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퍼런스/아담 vs 그리스도

이기는 자들의 특성(I)

Hernhut 2013. 4. 18. 22:13

 

추구하는 마음

나는 이기는 자들의 생명의 특성을 보는 것이 우리 마음의 태도를 구체화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가 이 시간에 이러한 특징들 모두 완전히 우리에게 맞는다고 느끼지 못한다 하여 실망하지 마라. 우리가 우리의 단점들을 깨닫는 경우에 여기서 우리의 삶 안에서 일 하시도록 마음으로 그분을 초대하여 그 단점들에 관하여 기도로 주님께 우리를 열어 드리자. 그리고 우리가 부족할 경우에 우리를 도우셔서 은혜를 받도록 은혜의 반석에 나아가자.

특징들의 이 목록들은 완벽하지 않을지 모르나 내 관념으로는 중요한 것은 이것들이 승리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발자취이다. 이 목록들은 성경과 전기를 읽고 또 개인적인 체험을 여러 해 관찰에서 나온다. 내 기도는 여기서 우리가 논의 되는 것들은 여러분의 마음을 만질 것이요, 여러분을 더 높은 곳에 도달하도록 영감을 줄 것이다. 대부분의 기초적인 특성들을 관찰하는 것은 추구하는 마음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 특성은 어떤 다른 특성들과 겹칠 것이다. 여기서의 목적은 승리하는 믿는 이의 핵심이 끊임없이 하나님의 것들과 하나님을 추구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본다. 이기는 이는 원래 상태로는 결코 만족할 수 없다. 형제자매들은 항상 더 깊이 하나님을 알고, 더 세밀히 그분의 진리를 알고, 더 충분히 그분의 방법들을 알며, 또 더 완벽하게 그분을 따르기를 바란다. 다른 사람들은 주님의 날(일요일)에 교회에 가고, 한 주간 동안 마지못해 조금 성경을 읽는 것으로 만족할지 모르나 이기는 이는 그분 앞에서 더 교제하고, 그분의 말씀을 더 음식으로 공급받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진실 된 영적인 교제와 그리고 더 열매를 맺고 그들의 생활 안에서 진실하기를 사모한다. 이기는 이들은 그들의 삶 안에서 그들 주변의 생활 안에서 더 하나님 일을 보기 갈망한다. 주를 추구하는 이들은 오늘날 교회에서 더 이상 사역하고, 가르치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께 더 깊이가고, 더 배우기를 추구한다.

솔직하게 말하면 성경과 우리의 체험을 따르면 둘 다 이기는 이들은 하나님의 사람들 가운데 소수에 불과하다. 우리는 주님을 추구하는 몇 구절을 보게 될 것이다. 구약 성경에서 역사적인 책에 기록된 몇 명의 왕들은 그들의 삶의 적은 부분에서도 주님을 진실로 기뻐하는 것 같았다. 종종 성경은 주님을 추구하는 것으로 그들을 설명한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제단에서 예배를 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돌아 올 때 이스라엘 왕국은 북쪽에서 우상의 것들을 버리고 떠났으며, 뿐만 아니라 성전을 재건축하기 위해 바빌론으로부터 돌아왔는데 둘 다 주님을 추구했음을 설명하고 있음을 볼 것이다. 여기서 주님을 추구했던 그들의 몇 성경적인 예들을 볼 것이다.

아사가 주 자기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것과 올바른 것을 행하였으니 *이는 그가 이방 신들의 제단들과 산당들을 제거하고 형상들을 부수고 작은 숲들을 베어 내고 *유다에게 명령하여 주 곧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을 구하게 하며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고 *또 유다의 모든 도시에서 산당들과 형상들을 제거하였음이라. 왕국이 그 앞에서 평안하니라. ”(대하 14:2~5)

하나님의 영께서 오뎃의 아들 아사랴에게 임하시매 *그가 나가서 아사를 맞으며 이르되, 아사와 유다와 베냐민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가 만일 주와 함께하면 그분께서 너희와 함께하시리라. 너희가 만일 그분을 구하면 그분을 만나려니와 너희가 만일 그분을 버리면 그분께서도 너희를 버리시리라.”(대하 15:1~2)

또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여 주 자기 조상들의 하나님을 구하기로 언약을 맺고”(대하15:12)

주께서 여호사밧과 함께하셨으니 이는 그가 자기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걸으며 바알들에게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주 자기 아버지의 하나님께 구하며 그분의 명령 안에서 걷고 이스라엘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주께서 왕국을 그의 손에서 굳게 세우시매 온 유다가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렸으므로 그가 많은 부와 명예를 소유하였더라. *주의 길들을 행함에 있어 그의 마음이 위로 치솟으매 그가 또한 유다에서 산당들과 작은 숲들을 제거하였더라.”(대하 17:3~6)

여호사밧의 예는 주님을 추구함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방식들과 관련되어 있는 진리와 게다가 그 진리 안에 들어간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주님께서는 이 왕의 추구 즉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한 그의 소망을 포함하여 영광을 받으셨다.

 

다윗이 유다 광야에 있을 때에 지은 시. | 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내가 새벽에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메마른 땅에서 내 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사모하오니”(63:1)

다른 시편에서 우리는 다시 다윗이 하나님을 간절히 추구하는 것을 본다.

 

주께서,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셨을 때에 내 마음이 주께 아뢰기를, 주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27:8)

이 구절들에서 주님을 추구하는 중요한 부분은 주님의 존재를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추구는 그분과 함께 영적인 연합된 생활 안에서 살기 위하여 우리의 영의 깊숙한 마음속으로부터 하나님께로 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말한다. 시편 105편은 우리에게 주님과 그분의 능력을 찾으라, 그분의 얼굴을 계속해서 찾으라”(105:4)고 말한다.

내가 금식하며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을 향하여 내 얼굴을 세우고 기도와 간구로 구하니라.”(9:3)

이 말씀은 다니엘의 증언이다. 다니엘의 실례는 우리의 생활 속에서 주님을 추구가 필요할 때 특별한 기도 어쩌면 그보다도 더 금식으로 해야 할 몇 가지 기회가 있음을 보여준다. 특별한 의식이 있는 때 깊은 통회를 의미하는 베옷을 입고 재를 뿌린다.

레위인들은 그들의 소유지와 목초지를 떠났으며 유대와 예루살렘에 왔고 여로보암과 그들의 아들들이 그들을 주님을 위한 제사장으로서 봉사하는 것으로부터 제외했다. 그리고 여로보암은 자기가 만든 사티로스(Satyrs- 성경은 이들을 산당과 마귀들이라 말하는데 이들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술과 여자를 매우 좋아하는 숲의 신이요, 로마신화의 Faun과 같다. 즉 호색가이며 색마라 표현할 수 있음)와 송아지와 높은 자리를 위해 그 자신들을 제사장으로 세웠다. 이스라엘의 모든 족속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을 추구하는 그들의 마음을 정하여 그들의 조상들의 주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기 위해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레위사람들을 따랐다(대하 11:14~16). 위의 성경 구절은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제단에서 여로보암 아래에서 북쪽 왕국에 있는 우상을 떠난 믿음이 있는 유대인들을 말하고 있다. 그들은 예배의 하나님의 방식을 따르기 위해서 자신들의 토지를 뒤로 하고 떠남으로서 타락한 상황을 이겼다. 그들의 추구는 타고난 움직임을 중심이 된 결과였다. 중요한 것은 이 구절은 우리가 주님을 추구할 우리의 마음을 정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 믿는 이들은 소극적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추구하는 것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포로로 사로잡혔다가 다시 돌아온 이스라엘 자손과 그 땅의 이교도들의 더러운 것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고 이스라엘에 속하여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찾는 자들이 다 먹고”(6:21)

위의 에스라로부터 인용된 구절은 하나님의 사람들 가운데 또 다른 매우 중요한 흔적을 설명한다. 그들의 불순종 때문에 유대에 있는 유대인들은 포로가 되었고 약 B.C 604년에 시작하여 바빌론 포로로 지배를 받았다. 이 포로 기간은 70년간이나 계속해서 예언 되어졌다.(25:11~12). 70년이 되었을 때 페르시아왕 사이러스는 유대인들은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법령을 포고했다(1:1~3). 그러나 유대인들의 일부만이 에스라와 다른 사람들의 지도 아래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축척된 땅과 소유 재산들 그리고 그들을 떠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바빌론에 머물렀다. 주님을 추구하기 위해 정말로 갈망했던 이들, 그분의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 하나님의 선택된 도시로 돌아왔던 하나님의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성전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수행으로 순종했던 이들은 그들의 시대의 이기는 이들이었다.

 

추구하는 이들의 보상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진실로 찾는 이들을 위한 특별한 보상을 가지고 계신다. 시편 24편 이후에는 추구하는 이들의 보상과 승리하는 생활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주의 산에 오를 자 누구인가? 그분의 거룩한 곳에 설 자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순수하며 헛된 것을 향하여 자기 혼()을 들지 아니하고 속임수로 맹세하지 아니한 자로다. *그가 주께 복을 받고 자기의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받으리니 *이것이 그분을 찾는 자들의 세대요, 오 야곱아, 네 얼굴을 찾는 세대로다. 셀라.”(24:3~6)

주님을 찾는 이들을 위한 보상과 관련되어 있는 놀라운 신약 성경의 구절은 히브리서 11:6이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가 반드시 그분께서 계시는 것과 또 그분께서 자신을 부지런히 찾는 자들에게 보상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하기 때문이니라.”(11:6)

아마도 추구하는 이들을 위한 모든 약속들의 가장 감동시키는 구절은 그들이 하나님을 찾는 것일 것이다.

또 너희가 마음을 다하여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날 것이라.”(29:13)

만일 여러분이 이 구절의 맥락을 보면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바빌론으로 포로로 잡혀갔었던 유대인들에게 말씀하고 계셨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70년의 포로 기간이 되었을 때 그분은 그분을 찾았던 그들의 마음 모두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약속하고 계셨다. 우리는 에스라에서 말씀을 본 것처럼 포로로부터 돌아온 이들은 주님을 진실로 추구하는 이들 위한 실제가 되었다.

하나님은 승리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찾고 계신다. 그분은 승리로 걷는 그분의 자녀들을 보기 갈망하신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갈망하는 마음을 아시고 계신다. 처음 추구하는 이들이 추구를 시작할 때 많은 실패를 할 지 모른다. 그것은 잠시 동안 승리하는 생명의 비밀의 어떠함을 배우게 되고, 또 우리의 체험 안에서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그분 자신과 하나님의 것들을 진정으로 계속적으로 추구함으로서 승리는 증가하는 분량이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 언급한 두 가지의 경우는 격려가 되는데 하나님의 사람들은 부정적인 상황 안에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믿는 이들이 주님께 나오고 주님을 추구하기 시작하는 것으로부터였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이 하나님과 여러분들의 삶을 위해 그분의 목적으로부터 떠나서 포로의 일부이거나 우상의 땅에 있었다고 느낄지 모른다. 격려한다. 언제나 우리는 새롭게 시작하고 항상 회개를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참으시고 계시며, 항상 우리에게 응답하시기 위해 기다리고 계신다.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추구하기로 정하라. 만약 우리가 진심으로 또 부지런히 그분을 추구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을 위한 그분과 그분의 계획을 확실하게 찾게 될 것이다. 이것은 승리의 삶을 포함할 것이다. 그분은 또한 그분을 추구하는 그 추구를 위한 보상을 분명하게 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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