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메시지/교회생활과 자매들의 역할

하나님의 창조에 따른 여자에 대한 목적

Hernhut 2012. 6. 24.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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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창조에 따른 여자에 대한 목적

 

 

이 부분에서는 우리가 교회생활 안에서 자매들에 대한 효과적인 활동을 다룰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자매의 존재에 대한 목적과 의미에 관해서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을 볼 것입니다. 그 다음 자매들이 특별하게 아내들과 어머니들로서 인간관계 안에서 활동해야 한다는 것을 다룰 것입니다. 세 번째로 우리는 자매들이 교회생활 안에서 큰 일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볼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그분의 따르는 것 안에서 모든 우리가 강하도록 격려의 말씀을 우리에 주셨을 것이라고 주님을 바라봅니다. 우리 또한 이 말씀이 우리가 지역에서 참여하는 교회생활에 참된 축복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 남자와 여자

 

 

성경을 따라서 여자에 대한 목적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기본적인 지식은 우리가 남자와 여자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를 보기 위해 성경의 처음 부분에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우리가 우리의 형상(形像)으로 우리의 모양에 따라 사람을 만들고 그들이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가축과 온 땅과 땅에서 기는 모든 것을 지배하게 하자, 하시고 이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시니라.”(1:26~27 흠정역). 사람 창조에서 사용된 두 가지 다른 구절이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26절에서 우리가 사람을 만들다27절에서의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다라고 말합니다. “창조하다는 단어는 여자가 포함되었을 때에 사용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그분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자매들이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것은 함께 구성하도록 남자와 여자를 취해 사람이라는 구성단위로 불렀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그분은 한 사람만 창조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은 함께 사람이라 불렸습니다. 이 구절들은 우리 자신으로 우리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형제가 자신으로 완벽하지 않다고 한다면 자매도 역시 그런 것입니다. 예외만이 특별한 안배와 함께 있고 하나님의 신성한 주권아래에서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하나님은 항상 한 구성단위로 둘을 보십니다. 하나님께서 형제를 보실 때 자연스럽고, 자동적으로 형제의 아내를 보십니다. 하나님께서 자매를 보실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형제가 나는 지배적이다. 하지만 나의 아내는 굴복적이다. 나의 아내는 지배적이고 나는 굴복적이다.’라고 결코 말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이처럼 말하는 것은 건강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관점으로부터 이러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남자와 여자를 만드신 것을 한 구성단위로 보십니다. 한 구성단위 절반이 지배적이라면 다른 반도 지배적입니다. 패배적이고 굴복적인 것도 매일반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개념(생각)에 따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보통 남편과 아내 사이에 이 하나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절대적이고 완전하게 이 하나를 보십니다. 남편과 아내는 하나님의 눈에는 절대적으로 하나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높은 깨달음을 가질 때 우리는 자매 혼자만으로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을 이해할 것입니다.

 

 

남자의 돕는 자가 되도록 하는 여자를 위한 남자의 필요

 

 

성경은 여자가 존재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합니다. “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남자가 홀로 있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합당한 협력자를 만들리라, 하시니라.”(2:18 흠정역). 아내는 당신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못해.’라고 하는 방식으로 사랑하는 남편에게 말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이 원칙은 오늘날의 문화에서는 점점 상실되어 가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문화와 사회에서는 아내가 여자로서 그녀의 권리를 위해 분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문화와 사회에는 남자가 혼자 있는 것과 또 상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음도 없고 보는 관점도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은 좋지 않다. 내가 그를 돕도록 그의 상대를 만들리라.”고 말하십니다. 주님께서 여자를 말씀하실 때 그분은 돕는 자로서 그녀에 대해 말합니다. 이것은 자매의 존재가 특별한 목표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남자가 마치 목표가 없이 태어난 무작위식으로 생긴다고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여자는 이런 방식으로 결코 생길 수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면 남자는 단순하게 만들어졌습니다. 그렇지만 여자는 특별한 관점으로 생겨났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땅으로부터 들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날짐승을 지으시고 아담이 그것들을 무엇이라 부르는지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 데려가시니 아담이 살아 있는 모든 피조물을 부르는 바가 그대로 그것의 이름이 되었더라.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날짐승과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그러나 아담을 위해서는 그를 위한 합당한 협력자를 찾지 못하였더라.”(2:19~20 흠정역). 하나님께서는 모든 동물들을 아담에게 데려오셨지만 아담은 돕는 자를 찾지 못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여기에서 데이트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기본적으로 아담에게 너의 아내로 이 동물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네가 사자와 혼인하고 싶니? 아니면 호랑이나 곰은 어떠니?’라고 말씀하시고 있었습니다. 아담은 이 창조물들의 이름 짓은 일이 아주 성공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아담은 이 동물들 중에 하나도 나와 결혼하지 못해. 나의 아내가 될 수 있는 존재가 하나도 없어.’라고 말했습니다. 아담은 그의 필요를 채울 수 있었던 어떤 창조물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담은 모든 동물들의 이름을 지은 후 그와 함께 결혼할 동물들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주 하나님께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그가 잠들매 그분께서 그의 갈비뼈 중에서 하나를 취하시고 그것 대신 살로 채우시며 주 하나님께서 남자에게서 취한 그 갈비뼈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녀를 남자에게로 데려오시니”(2:21~22 흠정역). 비록 이 이야기가 아주 단순하게 보일지라도 그것은 사실상 주님의 죽으심의 결과로서 일어난 정확한 그림입니다.

 

 

창세기에서 아담이 잠들었고 십자가 위에서 주님 또한 잠드셨습니다.” 아담이 잠들었을 때 그의 옆구리가 열렸고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 그분의 옆구리는 찢겨지셨습니다. “그러나 군사들 가운데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찌르니 즉시로 거기서 피와 물이 나오더라.”(19:34 흠정역). 여호와 하나님은 아담의 옆구리에서 어떤 것을 취하여 아담의 몸 박으로 끄집어내셨고 여자를 건축하는 데 사용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어떤 것이 우리 주 예수의 몸 밖으로 흘러 내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분의 상대로 교회를 산출하시는 데 이것을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한 독립체로서 사람과 그의 아내를 보시는 같은 방법으로 한 독립체로서 그리스도와 교회를 보십니다.

 

 

건축되는 여자에 대한 중요성(의미)

 

 

우리가 관심을 집중해야 하는 세 가지의 다른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만들었다.” “창조했다.” “건축했다.”입니다. “만들었다.”는 이미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부터 다른 어떤 것을 산출된 것을 말합니다. 사람은 땅의 흙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숨을 그의 콧구멍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니라.”(2:7 흠정역). 사람은 어떤 귀한 것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흔하고 기초적인 어떤 것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모양을 따라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사람은 꼭 하나님과 같이 보입니다. 그래서 한 방면으로 사람은 하나님의 모양을 따라 만들어지고 있는 귀한 존재이지만 다른 방면으로는 먼지로 만들어져 기본적이고 부패할 수 있습니다. 그런 후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 그분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어떤 것을 창조하실 필요가 있으셨습니다.

 

 

창조했다.”는 단어는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어떤 것을 산출한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고 이것은 우리의 영을 말합니다. 우리의 몸은 흙으로 만들어졌으나 우리의 영은 하나님의 생명의 호흡으로 창조되었습니다. 우리의 창조된 부분은 만들어졌던 우리의 부분보다 훨씬 더 귀중한 것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생명의 호흡이 사람의 육체적인 몸과 만났을 때 사람의 세 번째 부분이 산출되었습니다. 사람은 살아있는 혼, 혼생명이 되었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숨을 그의 콧구멍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니라.”(2:7 흠정역).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로부터 우리는 한 영, ,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이 여자를 말할 때 하지만 그녀는 건축되었다고 말합니다. “주 하나님께서 남자에게서 취한 그 갈비뼈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녀를 남자에게로 데려오시니”(2:22 흠정역). 사람이 산출된 것은 단순합니다. 하나님은 단순하게 흙으로 그분 자신으로 본을 삼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 후 그분께서는 생명의 호흡으로 호흡하셨고, 사람은 살아있는 혼, 혼생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자에게 그 문제는 더 복잡해졌습니다. 여자는 아담에게 나온 어떤 것으로 건축되었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사람에게 나온 것으로 건축되었습니다. 왜 그녀가 건축되었습니까? “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남자가 홀로 있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합당한 협력자를 만들리라, 하시니라.”(2: 18 흠정역). 여자는 사람의 돕는 자가 되도록 건축되었습니다.

 

 

남편의 필요와 그의 영적인 유익을 채우기 위해 건축되는 아내

 

 

자매들이여, 여러분은 하나님의 보시기에 남자와 여자가 한 독립체라는 것을 다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이 여자의 입장입니까? 성경을 따르면 여자의 입장은 돕는 자입니다. 그녀는 남편의 필요를 채울 돕는 자입니다. 이것은 아내의 입장이 남편의 필요를 채우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녀가 남편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돕는 자이기 때문에 그녀의 존재는 어느 정도 복잡하게 되었습니다. 여자는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창조되지도 않았습니다. 여자는 남편의 필요를 채우도록 건축되었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문제입니다. 건축되는 어떤 것은 특별한 목적을 따라 정확한 설계가 있는 청사진을 요구합니다. 모든 여자들은 청사진을 따라서 건축되었습니다. 이 청사진은 그녀가 건축되었던 남자입니다.

 

 

남자와 여자 사이는 다릅니다. 남자는 만들어졌기 때문에 다소 거칠고 투박하게 만들어지고. 여자는 건축되었기 때문에 여리고 질이 좋아야 합니다. 남자는 만들어졌기 때문에 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여자는 특별한 목적을 따라 상세한 방식으로 건축되었기 때문에 특별합니다. 이것이 모든 자매가 특별한 이유입니다. 모든 자매들은 난 특별하다. 난 이유가 있어서 건축되었다. 난 목적이 있어서 건축되었다. 난 남편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건축되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생활 안에 있는 결혼한 모든 형제들은 주님께서 그에게 주신 자매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형제들은 나의 아내는 특별해. 온 땅에서 그녀와 같은 다른 자매는 없어. 그녀는 나의 돕는 자가 되도록 건축되었어. 그녀는 정확하게 내가 필요로 하는 여자야.’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깨달음은 오늘날의 문화에 따라오지 않습니다. 현대적인 생각은 여자가 남자와 동등되거나 심지어 남자보다 더 강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편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여자의 존재에 대해 목적인즉 터무니없는 생각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에 따르면 남자와 여자는 그들 각자의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누가 더 섬세합니까? 아마 우리 모두 아내라는 것을 동의할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보다 더 크고 더 질이 좋은 능력 안에서 경영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다시 말해도 아내입니다. 왜냐면 그녀는 건축되었고 단지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건축되는 어떤 것은 만들어진 어떤 것보다 더 경영될 것입니다. 건축된 어떤 것은 정교하고 섬세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만들어지는 어떤 것은 정말 투박하고 거칠 수 있습니다. 남자는 만들어졌고 여자는 건축되었습니다. 이것은 정말 남자는 여자와 비교할 방법이 못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매는 남편에게 당신은 만들어졌으나 난 건축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매는 여리고 정밀하게 세워진 독립체입니다. 하지만 얼마나 멋진 자매든지 그녀는 남편을 돕는 자로서 한 가지 목적을 위해 건축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남편은 자매의 존재를 위한 청사진입니다.

 

 

남자는 영광스러운 어떤 것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남자 자신만으로 이와 같은 영광스러운 존재를 얻을 방법이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남자가 돕는 자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깨달으신 이유입니다. 누가 돕는 자입니까? 여러분 모두의 사랑하는 자매가 돕는 자입니다. 이 돕는 것은 단지 만들어진 어떤 것에서 나올 수 없습니다. 이 도움은 건축된 어떤 것에서만 나올 수 있습니다.

 

 

모든 아내들은 남편의 영적 유익과 보이는 것을 얻도록 건축되었습니다. 그래서 자매들이여, 여러분은 심오한 것뿐만 아니라 단순한 비전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자가 자신으로 구성단위가 되도록 목표 삼지 않으셨다는 것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남편과 아내는 한 독립체입니다. 이것을 깨달은 후 여러분은 여러분이 누구인지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여러분은 진실로 돕는 자입니다. 여러분은 목적을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남편을 돕는 것입니다. 모든 아내는 남편의 필요와 보이는 영적인 유익을 따라 건축됨으로 존재했습니다.

 

 

자매들은 평화롭고 편안해야 한다.: 그들은 주께서 이런 방식으로 그들을 건축하셨기 때문에 그들이 있다.

 

 

여러분 자매들은 여러분이 이른바 있을 사람이 분명합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남편의 청사진을 따라 모두 세밀하게 여러분을 건축하셨기 때문에 여러분이 존재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넘치도록 만족하십니다. 주님에게서 이 깨달음을 갖는 것은 축복입니다. 이 깨달음은 여러분 자신이 변화해야 한다는 아주 많은 불필요한 압박에서 여러분 자매들을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자매들은 빈번하게 자신을 강요하는 기준으로 정말 좌절하게 됩니다. 자매들은 그들이 그들의 사람-, , - 안에 있는 정확하게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모든 자매들은 남편의 필요들 때문에 있습니다. 이것이 강함과 약함 그리고 모든 것을 포함하는 그녀는 자신에 관해 오히려 변화될 것입니다. 자매들은 자신을 어떤 사람이 되도록 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매들은 주님께서 그들을 건축하신 것으로 평화로워야 합니다. 자매들은 자신을 많은 압박에 집어넣습니다. 아주 적은 자매들만이 편안하고 평화롭습니다. 대개 자매들은 자신과 다른 어떤 사람이 되기를 갈망합니다. 거의 모든 자매들은 자신의 내면에서 분투가 일어납니다. 왜냐면 자신이 아닌 어떤 사람이 되기를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자매들이여, 여러분이 깨달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여러분은 너무 영적인 것을 목표로 삼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자신보다 다른 사람이 되기를 목표로 삼고 있지 의도로 건축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존재로 여러분은 남편이 최대의 유익을 얻게 합니다. 만일 그녀가 자신이 아닌 자가 되기를 시도한다면 아내로 더 도움을 입고 더 유익을 얻을 수 있는 남편은 없습니다. 자매는 편안하고, 기쁘고, 평화로워야 합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한계를 알게 되었을 때와 될 수 없는 다른 사람이 되기를 갈망할 때나 할 수 없는 것을 하려고 할 때 여러분은 당신에게 있는 그대로의 식이 되도록 건축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난 이 한계로 건축되었어. 난 이런 능력이 없도록 건축되었어. 주님은 정확히 내가 있는 그대로 있는 나를 원하셔. 왜냐면 나의 남편의 필요들을 채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야.’ 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이 자매들이 편안하고 기뻐해야할 이유입니다.

 

 

형제들 또한 이 깨달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형제가 혼인을 할 때 그는 아내를 교정하려 하고 변화시키려고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결국 그는 그녀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드리고 기뻐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는 나의 아내는 내가 이런 방식이 되도록 하는 그녀가 필요하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를 좋아하는 이유다. 그녀는 나를 위해 설계가 되고 건축되었다. 그녀는 주님에게서 오는 축복을 내게 주시도록 할 알맞은 존재이다.’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모든 남편들은 아내가 건축되었다는 바탕에 두고 아내를 인정해야 합니다. 형제들은 항상 좋은 아내가 되어야 한다는 것에 관한 그들의 개념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각 남편을 위한 가장 좋은 돕는 자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주님은 남편의 필요를 채우고 최고의 영적인 유익을 그에게 주는 아내를 건축하는 방법을 알고 계십니다.

 

 

남편의 권한 아래에 존재하는 자매들

 

 

남편에게 가장 좋은 돕는 자가 되려는 자매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안배와 관련되는 관점을 보아야 합니다. “아내들아, 너희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5:22 흠정역). 이 구절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안배 안에서 남편과 아내가 각자의 위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자매가 남편에게 복종하기보다 주님께 복종하기가 훨씬 더 쉽습니다. 왜 그럴까요? 주님께서 아주 거룩하시지만 남편은 너무 때가 묻고 거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자매들이 비록 남편들이 먼지가 묻어 있다고 할지라도 남편에게 자신들을 복종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보십니다. 아마도 자매가 혼인을 한 신혼 초에는 그녀는 남편이 새 예루살렘의 금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자매들은 남편들이 땅의 흙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보려고 하는 것처럼 이것은 그영(the Spirit)의 누림으로만 될 수 있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

 

 

자매들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께 복종하듯 아내들도 모든 일에서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너희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사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 같이 하라.”(5:24~25 흠정역). 아내의 요구는 남편의 요구보다 훨씬 더 채우기 쉽습니다. 남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분 자신을 교회를 위해 주신 것과 마찬가지로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위해 자신을 주는 것을 배워야만 합니다. 다른 말로 남편은 아내가 있는 데서 자신의 성격(기질)을 잃어야 합니다. 남편에게 이것보다 더 힘든 것은 없습니다. 만일 남편이 항상 아내를 교정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아내를 위해 자신을 주는 것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많은 남편들은 가정에서 갈등(다툼)이 있을 때 자신의 성격(기질)을 포기하기를 거절합니다. 이는 남편에게 아내가 남편을 위한 가장 좋은 것이기 때문이라는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말씀 안에서 물로 씻을 필요

 

 

이것은 그분께서 말씀을 통해 물로 씻음으로 교회를 거룩히 구별하고 정결하게 하려 하심이요 또 그것을 점이나 주름이나 그런 것이 없는 영광스런 교회로 자기를 위해 제시하려 하심이며 교회가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5:26~27 흠정역). 주님께서 교회 안에서 경영하시는 길, 말씀 안에서 물로 씻음으로 교회가 정결케 하시는 것, 또한 주님께서 각 가정에서도 경영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있는 친밀함은 이 구절에서 설명되어진 끊임없이 씻음에 대한 체험을 통해서만 그 가장 높은 단계에 나타나게 될 수 있습니다. 이 씻음을 중단할 때, 남편과 아내 사이에 있는 하나님의 따뜻한 안배 또한 그칩니다. 씻음의 누림은 교리적인 율법을 유지하는 것에 의해 대체될지도 모릅니다. 어떤 남편은 아내로부터의 복종을 요구하고 어떤 아내는 남편으로부터 사랑을 요구합니다. 가정생활에서 주님의 경영은 교회에서의 주님의 경영처럼 같은 원칙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분은 말씀의 물로 그녀를 씻음으로 교회를 정결하게 합니다. 물은 흐르는 그 영(the Spirit)이요, 하나님의 신성한 생명입니다. 여기에서의 말씀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에베소서에 따르면 주님의 말씀하심은 성경에 대한 변함없는 말씀으로부터 옵니다.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라.”(6:17 흠정역). 다른 말로 그영(the Spirit)와 성경은 씻는 것을 위해 필요합니다. 머리로서의 남편의 실재와 돕는 자로서의 아내의 실재를 갖으려는 어느 가정이 말씀을 통해 물로 씻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성경 안에서 진리로 그영(the Spirit)을 누림은 합당한 역할들 안으로 남편과 아내를 데려옵니다.

 

 

에베소서에서 주님은 몸의 구원자로 부릅니다.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되심과 같기 때문이라. 그분은 그 몸의 구원자시니라.”(5:23 흠정역). 주님은 말씀 안에서 물로 씻음을 통해 우리를 정결케 하는 것과 우리를 만족하게 함으로 몸의 구원자가 되실 뿐입니다. 우리는 자주 우리의 체험 안에 우리가 빠져있다는 것을 잊고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도덕학과 도덕 원칙들로 우리의 가정들을 이끌려고 노력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정에서 평화의 모습을 드러내지만 그영(the Spirit)의 씻음은 없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교회생활의 큰 부분은 지나갔습니다. 아주 자주 교회 안에서의 문제는 가정생활에서의 문제에서 기인합니다. 심지어 남편과 아내 둘 다 주님을 사랑할 때 가정이 영적이고 건강한 것을 반드시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설계에 따라 남편과 아내의 영적 공동 경영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 축복이 되도록 하는 가정이 절망적인 것은 말씀 안에서 물로 씻을 필요가 있습니다. “말씀 안에 있는 물이란 의미 있는 표현입니다. 물은 씻을 수 있고 마음을 달래고 진정시킬 수 있습니다. 아주 바쁜 온 몸을 사로잡는 세상에서 우리가 건조한 남편이나 아내 되도록 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단순하게 우리의 가정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하지만 말씀에 대한 물의 어떤 누림은 없습니다. 주님과 함께 사이좋게 경영하는 가정생활의 따뜻함을 잃어버리는 것은 드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 안에서 물로 씻는 즐거워하는 것으로 영적이고 건강한 가정생활의 실제 안으로 날마다 구원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그영(the Spirit)을 누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요, 성경 안에서 진리를 누리는 것이요, 우리에게 주님의 순간적으로 말씀하시도록 성경의 끊임없이 말씀하시는 것을 허락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영(the Spirit)의 누림을 통해 축복을 받게 되는 우리 가정

 

 

하나님은 이와 같이 놀라운 방식으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분은 그영(the Spirit)으로서 주님을 영접하고 누릴 수 있음으로서 우리 안에 영을 창조하셨습니다. 웬일인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항상 우리의 가정생활과 관련하여 그영(the Spirit)을 등한시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정생활을 위해 그영(the Spirit)인 물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말씀의 물로 씻었을 때 우리의 가정생활은 부드러워지고, 평화스럽고,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다음으로 우리의 가정생활은 교회에 축복될 것입니다. 아내의 복종과 남편의 사랑은 그영(the Spirit)을 통해서 산출되어야 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오는 복종과 사랑은 가치 없는 것입니다. 그영(the Spirit)의 요소가 없기 때문에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려고 하는 천연적인 노력으로 분투하고 있을 때에는 남편에게 도움이 될 수 없습니다. 그영(the Spirit)은 여러분의 집안의 존재 안에서 가장 강한 요소가 되어야 합니다.

 

 

자매들이여, 여러분의 교회생활에서의 가정생활은 그영(the Spirit)의 향기로 채워져야만 합니다. 이것은 복잡하지 않아야 하지만 풍족하게 필요합니다. 자매들은 남편을 도와야 하고 강하고 건강한 영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아마도 가정생활 안에서 식사시간에 짧지만 귀한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저녁식사 바로 전에 성경을 읽을 수가 있거나 먹기 전후에 성경을 암기할 수도 있습니다. 많은 다른 방식으로 할 수 있지만 여러분은 그영(the Spirit) 안에서 계속 상쾌하도록 여러분의 가정을 도와야 합니다. 말씀 안에서 물로 끊임없는 씻음과 깨끗함을 통해서 여러분의 가정과 온 교회생활이 풍성히 축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