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교회에서 “거친 사람들”로 불만스러워 하는 많은 사람들을 상담했습니다. 거친 사람들은 너무 노골적인 말을 하거나 자기 고집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생각하기 전에 먼저 말을 합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태클을 걸거나 공평하게 나누려하지 않고 차별을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좋게 보려고 하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과 나는 우리의 교회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샌드페이퍼”가 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는 말하는 것이 충분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을 밝히지 못하거나 너무 분석적이라서 행동을 하는데 느릴 것입니다. 어떤 성격은 잘못된 방법으로 서로에게 들이댈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배경은 우리를 어떤 사람들에 대해 더 감성적이거나 비난적이게 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교회에 출석합니다. 이 사람들과 우리는 함께 누립니다. 우리는 이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영으로 교제하고 그리스도와의 연합함을 입증하는 몸이 된다면 우리는 “같은 생각을 품고 같은 사랑을 가지며 한 뜻과 한 생각”이 되는 것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빌 2:1~2). 빌립보서 4장에서 바울은 겉으로 서로에게 “샌드페이퍼” 사람들이 되려고 하는 두 여인에 대해 기록했습니다. 바울은 “주 안에서 서로에게 동의하는” 그들을 기뻐했습니다. 바울을 어떤 편도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주 안에서” 그들의 연합을 알도록 그들을 격려했습니다. 그 문제는 누가 옳고 그름이 아니라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 함께 올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모두 겸손한 자가 되신 그리스도 예수의 태도가 필요합니다. 바울은 “이 두 여인을 돕도록 할” 그들의 교회를 책임 맡은 몸의 다른 지체들을 교육하러 갔습니다.
∎ 샌드페이퍼의 사람들을 도우라. 우리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에 대해 반응할 수 있다.
“어떤 일도 다툼이나 헛된 영광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며 *각 사람이 자기 일들만 돌아보지 말고 각 사람이 남의 일들도 돌아보라.”(빌 2:3~4)
∎ 반대한 사람들을 도우라. 우리는 모두 우리가 개인적으로 반응하는 것에 관해 반응할 수 있다.
불만스러워 하는 사람들을 상담하는 과정에서 나는 그들의 관련이 있는 것에 대해 듣고, 심지어 나는 다른 사람이 더 잘못이 있었다고 믿는다면 나는 여전히 나와 말하고 있는 사람의 책임에 초점을 맞춥니다. 나는 그들이 더 큰 그림을 보도록 도우려고 하고, 몸의 연합에 대해 보도록 합니다. 나는 그들에게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음이라.”(빌 2:8)라는 말씀을 전합니다. 이내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있는 이름을 그분에게 주사”(빌 2:9)라고 바울은 전합니다.
∎ 가르치는 자들과 사역자들을 도우라. 그들은 길을 인도할 책임을 받은 자들이다.
모두가 기대하는 선함으로 돌보는 모임에서 분위기를 건축하는 방법으로 그들을 양육하십시요. 그들을 위해 이것을 모델로 건축하십시요. 그들이 필요로 하는 본을 세우십시요. 사도바울은 빌립보에서 그 내용을 정말 실행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너희는 내 안에서 배우고 받고 듣고 본 것들을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빌 4:9)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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