모임 메시지

아말렉

Hernhut 2014. 11. 7. 10:24

 

육과 영의 영적전쟁

성경에 있는 아말렉사람들의 의미(중요성), 진정한 곳을 보고, 그리고 그 표상을 합당하게 이해하려면 아말렉사람들이 언급된 다른 곳을 연결해 그들의 조상, 에서에게로 돌아가 보아야 합니다. 아말렉 사람들의 민족이 사실 에서의 후손들 이전에 아말렉사람들에 관해 조금 계시되어 있지만 이 시간 이전의 민족으로서 아말렉사람들이 존재했다는 건 에서의 손자 아말렉 전후 시대의 역사에서 변화를 차치하고 존재하는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습니다.

 

에서는 성경이 아말렉사람들의 기원을 추적하도록 제공하는 유일한 연결고리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기원을 제외하고도 아브라함 시대에도 나타났습니다. 그들이 그들의 본래의 모습에서 에서와 관련되었다는 사실은 특별한 이유 때문에 거룩한 계획으로 여겨져야 합니다. 에서의 사람 안에 있는 특징들은 영적인 기준 안에 있는 아말렉사람들의 본질을 묘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분명하게 되도록 출애굽기 17:8~16절과 같은 구절을 보게 하십니다.

 

장자권

세상의 사람 에서는 이삭의 맏아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바라보신 것보다 세상이 그들을 바라본 것으로 그는 그의 장자권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장자권을 경멸하고 하찮게 여겼다고 에서에 대해 말했습니다(25:34).

 

70인역은 에서가 장자권을 보잘 것 없는 소유, 대수롭지 않고, 무가치한 것으로 여겼다는 의미로 경멸했다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는 현실적으로 장자권을 무가치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장자권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 에서는 빵과 렌즈콩 죽한 그릇에 쌍둥이 형제 야곱에게 장자권을 팔았습니다. 그는 육체적인 만족감, 자신의 허기를 만족시키기 위해 자신의 장자권을 팔았습니다.

 

장자권을 판 에서가 그 가치를 깨달을 때는 너무 늦은 때였습니다. 이 말씀은 히브리서 12:16~17절에서 다섯 번째요, 마지막 경고로 나타나 있습니다. 히브리서 12장의 말씀은 히브리서에 있는 모든 것을 정점에 이르게 합니다. 앞의 4경고는 장자권과 관련되는 전체적인 가르침의 다른 측면입니다. 믿음의 장이요, 12장으로 이끄는 11장은 앞의 경고를 요약하고, 마지막 경고를 소개합니다. 11장은 사람의 부르심에 믿음에 대한 생각을 갖게 합니다.

 

에서는 세상의 관점에서 오는 문제들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영적인 관점보다 오히려 육체적인 관점으로 보았습니다. 그가 참된 빛 안에 있는 장자권을 보는데 영적인 생각을 가진 것은 너무 늦은 시간이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에서는 육적인 사람을 말합니다. 그의 형제 야곱(사실 이스라엘)”은 영적인 사람을 말합니다. 이것은 이스마엘과 이삭의 방법과 유사한 방식을 따른 것입니다.

 

야곱은 육체(천연)적인 사람과 관계있고, “이스라엘은 영적인 사람과 관계가 습니다(32:28~30, 147:19~20, 9:8). 이사야 43:1절에서 하나님에 의해 구별하여 창조됨은 이스라엘이 아닌 야곱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연(육체)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 창조는 산출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1:32~33절에 있는 기록은 미래의 그리스도의 통치가 야곱의 집에서 계속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영원할(헬라어 에이스 토우스 아이오나스)” 것입니다. 영원이라는 말은 천년왕국뿐만 아니라 이어지는 영원시대까지입니다. 천연(육체)적인 사람을 말하는 이 구절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천년왕국에 이 땅에서 천연적인 몸으로 거할 뿐만 아니라 영원시대에 새 땅에 거할 것을 계시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부활을 전조하는 나사로의 죽은 자로부터 일어난 몸과 완전하게 일치하는 것입니다(11:6~7, 43~44).

 

장자권과 관계가 있는 에서는 아말렉사람들이 언급된 다른 곳에서의 여러 가지 영적인 상속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아말렉사람들을 표시하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것을 향한 에서의 생각(마음) 소유하는 것에 대한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특히나 장자권과 관련된 것입니다. 모세 당시에 그들이 성경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그들 스스로가 하나님의 맏아들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했습니다(4:22~23).

 

이스라엘은 신권 안에서 또 다른 땅으로 장자권 상속을 위해 이집트로부터 불러내어졌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움직였던 주변의 모든 것들에 대한 지시였습니다(15:1~18). 하지만 후에 아말렉은 민족의 부르심의 목표 없이 이스라엘이 여행 중에 있는 것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어떤 수단을 샅샅이 찾으려고 여행길에 나타나 방해했습니다.

 

실제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히브리서 12:5~8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맏아들들에게 속한 상속을 알고 난데 이어서 입양을 기다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 상속은 땅에 속한 것보다 하늘에 속한 또 다른 땅과 관계가 있습니다(1:11~14, 3:20, 3:1).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알든 모르든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이 향하는 방향입니다.

 

육체의 사람, 아말렉은 예표에서처럼 오늘날 빛이 있지만 어둠이 남아있는 그의 모습을 만들고 있고, 공격하고 있습니다(1:3~5, 고후 4:6). 아말렉은 목표 없는 그리스도인들을 멈추게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찾을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육체의 사람은 아말렉으로 예표되었습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장자권을 상속받는 것을 반대하는 목표로 성경에 나타났습니다. 아말렉은 그리스도인들이 부르심을 받은 상속을 아는 것을 막는 모든 수단을 찾아 방해하는 자입니다.

 

아말렉을 어떻게 물러서게 할까요? 출애굽기 17:8~16절에 있는 아말렉과 맞서고, 전쟁을 하는 이스라엘처럼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이 부분은 육체의 사람이 패배될 것이라고 계시합니다. 구속된 사람들이 오늘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신권으로 어느 날 또 다른 땅에서 맏아들의 권리를 알도록 하실 것입니다.

 

 

아말렉을 죽이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것처럼 아말렉을 무찌르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아말렉이 끝에서 일어나 여러분을 칠 것입니다. 이것이 사무엘상하에서 시작한 생생한 가르침입니다(14:42~43, 20:2~21).

 

이스라엘 첫 번째 왕 사울은 사무엘에게서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진멸하고 남기지 말며 남자와 여자와 어린 아기와 젖먹이와 소와 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삼상 15:3)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불안전한 순종을 했습니다. 그는 아말렉사람들의 왕 아각과 아말렉의 가장 좋은 소유물들을 남겼습니다. 살찐 어린 양과 마찬가지로 주님께 희생을 드리기 위해양과 암소 등 그의 눈에 보이는 좋아 보이는 모든 것을 구했습니다(삼상 15:7~15).

 

이것은 사무엘을 통해 주님 안에서 이스라엘 위에 있는 왕으로서 사울을 거절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삼상 15:16~28). 나중에 가서 사울이 이미 아말렉과 관련해 주의 명령을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팔레스타인과의 전쟁에서 아말렉사람들이 나타나 치명상을 입히고 사울을 살해했습니다.

 

사무엘상 31:1~6절과 사무엘하 1:2~10절에서 사울을 죽인 아말렉사람들에 의해 다윗에게 주어진 말씀은 일어났던 것과 똑같이 알고 이해되도록 비교되어야 합니다. 사울은 전쟁에서 치명상을 입었고, 자신을 자신의 칼로 찔러 죽으려고 했지만 그는 그 시도를 실패했습니다. 그런 후 아말렉사람이 나타났고, 너는 누구냐?”는 사울의 질문에 대답하여 그는 나는 아말렉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삼하 1:7~8).

 

그런 다음 사울은 내 생명이 아직 내게 온전히 남아 있어 고통이 내게 임하였나니 원하건대 너는 내 위에 서서 나를 죽이라”(삼하 1:9)고 말했습니다. 다윗의 이야기와 관계있는 아말렉사람은 그가 쓰러진 뒤에 살 수 없는 줄을 내가 확신하고 이에 그 위에 서서 그를 죽이고 그의 머리에 있던 관과 팔에 있던 팔찌를 벗겨 그것들을 여기로 내 주께로 가져왔나이다”(삼하 1:10)라고 말했습니다.

 

처음에 사울은 아말렉을 죽이라고 명령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에 사울이 넘어지자 아말렉은 그를 죽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왕권을 벗겨버렸습니다. 이것은 구약의 중심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요한계시록 3:11절의 경고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그것을 굳게 붙잡아 아무도 네 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주님의 명령처럼 아말렉을 살해하거나 아니면 그가 여러분을 무너뜨릴 것이고 그는 여러분을 살해하기 위해 일어날 것이고, 또 여러분의 관()을 빼앗을 것입니다.

 

그 관()은 장자권의 제왕적인 부분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 관()은 다가오는 왕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차지하는 지위와 관계있습니다. 왕관을 쓴 통치자들만이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에 오를 것이고, 장자권의 다른 두 측면(왕과 제사장들[왕의 신분을 가진 제사장], 왕들 중에 왕, 주들 중에 주와 함께하는 공동 상속자들로서 아버지의 모든 재산의 두 배를 받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전쟁의 의미와 길이

출애굽기 17:8~16절에 있는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모세는 아론과 훌과 한 팀을 이루어 이스라엘 사람들이 골짜기 아래에서 아말렉과 싸우는 동안 근처에 있는 언덕에 올라갔습니다. 전쟁을 하는 동안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붙잡아 손을 높이 들자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겼습니다. 그가 홀을 내렸을 때(4:20~23) 아말렉이 이겼습니다(17:10~11).

 

언덕 꼭대기에서 홀을 붙잡는 모세와 관련된 두 유형이 있습니다. 한 가지 유형은 그리스도이긴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도움이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다른 유형은 필요할 것입니다. 아론과 훌은 두 번째 유형에서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유형은 그리스도인들의 유익을 위해 전쟁을 치르시는 그리스도와 관련이 있고, 두 번째 유형은 전쟁에 사로잡힌 그리스도인과 관계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전쟁에서 지치고 피곤해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전쟁에 사로잡힌 동료 그리스도인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런 면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돕는 것입니다.

 

그것은 히브리서 10:23~25절과 비슷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의 고백(소망의 고백)을 흔들림 없이 굳게 잡으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서로 기도하고, 격려하고, 권고하기를 같이하라고 말합니다. 그 날이 다가옴을 너희가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가끔 고립된 곳에서 혼자서 피곤한 전쟁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의 경주에서 서로 돕도록 권면 받습니다. 그들은 각자가 성령의 검을 들고서 전쟁터로 합당하게 모여 가는 것처럼 홀을 높이 들도록 서로 돕고, 서로 격려하기를 권면합니다(6:10~18).

 

이런 전쟁은 태양이 떨어질 때까지싸우는 것입니다. 이 전쟁은 그리스도인 생활 동안에 지속되는 전쟁으로 묘사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긴 안목으로 보면 믿음의 경주 가운데 있습니다. 이 전쟁은 믿음의 경주에 존재합니다.

 

모세가 전쟁에 대해 피곤해 하기 시작했을 때 아론과 훌은 그의 손을 올려주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홀을 높이 올리고 앉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돌을 받쳐 놓았습니다. 아론과 훌의 도움으로 모세는 일생동안 이런 방식을 따라 계속 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은 모세의 손이 무거워지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그의 밑에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다른 하나는 저편에서 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의 손이 해가 질 때까지 그대로 있더라”(17:12)라고 말합니다.

 

모세가 앉은 은 그가 지팡이”, “을 붙잡은 그리스도의 왕국을 가리켰습니다(2:34~35, 44~45). 그리고 나서 모세, 아론, 그리고 훌은 특별한 언덕 꼭대기로 갔습니다. “언덕이라는 단어는 과 같이 성경에서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왕국을 의미합니다(2:2~4). 예표적으로 그들은 홀을 붙잡고서 특별한 왕국 꼭대기에서 전쟁을 치렀습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게 되는 모든 것은 한 가지 생각에 중점을 둡니다. 그 생각은 사탄 아래에 있는 오늘날의 왕국과 관련 있는 것에 눈을 맞추는 것이요, 그리스도 아래에 있는 것과 관련된 것에 그들을 고정시키는 것입니다. “.......네 생명을 건지기 위해 도피하라. 너는 네 뒤를 돌아보거나 이 온 평야에 머무르지 말고 산으로 도피하라. 네가 소멸될까 염려하노라”(19:17) 主護村

'the Brethren > 연(輦)모임 메시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나  (0) 2014.11.12
하나님의 아들들   (0) 2014.11.10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0) 2014.11.03
변화(變化)  (0) 2014.11.01
“네샤마Neshamah”  (0) 2014.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