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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악기로 찬양하려는 것을 방어하기

Hernhut 2012. 11. 3. 18:34

2장: 악기로 찬양하려는 것을 방어하기

 

예배에서의 악기들을 사용함을 방어하려는 몇 가지 노력을 생각해보십시오. 많은 사람들은 색깔이 다른 논리를 펴고, 다른 것을 전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의 사역들을 태클 걸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다만 내가 성경에서 얻은 지식과 연구를 교회 사역론으로 삼고자하는 것뿐입니다. 특히 이 사역을 정확히 한다면 교회의 예배의 패턴이 다를 수 있고 천주교회서 가져온 예배의 형식을 깨고 참된 교회만의 예배로 교회사역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나는 고무적인 도전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예배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 또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교회생활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I. 구약성경에 있는 악기들

 

우리는 흔히 다윗이 구약성경 예배에서 악기를 사용했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을 따르는 사람이었고, 너무도 확실하게 하나님께서 우리가 다윗이 사용했던 것과 같이 악기를 사용한다면 기뻐하시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A. 구약성경은 오늘날 우리의 예배를 위한 권능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앞서서 설명한 것처럼 구약성경은 진실로 하나님께 음악적인 찬양을 하는 것처럼 연주하는 것, 춤추는 권한이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오늘날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에 대해서 우리에게 아무런 말씀을 하시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신약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이는 제사장 체계가 변하였은즉 율법도 변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요”(히 7:17)

제사장 체계도 율법도 변했습니다. 신약에서 계속해서 악기를 사용해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했다면 기타, 바이올린, 피아노, ...등 수많은 악기들을 사용해서 찬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율법을 쓰는 것은 신약에서 인정하지 않았음에 틀림없습니다.

“앞서 나가던 명령은 연약함과 무익함으로 인하여 진실로 폐하여졌으니”(히 7:18)

율법은 폐하여졌다고 히브리서 저자는 말했습니다. 그런데 억지로든 몰라서든 율법을 적용시키는 것은 불법입니다. 많은 목회자들은 율법을 지켜봐라 정말 효과적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율법은 이미 2,000년 전에 사장(死藏)되었습니다.

“그 뒤에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오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내가 주의 뜻을 행하러 오나이다, 하셨으니 그분께서 그 첫째 것을 제거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바로 이 뜻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모든 사람을 위해 드려짐을 통해 우리가 거룩히 구별되었노라.”(히 10:9~10)

 

첫 언약은 예수로 제거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두 번째 언약을 세우실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무의식적으로든 계속해서 연주하고 춤추는 것을 인정해 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악기 사용은 새 언약에는 포함되지 않는 사역입니다.

“그런즉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훈육(壎尹) 선생이었으니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의롭게 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믿음이 온 뒤에는 우리가 더 이상 훈육 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니”(갈 3:24~25)

율법은 그리스도께 우리를 데려가는 선생이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그 선생 아래에 있지 않습니다. 결국 악기를 사용해 찬양하는 이들은 율법을 떠난 것이 아니요, 여전히 동물의 피를 보아야 하고 각종 제사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악기를 사용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속사람은 하나님을 담지 못합니다. 이 실행은 아주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여러분의 속사람에 담느냐 못 담느냐는 여기에 달려있습니다.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 너희가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갈 4:2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그 안에 굳게 서고 다시는 속박의 멍에를 메지 말라. 보라, 나 바울이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도 주지 못하시리라. 내가 할례를 받은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그런 사람은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니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율법으로 의롭게 된 자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아무런 효력이 없으며 너희는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갈 5:1~4)

율법 아래에 있고자 갈망하는 자들은 속박의 멍에를 얽혀져 있습니다. 왜 그런 속박의 얽힘 가운데 있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이 속박의 멍에에 얽히고 율법에 매여 있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율법에 속한 자들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하십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로부터 잘려 나간 것이요, 은혜로부터 떨어진 자들입니다. 그들은 율법이 엉클어진 실 뭉치와 같은 신세입니다.

“그러나 너희가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니라.”(갈 5;18)

우리는 그 율법 아래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받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우리의 예배와 찬양이 드려져야 합니다. 율법에 속한 예배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찬양을 해서는 안 됩니다. 악기로 찬양을 하는 것은 미안하지만 천박한 찬양합니다. 이러한 예배를 중지하십시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십시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이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이들이 몰래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자유를 엿보아 우리를 노예로 삼고자 함이로되 우리가 그들에게 단 한시간이라도 굴복하지 아니하였으니 이것은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게 하려 함이라.”(갈 2:4~5)

우리가 율법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은 우리가 단 한 시간만이라도 굴복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거짓형제들입니다. 사실 오늘날 예배는 거의 1시간 정도 진행됩니다. 사탄은 그 1시간동안 만이라도 하나님께 붙잡히지 않도록 하는 그의 교묘한 전략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법을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법이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만 그를 지배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이는 남편 있는 여인이 자기 남편이 살아 있을 때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여 있으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자기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니라. 그런즉 만일 그녀가 자기 남편이 살아 있을 때에 다른 남자와 결혼하면 간부(姦婦)라 할 것이로되 그녀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해방되나니 다른 남자와 결혼할지라도 간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게 되었으니 이것은 너희로 하여금 다른 이 곧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킴을 받으신 이와 결혼하게 하려 하심이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하심이라. 그 까닭은 우리가 육신 안에 있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은 죄들의 활동이 우리 지체 안에 작용하여 사망에 이르는 열매를 맺게 하였으나 이제는 우리를 붙들던 율법 안에서 우리가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건짐을 받았기 때문이니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고 율법 조문의 낡은 것으로 섬기지 아니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면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오히려 율법을 통하지 않고서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리니 이는 율법이, 너는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욕을 알지 못하였을 것임이라.”(롬 7:7)

우리는 율법에 대해 죽고 율법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율법을 따르는 것은 남편이 죽음으로 그 아내가 재혼하지만 재혼을 해서도 재혼한 남편 대신에 죽은 남편의 뜻을 따르는 여자와 같을 것입니다. 오늘날 이러한 요소들이 기독교에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가 구약의 율법을 따른다면 예수의 십자가와 그분의 피와 그분의 이름은 의미가 없게 됩니다. 기독교는 신약시대를 살면서 구약시대에 지켰던 율법을 조금씩 변형해 교회 안에서 퍼트리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손으로 쓴 규례들 곧 우리를 대적하고 반대하는 규례들을 지우시고 그것들을 길에서 취하사 그분의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정사(政使)들과 권능들을 노략하사 십자가에서 그들을 이기시고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셨느니라. 그러므로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이나 거룩한 날이나 월삭(嫄朔)이나 안식일로 인하여 아무도 너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골 2:14~16)

그리스도는 우리를 반대하고 대적하려고 덮어 가렸던 손으로 쓴 규례들을 치우시고 율법의 길에서 취하셨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 율법을 못 박으셨습니다. 아무 사람도 그 율법을 근거로 하여 우리를 판단하거나 정죄하거나 심판할 수 없습니다. 율법을 따르는 것은 그것을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제거하신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반대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따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독하는 처사입니다.

[엡 2:14~16,마 5:17~18, 고후 3:6~11, 행 15:5, 10, 히 8:13.]

 

B. 갈라디아서 5:3 - 율법은 “전체”를 요구한다.

우리는 부분은 취하고 부분은 버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율법의 일부분을 따르려고 한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계속해서 얽매이게 되고 지켜야 합니다. 얽매이고 또 지키는 것으로 다 그렇게 하든지 아니면 다 지키지 말던지 해야 자유함을 입을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의 실행들이 오늘날 기독교에서 실행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을 기초로 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 실행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다른 것들은 다 버리십시오

 

1) 안식일

2) 동물희생제사

3) 레위 제사장직분

4) 할례

5) 거룩한 날(성일)

6) 구운 양

7) 향 피우기

8) 유아세례, 침례, 회원인정

9) 춤추기

10) 악기음악

11) 목사들의 까운

12) 십자가 걸기

13) 성화 걸기

14) 설교자 강단에 올라가기

15) 각종 절기 지키기

16) 촛불 켜기

여러분이 오늘날 이런 실행 어떤 것들을 거절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악기를 허락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악기 사용을 허락한다면 다른 것들을 어떻게 거절할 수 있습니까?여러분이 이런 것들을 허락한다면 나머지를 허락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결국 진리, 은혜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지키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희미하게 보이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려면 머릿속에 십자가 형상, 어떤 성화가 생각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기도에서 실패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하나님 자신의 마음을 따르는 사람” 다윗은 위에 있는 것 거의 모두를 실행했습니다. 그들은 그가 살던 때는 율법의 일부였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을 지켰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우리와는 다른 법 아래에서 살았습니다. 그의 실행은 우리가 따라야 하는 법에 관해서 아무것도 증명하기 못합니다. 신약성경 구절들은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거나 그런 것들이 아예 없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오늘날 그런 것들이 특별하게 금지된 곳이 없기 때문에 악기들을 사용할 수 있다면 우리는 또한 같은 이유로 다른 부분도 실행해야 할 것입니다.

 

 

 

C. 생각해야 할 다른 점

악기는 신약성경 예배의 영적인 본질에 맞지 않습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구약성경은 바깥에서의 의식과 축제를 표현하기 위해서 크게 강조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영적인 강조하는 신약성경 예배에는 적당하지 않습니다.

 

악기들은 지각(知覺)을 강조하는 예배에는 적당하지 않습니다. 또 신약성경은 우리가 예배에서 실행하는 모든 것이 지각(知覺)과 가르침을 증진시켜야 한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강조합니다. 우리는 지각(知覺)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추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신약성경이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바로는 음악적인 찬양의 종류와는 다릅니다. 그것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추가되지 않고 사실상 우리의 지각(知覺)을 저해합니다. 구약과 신약 사이에 있는 대조는 하나님께서 오늘날 악기를 원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보는데 우리를 돕습니다.

 

구약성경은 연주하는 것뿐만 아니라 춤추는 것도 권한을 부여합니다. 하지만 신약성경은 두 가지에 관해서 잠잠합니다. 신•구약성경 사이의 대조는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의 예배에서 춤추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악기를 연주하는 것도 사실 그렇습니다. 악기로 하는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동일하게 왜 열심히 예배에서 춤추는 것을 방어하지 않을까요? 하나님께서 악기를 허락하셨을 때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들 자신의 언어로 성경에서 이것을 이해할 수 있었고 우리는 확실하게 우리의 언어로 번역에서부터 그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악기 연주가 오늘날 예배에서 여전히 받아질 수 있다면 이것은 신약성경에 대한 번역에서부터 동일해야 합니다. 구약성경에서 뚜렷하게 있었던 악기가 신약성경에서 뚜렷하게 빠진 것이 마치 하나님께서 신약성경에서 허용하지 않는 것을 구약성경에서의 다른 실행을 원하시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오늘날 악기들을 원하시지 않는다는 것이 설득력 있는 주장입니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