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메시지/교회생활과 자매들의 역할

자매들이 교회생활 안에서 기둥으로 경영되는 것

Hernhut 2012. 6. 24.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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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들이 교회생활 안에서 기둥으로 경영되는 것

 

 

자매들의 경영은 교회생활에 대한 내적인 실재를 산출한다.

 

 

교회생활에는 양면이 있습니다. 겉모습과 내적인 실재입니다. 내적인 실재는 교회생활의 내용입니다. 이 두 양면은 형제들과 자매들이 어떻게 경영되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형제들과 자매들은 다르게 경영되어 집니다. 형제들의 경영은 겉으로 드러내고 표면적인 것이 아주 많습니다. 이것은 형제들이 관심과 칭찬 모두를 받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자매들의 경영은 교회생활의 내면적인 내용을 공급합니다. 사실상 많은 자매들의 후원 없이는 합당하게 경영할 수 있는 형제들은 없습니다. 교회가 지배적인지 어떤지의 결정적인 요인은 형제들의 경영이 아니라 자매들의 경영에 있습니다. 자매들의 경영이 건강하다면 온 교회생활은 건강하게 될 것입니다.

 

 

이 원칙은 집안의 생활과 비슷합니다. 집안에서 가정생활의 본질은 아버지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니고 어머니에게 의지합니다. 아버지는 외면치레를 할 수 있고 가족이 사는 집을 공급하지만 어머니가 합당하게 경영하는 것이 없다면 아버지가 하는 것은 아주 적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비록 가정이 재정적으로 여유가 없고 작은 집에서 산다고 할지라도 어머니가 합당하게 경영한다면 그 가정은 건강합니다.

 

 

교회생활에서도 이와 같습니다. 교회에 은사가 풍성한 형제들이 있다는 것은 교회집회에 인수가 증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생활의 건강은 계속해서 자매들의 경영에 근거를 둘 것입니다. 비록 형제들의 효과적인 수고를 어떻게 하든지 상관없이 어떤 바람은 꽤나 쉽게 그것을 날려버릴 수 있습니다. 교회생활의 안정은 자매들의 경영 못지않게 형제들의 많은 능력으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자매들이 합당하게 경영할 때 그들은 교회생활을 유지시키는 기둥이 됩니다. 비록 이 경영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될 것이라도 그것은 교회의 건강에 중요한 것입니다.

 

 

기둥에 대한 첫 번째 예: 뵈뵈

 

 

이 관점으로 우리 로마서 16장과 교회생활에서 기둥으로서 경영되어진 몇몇 자매들을 생각하고 점검해 봅시다. 로마서 16장은 많은 성도들에게 바울의 긴 인사입니다. 바울이 처음 언급한 이름은 형제가 아니고 자매였습니다. 바울은 내가 겐그레아에 있는 교회의 종 우리의 자매 뵈베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의 마땅한 도리로 그녀를 받아들이고 무슨 일에서나 그녀가 너희를 필요로 하거든 그녀를 도울지니라. 그녀가 많은 사람과 나의 구조자가 되었느니라.”(16:1~2 흠정역) 썼습니다. 바울은 무척이나 감동적으로 언급했습니다. 바울은 이 자매의 후원으로 모든 것을 하도록 로마에 있는 교회를 맡았습니다. 그녀는 봉사를 하고 있었던 자매요, 권사였습니다. 왜 바울은 뵈뵈를 돌보려고 로마교회를 맡았습니까? 왜냐면 그녀가 바울과 다른 많은 성도들을 위해 모든 것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많은 것들로 후원하였습니다.

 

 

돕는 것, 격려하는 것, 그리고 공급하는 후원자

 

 

기둥이 되는 것은 후원자가 되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회복역(RV) 신약성경은 후원자라는 단어에 대해 각주를 달았는데 아니면 보호자, 돕고, 격려하고, 그리고 공급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품위가 있는 단어다.” 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3단어- 돕는다, 격려한다, 공급한다.- 가 있는데 후원자의 일을 설명하는 것에 사용되었습니다. 3단어는 교회생활에서 자매들의 경영과 관련된 중요한 단어입니다.

 

 

뵈뵈는 사람들을 돕고 격려하고 공급한 사람이었습니다. 이것들을 함으로 뵈뵈는 교회생활에서 기둥으로서 경영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돕는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젊은 자매가 나이 든 자매에게 와서 형제에 대해서 불평을 한다고 생각합시다. 젊은 자매의 의견에는 이 형제가 너무 기이하고 그의 기도가 너무 길다는 것입니다. 이 자매는 틀림없이 어떤 도움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나이 든 자매가 그 형제에 관해 같이 느낄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젊은 자매를 돕는 대신에 나이 든 자매는 젊은 자매의 의견에 동의하고 합류하기로 합니다. 이것은 분명히 돕는 것이 아닙니다. 합당하게 돕는 것은 자매가 이런 문제들로 젊은 자매들을 직접적이고 지도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혼란스러워 하고, 좌절감을 느끼고, 또 괴로워할 때 여러분은 그들의 상태에서 그들을 돕는 방법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여러분 자신이 그 상태에 있는 것을 요구합니다.

 

 

여러분이 도와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들을 격려해야 합니다. 격려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온 사람에 대한 영적인 실재를 입증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실재에 대해 입증하는 것은 여러분이 돕고 있는 사람에게 사역자들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너무 길게 기도하는 형제에 관해 불평하는 자매의 불만스런 점을 먼저 도왔어야 하고 그 다음에 더 높은 이상과 생활의 더 풍부한 체험으로 격려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교회생활에서 기둥이 되는 것은 이 격려의 능력을 발전시키는 데 필요합니다.

 

 

세 번째로 후원자는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공급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필요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뵈뵈는 많은 성도들의 필요를 돌보았습니다. 그녀는 또한 바울의 필요도 돌보았습니다. 왜냐면 뵈뵈가 바울의 필요를 돌보았기 때문에 바울은 그의 사역을 발휘하는 데 더 자유로웠습니다. 자매가 교회생활의 기둥으로 경영되기 위해서는 그녀가 후원자가 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은 실망에 있는 젊은 자매들을 돕는 것이요, 진리와 생명으로 그들을 격려하는 것이요, 또 그들의 필요에 따라 그들에게 공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둥으로서의 두 번째 예: 브리스길라

 

 

로마서 16장에서 바울이 언급한 두 번째 사람 또한 브리스가(신약 초기에는 브리스가를 브리스길라라고 불렀음)라는 자매였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나의 협력자들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 인사하라. 그들은 내 생명을 위하여 자기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의 모든 교회들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또한 그들의 집에 있는 교회에게도 인사하라.”(16:3~5a 흠정역). 바울은 브리스가와 그녀의 남편 아굴라를 자신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협력자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부부 경우에는 자매의 이름이 형제의 이름보다 앞에 나왔습니다. 이것은 성경에서의 통례가 아니었습니다. 브리스가는 아주 많은 바울의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이 자매는 바울의 유익을 위해 자신의 생명의 위험도 무릅쓰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주님의 종을 위해서 죽는 것을 정말 기꺼워하는 자매였습니다.

 

 

바울은 바울 자신을 위해 죽기를 기꺼워하는 자가 있었다는 것을 감사를 전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바울을 견고하게 세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부부를 위해 모든 교회가 감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 18장에 있는 이 부부와의 처음 만남에 대해 보겠습니다. “이 일들 후에 바울이 아테네를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본도에서 태어난 아굴라라 하는 어떤 유대인을 만났는데 (클라우디우스가 모든 유대인에게 명령하여 로마를 떠나게 하였으므로) 그가 자기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최근에 이탈리아에서 왔더라. 바울이 그들에게로 가서 생업이 같으므로 그들과 함께 머물며 일하니라. 그들은 그들의 직업으로 보면 천막을 만드는 사람들이더라.”(18:1~3 흠정역). 바울은 자신과 그와 함께 하는 동역자들의 공급을 위해 일이 필요했었습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최근에 왔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찾아서 고린도에 왔습니다. 아굴라는 이 부부가 텐트메이커(천막 짓는 자)이었는데 바울이 그와 함께 일하고자 하는 데 동의했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 바울은 자신과 함께 에베소에 데리고 갔습니다. “이 일 후에도 바울은 거기서 꽤 오래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거기서 항해하여 시리아로 들어갔는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와 함께하니라. 바울이 전에 서원한 것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그가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남겨 두었으나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 유대인들과 변론하더라.”(18:18~19 흠정역). 이 시점부터 이 부부의 이름을 불렀을 때 브리스길라의 이름이 아굴라의 이름보다 먼저 나옵니다. 그런데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떠나 안디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들에게 작별을 고하며 이르되, 내가 어찌하든지 다가오는 이 명절은 반드시 예루살렘에서 지켜야 하리라. 그러나 만일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내가 다시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가이사랴에서 내린 뒤 올라가 교회에 문안하고 안디옥으로 내려가”(18:21~22 흠정역). 바울이 떠난 후 그들은 단순하게 수고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같이 짧은 시간을 같이 한 후 바울이 이것을 그들에게 맡길 수 있었던 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쓰임 받는 사역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효율성은 그들이 아볼로를 도왔던 것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난 아볼로라 하는 어떤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렀는데 그는 말을 잘하고 성경 기록들에 능통하더라. 이 사람이 전에 주의 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아 영이 뜨거우므로 주에 관한 것들을 부지런히 말하고 가르치나 요한의 침례만 알더라.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그의 말을 듣고 그를 데리고 와서 그에게 하나님의 길을 더욱 완전하게 설명해 주니라.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려는 마음을 먹으므로 형제들이 편지를 써서 제자들에게 권면하여 그를 받아들이게 하니라. 그가 거기에 이르러 은혜를 통하여 믿게 된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으니 이는 그가 성경 기록들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보여 주며 힘 있게 유대인들을 확신시키되 공개적으로 그리하였기 때문이더라.”(18:24~28 흠정역). 아볼로가 에베소에 처음 왔을 때 그는 성경에 대한 말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그가 요한의 침례만을 알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그가 옛 것의 끝만을 알았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아볼로에 대해 들었을 때 그를 데리고 와서 그에게 하나님의 길을 더욱 완전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브리스길라의 이름이 먼저 오기 때문에 그것은 브리스길라가 많이 가르쳤을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아굴라는 브리스길가만이 서는 것이 좋지 않기 때문에 언급된 것입니다. 브리스길라는 아볼로가 이해했던 것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에게 보여주려고 주님의 이 유창한 종과 함께 앉았습니다. 그녀는 아볼로가 침례자 요한을 안내했던 한사람을 알 필요가 있었다고 보여주었습니다. 아볼로는 주님께서 계셨고 그분께서 지금 하시고 계신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었습니다. 아볼로는 당신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주부요, 당신의 남편은 텐트메이커이다. 난 주님의 종이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볼로는 주님 앞에서 이 자매가 그를 위해 가졌던 것을 받아드리기에 합당한 자였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도움 때문에 결국 아볼로는 예수가 그리스도이셨다는 것을 성경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이는 그가 성경 기록들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보여 주며 힘 있게 유대인들을 확신시키되 공개적으로 그리하였기 때문이더라”(18:28 흠정역).

 

 

완전하고 부지런하고 또 가르칠 수 있는 것

 

 

브리스길라의 덕행은 뵈뵈의 것보다 훨씬 더 높은 것이었습니다. 먼저 그녀는 완전한 자매였습니다. 브리스길라는 사도 바울을 위해 죽기를 기꺼워했던 자매였습니다. 그녀는 주님을 위해 죽기를 기꺼워했을 뿐만 아니라 땅에 있는 사람이 주님께 쓰임을 받는 자들이기를 원했습니다. 이와 같은 태도를 갖는 것은 부도덕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같은 목표를 위해 있기 때문에 주님의 종을 위해 우리 또한 죽기를 기꺼워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이 태도를 타협할 때 교회생활에서의 우리 경영은 제한될 것입니다.

 

 

브리스길라의 두 번째 덕목은 부지런함이었습니다. 주님을 위해 여행을 하고 수고하는 것을 기꺼워했습니다. 그녀는 부지런하게 수고하는 자매였습니다. 그녀는 실천가였고 공론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세 번째 미덕은 가르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교회집회에서 말씀을 전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할 수 있었던 작은 모임에서는 그녀의 남편 아굴라와 함께 아볼로에게 도움을 줄 말씀을 전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방법으로 가르칠 수 있기를 배워야 합니다. 집회에서 형제의 나눔이 얼마나 풍성하든지 브리스길라처럼 교회생활에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많은 자매들이 없이는 정말 일을 하지 못합니다. 자매는 이런 방법으로 그녀의 가정에 어떤 젊은 사람들을 심방하게 함으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필요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경륜에 관해 말할 수 있는 많은 성도들이 있지만 그들은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충분하게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더 정확하도록그들에게 자세히 설명할 수 있는 하나님의 방법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가르칠 수 있고 하나님의 경륜이 무엇인지에 관해 분명한 성도들을 만들 수 있는 많은 자매들이 필요합니다. 모든 메시지를 나눔으로 그것을 입증할 많은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교회가 이런 방법으로 발휘할 어떤 브리스길라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자매는 교회생활에서 참된 기둥으로 경영되었습니다. 그녀는 태도에서는 완전하였고, 수고로는 부지런하였고,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교회생활에서 자매가 기둥이 되는 것은 이 모든 항목은 그녀의 실행이 되어야 합니다.

 

 

기둥에 대한 세 번째 예: 마리아

 

 

로마서 16장에서 또 바울은 마리아라는 자매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우리를 위해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인사하라.”(16:6 흠정역). 신약성경에는 많은 자매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나타나 있는 순서는 영적인 전진을 나타냅니다.

 

 

신약성경에서 처음 나타난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인데 그녀는 아주 순전하고 단순한 자매였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누가복음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내 혼이 주를 크게 높이고 내 영이 하나님 곧 내 구원자를 기뻐하였나니”(1:46~47 흠정역). 이 마리아는 마리아들이 따르기 위한 토대입니다.

 

 

두 번째 마리아는 나사로의 누이인데 그녀는 주님의 임재를 누렸습니다. “그녀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더니 그녀도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들으나”(10:39 흠정역). 심지어 그녀는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주님을 씻었습니다. “그때에 마리아가 매우 값진 나드 향유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분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12:3 흠정역).

 

 

세 번째 마리아는 글로바의 아내였는데 그녀는 주님의 십자가 곁에 있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그분의 이모요 글로바의 아내인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라가 서 있더라.”(19:25 흠정역).

 

 

네 번째는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그녀는 주 예수의 부활 후 그분을 보았습니다. 심지어 그분께서 아버지께 올라가셨을 때 앞에 있었습니다. “그녀가 이렇게 말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 알지 못하더라.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슬피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그녀는 그분을 동산지기로 생각하고 그분께 이르되, 선생님이여, 당신이 그분을 여기서 옮기셨거든 그분을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일러 주소서. 그리하면 내가 그분을 모셔 가리이다, 하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마리아야, 하시거늘 그녀가 돌이켜 그분께, 랍보니여, 하니 이 말은, 선생님이여, 라는 뜻이라.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대지 말라. 내가 아직 내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다만 내 형제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20:14~17 흠정역). 그래서 우리는 마음에 대한 일편단심과 단순함으로 주님의 임재 안에 거하는 것과 그분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 것, 주님의 죽으심을 체험하는 것, 그분의 부활에 참여하기를 점진적으로 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도행전 12장에 왔을 때 거기에 또 다른 마리아가 있습니다. 이 마리아는 마가의 어머니였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감옥에서 해방되어 나왔을 때 그는 마리아의 집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그가 거기로 갔을 때 그 일을 깊이 생각한 뒤에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갔는데 거기에 많은 사람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12:12 흠정역)고 기록되었음을 봅니다. 마리아의 집은 성도들에게 열려져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가정을 여는 것이 작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4명의 마리아 자매들의 귀한 단계를 따라가는 것은 높은 영적인 드러남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로마서 16장에 있는 마지막 마리아에게 왔습니다. 바울은 그녀가 우리를 위해 많은 수고를 한 자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마리아들의 사건들은 수고한 자들이라고 맺습니다. 이것은 수고하는 자가 고려되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우리는 바로 앞에서 말한 단계를 통과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이런 단계 중의 하나를 놓치고 있다면 우리의 수고는 효과적이지 않을 것이고 지배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해야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방법을 배워야하며, 그분께 자신을 버리고 주님의 죽음을 체험하고 그분의 부활에 참여해야 합니다. 더욱이 우리는 우리의 가정을 열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가정을 절대로 열 수 없다면 대신에 항상 우리의 사생활은 보호가 되지만 우리의 수고가 영향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이 단계를 통과하는 것이 신약성경에 있는 마리아들로 대표되는 것은 실제적인 수고 안에 있는 문제일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6명의 교회에서 주님의 증거를 위한 수고하는 자 마리아처럼 될 것입니다.

 

 

기둥에 대한 네 번째 예: 루포의 어머니

 

 

로마서 16장에 있는 기둥에 대한 마지막 예는 바울이 이름을 부르지 않은 자매입니다. 바울은 주 안에서 선정된 루포와 그의 어머니 곧 나의 어머니께 문안하라.”(16:13 흠정역)라고 말했습니다. 이 자매는 바울의 영적 어머니입니다. 심지어 이같이 영적 형제도 교회생활 안에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어떤 성도가 성장하는 것은 그에게 좋은 어머니가 필요합니다.

 

 

자매들이여, 여러분은 많은 성도들의 어머니가 되는 것을 모두 배워야 합니다. 바울은 루포의 어머니의 돌봄 아래에 있었습니다. 그녀의 봉사하는 것 때문에 바울이 능력 있고 효과적으로 경영되어지는 방법이었습니다. 이것은 교회생활 안에 있는 값진 경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