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ethren/연(輦)모임 메시지

“내가 너희를 결코 알지 못하였노라”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Hernhut 2014. 9. 23. 12:00

 

장차 주님은 당신에게 뭐라 말씀하실까?

하나님은 전지하신 분이십니다.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사람을 아십니다. 하지만 마태복음에서 두 번 주님께서 미래에 성도들의 특별한 무리들을 다루실 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7:23),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한다.”(25:12)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그 날에 분명히 알지 못하는 성도들을 어떻게 부르실 수 있을까요(7:22)? 그 답은 간단합니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7:23),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한다.”(25:12)는 주님의 말씀은 말들, 당면한 문제와 관련지어야 합니다. 사실상 주님께서 전지하시기 때문에 그분은 관련되는 말이 없이 어떤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실 수 없으셨습니다.

 

필연적으로 구원받은 자에게 하신 이 본질에 대한 말은 그들이 그들의 구원받은 상태를 둘러싸고 있는 문제들과 관련지어야 할 것입니다. 또 필연적으로 구원받지 않은 자에게 하신 이 본질에 대한 말은 그들이 그들의 구원받지 않은 상태를 둘러싸고 있는 문제들과 관련지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말은 그 자체가 사람의 구원 받음과 구원 받지 않음과 절대 관련지을 수 없습니다. 구원 받은 자들이나 구원 받지 않은 자들 역시 미래의 그리스도 심판은 절대 영원한 구원이나 영원한 통치와 관계없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3:18절에 의하면 둘 다 이미 심판 받았습니다. 전자는 아들을 믿었기 때문이요, 후자는 아들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7:21~23

그 날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오늘날 명령 받은 자들이 왕국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심판대에 계신 주님 앞에 나타나는 때입니다(7:13~14, 21~22). 여기서 하늘들의 왕국에 대해 제안 받은 사람들은 오늘날 확대된 구원 받은 자들이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원문과 문맥적으로 마태복음 7:21~23절에서 묘사한 장면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있는 그리스도인과 관계있을 뿐입니다.

 

주님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많은 사람들은 거짓을 통해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했던 자들이 그 날에주님 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그들은 아마 주님과 주님의 이름으로 사역을 수행했을 것입니다. “그 날에그분이 이 사역들과 관계없었다는 것을 그들에게 드러내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7:23절에서 주님의 부정적인 반응은 두 가지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왕국 안으로 들어가는 것(7:21) 기적적이고 신비로운 사역(7:22)입니다. 여기서 주님은 그 날에주의 임재 안에 나타날 어떤 성도들이 기적적인 사역을 수행한 것과 주님과의 밀접한 관계를 바탕으로 하늘들의 왕국으로 들어가려고 할 것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내가 너희를 결코 알지 못하였노라.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라”(7:23)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그분께서 이런 사역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하늘왕국으로 들어가는 문제와 관계있는 이와 같은 사역들에 스스로 포함시키는 자들을 인정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여기에 포함된 자들은 넓고, 대로로 들어갈 것입니다(7:13~14). 주님의 임재 안에서 이 사실에 대한 계시는 그리스도의 왕국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위치에 있는 것을 인정받지 못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25:1~13

마태복음 25:12절에 있는 알지도 못하는 어떤 무리들과 관련 있는 주의 말씀은 혼인잔치를 위해 준비되지 않은 어리석은 5명의 처녀와 관련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이 혼인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합당하게 준비되지 못했습니다. 마태복음 22:2~14절에 있는 혼인잔치의 비유와 열 처녀의 비유를 비교하면 한 영역에서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하여 잔치에 참석하지 못함을 보여주고, 또 다른 영역에서 혼인 예복을 준비하지 못해 잔치에 참여하지 못함을 보여줍니다.

 

연결성이 있음이 분명합니다. 여분의 몫의 기름으로 예표 된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은 그리스도인은 혼인 예복을 준비하는 의로운 행실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같은 진리에 대한 다른 측면을 두 비유에서 가르쳤습니다.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함은 합당치 않은 옷을 입고 주님 앞에 나타날 그리스도인들의 결과가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그리스도인들은 혼인 예복을 갖지 않고 주님의 임재 안에 벌거벗고 나타날 것입니다(22:11~14, 3:18, 19:7~9). 따라서 합당치 않은 옷 때문에 주님은 혼인잔치에 들어가는 그들과 관련된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알지 못하실 것입니다.

 

 

기노스코Ginosko, 오이다Oida

마태복음 7:23절과 마태복음 25:12절의 알다라는 단어는 헬라어에서 다른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7:23절에서 사용된 지식은 기노스코ginosko입니다. 마태복음 25:12절에서 사용된 지식은 오이다oida입니다.

 

기노스코ginosko체험을 통해 얻어지는 지식을 말합니다. “기노스코ginosko는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분의 명령을 유지하는 체험을 통해 그리스도와 친밀한 교제를 갖게 하는 지식입니다(요일 2:3~4). 이것은 바울이 빌립보서 3:10절에서 사용한 단어입니다. 이것은 내가 그분의 죽으심과 일치하게 되어 그분과 그분의 부활의 권능과 그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알고자 함이요 이와 같은 지식, 그리스도와의 교제의 결론은 죽은 자들의 부활안으로 도달하게 하는 것입니다(3:11).

 

반면 오이다oida완전한 지식”, 체험 외에 얻어진 지식을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영원한 구원과 성경에 있는 여러 측면과 관련 있는 것을 소유하는 지식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니라.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되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분과 같게 될 줄 아노니 이는 우리가 그분을 그분께서 계신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라.”(요일 3:2), “내가 [하나님][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들을 쓴 것은 너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하고 또 [하나님][아들]의 이름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라.”(요일 5:13)

 

마태복음 7:23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용하시는 기노스코ginosko는 사람들이 수행했던 기적적인 사역과 관계없음을 분명하게 계시합니다. 이 사역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완전하게 그리스도와 어떤 친밀한 교제의 영역 밖의 행위들을 이루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주장하지만 주님은 모른다고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질문에 대한 반응하시는 그리스도는 기노스코ginosko라는 단어를 사용하심으로 그분께서 이러한 사역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보여주시기를 매우 조심하셨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주님께 질문한 의도는 주님께서 긍정적인 반응을 답하시는 것을 기대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들에게 성령의 능력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수행하고 있었던 기적적인 사역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현제도가 끝나가는 오늘날 기적적인 사역을 드러내 보이는 기독교의 이러한 분파(7:22)는 성령충만과 관련이 있는 거짓되고 위조된 여분의 기름 공급을 받는 것에 대한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사실 여기서 나는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나는 확실히 예수의 이름으로 사역하고 있어! 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이 성령에 대한 거짓되고 위조된 사역은 그들의 메시지의 핵심입니다.

 

이 본성에 대한 오류는 오늘날 제도 끝 무렵 기독교의 라오디게아 상태에 있는 사탄의 사역이 될 수 있을 뿐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을 혼란을 일으킵니다. 이것은 부패와 기만을 산출합니다. 그것은 제도가 맨 처음 시작될 때 여자가 가루 서 말에 두었던 누룩의 일에 결론의 한 측면입니다(13:33).

 

사탄의 이 일에 휩쓸려 기만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악한 세상에 널리 퍼져있는 초자연적인 능력에 대해 드러내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이러한 것들이 주님의 것으로 믿고 있으며, 또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생활에서 모조된 성령의 일을 받아들임으로 더 기만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직면해 있는 영적전쟁을 위해 가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또 이 행위에 포함되어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장차 거절됨을 산출하는 체험을 할 뿐입니다. “내가 너를 전혀 모르겠는데!”

 

그러므로 마태복음 7:23절에서 예수님은 신중하게 단어를 선택하셨습니다. 이런 기적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과 주님께서 친밀한 교제를 가지 않으실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하지만 마태복음 25:12절에서 그분은 다르게 말씀하십니다. “기노스코ginosko보다 오히려 오이다oida를 사용한 것은 어떤 체험적인 말을 제외하고 사실적인 지식을 계시합니다.

 

하지만 체험적인 지식은 여분의 기름을 획득하는 것입니다. 문 밖에 있는 자들은 이와 같은 체험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합니다(7:21~23). 그리스도는 단순한 것으로 여기셨습니다. 주님은 문을 열고서 요청하는 자들에게 합당한 답을 주신 것처럼 완전하신 말씀을 하십니다.

 

 

그날에

그날에 문은 닫힐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밖으로 쫓겨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주님,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라며 슬피 울 것입니다. 하지만 신랑은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것을 허락받은 사람들 가운데 속해 있는 자들로 그들을 인정하시지 않을 것입니다(25:1~13).

 

그 같은 사람들은 왕국 안으로 들어가기를 거절한 자들 가운데 있게 될 것입니다. “주여, 주여, 우리가 ~을 하지 않았나요?”라며 부르짖을 것입니다. 하지만 같은 방식으로 왕은 그분의 왕국에서 그분과 함께 보좌에 오르는 것을 허락받은 자들 가운데 속해 있는 자들로 인정하시지 않을 것입니다(7:21~23, 25:14~30).

 

구원받았지만 육체적으로 사는 두 무리들은 감람산 담화의 그리스도인 부분의 비유에서 설명된 바깥 어두움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25:30, 22:11~13). 또 그들은 마태복음의 또 다른 곳, 예루살렘 성벽 바깥 거절하는 장소, 기헤나(Gehenna-지옥)로 가게 될 것입니다(5:29~30, 23:15, 33).

 

6,000년 동안 요구해 왔던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는 모든 것들과 관계있는 행위들로부터 닫히게 될 이 두 무리들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1,000년 동안 땅 위에서 통치 받습니다. 主護村

'the Brethren > 연(輦)모임 메시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룩하게 놓인 기초  (0) 2014.09.27
성경의 일곱 구조   (0) 2014.09.25
“그는 밖으로 나갔다......”  (0) 2014.09.19
바깥 어두운 곳  (0) 2014.09.16
“만일 그들이 떨어져 나가면..... ”  (0) 2014.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