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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악기는 지각에 중점을 두는 신약성경에 맞지 않는다.

Hernhut 2012. 10. 25. 13:36

 

 

 

 

 

III. 악기는 지각에 중점을 두는 신약성경에 맞지 않는다.

 

 

 

악기 찬양은 신약성경 진리에 맞지 않습니다.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이것을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것에 유의해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지 않는 말을 함으로 우리가 그렇게 걷게 된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 예로 성직자와 평신도, 삼위일체와 양태론, 투시의 은사, 안찰, 안수집사, 권찰, 권사, 통성기도, 성화걸기, 작정헌금. 건축헌금, .....등 수많은 단어들이 오늘날 기독교회에서 마구잡이식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악기를 사용하는 것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는 몇몇 악기들이 나오고 그것을 가지고 연주하여 찬양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는 악기라는 단어는 사라져버렸습니다. 어찌된 일일까요? 악기로 찬양하는 것이 중요한 사역이었다면 왜 저자들은 그런 악기를 빼버렸을까요?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그것은 악기를 사용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충분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신약성경이 지각(知覺)할 수 있는 예배에 관해 가르치는 것을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어찌하리요?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지각(知覺)으로도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노래하고 또 지각(知覺)으로도 노래하리라.”(고전 14:15)

예전에 나도 이 구절을 읽으면서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왜 노래하는 데 악기로 하라고 하지 않을까?’ 성경을 수십 번을 읽으며 그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주여!

 

A. 예배에서의 지각(知覺)에 대한 중요성

우리의 집회는 지각(知覺)할 수 있는 메시지를 가지고 사람들을 양육하기 위하여 분배되고 전람되어야 합니다.

 

“바울이 자기 관례(貫簾)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그들과 토론하며 설명하고 주장하여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고난을 받고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일어나야 한다 하고 또한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라 하니”(행 17:2~3)

복음은 이해될 수 있는 합리적인 메시지를 이유로 퍼졌습니다. 감성적인 복음을 전하려면 오늘날처럼 아니 구약성경에서처럼 악기를 연주하거나 도구를 두들겨야 합니다. 하지만 복음은 감성을 부흥시키려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악기로 찬양하는 것은 혼을 적시는 메시지입니다. 그렇지만 그 영(the Spirit)은 우리의 영 안으로 들어오셔서 혼으로 퍼지기 때문에 혼이 먼저 만져져서는 하나님의 의도하신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지난 메시지에서도 말했지만 신약성경에서 악기를 연주하라든가 연주를 하지 말라든가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문제에 있어서는 침묵하셨음을 잊지 마십시오.

 

“그를 만나매 안디옥으로 데려와 그들이 일 년 동안 그 교회와 함께 모임을 가지며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더니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 11:26)

안디옥에 있는 교회는 그들이 많은 사람들을 가르침으로 집회를 지휘했습니다. 오늘날 집회를 할 때 갖추고 장비해야할 것들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하라고 명하신 것만을 행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은 것을 하는 것은 불순종입니다.

 

“서로를 살펴보아 사랑과 선한 행위에 이르도록 격려하되 우리의 함께 모이는 일을 폐(愎)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서로 권면하여 그 날이 다가옴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4~25)

우리는 스스로 집회 하는 것을 저버리지 말아야 하지만 우리가 서로 강력히 권고할 수 있고, 사랑과 선한 일로 격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아마 부드러운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습관적으로 하지 말고 더욱 분발하라고 권고합니다. 아마도 내가 그 였다면 아주 거칠게 말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형제자매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하는 서로의 책임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해 준 것은 또한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님께서 배반당하시던 바로 그 밤에 빵을 집으사 감사를 드리신 뒤에 그것을 나누시고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부서진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 하시고 저녁 식사 뒤에 또 그와 같은 방법으로 잔을 집으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상속 언약이니 너희가 마실 때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 하셨느니라. 이는 너희가 이 빵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분께서 오실 때까지 보이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이 빵과 이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오직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뒤에야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이는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자기를 위하여 정죄를 먹고 마시기 때문이라.”(고전 11:23~29)

우리가 실행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의의)을 알지 못하는 것을 하도록 우리의 집회에서 스스로 활동을 한다면 우리는 스스로 비난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만 마디 말을 하느니 차라리 이해하면서 다섯 마디 말을 하여 내 목소리로 다른 사람들도 가르치리라.......형제들아, 그런즉 어찌하리요? 너희가 다 같이 모일 때에 너희 각 사람에게 찬송시도 있으며 교리도 있으며 타언어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통역도 있나니 모든 것을 남을 세우기 위하여 할지니라.......이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배우고 위로 받게 하기 위하여 너희가 다 한 사람씩 대언해야 하기 때문이라.”(고전 14:19, 26, 31)

우리가 우리 집회에서 행하는 모든 것은 지각(知覺)이 증가되어서 서로 세우기를 증가시켜야 합니다. 서로 건축하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속사람이 먼저 채워지고 풍성해져야 합니다. 자신이 빈약하고 느슨하다면 다른 사람들을 건축할 수 없습니다. 지각(知覺)을을 증가시키는 데 실패하는 행위는 제거하고 버려야 합니다. 서로를 건축하는 것이 교회생활입니다.

 

“그러면 어찌하리요?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지각으로도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노래하고 또 지각으로도 노래하리라.”(고전 14:15)

특히나 우리가 노래하는 것은 영으로 해야 하고 지각(知覺)으로도 노래해야 합니다. 우리가 찬양하자고 하면 습관적으로 기타나 피아노를 연주하려고 합니다.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노래나 찬양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님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은 교회당에 가보면 드럼이 빠지지 않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것들을 연주하다보면 금방 흥분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그 소리로 혼이 먼저 적셔졌기 때문입니다. 영과 지각(知覺)으로 기도하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노래하는 한 가지 이유는 지각(知覺)을 증가시키려고 노래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영과 지각(知覺)으로 찬양하는 것일까요?

“시와 찬송가와 영적인 노래로 서로에게 화답(和答)하며 너희 마음 속에서 주께 아름다운 가락을 만들어 노래하며”(엡 5:19)

우리가 서로에게 노래로 말하는 것입니다. 시, 찬송가, 영적인 노래들은 말하는 것으로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노래로 하는 것입니다. 누가 음표를 달아 음에 맞춰서 하는 노래가 아닙니다. 음이 틀려도 되고 평소에 말하는 것처럼 해도 됩니다. 가락을 만들어 노래로 불러도 됩니다. 노래하는 것은 사란의 말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지각(知覺)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성경적인 노래입니다. 사람이 악기를 연주할 때 악기가 말을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악기는 소리를 낼뿐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악기는 혼을 적시는 것입니다. 악기연주가 없어 노래를 부를 수 없다거나 흥이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말에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모든 지혜로 풍부히 거하게 하여 시와 찬송가와 영적인 노래로 서로 가르치고 훈계하며 너희 마음 속에서 은혜로 주께 노래하고”(골 3:16)

우리가 시를 쓰고 한 두 소절을 만들어 서로 가르치고 책망하고 격려하고 부축해 나가는 것이 신약성경에서의 노래에 대한 진리요, 예배에 대한 진리입니다. 이것은 노래하는 것으로 기량을 발휘하여서 지각(知覺)할 수 있는 메시지를 필요로 합니다. 대중 앞에서 하기가 힘들다면 일주일이나 최소한 3일정도 발표할 내용을 적어서 읽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이것이 형제들을 가르치는 것이요, 또한 자신이 배우는 것이 됩니다. 사람들이 가르침을 받는 것이 곧 가르치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실행이 얼마나 놀랍고 하늘에 속한 집회인지요. 서로가 서로를 위해 실행하는 것입니다.

 

 

B. 예배에서 악기에 대한 적용

악기들이 지각(知覺)을 증가시킵니까? 악기들이 가르칩니까? 악기들이 말합니까? 악기들이 격려하거나 응원하거나 권면의 말을 합니까? 악기들이 어떻게 할 수 있나요? 그것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혼을 적셔 흥분하게 하는 것뿐입니다. 그것들은 말을 하지 못하고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기악음악과 같은 것을 받을 수 있고, 가락에 맞추어 수백의 다른 말씀(메시지)을 넣을 수 있습니다. 악기는 아무것도 산출하지 못하지만 한정되지 않고 제한되지 않은 소리는 많은 다른 해석들을 가능하게 합니다. 악기는 노래한 말씀들을 실제로 지각(知覺)의 방해가 됩니다. 혼을 먼저 만져지기 때문에 절대로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지 못합니다. 혼적인 부흥은 우리의 교회생활을 세상적으로 이끌어 가게 합니다. 그래서 혼적인 문제들은 즐거워하면서 영적인 것은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노래하는 것에 대한 참된 것이 아닙니다. 노래하는 것은 곡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필연적으로 말을 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위에서 나열한 구절들이 요구하는 것과 똑같이 서로가 지각(知覺)으로 가르치고, 증가하게 하고 또 꾸짖도록 설계되어있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 줄 아십니까? 물론 여기서 혼란스러운 방식으로 노래하게 될지 모르는 데 이 같은 것은 분명 서로간의 양보와 절제를 통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악기로 노래하는 것보다는 본질적인 경우가 아닙니다. 더욱이 악기는 하나님보다 오히려 사람들의 영광을 갖도록 하며 기뻐하도록 촉진시킵니다. 나도 예전에 이런 것을 좋아했고 권장을 많이 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만족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만족하심의 차이가 다르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난 그 자리에서 나의 신앙생활이 나의 중심적이었던 것을 회개했습니다. 나의 혼의 성분을 먼저 적셨다는 것을 회개했습니다. 악기는 기도의 기술을 강조하고 자극하게 함으로 메시지를 손상시킵니다. 예배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더 선포한 메시지를 생각하기 보다는 연주자들의 재능을 감탄하고 더 즐깁니다. 연주하는 것은 예배에 온 무리를 손상시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교제하러 오는 사람들과 예배하러 온 사람들 대신에 오락이나 여흥을 하러 오는 사람들을 증가시킵니다. 이렇게라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당에 모이기를 원하는 심정을 알지만 사실 이러한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교회생활이 아닙니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개발하지 못하는 기술을 요구하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연주하고 다른 사람은 보는 것입니다. 불가피한 성향(기질)은 연주하는 사람들의 기술을 감탄하고 감동을 합니다. 예배에서의 악기는 여흥을 고취시키고 인간의 능력을 강조하기 때문에 잘못된 것입니다. 신약에서 허용된 것은 노래하는 것뿐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악기를 연주하라는 말을 한 곳이 한 곳도 없습니다. 나도 신약성경의 흐름이 이토록 섬세함을 매일 감탄합니다. 노래하는 것은 지각(知覺)할 수 있는 메시지로 가르치는 것과 꾸짖는 것을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성경저자들에게 지시하신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 특히 목사나 사역자들 그리고 교회의 중심 되는 신실한 믿음이 있는 분들이 이상을 논리를 편다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공격과 태클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악기를 연주하라는 성경구절이 있다면 가르쳐 나를 깨닫게 하십시오.”라고 되묻습니다. 악기는 세상에 속한 노래에서 얼마든지 적셔질 수 있는 것입니다. 왜 교회생활에서까지 혼을 적시고 혼이 풍성해져야 하는지 이유를 묻고 싶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악기가 없고 악기를 연주하지 않는 것이 진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