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영원한 생명은 아직 창조되지 않았고, 자존(自尊)이요, 영존(永存)임
영원한 생명이 무엇입니까? 영원한 생명은 모든 것 중에서 먼저 창조된 것이 아닌 것처럼 자존(自尊)과 영존(永存)이요, 제한이 없고, 속성들로 가득하고 파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영원”은 “끊임없음”보다 더 많음을 의미함
영원은 하나님의 질(質)들 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자존(自尊)과 영존(永存)하시는 분이십니다. 번역가들의 차이이지만 어떤 번역가들은 “끊임없는 생명everlasting life”으로 사용하지만 이 “끊임없는”이라는 단어는 단지 끝이 없는 시간을 말하기 때문에 그 의미를 점유하지 못합니다. 사실상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것은 시간으로 불리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영원은 이 생명의 질과 본질과 관계가 있습니다. 이 생명은 자존(自尊)과 영존(永存)하시는 하나님의 생명이시기 때문에 영원합니다. 이 생명은 제한이 없고, 파괴하지 못하기 때문에 영원합니다.
하나 됨은 영원한 생명으로 소유된 신성한 속성임
그러면 이 생명의 속성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사랑, 빛, 거룩함, 그리고 의로움에 대해 일반적으로 언급된 속성들과 익숙할지 모릅니다. 나는 하나 됨 또한 신성한 속성임을 말하려고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을 여러분이 생각할 때 이와 같이 하나이신 것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인정해야 합니다. 이 땅에서 이와 같이 하나인 것은 없습니다. 인류 가운데 아내는 자신들의 남편과 논쟁을 하고, 남편은 자신들의 아내와 싸움을 합니다. 부모는 아이들을 신경 쓰고, 아이들은 부모에게 반항합니다. 학생들은 교수들과 다르게 반응하고, 교수들도 학장들에게 다르게 반응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현실입니다. 땅 위에 있는 모든 것은 사탄의 분열적인 영향력 아래에 있기 때문에 언쟁들이 일어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심지어 교회생활에서도 우리는 이런 영향력을 보게 됩니다.
분열은 사탄에게서 옵니다. 사탄은 하나 됨을 깨는 자였습니다. 사탄은 분열을 계속 일삼으려고 자신의 직업으로 삼습니다.
조화는 하나 됨의 이 신성한 속성에 빚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 되심의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든 조화로우십니다. 이 우주 가운데 하나님은 모든 것을 창조하셨지만 하나님은 하나로서 함께 사역하십니다. 모든 것은 이 하나 되심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동물이 멸종될 때 본질적인 하나 됨의 조화를 상실합니다. 아무것도 필요치 않습니다. 모든 것 되시는 하나님은 하나 되심의 이 속성을 따라 만드십니다.
하나 됨의 신성한 속성은 순수함과 하나의 질(質)
하나님의 하나 되심은 순수라고 불리는 어떤 것이요, 이 순수는 하나라고 불리는 어떤 것입니다. 하나와 순수는 하나 되심의 하나님의 속성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서로 경쟁하고 싸우기 때문에 타고난 이 속성을 소유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하나 되심을 떠나 산다는 것입니다.
땅 위에 신성한 속성에 따른 문화가 없기 때문에 조화로운 사람의 문화를 체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조화로우시고, 순수하시고, 하나 되시는 분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하나님이신지요! 정말 순수하신 하나님은 서로를 향하십니다. 하나 되신 하나님은 경륜을 수행하시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주님, 제가 사랑이시고, 빛이시고, 의이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또한 당신은 하나 안에 계시고, 순수하시고, 조화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기묘하십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초자연적인 능력은 영원한 생명으로 소유된 신성한 속성임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이신 분을 만질 때 여러분은 초능력을 만집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만질 때 사랑, 빛, 의, 하나 됨, 순수, 조화로움을 만집니다. 모든 것이 있는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나는 능력을 만집니다. 그리스도의 모든 속성이 거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소유하시는 능력이 무엇입니까? 부활능력입니다. 승천의 능력입니다. 왕좌에 앉으시는 능력입니다. 그 능력은 모든 한계를 이기는 것입니다. 이 능력은 그분의 속성들 중 또 다른 하나입니다. 능력이 그리스도의 속성 중 하나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분의 능력을 만지는 것 없이는 그분을 만질 수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는 것은 그 속성들을 소유하는 것
형제들이여, 영원한 생명에 대해 말하는 것은 단순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이러한 속성들을 체험했을 때까지 영원한 생명이 정말 여러분의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주님을 만나고, 주의 이름을 부르고, 그분을 누릴 때 너무 좋고, 달콤함을 느낍니다.
여러분이 교회생활을 하면서 사랑을 만졌습니까? 빛을 만졌나요? 거룩한 어떤 것, 그분의 의를 만졌나요? 여러분은 하나 됨을 만졌습니까? 여러분이 만진 것은 무엇입니까? 행복감을 느꼈습니까? 우리가 체험하는 거기에 어떤 신성한 속성이 포함되어 있습니까?
우리는 주님의 임재까지 우리가 체험하는 달콤한 느낌을 멸시하지 말아야 하지만 이 느낌들은 핵심이 아니요, 본질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의 신성한 속성들에 참여해야 합니다.
사랑, 빛, 거룩함, 하나 됨, 순수, 조화로움, 능력이 밀려왔나요? 여러분이 이러한 속성들을 받아들인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과 사람과 그리고 여러분의 환경과 조화로움으로 사랑 안에서 강해지고 전진된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런 후에야 여러분은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을 만졌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속성들을 소유하도록 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배열하심
가끔 우리는 어려운 환경 가운데 있지만 우리가 주의 임재 안에서 보낸 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그 환경들을 만드셨다는 것을 깨닫고서 우리의 환경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적 움직임 안에서 그분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조화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 계속해서 우리 주변에 일들이 일어나도록 하십니다.
우리가 신성한 속성들로 살지 않는다면 우리는 단순히 좌절감과 불만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불만과 좌절감을 가지고 삽니다. 그렇지만 그것들이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위해 모든 것들을 만드셨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쁨으로 그것들을 포용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주님의 임재 안에 있을 때 거기엔 굶주림이나 제한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많은 어려운 환경을 만들고, 곤경에 처해질지라도 나는 주의 놀라우신 공급이 있음을 압니다. 이런 어려운 환경에서 그분을 섬기기를 갈망하는 여러분을 그분은 돌보실 것입니다. 내가 어려웠던 환경에 있었을 때 내가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주님께서 나에게 무척 친근하셨던 것을 나는 느꼈습니다. 나는 이때에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는 체험을 했습니다.
나는 어떠한 것이 필요할 때, 나는 “주님,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당신이 이것을 저에게 공급하십니다.”라고 기도합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을 채우시는 하나님을 수없이 체험했습니다. 그 때마다 나는 “이렇게 채우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럴 때 그 가치는 더 올라갔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정말 조화를 이룬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모든 것 되시는 하나님은 여러분을 위해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사람의 느낌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가끔 여러분은 극도로 불안정할 수 있고, 때론 기쁨이 넘칠 수 있지만 거기엔 여러분이 하나님의 공급과 하나님과의 조화가 될 수 있는 신성한 생명 안에 있는 어떤 것이 있습니다.
신성한 생명 안에서의 성숙은 신성한 속성들로 구성된 결과임
주를 만지는 것, 주를 누리는 것은 이 모든 속성들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성숙은 이 속성들로 구성된 결과로 일어납니다.
계급적인 것은 우리 가운데서 분열과 좌절만을 산출하기 때문에 계급적인 것에 가치를 두지 마십시오. 아무리 부자여도 속성들은 여러분 안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영 안에 없다면 그 속성들은 경영될 수 없습니다. 이것 때문에 여러분은 항상 영 안에 있기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신성한 속성들에 참여하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영이시기에 그분의 영을 누려야 함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요 4:24) 여러분은 그분의 신성한 속성들을 누리기 위해 영 안에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사랑이시오(요일 1:5), 빛이시라(요일 4:16)고 말합니다.
사랑은 은혜와 관련이 있고, 생명은 실재와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 사랑, 빛 없이는 속성들은 여러분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영 안에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 됨, 순수, 조화로움, 능력과 같은 속성들은 여러분의 체험과 구성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싸움은 우리가 신성한 속성들을 소유하기 위해 영원한 생명을 붙잡아야함
바울은 우리가 영원한 생명 안으로 구원받았고,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붙잡아야 한다고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 우리가 싸우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붙잡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이 영원한 생명을 아는 것은 정말 좋은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우리의 구원에 영원한 생명을 받아들였고, 오늘날 이 영원한 생명을 붙잡기 위해 싸워야 하고, 또 미래에 있는 우리의 보상은 영원한 생명이 될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생명이라는 용어를 여러분이 사용할 때 여러분은 추상적이고, 신학적이고, 교리적이고, 단순히 용어적인 것에 관해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말하는 주제로 생명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여러분이 영 안에서 이 모든 속성들에 참여함으로 얻는 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성장은 이 속성들 안에서의 성장입니다. 여러분은 성장했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이 이 속성들로 더 구성되느냐에 따라 다 다릅니다. 여러분은 건강합니까? 여러분의 건강은 이 속성들이 여러분의 체험 안에서 어떻게 경영되는지에 결정됩니다.
그리스도인 생활에서 건강하게 되는 것은 사랑, 빛, 거룩함, 의로움, 조화로움 안에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건강한지는 이 속성들의 존재입니다. 이런 속성들이 부족하다면 그는 건강하지 않음이 드러날 것이고 이런 속성들이 풍성하다면 건강하다는 것이 나타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속성들의 임재를 갖는지에 결정됩니다. 이 속성들은 우리가 주님과 함께 있다는 것을 판단하게 됩니다.
사랑과 빛: 우리의 체험을 위한 하나님의 주된 속성들
우리가 체험해야 할 하나님의 주된 속성들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랑과 빛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오(요일 4:8), 빛이십니다(요일 1:5). 여러분이 영 안에 있을 때 여러분이 체험하는 두 가지입니다.
이것에 이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의로우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분의 사랑과 빛 되심이 더 강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말하지 않습니다.
의는 사실상 빛으로 누리는 하나님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신성한 속성들에 참여함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되심을 누림에서 나옵니다.
우리가 영 안에 있음으로서 우리가 체험하는 하나님의 첫 번째 속성은 사랑임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주님, 제가 이 땅에 살면서 신성하고 하늘에 속한 당신의 속성들을 체험해야 합니다.”라고 주님께 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여러분이 영 안에 있다는 것을 계시하실 것이요, 하나님의 영을 떠나 있는 이 속성들은 절대 여러분의 것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속성들은 여러분이 연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여러분이 영 안에서 체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단순히 감정과 느낌의 문제가 아니고, 신성하신 하나님 그 자체임.
그 후 여러분이 영 안에 있는 자로서 여러분이 체험할 첫 번째 것은 사랑으로서의 하나님입니다. 대부분 사랑은 사람의 감정과 관련된 단어입니다. 사실상 신성한 속성인 사랑은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시도록 하나님을 움직이게 하는 힘입니다. 사실 사랑은 움직임의 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분은 과정을 통과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분은 성부, 성자, 성령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구속을 이루시는 모든 것을 통과 하셨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체험할 이와 같은 한 영이 되시는 모든 것을 통과하셨습니다. 이 신성한 속성은 감정을 넘어 훨씬 위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분의 사랑 때문에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지만 그분은 “나의 사랑은 나를 사람이 되게 하는 강력한 힘이다. 그것은 너희가 이 땅에서 살도록 하고, 모든 체험을 통과하도록 하는 나의 이유가 되었다. 그것은 죄가 없지만 모든 것으로 시험받도록 나를 허락한 이유다. 사랑 때문에 나는 너희가 구속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기꺼이 죽었다. 그것이 내가 부활 안으로 들어가는 이유였다. 내가 생명주는 영이 될 수 있기 위해서 내가 이 과정을 통과한 이유는 이 사랑”이라고 인식하십니다. 생명주는 영은 사랑의 한 영입니다.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하나님을 움직이는 사랑
실은 우리 하나님께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신 이유는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부족함이 있고, 신성한 속성으로서의 사랑에 대해 우리의 체험 또한 부족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신 이유를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하늘들과 땅을 창조하신 이유를 아십니까? 그분께서 사람이 되시고, 땅에서 3년 반을 사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보좌에 앉으신 것을 아십니까? 왜 그분께서 여러분 안에 거하시고, 여러분의 환경 안에 모든 것을 배열하셨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그분께서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위한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 때문에 우리가 그리스도를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모든 일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이와 같은 놀라운 속성은 이제 내가 누리고, 참여하고, 나누고, 체험하도록 나의 영 안에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말입니다. 그분께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우리를 선택해서 고르시고, 예정하시고, 그분의 영광 안으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이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 안에서 그분은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완전히 확대할 사람이 되도록 배열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그분의 크신 사랑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영광스러운 목적으로 설계되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사랑할 때 보여 주신 자신의 크신 사랑으로 인하여 *심지어 우리가 죄들 가운데서 죽었을 때에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느니라.)”(엡 2:4~5)라고 말한 이유입니다.
우리가 죽게 되었고, 그분께서 오셔서 우리의 유익의 모든 것을 이루신 것이 무력화되었을 때 이제 우리는 하늘에 속한 곳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격, 그분의 경륜, 그분의 이끄심, 그리고 그분의 이루심 모두 이 사랑의 부담(負擔)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성령을 통해 우리의 마음 안에 부어짐
하나님의 사랑은 단지 감정을 벗어난 사랑을 표현하시는 그분 자신입니다. 이것은 주님 자신께 우리를 그리는 사랑입니다. 이것은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 안에 부으신 사랑입니다(롬 5:5).
여러분이 여러분의 영 안에서 주를 진실로 만진다면 여러분은 평안한 느낌뿐만 아니라 어떤 것을 만져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이 영역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만지고, 그분의 달콤함을 느껴야 할 뿐만 아니라 여러분은 신성한 사랑의 소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는 더 이상 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신 그분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고후 5:15).
우리가 우리 마음에 부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누릴 때, 우리가 그분을 추구하는 자들이 됨
우리는 우리가 그분을 따라 달릴 수 있었기 때문에 주님께서 우리를 이끄시기를 기도하지만(아 1:4) 누가 주님을 볼 수 있습니까? 바울은 주님의 마지막 나타나심이 그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천명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아직 우리에게 나타나시지 않으셨지만 우리 모두는 “주님,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왜 여러분은 주님을 사랑하시나요? 사랑이 우리 마음 안으로 부어졌고, 우리가 그 사랑에 매혹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나를 이끄신다.”라고 말할 때 그 의미는 “주님, 저는 당신의 사랑이 제 마음과 영에 부어진 것을 누리므로 당신에 의해 매혹되기를 좋아합니다. 이는 당신의 사랑이 제 마음과 영에 부어졌을 때 제가 당신에 의해 매혹되었기 때문입니다.”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 사랑 때문에 주님을 추구합니다. 이 신성한 속성이 우리의 영 안에서 우리로 누려졌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추구하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훈련하지 않는 것, 가르치지 않는 것, 방법은 우리 마음에 그분의 사랑을 부으시는 그리스도를 대체할 수 있음
그리스도 자신은 우리에 의해 체험되셔야 합니다. 훈련하지 않는 것, 가르치지 않는 것, 방법은 그리스도의 체험을 대체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모든 진리와 여러분이 배우는 모든 것은 여러분의 마음 안으로 그분의 사랑을 부으시는 그리스도를 여러분이 체험하는 날까지 일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사랑은 우리를 이끄시고, 우리가 그분을 추구하는 이유요, 심지어 우리의 생활이 되시고 우리의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랑으로 움직였을 때 여러분이 기꺼이 수고를 하고 있기 때문에 값을 지불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내가 자신의 가족을 위해 매일같이 식사를 준비할 때와 마찬가지로 느낌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느낌은 있지만 그 느낌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아내가 잘 느끼지 못할 때에도 아내는 여전히 자신의 가족을 위해 식사를 공급하려고 어떤 요리를 준비할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를 섬기려고 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으로 구성되어야 함
여러분이 내게 왜 주님을 섬기는지를 묻는다면 나는 내가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느낌으로 지지하고 강화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모이기 전 나는 어떤 것도 느끼지 못합니다. 하지만 나는 주의 임재를 갖습니다. 내가 어떤 것을 느끼든지 느끼지 못하든지 이것은 나의 생활입니다.
여러분이 이 사랑 없이 성경을 연구하고 영적인 수고를 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자랑스러울까요? 여러분이 교회생활에서 다른 사람들과 완전한 조화롭게 수고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의 성장이 사랑 안에서 성장한다면(엡 4:16) 사랑의 어떤 것은 여러분의 존재 안으로 구성될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여러분은 참된 영적인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께서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분께서 하시는 모든 것을 하십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가 이와 같은 사랑을 누리기 때문에 우리가 교회에서 통과하는 것을 통과해야 합니다(엡 5:25~29).
사랑은 우리를 이끕니다. 사랑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추구하게 합니다. 사랑은 우리가 확실한 길을 가도록 합니다. 사랑은 우리를 자라게 합니다. 사랑은 우리가 신성한 것으로 구성되도록 합니다.
내가 신성한 생명의 것을 가질 때 나는 신성한 사랑의 것으로 만들어집니다. 우리는 주님께 “주님, 제 삶 속에서 사랑 안에 거하는 자가 되고 싶습니다. 이보다 더 갈망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님, 제가 다른 무엇보다도 더 신성한 속성 안에 있음을 감사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by herrnhut sung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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