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하늘에 속한 본에 대한 개념: 신성하고 영적인 본이 되는 건강한 본
우리는 자매들이 그들의 행위보다 본에 더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본, 무늬”는 성경에서 몇 번 사용되고 있는데 특별하게 성막(교회)에 대한 설계에 관해 사용됩니다. 성막(교회)은 신성하고 하늘에 속한 본에 따라서 건축되었습니다.
“이 제사장들은 모세가 성막을 만들려 할 때에 [하나님]께 권고 받은 바와 같이 하늘에 있는 것들의 본보기와 그림자를 섬기나니 그분께서 이르시되, 너는 조심하여 산에서 네게 보여 준 양식에 따라 모든 것을 만들라, 하시느니라.”(히 8:5)
성경에 있는 “본”에 대한 문제와 관련이 있는 가장 중요한 원칙은 신성한 어떤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막을 건축했을 때 그들은 신성하고 하늘의 본을 따라서 건축했습니다. 하나님은 “산에서 그것들을 보여 주었던 본에 따라서 모든 것들을 만들도록” 자신의 백성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은 본이 신성하고 하늘에 속한 어떤 것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우리가 매일의 삶에서 본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아마도 “나의 본은 하늘에 속한 것이 아니야. 나의 본은 비교적 땅에 속해 있어.”라고 말할 것입니다. 우리가 신성한 본으로 살아야 할 본이요, 땅에 속하지 말아야 하는 본입니다. 우리가 본으로 사는 것은 어떤 신성한 것이 포함된다는 의미입니다. 첫 번째 메시지에서 우리는 우리가 우리의 행위에 관심을 두지 말아야 하지만 우리의 본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하늘에 속한 본을 따라서 삶을 사는 것을 훈련하는 것처럼 우리는 “저는 저의 행위를 돌보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저는 저의 본에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라고 주님께 말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행위에 너무 많은 관심을 가질 때 우리는 우리에 관한 모든 것은 곤경에 처한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들에 관해서 볼 수 있게 될 모든 것은 우리의 실수입니다. 대신 우리는 하늘에 속한 본을 따라서 또 다른 천사로부터 우리의 삶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하늘에 속한 본은 영적인 문제입니다. 우리는 어떤 본이 상투적으로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상투적인 삶을 살 수 없고 우리의 본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신성하고 영적인 본으로 살아야만 합니다.
우리의 본에 대한 영적인 실재는 생명 안에서 우리의 성장의 바탕입니다. 새로운 자매가 몇 달 동안 교회생활 안에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그녀가 한 주에 한두 번 모이는 방법을 알고 있거나 자신의 영을 훈련을 하고 아주 조금 기도하는 방법을 안다면 주님은 틀림없이 만족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개인적인 관찰에 따라서 이 자매는 어리고 피상적일 수 있고 기도는 많은 내용을 갖지 못할지 모릅니다. 그녀는 자신의 영을 사용하지 않고서 자신의 음성을 발휘할지 모릅니다. 이 자매가 자신의 영을 가지지 못하고 자신의 음성을 발휘하려고 하는 것은 주님의 관점으로부터 그분의 갈망하심과 같습니다.
만일 한 자매가 새로운 자매라면 어떤 요구가 주님께서 그녀에 대해 만드실 수 있을까요? 그분께서 묻는 것 대부분 어느 정도 복음을 전했는지, 성경을 읽었는지, 얼마나 모임에 나갔는지를 물으십니다. 생활 속에서 성장의 근거를 둔 그녀는 신성하고 영적인 본을 따라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살아야 하는 본은 생활 속에서 우리의 성장에 따른 것입니다.
건강한 본에 대한 요소
첫 번째 요소: 주님의 임재 안에 있기를 분투하기
건강한 본은 세 가지 요소로 우리가 삽니다. 이 요소들 각각 실제적인 영적인 훈련입니다. 먼저 우리의 날마다의 생활 가운데 우리는 주님의 임재 안에 있기를 훈련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특별하게 동반자의 문제와 관련이 있는 우리의 날마다의 생활 가운데 교회생활을 가지려고 훈련해야 합니다. 세 번째 우리는 단체적인 교회생활을 하기를 훈련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함께 조성되는 것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요소 모두는 우리의 존재에 대한 본이 되어야 합니다.
하늘에 속한 우리의 본 가운데 있는 첫 번째 요소는 우리가 주님의 임재 안에 있기를 날마다 분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함으로 우리 자신을 훈련해야 합니다. 자매들은 “나의 삶에 대한 본 가운데 나는 주님의 임재 안에 있기를 분투한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은 주님의 축복을 가져올 것입니다. 자매가 자신의 행위에 관심을 가질 때 그녀는 흔히 비난 아래에 있게 될 것입니다. 그녀가 자신의 남편에 대해 화를 조절하지 않는다면 그녀는 잠을 잘 수 없을 것입니다. 그녀는 “나는 아주 여러 해 동안 주님을 사랑해 왔다. 내가 이 성질을 가진 나를 어떻게 좋아할 수 있을까? 어떻게 나의 남편에 대해 몹시 화를 낼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우리의 행위가 부적당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부적당한 행위들을 갖기를 격려 받지 말아야 하지만 그것들은 여전히 다가 올 것입니다. 우리의 행위가 부적당할 때 우리는 단순하고 빠르게 주님의 귀중한 보혈을 취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임재 안에 있기를 다시 시도해야 합니다. 그런 후 우리는 우리가 주님의 생명 안에서 가기를 분투하고 또 우리가 있었던 곳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이것은 하늘에 속한 본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 본 안에서 우리가 몹시 하늘에 속해 있지 않은 행위들을 가질 때 우리는 내려놓아야 하는 것을 배웁니다. 우리는 아직도 주님의 임재 안에 있기를 분투합니다. 우리의 본은 우리가 주님의 임재 안에 있는 것이요, 주님의 임재 안에 있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배우면 우리는 우리의 날마다의 생활, 우리 가정생활, 교회생활에서 아주 많이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우리의 연약함을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의 문제들은 우리가 본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우리의 본이 되어야 합니까? 우리가 운전을 할 때 우리는 주님의 임재 안에 있기를 분투해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을 때에 우리는 주님의 임재 안에 있기를 분투해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성도들과 함께 기도하고 있을 때 우리는 주님의 임재 안에 있기를 분투해야 합니다. 심지어 우리가 연약함 안에 있을 때에도 여전히 주님의 임재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공을 하든지 실패를 하든지 우리는 관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임재를 구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생활 속에 있는 하늘에 속한 본입니다. 우리가 이 길을 훈련할 때 우리는 주님의 구속과 구원에 대한 효능을 얻습니다. 우리는 “주님, 저의 행위들은 가끔 하늘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합당하고 하늘에 속한 본에 관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내 순간순간의 생활 안에서 제가 당신의 임재 안에 있기를 분투하고 있는 모든 사간을 의미합니다.”라고 주님께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순간순간의 생활 안에서 살아야 할 신성하고 영적인 본입니다.
두 번째 요소: 우리 생활 가운데 교회생활을 훈련함
자매들이여, 정기적으로 교회집회에 나가는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 여러분은 다른 자매들과 함께 있기를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날마다 교회생활에 관심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다른 자매들과 함께 있을 수 있을 때가 보물과 같은 시간입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교회생활 안에 있는 이 훈련이 다소 짧습니다. 다른 자매들과 함께 모이는 것을 시작하려고 앞장서는 자매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러분은 문제를 자매들에 대해 기능을 발휘하는 것과 관련이 있을지 모릅니다. 사실은 날마다의 생활 가운데 다른 자매들과 함께 있는 것이 하늘에 속한 것입니다. 자매들이 기도, 교제, 진리를 풍성히 누리려고 함께 모일 때 그런 것들이 하늘에 속한 본입니다. 이 본은 여러분의 훈련이 하늘에 속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성장하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특별하게 성도들, 장로들, 새로운 사람들, 교회의 필요, 복음, 주님의 움직이심을 위해 주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부담 갖고 있는 것이 어떠하든지 기도할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말씀 안에서와 진리의 모든 풍성 안에서 수고하려고 함께 올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늘에 속한 본입니다. 개인적으로 주님의 임재 안에 있기를 분투할 뿐만 아니라 날마다의 생활 가운데서 교회생활을 갖기를 분투하십시오.
자매들이여, 여러분 자신의 개인적인 매일의 생활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매일의 생활 안에서 교회생활에 있기를 분투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소수의 성도들을 방문하고, 한 자매와 함께 하는 말씀으로 수고하며, 또 다른 자매와 어떤 기도를 갖고, 그리고 자매들의 무리와 함께 모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방식으로 훈련할 수 있으면 있을수록 교회생활은 더욱 건강하게 될 것입니다. 자매들의 무리가 기도하기 위해 한결같이 함께 온다면 그들의 기도가 영적이든 아니든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는 여전히 유익을 얻을 것입니다.
자매들이여, 여러분의 매일의 생활 가운데서 교회생활을 갖기를 배우십시오. 다른 자매들과 함께 있기를 훈련하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여러분의 삶을 살려고 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시간을 여러분에게 주신다면 다른 성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배우십시오. 다른 자매들과 함께 수고하고 기도하기를 훈련하십시오. 이와 같은 적극적인 훈련은 삶에서 건강한 성장을 여러분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여러분이 장로들과 인도하는 형제들에 대한 부담과 일치하고 조화를 시키기 위해 기도하는 것처럼 교회를 강하게 할 것입니다. 또 여러분 자신의 개인적인 매일의 생활을 가지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교회생활 가운데서 여러분의 날마다의 생활을 가지십시오. 이것은 여러분의 건강한 본의 일부입니다. 모든 자매들은 이 방식 안에서 훈련하기를 격려 받아야 합니다.
지역교회에서의 장로들의 결정들은 많은 기도를 필요로 합니다. 교회는 많은 기도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부담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장로들이 어떤 필요에 관련하여 교회와 나누기 시작할 때 교회를 후원하기 위해 충분한 기도를 해야만 합니다. 너무나 흔히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하는 것처럼 장로들이 단지 우리와 함께 교제하는 문제를 다룹니다. 우리는 우리가 기도로 이와 같은 문제를 후원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었습니다. 우리는 기도 없는 사역의 결론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영적으로 교회를 후원하려고 분투하는 것이 아니면 어떤 결정은 죽은 것입니다. 생명이 들어 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도를 통한 것입니다. 주님과 협력하여 많은 분투를 해야만 합니다. 상황을 유지시키기 위해 많은 기도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방식 안에서 교회를 위해 기도하면 할수록 어떤 것은 우리 안에서 불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관심을 위해서 불을 붙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심지어 모임에 이 불을 가져올 것입니다. 그러면 모임들은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자매들이여, 여러분이 기도로 교회를 후원하고 함께 와야 할 시간을 선용하십시오. 너무 조직화된 교회를 건축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디로 갈지, 어떤 날 만날지에 관하여 신축성 있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주님 앞에서 함께 기도하기를 훈련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들의 부담으로 설 수 있기 위하여 가끔 여러분은 인도하는 자들과 교제를 가졌던 것을 재검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교회의 상황을 생각할 수 있고, 교회가 강해지도록 기도할 수도 잇습니다. 여러분은 합당하게 돌봐야 할 필요가 있는 어떤 새 성도들과 관련하여 기도하고 교제를 할 수 있습니다. 이 방식으로 훈련하는 것은 주님의 축복가운데 가져올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건강한 본이 되어야 합니다.
자매들이 동반자를 갖는데 절박함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교회생활 가운데 건강한 동반자들 산출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교회생활 가운데 있는 많은 자매들은 혼자입니다. 그들은 극소수의 자매들이 자신들에게 정을 준다는 것을 느끼고 극히 적은 자매들이 그들의 동반자입니다. 어떤 자매들은 함께 교제할 사람이 없습니다. 자매가 살펴볼 때에 그녀는 스스로와 싸웁니다. 자신의 남편이 어렵다는 것을 볼 때 그녀는 함께 기도할 사람이 없습니다. 자매가 몇 년 동안 교회생활 가운데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아직도 혼자입니다. 교회 생활 가운데서 많은 자매들은 자신 혼자로 있습니다. 왜 우리 가운데 있는 많은 자매들이 홀로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교제를 나누는 것에 대한 결여입니다. 자매들이 귀중한 교제를 갖는 것은 아주 어려운 것 같습니다. 자매들은 흔히들 교회모임을 통해서만 서로를 압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날마다의 삶을 서로 함께 있지 않습니다. 아마도 자매들은 다른 자매들과 어떤 친분관계를 가질지 모르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영 안에서 함께 합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교회생활 안으로 가져오도록 하는 훈련을 하지 않습니다. 자매들이 건강한 동반자의 본을 훈련을 할 때 그들은 혼자이거나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교회 가운데 움직이실 때 형제는 반응할지는 모르지만 그의 아내는 반응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아내의 잘못이 아닙니다. 이것은 곧 그녀가 혼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녀가 교회를 사랑할지 모르지만 그녀가 주님의 움직이심에 반응할 수 있는 범위까지 배짱 좋게 교회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자매의 생활 가운데서 아무도 그녀 안에 있는 적극적인 부담을 돌볼 사람이 없습니다. 그녀의 교회생활은 건강한 본이 아닙니다. 대신 그녀가 모임에 가는 것으로 단지 판에 박힌 일상적인 것뿐입니다.
이것이 교회생활 가운데 있는 그녀의 활동일 때 몹시 제한을 받을 것입니다. 그녀가 영적인 갖지 못하기 때문에 그녀는 교회에서 주님의 움직이심에 반응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일 교회생활 가운데 자매와 교제할 자매들이 몇 명뿐이라면 주님께서 움직이실 때 그녀가 반응하기가 더 쉬울 것입니다. 그녀는 남편이 주님을 따르도록 일어서게 하는데 강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보호를 위해 영적인 동반자들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중대한 결정을 하게 될 때 우리는 우리가 교제를 함께 할 수 있는 자매들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 성장에서 어려운 시기를 경험할 때 우리는 우리를 돕고, 우리와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자매들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동반자와의 교제입니다. 자매들의 무리가 자주 함께 하지만 그들이 하는 것 모두 다른 것들에 관해 한담을 한다면 이것은 참된 교제가 아닙니다.
그들 가운데 있는 한 자매가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녀가 교제하기 위해 재매들의 모임으로 그 문제를 가지고 갔다면 또 다른 자매가 “너무 영적이지 않네요.”라고 말하고 웃을지도 모릅니다. 절실하게 필요 가운데 있는 자매는 도움을 받지 않았으며, 다른 자매들이 그녀의 도움을 줄 기회는 잃어버렸습니다. 이것은 이러한 자매들이 모든 시간을 함께 있었다는 것이요, 그들이 진실한 교제를 만들어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교제는 천연적인 애정이나 상호이익에 바탕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교제는 영적이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혼적인 교제를 갖기 아주 쉽습니다. 가까운 자매들은 교회생활 가운데 작은 파당을 산출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파당이 되는 교제를 갖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가깝게 느끼는 다른 자매들을 피해야 한다거나 냉대하고 서로가 사무적인 연락을 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곧 우리가 우리의 영 안에서 자매들과 함께 있기를 배워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아주 친밀하고 가까워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세상적인 친근함과 다른 것입니다. 우리의 교제는 혼적인 교제나 세상적인 흥미에 근거를 두지 않는 것입니다. 대신에 우리는 주님과 그분의 증언을 위해 공동으로 분투하는 것입니다. 자매들은 “주님, 저는 저의 동반자 몇 명의 자매들이 필요합니다. 힘든 때가 오면 저는 주님의 임재 안으로 저를 데려가고 함께 기도를 할 수 있는 자매들이 있어야합니다. 저는 우리가 당신을 함께 추구할 수 있기 위해 영 안에서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자매들과 함께 있는 것이 필요합니다.”라고 주님께 말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께로부터 진실한 축복을 가져올 수 있는 건강한 동반자입니다.
자매들이여, 날마다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 교회생활을 훈련하는 것을 배우십시오. 홀로 있기를 허락하지 마십시오. 교회생활 가운데 외로운 자매가 되지 마십시오. 영적인 교제들을 건강하게 발전시키십시오. 여러분의 영적 교제를 함으로 어떤 자매들이 있을 때에는 그들이 단지 여러분의 친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함께 기도하고, 교제하고, 말씀으로 수고하고, 생활 속에서 공동으로 성장하기 위해 그들과 함께 분투하는 군사를 의미합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남편이 어떤 어려움이 생겼을 때 이를 통해서 여러분은 여러분을 돕는 여러분의 동반자 자매들을 갖게 됩니다. 서로 기도하는 것을 배우십시오. 함께 있기를 배우십시오. 날마다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 침투하려고 하는 다른 자매들을 허락하십시오. 심지어 적극적인 방식으로 그들을 위해 같은 것을 하려고 하는 방법을 배우십시오. 여러분은 교회생활 가운데서 홀로 있는 자매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영적인 동반자가 되려고 하는 어떤 자매들을 찾아야 합니다.
세 번째 요소: 단체적인 교회생활을 보물과 같이 귀하게 여기기
우리의 영적 훈련 가운데서 우리는 성도들과 함께 모이는 것과 모임의 모든 것 안에 있는 것을 포함해서 단체적인 교회생활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이것이 건강한 본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 의하면 우리는 결코 우리의 모임을 경멸하거나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우리의 함께 모이는 일을 폐하지 말고 서로 권면하여 그 날이 다가옴을 너희가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5).
큰 교회의 모임이든지 작은 교회의 모임이든지 이것은 우리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이 원칙으로 우리는 함께 모이는 것을 소홀히 여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교회생활을 공동으로 귀하게 여기는 것을 모이는 생활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의 체험 가운데 우리는 교파들로부터 건강하지 않은 생각들을 붙잡고 있을지 모릅니다. 어쩌면 이런 생각들은 우리의 타락한 본성과 일치합니다. 자매들이여, 우리는 단체적인 교회생활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온 교회가 다 모이는 모임이든지 몇몇 성도들만 모이는 모임이든지 간에 모든 모임을 귀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것을 장로나 감독이나 목사가 모임을 결정하고 주도하든지 어떤 성도의 가정에서 모임 갖기를 부담을 받든지 차별을 두지 않습니다. 우리는 단순하게 교회의 모이는 것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만일 어떤 성도가 이 본을 따라서 살고 있지 않다면 그들은 영적으로 건강할 수 없습니다. 만일 그들이 교회와 함께 하는 자신들의 모임 갖기를 그만둔다면 아무리 영적인 사람이라도 결국 영적인 체험 가운데서 죽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가정에서 성경을 읽을지 모르지만 그들은 영적으로 죽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설명한 건강한 본을 보아야 합니다. 그 본은 교회생활 가운데 성도들과 함께 모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단체적인 교회생활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으로 합당하게 훈련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본은 건강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우리는 신성하고 영적인 본보다 오히려 인간의 기준, 땅에 속한 것을 따르는 생활입니다.
우리가 교회 모임에 참석하고 다른 성도들과 함께 훈련을 받을 때 우리는 건강한 본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모임을 깔보거나 경멸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너무 바쁘기 때문에 교회모임에 시간을 갖지 못한다는 말을 할 때 우리는 건강한 본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모임을 놓치는 것은 그 자체가 본이 될 수 있습니다. 건강하지 않은 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0:25절에서 말한 이유입니다.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우리의 함께 모이는 일을 폐하지 말고 서로 권면하여 그 날이 다가옴을 너희가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5).
습관은 우리의 본과 같습니다. 히브리서가 기록되었을 때 어떤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모임을 놓치거나 경멸하고 무시하는 성도들 말입니다. 그들은 모든 모임에 가지 않거나, 성도들과 함께 있지 않는 것을 선택했고 결국 그것들이 그들의 본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본이 잘못되고 있을 때 우리의 모든 행위가 옳을지라도 우리 자신이 잘못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본은 우리의 행위보다 더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성질을 내려놓는 것은 아주 심각한 것은 아니지만 교회모임을 놓치는 것은 아주 심각한 것입니다. 자매가 성질을 내려놓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녀가 교회모임을 가지 않는다면 주님께서는 “얘야, 어의 선한 행위는 어떠한 의미가 없단다.”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또 다른 자매가 잠시 동안 자신의 성질을 내려놓고서 모든 교회모임에 참석한다면 주님은 “네가 옳다. 이것의 최고의 행위다.”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위에 관심하지 말아야 하고 건강한 본의 문제에 관심해야 합니다. 건강한 본의 중요한 부분은 단체적인 교회생활 가운데서 성도들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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