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ethren/연(輦)모임 메시지

바깥 어두운 곳

Hernhut 2014. 9. 16. 12:30

 

성경에서 바깥 어두운 곳이라는 표현은 단 3번 나타납니다. 이 모두 마태복음에서 찾게 됩니다(8:12, 22:13, 25:30). 누가복음에서 바깥 어두운 곳을 암시하는 것은 마태복음 8:11~12절에서 언급된 표현과 유사한 표현입니다(13:28~29). 하지만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누가는 단순히 없이라는 표현을 축소합니다.

 

마태와 누가 둘 다 헬라어 에크발로ekballo를 사용합니다. 그 의미는 쫓겨나다, 내쫓다. 몰아내다.”입니다. 이 단어를 사용한데 이어서 이 구절들에서 각 사람들이 쫓겨나는 곳이 두 복음서에 주어졌습니다. 마태복음에 있는 이곳은 바깥 어두운 곳입니다. 헬라 원문은 어두운 곳을 의미하고, 바깥을 의미합니다. 헬라 원문에는 형용사와 명사 앞에 정관사가 붙어 있습니다. 그것은 특별한 장소 중의 특별한 곳을 의미합니다. 누가복음의 그 곳은 없이”, “바깥쪽으로 묘사했습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표현한 의미는 바로 바깥 위치입니다. 쫓겨난 자들이 보이는 인접한 경계선에 위치한 곳입니다. 두 구절 다 같은 곳을 말합니다. 바깥에 있는 어두운 곳입니다. 사람들이 쫓겨난 곳은 어느 정도 빛이 있습니다. 이것은 마태복음 22장에서 가장 좋게 묘사되었습니다. 마태복음 22장에 있는 바깥 어두움은 한 왕가의 혼인잔치에 참여하기 위한 인접한 지역의 사람들의 조건을 묘사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동방의 혼인 잔치는 일반적으로 불을 밝힌 연회장 안에서 밤에 개최되었을 것입니다. 거기의 바깥은 어두운 마당이었을 것입니다. 불 밝혀진 연회장 밖 이 어두운 마당 인접지역은 어느 정도 바깥 어두운 곳이나 바깥에 있는 어두움으로 완벽하게 표현되었을 것입니다. 안에서 쫓겨난 사람은 빛에서 어둠 안으로 내쫓긴 것입니다. 그것은 왕국과 다스리는 위치와 관계가 있습니다(8:11~12, 25:14~30).

 

바깥 어두움은 단순히 안에 있는 빛과 반대되는 것으로 바깥 어두움이라 불렸고, 빛 밖의 또 다른 영역의 한 영역입니다. 내쫓기는 사람들은 빛과 관련된 영역에서 옮겨졌고, 어두움과 관련된 영역 바깥으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8:11~12절의 바깥 어두움

마태복음에서 처음 나타나는 바깥 어두움은 원문과 문맥 둘 다 왕국 메시지와 관계가 있습니다(8:12). 예수님은 그분의 제자들에게 산상수훈이라 부르는 긴 담론(談論)을 마치셨습니다(5:1~7:29). 이 메시지에서 예수님은 하늘들의 왕국 안으로 들어가거나 차단되는 것과 관계있는 담론(談論)을 전달하셨습니다.

 

그 후 마태복음 8장에서 예수님은 산상수훈 직전의 주제로서 왕국과 관련 있는 메시지로 계속하십니다. 이 부분의 메시지는 사실상 마태복음 4장에서 멈췄던 것을 재개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의 메시지는 육신적인 치유들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육신적인 치유들은 이스라엘에게 왕국 메시지를 선포하시는 그리스도와 연결된 표적이었습니다. 민족의 상태를 돌이키려는 표적들은 이사야 1장에 묘사되었습니다. 이사야의 메시지는 온 민족의 영적 치유를 가리킨 것입니다. 각자가 치유 받았던 것처럼 민족적인 회개를 조건으로 온 민족이 치유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바깥 어두움이 마태복음에 처음 나타는 것은 이런 본질의 문맥적 배경 안에 있습니다. 사실상 그 주제는 말을 하는 것만으로 집에서 병을 앓고 있었던 종을 그리스도께서 낫게 하실 수 있다는 로마 백부장의 믿음을 보신 후 일어났습니다.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에 있는 자들이 드러낸 믿음의 부족함을 대조하는데 이 이방인이 드러내 보이는 믿음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에서 이렇게 큰 믿음은 내가 결코 보지 못하였노라.”(8: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후 그리스도는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와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하늘의 왕국에서 앉으려고”(8:10) 올 날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이 아니었던 독립적이고 서로 구분되는 두 집단이 동서로부터오는 것입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 밖에 있는 사람들이 이방인들로서 보일 수 있을 뿐입니다. 그 때에 이 백부장과 같은 순서로 믿음을 보일 것이고, 왕국의 하늘에 속한 영역 안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왕국의 이 영역에 속한 사람들은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거절당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있는 왕국의 아들들은 쫓겨날 것입니다(8:11~12).

 

마태복음 21:43절이 예언된 모든 장면은 이스라엘을 빼내는 왕국에 대한 하늘에 속한 몫과 관련되었습니다. 이 장면은 땅에 속한 부분에서 이스라엘을 절대 빼낼 수 없습니다. 궁극적으로 차지하고 있는 독립적이고 서로 구분되는 두 집단은 거기에 자연스럽게 속해 있지 않았습니다. 이 무리는 그 때에 하나님과 소망이 없는 이방인들이었던 사람들과 비교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이런 상황은 바뀔 것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 질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있음으로 인해 그들은 아브라함의 씨,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의 하늘에 속한 분깃에 따른 상속자들이 될 것”(3:17~18, 29, 2:12~13, 22:17)입니다.

 

 

마태복음 22:1~14절의 바깥 어두움

마태복음에서 두 번째 나타나는 바깥 어두움은 혼인잔치가 묘사되었습니다(22:13). 이 구절에 있는 문맥적인 어법은 하늘들 왕국과 왕가의 혼인에 참석하는 것과 관계있습니다. 문맥적으로 그의 아들은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으로 볼 수 있습니다. “종들다른 종들제의 받은 사람들(이스라엘)”을 부르라고 보내진 것은 구약성경 선지자들의 사역을 말합니다(22: 3~4, 21:33~36).

 

하지만 이 제의는 묵살되었고, 박정하게 대함을 받았습니다. 그런 후 최후로 하나님은 그분의 아들을 보내셔서 그들은 내 아들을 경배할 것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의 땅에서의 사역을 마치실 무렵 스가랴 9:9절에서 예언을 이루시려고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그분 자신을 나타내시는 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습니다(21:1~11). 하지만 예수님 역시 거절되셨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심에 이르게 되셨습니다(21:37~39, 22:1~6, 23:1~39).

 

하나님 아들에 대한 거절은 마지막 타격이었습니다. 그런 후 왕국은 독립적이고 서로 구분되는 민족에게 확장되도록 하기 위해 이스라엘에게서 멀어졌습니다(21:41b~46, 22:8~10). 이 새로운 민족으로 이루어진 성도들은 마태복음 8:11절에 있는 동서에서 오는 사람들과 같은 의미합니다. 다음 성경은 이들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한 새 사람이 된다고 계시합니다(21:43, 2:11~15, 벧전 2:9~10).

 

이스라엘에게 자연스럽게 속해있던 자들에게 이어진 이스라엘이 만든 이 불신앙은 그 두 절에 있는 바깥 어두움에 대한 언급의 서곡(序曲)이 됩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두 구절이 차이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8:12절에 있는 바깥 어두움은 왕국 아들들(이 원문에 있는 이스라엘)”을 위해 따로 떼어 두었지만 마태복음 22:13절에 있는 어두움은 하나님의 아들의 혼인잔치에 참여하려고 하는 이스라엘로부터 나온 개인들을 위해 떼어 두었습니다. 마태복음 22:13절에서 바깥 어두움으로 쫓겨나는 사람은 합당한 의복을 입지 않고 왕가의 혼인잔치 안으로 들어가도록 요구받고 그곳에 나타났습니다. 그는 혼인예복 없이 혼인 식장에 나타났습니다.

 

이스라엘은 마태복음 22:3~7절에서 이미 언급되었지만 혼인예복을 입지 않고 나타나는 사람은 이스라엘과 멀어진 왕국이 선포된 후 부름 받은 자들과 동일한 자들입니다(22:8~10, 14). 그러므로 이 사람은 마태복음 8:11절에 있는 동서로부터 오는 자들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한 새 사람으로 구성된 사람들 중에 있게 될 것이요, 마태복음 22:9~10절에 있는 큰길에 있는 사람들 중에 있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일 것입니다.

 

이 두 구절에 있는 가르침은 하늘들의 왕국이 아직 이스라엘로부터 멀어지지 않은 마태복음 8:11~12절의 시간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지만 마태복음 22:1~14절은 또 다른 무리가 구성되도록 제안하는 예언입니다. 이 부분은 이스라엘 왕국의 하늘에 속한 분깃이 옮겨지는 것에 대해 선포 후 주어진 것입니다. 이 두 구절에서 하늘들 왕국에 대해 제안 받는 수혜자들은 그들이 바깥 어두움이라고 하는 곳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 암시가 이 왕국 안으로 들어오는 다른 사람에 대해 언급되었을지라도 마태복음 8장에 있는 하늘들 왕국에 대한 제안은 이스라엘에게만 열려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2장에 있는 이 왕국의 분깃에 대해 제안은 이스라엘에서 옮겨졌고, 새 민족에게만 열려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바깥 어두움은 두 구절에서 같은 방식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바깥 어두움은 열려졌던 하늘들 왕국에 대해 제안 받은 자들과 관련하여 사용된 것입니다.

 

 

마태복음 25:14~30절의 바깥 어두움

세 번째의 바깥 어두움은 유대인들,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이방인들을 다루는 것과 관련된 감람산 담론(談論)로 마태복음 25:30절에서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기독교 초기에는 미래시대를 기다렸지만 그 담론(談論)은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시고, 이스라엘로부터 하늘들의 왕국을 옮기신다고 선포하신 후, “그리스도 안에 있는한 새 사람을 예언하신 이후에 주어졌습니다(16:18~19, 21:33~43, 2:12~15).

 

담론(談論)의 첫 번째 부분(24:4~39)은 다가오고 있는 대환란에서 이스라엘과 관련되어 있는 사건들을 독점적으로 다루고 있고, 대환란의 결말에 민족의 메시야께서 돌아오심을 다룹니다. 이스라엘은 하늘들의 왕국에 대한 제의를 거절했고, 이제 그 민족은 대환란을 통과해야 하고, “주의 심판의 길에서”(26:8) 그녀의 메시야를 기다려야 합니다.

 

담론(談論)의 두 번째 부분(24:40~25:30)은 하늘들의 왕국에 대한 제의를 받는 새로운 자들을 다룹니다. 이 부분의 주안점은 왕국을 예언하고, 심판의 시대를 고려해서 오늘날의 믿음을 강조합니다.

 

담론(談論)의 세 번째 부분(25:31~46)은 대환란 끝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에 이어서 구원받은 이방인들, 살아서 심판받는 것을 다룹니다.

 

이런 방식에서 감람산 담론(談論)의 세 부분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세 부분으로 다루시는 것을 계시합니다. 하나님의 다루심을 받는 이들은 유대인들,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이방인들입니다.

 

이 담론(談論)의 유대인 부분에서 이스라엘을 다루시는 하나님은 대환란 동안과 직후로 묶여있습니다. 이에 대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이름을 위한 사람들”, 이방인들로 옮기시는 오늘날에 이스라엘을 따로 떼어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이스라엘을 다루실 때 오늘날 제도에 그분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기다리십니다. 이것은 감람산 담론(談論)의 유대인 부분이 대환란에서 이스라엘로 시작하는 이유입니다. 이 부분은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다시 한 번 이스라엘을 다루시기 시작하십니다.

 

이 담론(談論)의 그리스도인 부분은 유대인 부분과 다릅니다. 하나님은 대환란 이전시대인 오늘날에 사람들을 다루십니다. 오늘날에 하나님께서 다루시고 계신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거절한 하늘들의 왕국에게 대해 다시 제안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담론(談論)의 이방인 부분에서 이방인들만이 보입니다. 이 사건들이 일어날 미래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교회를 다루시는 것을 완료하실 것입니다. 이때에 하나님의 아들은 돌아오실 것이고, 땅 위에서 1,000년 통치 직전 대환란에서 나오는 구원받은 이방인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바깥 어두움이라는 표현은 감람산 담론(談論) 그리스도인 부분에 있는 달란트 비유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와 같이, 바로 ~와 같은 시기를 의미하는 헬라어 호스페르 가르Hosper gar로 소개되고, 열 처녀의 비유 직후의 이 비유는 이어질 비유가 앞에 있는 비유와 같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비유를 시작하는 마태복음 25:14절은 문자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열 처녀의 비유)하늘의 왕국은 마치 먼 나라로 여행하면서 자기 종들을 불러 그들에게 자기 재산을 맡긴 어떤 사람과 같으니라.”

 

열 처녀 비유와 달란트 비유는 기본적으로 같은 문제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열 처녀의 비유 앞에 집주인과 그의 종의 비유가 있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각 비유는 전자(前者)를 설명하는 것을 돕기 위한 추가적인 정보를 공급합니다. 집주인과 그의 종들의 비유에서 불신앙이 위선자들과 함께할 그의 몫을 나누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열 처녀 비유에서 불신앙의 종(어리석은 처녀)들은 혼인잔치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또 달란트 비유에서 불신앙의 종은 어두운 바깥으로 쫓겨났습니다.

 

이런 비유 사이에 있는 연관성을 이해하는 것과 마태복음 22장에 있는 혼인잔치의 비유와 그것들을 비교하는 것은 바깥 어두움이 세 비유와 관련되어 있음이 분명합니다. 불신앙의 종들이 있는 곳은 비록 달란트 비유에서만 바깥 어두움으로 표현되었을지라도 모든 비유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한 비유에서 그 장소를 설명하고 세 비유에서 이 장소에 있는 조건과 상태들을 설명합니다.

 

따라서 바깥 어두움은 불신앙의 사람들이 있을 장소입니다. 이 불신앙의 사람들은 하늘들의 왕국을 제안 받은 사람들이요, 오늘날 확장된 그리스도인들 중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불신앙은 이들 중에 있을 것입니다. 이 장소에 쫓겨나는 일은 혼인잔치와 그리스도의 1,000년 통치 기간 동안 일어날 것입니다. 主護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