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ethren/연(輦)모임 메시지

“만일 그들이 떨어져 나가면..... ”

Hernhut 2014. 9. 10. 13:30

 

광범위하게 퍼진 배교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선물을 맛보고 [성령님]께 참여한 자가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오는 세상의 권능을 맛본 자들이 *만일 떨어져 나가면 다시 그들을 새롭게 하여 회개에 이르게 함이 불가능하니 그들은 자기들을 위해 [하나님][아들]을 새로이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그분을 모욕하느니라.”(4:4~6)

 

히브리서 6:4~6절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든 성경에서 가장 어렵고, 논란이 많은 구절로 여겨집니다. 이 구절이 이런 방식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잘못된 해석적 접근법 때문입니다. 이 구절은 언제나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소유한 영원한 구원(믿음을 통한 은혜로 받은 구원)과 관련된 가르침의 관점에서 접근한 것입니다. 하지만 기술한바와 같이 이 구절은 이러한 주제를 다루지 않습니다. 믿음을 통해 은혜로의 구원과 관련 있는 가르침의 견지에서 이 구절을 해석하려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이런 주제를 다루지 않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뿐만 아니라 그들은 구원과 관련한 잘못된 해석적 관점으로 스스로 밀고 들어간다는 것을 압니다. 그에 앞서서 옳은 주제문제는 전혀 다루려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잘못된 해석적 접근법으로 올바른 주제문제는 잘 알려지지 않았고, 외면 받아 왔습니다. 고린도후서 4:4절에서 인용한 것처럼 이와 같은 이론은 오늘날 대적의 일을 발전시킬 수 있을 뿐입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에 관련된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가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문맥적으로 히브리서 6:4~6절은 만일 그들이 떨어져 나가면....”이라는 관점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둘러싸고 있는 기본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으로 여겨야합니다.

 

이 구절에서 언급된 그리스도인들은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른” (영원한)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와 관련된 것들에 대한 성숙한 지식과 명철을 소유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이 위치는 그리스도께서 다가오는 메시야 시대에만 알게 하실 위치입니다(5:6~14).

 

이런 그리스도인들은 배교하게 되고 떨어져 나갑니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이 떨어져 나간 후 그들은 그들이 떨어져 나간 위치에서 절대 회복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떨어져 나가는 것은 그리스도를 부정적으로 거절할 것입니다.

 

 

빛 비춤을 받았지만 떨어져 나가면.......

히브리서 6:4~5절에 나타나 있는 어떤 서술적인 단어들은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 서술하는 것으로 보기에 사실상 불가능하게 합니다. “빛 비춤을 얻었다.”라는 단어는 조명을 받은, 빛을 받은으로 번역된 히브리서 10:32절에 사용된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고린도전서 2:14절에 의하면 육에 속한 사람, 천연적인 사람, 자연인은 빛 비춤을 받을 수 없고, 영적인 문제로 조명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 후에 그 구절은 말씀에 대한 외에 어떤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에 대한 단단한 고기를 다루고 있습니다(5:12~14). 말씀은 맛이 있었습니다(6:4~5).

 

이 맛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심과 같은 단어입니다(2:9). 히브리서 6:4~5절에 있는 자들에 의해 들어갔던 체험들은 그리스도께서 갈보리에서 죽음을 맛보신 것과 같은 정도의 맛으로 여겨져야 합니다. 전자가 충분하고 완전하게 되었고, 후자도 그와 같아야 합니다. 마지막 서술되는 단어는 함께하는 자, 참예하는 자입니다(6:4). 이 단어는 히브리서 1:9절에 있는 따르는 자와 히브리서 3:1, 14절에 있는 참예하는 자와 같은 단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헬라어 메토코이metochoi의 번역입니다. “메토코이metochoi는 더 좋은 동업자, 동료, 함께하는 자, 따르는 자가 되도록 할 수 있는 것의 의미합니다. 이 단어는 그리스도의 힘을 행사하실 그 날에 그분의 동료들, 그리스도의 공동상속자들을 묘사하는 히브리서 1, 3장에서 사용되었습니다.

 

빛 비춤을 받은 것, “하늘에 속한 선물을 맛보는 것은 성령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이요, “하나님의 좋은 말씀을 맛보는 것이요, “ 다가오는 시대의 힘을 맛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히브리서 5장에 있는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른왕 같은 대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와 관련 있는 것들에 대해 성숙한 지식과 이해를 갖는 그리스도인들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땅 위에서 다스리게 되는 그리스도의 동업자요, 그리스도에 대한 성숙한 지식과 이해를 갖는 그리스도인들과 관계있습니다.

 

그런 후 이 성숙한 말을 가진 후 떨어져 나갈 가능성이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관련 있는 영적인 공과들은 문맥적으로 히브리서 5장에서 멜기세덱에 대해 소개하기 전 다루어졌던 메시지에서 나왔습니다. 이 메시지는 모세 아래에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전달했던 메시지입니다.

 

모세 아래에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땅에 속한 부르심과 아주 유사한 체험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던 12명의 정탐꾼들의 보고를 듣고, 그 땅의 실제적인 과일을 맛보는 것으로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일어났던 곳은 히브리서 6:6절에서 떨어져 나가고, 수반하는 말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가데스바네아에 있던 이스라엘사람들은 시내산에서 받았던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한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의 중심은 시내산에 건축하시고 설립하신 장막의 지성소입니다. 그들은 12명의 정탐꾼들의 보고를 들었고, 그 정탐꾼들이 가져온 가나안 땅의 실제적인 과일의 맛을 보았습니다. 이위치를 차지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땅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 땅을 정복하고 소유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나중에 하나님의 맏아들로서 그 땅에서의 부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눈에 보이는 모든 성숙한 지식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만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부르심과 앞에 놓인 것에 대해 이해했습니다. 그것은 히브리서 6:4~6절에서 말한 그들이 떨어져 나간 점입니다. 그들은 다시 회개함으로새롭게 되기가 불가능한 부분입니다.

 

 

왜 다시 회개함으로 새롭게 함이 불가능한가?

12명의 정탐꾼들은 그 땅과 관련해 긍정적인 면과 부정정인 면을 가기고 돌아와 보고했습니다. 그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좋은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네피림들로 점령된 원주민들은 강했고, 성곽도시에서 살았습니다(13:26~29, 32~33).

 

사람들을 간곡하게 촉구하는 갈렙과 여호수아는 우리가 당장 올라가서 그 땅을 소유하자. 우리가 능히 그것을 이기리라”(13:30)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10명의 정탐꾼들은 우리가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니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13:31)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보고를 듣고, 두 권고를 들었지만 그들은 갈렙과 여호수아의 보고보다 오히려 10명의 정탐꾼들의 보고를 믿었습니다. 그들의 결과적인 행동은 모든 것을 말했습니다. 그들은 다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서 이집트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절정에 이르는 문제는 그들이 또 다른 지도자를 세우고, 이집트로 돌아가기를 추구했다는 것입니다(14:1~4).

 

실재에서 그들은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등을 돌렸습니다. 상대적으로 하나님께서도 그들에게서 등을 돌리셨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가장 극심한 심판이 책임이 있는 모든 세대에 선포되었습니다.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하고 20세 이상의 세대들로 구성된 자들 모두는 광야에서 전복되었습니다.

 

한번 배교는 다시 회개하여새롭게 될 수 없는 심판이 일어났습니다. 실제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그들에게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다시 그려지는 이유는 그들이 그들 중심에 거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땅에서 승리하셔서 그들을 이끄시려고 하셨던 그분을 비난하고, 수치를 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단순히 마음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이 마음의 변화는 이스라엘이나 그리스도인의 부분이 아니고, 하나님의 부분입니다.

 

바로 그 다음 날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회개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바꿨습니다. 그들은 일찍 일어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돌이키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바꾸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그 땅으로 그들이 들어가는 것과 적들과의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과 관계가 없으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떠나 그 땅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엄청난 고통과 되돌림을 당했습니다(14:40~45).

 

그것은 히브리서 6:4~6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멜기세덱 계통을 따른왕 같은 대제사장으로서 다스리시러 오시는 그분 아들에 대한 성숙한 지식을 갖도록 그리스도인들에게 허락하신 후 그 그리스도인이 배교한다면 모세 아래에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일어났던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인은 부르심을 둘러싸고 있는 일과 관련되어 있는 한 그리스도로부터 끊기게 될 것입니다. 그는 그가 부르심을 받았고, 대적과 전투에서 승리했던 하늘에 속한 땅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는 그가 이미 차지하고 있었던 위치로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회개함으로 다시새롭게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했던 것처럼 나중에 그 문제에 관해 자신의 마음을 바꿨을지라도 하나님은 그분의 마음을 바꾸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그리스도인은 피 우편에 던져지게 되겠지만 그의 부르심의 목표와 다른 쪽에 있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그리스도인은 이런 행동을 통해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끄럽게 하고, 훼손을 가져올 수 있을 뿐입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은 그런 행동에 대해 강한 심판으로 그를 대하십니다[하나님][아들]을 새로이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그분을 모욕하느니라”(6:6) 여기서 새롭게라는 단어는 헬라 원문에는 없는 단어입니다. 그런 생각은 아들을 두 번째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갈보리를 둘러싸고 있는 수치와 모욕과 관계가 있습니다(7:27).

 

하지만 세상 편에서 아들을 이 같은 형태의 수치와 모욕하는 주제는 오늘날 가능합니다. 이런 수치와 모욕은 가데스바네아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했던 행동처럼 오늘날 어떤 그리스도인이 떨어져 나가는 행동의 결과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지만 이런 방식을 따라 떨어져 나가는 것은 두 가지 것을 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는 땅 위로 가져오시는 그리스도의 다스림과 관련 있는 것들에 대해 성숙한 지식과 이해를 자져야 합니다. 그 후 이스라엘 사람들이 신앙을 버렸던 것처럼 배교가 일어나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와 땅에 속한 그 땅으로부터 눈길을 돌리고 이집트로 갔던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와 하늘에 속한 땅으로부터 눈길을 돌리고 세상으로 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행하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갈보리에서 체험하신 것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굴욕과 수치 당하시게 할 것입니다. “자신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다라는 표현은 사실상 나머지 구절로 설명되었습니다. 드러내 놓고 그분을 모욕하느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자를 통해 굴욕과 수치를 주는 것이 다가오는 세상 통치자의 주제입니다. 세상 통치자는 오늘날 세상 체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앞에 있는 것에서 돌아보게 하는 사탄입니다. 사탄과 세상의 것은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6:3) 하나님께서 가르침의 기초를 떠나 완전하고 성숙한 것으로 나아가게 하시면 우리는 다가올 땅 위에서의 그리스도의 통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로 성숙하게 나아갈 것입니다主護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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