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메시지/교회생활과 자매들의 역할

특별하고도 정상적인 상태에서 주님의 필요를 채우기

Hernhut 2012. 6. 24.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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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하고도 정상적인 상태에서 주님의 필요를 채우기

 

 

이 메시지에서 우리는 현실적인 문제로서 자매들의 기능에 왔습니다. 교회생활에서 자매들의 기능은 두 가지 방면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자매들은 교회가 소중한 시간이나 특별한 상태를 통고하고 있을 때 특별한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자매들은 어떤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교회생활에서 정상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자매들의 기능에 대한 두 가지 방면과 관련되어 있는 예를 우리에게 줍니다.

 

 

 

자매들의 특별한 기능: 필요에 대한 소중한 시간에 하나님의 백성들의 환경을 바꾸기

 

 

자매들의 기능은 종종 아주 특별한 필요를 채웁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자매들에 대한 예를 볼 때 흔하지 않은 어떠한 것을 신경을 쓸지 모릅니다. 한 면으로는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많은 심각한 문제들은 자매들로부터 오고 반면에 많은 부정적인 상황은 자매들 때문에 긍정적인 어떤 것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이것은 자매들이 심각한 문제들의 원인이 될 수 있고 또한 커다란 축복의 상태를 만들 수도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환경이 최악일 때 자주 자매들은 상황을 바꾸도록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특별하게 이것을 봅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련한 환경에 있었을 때 자매들은 자주 이런 상황에서 일어났었습니다. 그런 후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환경이 다시 낮아지면 또 다른 자매가 와서 상황을 전환시켰습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 있었을 때와 환경이 아주 극단적인 상태가 되었을 때 주님은 모세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모세의 누나와 어머니를 일으켰습니다. 이 두 자매(모세의 어머니와 누나)들은 주님의 종의 생명을 구원하였고 보호했습니다. 주님께서 환경을 돌이키는 방법과 이스라엘을 구출하는 방법을 주셨습니다. 사사기에서는 이스라엘의 환경이 아주 낮아지고 어두워졌을 때 주님께서 드보라를 일으키셨습니다. 드보라는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도록 하기 위해 발락을 요청했고 그 상황은 바뀌었습니다. 또 사사기에서 이스라엘은 결과적으로 모든 상황이 완전히 비참하게 되었을 때까지 계속하서 악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룻을 일으키셨습니다. 룻 이후의 상황은 다시 어두워졌고 혼란스러워졌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를 일으키셨습니다. 이 모든 경우 자매는 특별한 필요를 채우기 위해 일으켜졌고 주님의 백성들의 상태가 바뀌었습니다.

 

 

이것은 자매가 심히 특별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자매는 하나님의 백성의 상황을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려운 상황을 바꾸는 것은 형제들을 요구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부분적인 사실입니다. 모세가 쓰임 받을 수 있기 전에 두 자매(어머니와 누나)가 있었습니다. 발락이 쓰임 받을 수 있기 전에 드보라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어둡고 악화된 상황에서 룻이 먼저 있었고 그 다음 한나가 있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가장 두드러진 예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있습니다. 마리아는 가장 중요한 시간에 가장 큰 전환을 가져오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상황은 더 나빠질 수 있었지만 이 자매(마리아) 때문에 주님은 길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자매들은 이 상황을 바꾸도록 하는 주님의 부담에 대답할 특별한 위치에 있습니다. 우리는 자매가 아주 특별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기능은 악화에서 치유까지 상황을 바꾸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가 가고 있는 주님의 길에서도 이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서 형제는 한 자매를 통해 구원을 받았고 또 다른 자매를 통해서 일으켜졌습니다. 또 우리 주 형제도 자매를 통해 구원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상황을 바꾸도록 어떤 것을 하실 때 자매들을 사용하십니다. 주님은 그분의 부담, 증거, 그분의 백성들을 위해 아주 특별한 일을 하시려고 자매들을 사용하십니다.

 

 

 

자매들의 기능에 대한 부정적인 방면

 

 

자매들의 기능과 관련이 있는 부정적인 측면 또한 있습니다. 자매가 특별한 필요를 채우도록 하기 위해 주님께 쓰임 받을 때 가끔 불쾌한 결과가 가끔 있습니다. 가장 확실한 예는 모세의 누나 미리암입니다. 미리암은 모세의 생명을 구하여서 특별한 필요를 채우도록 주님에 의해 쓰임 받았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 사람들이 홍해를 건넜을 때 미리암은 주님 앞에서 노래와 춤으로 앞장서 통솔력을 발휘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미리암은 모세를 반대하여 반란을 일으키는 데에도 앞장선 여자였습니다. 그녀의 반란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방해를 받았습니다. “모세가 이디오피아 여인과 결혼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가 결혼한 그 이디오피아 여인으로 인하여 모세를 비방하니라......미리암이 이레 동안 진영 밖에 갇히고 백성은 미리암이 다시 들어올 때까지 이동하지 아니하다가”(12:1, 15 흠정역). 우리는 이와 같이 긍정적으로 쓰임을 받았던 자매가 나중에 하나님의 백성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사사기에 있는 드보라 역시 한 예입니다. 드보라는 싸움을 하도록 하기 위해 형제들에게 용기를 주도록 주님에 의해 일으켜졌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승리 후 그녀는 자신을 미화시킨 노래를 불렀습니다. “마을들의 거주민들이 그치고 그들이 이스라엘 안에서 그쳤더니 마침내 나 드보라가 일어났고 어머니인 내가 이스라엘에서 일어났도다.”(5:7 흠정역). 성경은 심히 긍정적인 방법으로 드보라에 대해 말하지만 이 구절을 읽다보면 아주 골치 아프고 탐탁지 않은 어떤 것이 있습니다. “내가 이스라엘의 어머니다.”라고 선포하는 드보라는 자신을 높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오늘날 천주교회의 마리아를 예수님의 어머니라 하여 높이는 것이나 통일교에서 교주의 부인을 하나님의 아내로 부르거나 하나님의 교회(엘림, 엘로힘 아카데미)에서 교주를 어머니 하나님으로 높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주님은 중요한 변화를 일으키는 데 자매를 쓰실 수 있지만 문제들은 여전히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았던 것처럼 주님께서 자매를 쓰실 때 그녀는 결국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룻과 한나는 결코 어떤 문제도 없었습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어떤 작은 실수를 만들었지만 주님께서는 그녀에 대해서 돌보는 방법을 아셨으며, 어떤 심각한 문제는 결코 없었습니다. 이 자매들은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 예들입니다. 자매들이 주님 앞에서 주의를 한다면 심지어 쓰임을 받은 후에도 그녀는 계속해서 여전히 건강할 수 있습니다.

 

 

자매가 주님의 특별한 필요를 채울만한 자격이 되는 것에 관한 비밀들

 

 

마리아가 이르되, 내 혼이 주를 크게 높이고 내 영이 하나님 곧 내 구원자를 기뻐하였나니 이는 그분께서 자신의 여종의 낮은 처지에 관심을 두셨기 때문이라. 보라, 이제부터는 모든 세대가 나를 가리켜 복이 있다 하리로다. 능하신 분께서 큰일들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분의 이름이 거룩하며 그분의 긍휼이 그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대대로 있도다. 그분께서 자신의 팔로 힘을 보이사 자기 마음의 상상 속에서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강한 자들을 그들의 자리에서 끌어내리시며 낮은 지위에 있는 자들을 높이시고 주린 자들을 좋은 것들로 배부르게 하시며 부자들을 빈손으로 보내셨도다. 그분께서 자신의 긍휼을 기억하사 자신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으니 이것은 곧 그분께서 우리 조상들과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영원히 말씀하신 것과 같도다, 하니라.”(1:46~55 흠정역)

 

 

자매가 특별한 상황 속에서 주님의 필요를 채우도록 주님에 의해 쓰임 받게 되는 것은 무슨 자격입니까? 자매가 주님께서 그녀를 쓰신 후 문제가 되는 것으로부터 보존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대답은 바로 본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리아의 사촌 엘리사벳에게 문안하고 또 축복을 빈 후 마리아의 증거입니다. 이 구절은 특별한 상황에서 주님의 필요를 채우도록 주님에 의해 자매가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관한 4가지의 비밀들이 들어 있습니다.

 

 

낮은 처지를 보호하는 것

 

 

본문은 마리아의 증거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46~47절을 기억하기를 좋아합니다. “내 혼이 주님을 크게 높이고(확대, 부각시키고), 내 영이 나의 구원자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이기지 못했으니왜 마리아가 이것을 체험할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그녀가 이렇게 쓰임 받을 수 있었을까요? 그 대답은 48절에 있습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여종의 낮은 처지에 여기셨기 때문이라.” 자매들이여, 항상 낮은 처지에 관심을 두는 것이 귀중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높이지 아니면 얼마나 낮은지에 관련하여 여러분을 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낮은 신분을 보호하는 것은 여러분을 쓰실 주님을 위한 비밀입니다. 마리아가 증거를 한 후에도 낮은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제부터는 모든 세대가 나를 가리켜 복이 있다 하리로다.”(48b)라고 말했습니다. 자매는 어떻게 주님에게서 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낮은 처지에 있는 것입니다. 자매들이 건강한 방식으로 기능을 갖는 것은 그녀가 자신의 낮은 처지 안에서 있는 것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미리암은 문제가 되었습니까? 성경은 먼저 선한 젊은 소녀가 되려는 그녀를 보여줍니다. 그녀는 파라오의 딸에게 가서 당신은 이 작은 아기를 위해 보모를 찾는 나를 원하십니까?”라고 파라오의 딸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나 몇 년 후에 성경은 또 다른 그림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어떻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말씀하시고 나를 통해서는 말씀하시지 않는가?” 이 사람은 같은 사람입니다. 어떻게 미리암은 반역자가 되었습니까? 낮은 처지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천연적으로 자매들은 아주 작은 것 때문에 낮은 신분을 떠날 수 있습니다. 자매들이 그들의 낮은 처지에서 나가기가 쉽습니다. 이것이 마리아의 증거가 심히 귀중한 이유입니다. “주님께서 그분의 여종의 낮은 처지를 관심하셨다.” 이것이 자매들의 건강한 기능에 대한 첫 번째 비밀입니다.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과 그분의 긍휼을 추구하기

 

 

다음 구절에는 자매가 주님께 쓰임 받는 또 다른 비밀이 담겨져 있습니다. “능하신 분께서 큰일들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분의 이름이 거룩하며 그분의 긍휼이 그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대대로 있도다.”(1:49~50 흠정역). 마리아가 주님께 쓰임을 받은 것은 그녀가 하나님의 긍휼이 항상 그분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우리의 관점에서 우리는 경건함으로 두려움을 가져야 하며, 하나님의 관점에서 그분은 긍휼하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것은 단순하지만 중요한 말씀이요, 형제들에게 보다 자매들에게 더 있습니다. 형제들은 주님께 정상적으로 두드러지게 쓰임을 받지만 자매들은 특별함으로 쓰임을 받습니다. 만일 교회가 약하다면 형제들이 와서 수고 한다면 일 년 안에 교회는 강하게 질 것입니다. 자매들이 생명 안으로 상황을 바꾸는 것은 그들이 긍휼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자매들은 형제들에게 형제들은 너무 죽어 있어! 여러분은 살아있어야 해!’하고 메시지를 전달할 수 없고, 세울 수도 없습니다. 자매들은 이런 것을 할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자매들 안에는 주님을 향한 두려움, 긍휼을 위해 주님께 주목하는 것이 있어야합니다. 자매는 주님, 제가 교회에 축복삼아 정말 어떤 것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오직 당신 때문입니다. 저는 당신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신께서는 긍휼을 가지셔야 합니다.’라고 깨달아야 합니다.

 

 

만일 이와 같은 자매가 상황을 위해 기도하고 나서 기도가 응답을 받았다면 그녀는 주의를 해야만 합니다. 그녀는 장랑하고 뽐내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는 그 상황을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이제 주위가 바뀌었다. 이제 사람들은 구원을 얻고 있다. 그리고 모임에 나가고 있다. 내가 생명 안으로 교회를 가져왔다!’라고 말하지 말아야합니다. 그녀가 이것을 말하면 그녀의 낮은 처지가 살아집니다. 자매가 쓰임 받게 되고 또 이와 같은 두드러진 방법으로 앞장서는 것은 특별하고 특별한 상황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매는 낮은 처지(신분) 안에 있어야 합니다. 경건한 두려움을 가져야 하고 긍휼을 위해 주님께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쉽지만은 않지만 그것은 꼭 필요합니다. 만일 자매가 이것을 배우지 않았다면 주님께서는 그녀를 쓰실 수 없습니다. 많은 결정적인 상황은 자매들로 주위가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으로 쓰임 받았던 그 자매들은 어떤 건강한 깨달음 가졌습니다. 그들은 낮은 처지가 되었고 주님을 두려워하였으며, 긍휼을 위해 그분을 바라보았습니다.

 

 

낮은 신분을 유지하는 것

 

 

그분께서 자신의 팔로 힘을 보이사 자기 마음의 상상 속에서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강한 자들을 그들의 자리에서 끌어내리시며 낮은 지위에 있는 자들을 높이시고”(1:51~52 흠정역). 이 구절의 마지막 부분을 낮은 신분의 사람들을 높이셨고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가 배웠던 세 번째 비밀은 낮은 지위안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낮은 처지 안에 있는 것에 대한 첫 번째 비밀을 넘어섭니다. 자매가 낮은 신분에 있다는 것은 그녀가 만일 주님께서 나를 쓰신다면 그것은 특별한 상황 때문이다. 나는 주님이 나를 쓰셔야하는 어떤 사람이 아니다.’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룻과 한나를 쓰셨지만 그것은 특별한 상황이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성경 안에서 쓰임 받았던 모든 자매들에 대한 사실입니다. 그들은 상황이 약간 건강하지 못했기 때문에 쓰임을 받았던 것입니다. 만일 자매가 높은 신분이라면 그녀는 특별한 상황에서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자매가 주님께 쓰임을 받게 되는 것은 그녀가 낮은 신분에 있어야 합니다.

 

 

자매들은 조심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들이 높은 신분에 있을 때 설령 그들이 교회가 실망시키는 것을 보게 된다면 그들은 사실상 그 불만이 더해질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만일 자매가 시중을 들고 있다면 그녀가 형제들을 꾸짖는 것은 아주 건강하지 않은 것입니다. 만일 자매가 생각한 것이 옳지 못했었던 어떤 것 때문에 모임이 죽어 있었다는 것을 형제에게 말한다면 이것은 낮은 신분을 갖지 않은 것입니다. 다른 방면에서 인도하는 형제가 어떤 것을 말하는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인도하는 형제는 집회에서 일어날 수 있고 우리가 실망한 이유가 우리의 기도가 너무 너무 길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매는 이건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자매가 이런 방식으로 기능에 대해 갈망하기 쉽습니다. 얄궂게도 자매들이 너무 정교하고 섬세해서 그들은 자주 잘못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형제들이 어떤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할 때마다 자매들은 이미 압니다. 하지만 만일 자매가 자신의 위치를 넘어서서 행사하는 것과 어떤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본다하더라도 그것은 자매가 낮은 신분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증겁니다. 대신 그녀는 자신을 아주 높게 만듭니다. 마리아는 낮은 신분으로 자신을 보호했기 때문에 주님께 쓰임 받았습니다.

 

 

영적인 갈급함과 굶주림을 유지하기

 

 

53절은 주린 자들을 좋은 것들로 배부르게 하시며 부자들을 빈손으로 보내셨도다.”(흠정역). 말합니다. 영적인 굶주림을 유지하는 것이 주님께 쓰임 받게 되는 또 다른 비밀입니다. 영적인 굶주림을 유지하고 보호하는 비결은 우리의 체험, 특히 승리하기에 얽매이지 않는 것입니다. 자매가 승리를 할 때 그녀의 승리는 자주 자기 누림(만족)에 빠집니다. 만일 자매가 아침에 한 시간 동안 주님을 누린다면 그녀는 온종일을 그 한 시간에 대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녀가 자신의 주림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영적체험은 우리의 굶주림을 없애줄 수 있고, 우리가 누린 것으로 우리를 만족하게 할 수 있습니다. 자매가 주님께 쓰임 받게 되려면 그녀가 자신의 영적으로 굶주림을 유지하고 보호해야 합니다.

 

 

우리는 마리아가 주님을 확대한 혼과 주님 아에서 누린 영과 함께하는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봅니다. 그녀가 어떻게 아주 건강할 수 있었나요? 그녀의 증거는 4가지의 비밀을 우리에게 줍니다. 첫째로 그녀는 낮은 처지에 있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두려워했고 긍휼을 위해서 그분을 바라다보았습니다. 셋째로 낮은 신분으로 있었습니다. 그녀는 겉으로 보기에 아주 조금밖에 모르는 갈릴리로터 온 단순한 시골 여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주님을 사랑하고 갈망했습니다. 넷째로 그녀는 영적으로 굶주리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녀가 이전에 체험했던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이 기본적인 자격은 이와 같은 큰 방식으로 그녀를 쓰시려고 주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절망적 상황으로부터 교회를 구할 수 있는 자매들- “마리아의 것을 위한 필요

 

 

교회가 절망적 상황에 올 때마다 주님이 쓰실 수 있는 어떤 자매들을 위한 필요가 있습니다. 자매들의 기도그룹이 재난으로부터 교회를 구했던 과거의 경우가 있었습니다. 교회가 더 절망적인 상황일수록 자매의 기능은 더 필요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구약성경에서 이 예를 본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가 절망적 상황에 오게 될 때마다 감동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몇 달 동안 모임들이 죽어있을지도, 복음이 한계에 빠져있을지도 대개 교회생활이 좌절에 젖어있을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많은 성도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병에 걸려 있다는 것을 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특별한 상황에 닥쳐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형제들보다 더 자매들이 있을 때 교회를 구하는 데 일어나야 합니다. 자매들이 그 상황에서 교회를 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직 자매들만이 마리아와 같이 단순하고 낮아져 있습니다. 자매가 난 오랫동안 교회에 있었다. 난 해야 할 것을 알고 관심과 돌볼 필요를 안다고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그러는 그녀는 마리아가 아닙니다. 이 같은 방법으로 말하는 자매는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긍휼을 찾지 않습니다. 그런 자매는 낮은 신분에 있는 사람이 아니며, 영적인 굶주림이 없습니다. 그녀는 틀림없이 자기의 고집을 관철하는 자이므로 주님께 쓰임을 받을 수 없습니다. 교회가 절망적 상황에 닥칠 때 많은 마리아의 것을 위한 필요가 있습니다. 동시에 주님께서 그 상황을 변화시키는 데 쓰실 수 있는 단순하고 낮게 있는 많은 자매들이 필요합니다.

 

 

생명을 전달하는 것으로 기능을 발휘하기

 

 

자매가 합당한 방식으로 긍정적인 훈련을 집중시킬 때 그녀는 부활 안으로 교회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이 능력을 가지고 있는 자매에 대한 교회생활에서의 큰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가능은 얻기가 어렵고, 이 기능을 갖고 있는 자매들은 쉽게 독단적이 될 수 있습니다. 자매들의 발휘는 그들의 의견을 통해 되지 말아야하고 생명에 대해 전달을 통해야만 합니다. 교회가 어려운 상황을 통과하고 있을 때마다 자매들은 어떠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 일어나야 합니다. 이 기능은 생명을 전함으로 되어야 합니다. 자매들은 그들이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할 수 있기 전에 어떤 것을 알리려고 하는 형제들을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기도와 훈련을 할 부담을 붙잡아야 합니다. 형제들은 그 상황을 구하기 위해 겉으로 많은 것들을 할지 모르지만 자매들의 기능은 다릅니다. 자매들은 생명을 전하기 위해 숨겨진 방법으로 은밀하게 기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자매들은 주님, 교회가 어려운 시간을 통과할 때 우리는 당신과 함께 여기에 서 있습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의견이 되게 하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긍정적인 방법으로 발휘하고 생명을 전하는 것이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주님께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어려운 상황을 통과하고 있을 때 교회를 구할 것입니다.

 

 

자매들의 정상적인 기능 : 주님을 사랑하는 것, 그분께 드리는 것, 그분과 함께 서 있는 것, 그리고 그분을 추구하는 것

 

 

교회의 상황이 정상적일 때 자매들의 기능 또한 정상적인 기능을 갖습니다. 예를 들어 마리아라고 불리는 자매들이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주님을 사항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제공하여 자신의 옥합을 깬 마리아가 있습니다. “그때에 마리아가 매우 값진 나드 향유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분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12:3 흠정역). 또 다른 마리아가 있는데 클로파스(글로바)의 아내요, 예수께서 십자가 웨에 계셨을 때 예수님 곁에 서 있었던 자매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그분의 이모요 글로바의 아내인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라가 서 있더라.“(19:25 흠정역). 또 막달라 마리아가 있는데 그녀는 주님께서 매장되신 후에도 그분께서 부활하심으로 그녀가 보았을 때까지 예수님을 추구했던 자매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바깥의 돌무덤에 서서 슬피 울더라. 그녀가 슬피 울면서 몸을 구부려 돌무덤 속을 들여다보고는 흰옷을 입은 두 천사가 예수님의 몸이 놓였던 곳에 하나는 머리 쪽에 하나는 발 쪽에 앉은 것을 보니라. 그들이 그녀에게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슬피 우느냐? 하니 그녀가 그들에게 이르되, 그들이 내 주를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니이다, 하더라. 그녀가 이렇게 말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 알지 못하더라.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슬피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그녀는 그분을 동산지기로 생각하고 그분께 이르되, 선생님이여, 당신이 그분을 여기서 옮기셨거든 그분을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일러 주소서. 그리하면 내가 그분을 모셔 가리이다, 하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마리아야, 하시거늘 그녀가 돌이켜 그분께, 랍보니여, 하니 이 말은, 선생님이여, 라는 뜻이라.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대지 말라. 내가 아직 내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다만 내 형제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마리아 막달라가 가서 제자들에게 자기가 주를 보았으며 또 그분께서 자기에게 이것들을 말씀하셨다고 말하니라.”(20:11~18 흠정역). 이 모든 마리아들은 기능 안에서 정상적이었고 건강하였습니다. 마리아들의 기능의 원천은 무엇이었습니까? 마리아들의 기능은 주님에 대한 사랑에서 왔습니다. 왜냐면 그들은 너무 많이 주님을 사랑하였고 그들은 건강한 방법으로 기능을 발휘했습니다. 첫 번째 마리아는 주는 방식으로 기능을 발휘했습니다. 그녀는 주님을 사랑했고 그분의 만족을 위해서 주님께 자신을 드렸습니다. 두 번째 마리아는 주님과 함께 서있는 것으로 기능을 발휘했습니다. 그녀는 주님께서 십자가에 계셨을 때조차도 주님과 함께 서 있었습니다. 세 번째 마리아는 그녀가 부활 안으로 갈 때까지 주님을 찾음으로 기능을 발휘했습니다. 그들이 모든 기능을 발휘하는 것은 주님에 대한 그들의 사랑에서부터 있었습니다. 이 세 마리아들은 자매들의 정상적이고 건강한 기능이 단순히 사랑의 문제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자매들이 주님을 사랑할 때 그들은 정상적인 기능을 가질 것입니다.

 

 

먼저 그들은 그분께 드려질 것입니다. 그들은 그분께 자신들을 드릴 것입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지 그분께 바칠 것입니다. 바쳐야 할 것들과 재정적인 문제들과 관련하여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많이 드려야 하는지에 대해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방식과 그분의 공급을 위해 주님 안에서 신뢰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가장 귀중한 것이 무엇이든지,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주님께 그것을 드리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자매들의 정상적인 기능에 대한 두 번째 방면은 그분과 함께 서 있는 것입니다. 주님에 대한 그들의 사랑으로부터의 자매들은 그분께서 통과하시고 계시는 것이 무엇이든지 그 안에서 그분과 함께 서야 합니다.

 

 

세 번째 자매들은 주님의 임재를 따라서 추구해야 합니다. 왜냐면 주님과 함께 모임을 누리기 때문에 그들이 부활로 가기까지 온 시간동안 그분을 찾아야 합니다.

 

 

주님께 드리는 것, 주님과 함께 서 있는 것, 주님을 찾는 것은 자매들의 정상적인 기능입니다. 이 기능은 그분을 사랑하는 데서 원천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에 대한 자매들의 사랑은 정상적이고 건강한 방식으로 기능을 발휘하는 원인이 될 것입니다.

 

 

자매들의 가정을 열기

 

 

자매들의 정상적인 기능에 대한 또 다른 방면은 자매들의 가정을 여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또 다른 마리아를 보는데 그녀는 마가의 어머니인 마리아입니다. 베드로가 감옥에서 해방되었을 때 베드로는 교회가 기도하기 위해 거기에 모여 있었기 때문에 마리아의 집으로 갔습니다.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이제야 내가 주께서 자신의 천사를 보내사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인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건지신 줄 확실히 아노라, 하며 그 일을 깊이 생각한 뒤에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갔는데 거기에 많은 사람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12:11~12 흠정역). 자매들이 자신의 가정을 여는 것, 특히 교회의 모임을 위해 여는 것은 그녀가 사생활을 잃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가정에서 모임이 있든지 그것은 가족이 잃어버릴 사생활을 말합니다. 이것은 많은 자매들이 그들의 가정으로 오려고 하는 사람들을 원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자매들은 그들의 사생활을 사랑합니다. 자매들은 대개 그들의 가정환경을 침해받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소란스럽고 더러워지는 그들의 집에 대해 걱정을 합니다. 또 그들은 자신의 남편과 함께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해 걱정합니다. 하지만 자매들은 자신의 가정 안으로 사람들을 오게 하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자매들의 정상적이고 건강한 기능의 중요한 방면입니다.

 

 

자매가 사생활을 잃고 환경이 침해받으면 그럴수록 그녀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들은 우리에게 좋은 예입니다.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는 그녀의 가정으로 성도들이 오는 것을 허락했기 때문에 거기서 교회가 기도하는 곳이 되었고 베드로가 가게 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자매들이여, 여러분의 가정을 누군가에게 여는 것은 여러분이 여러분의 주위를 통제하는 감각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들이 더 이상 여러분의 방식을 따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상적이고 또 필요한 기능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가정에 사람들이 오는 것을 환영을 하면 할수록 더 좋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가정을 열 수 없다면 적어도 다른 누군가의 집으로 가도록 인도하십시오. 여러분의 둥우리, 보금자리에서 벗어나려고 하십시오. 그리고 더 합당한 어떤 것을 안으로 들여오십시오. 교회생활에서 우리는 너무나 많이 사생활을 사랑하지 말아야합니다. 이것은 배우기 쉬운 공과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의 정상적인 기능을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생명을 산출하기 위해 수고하기

 

 

자매들의 또 다른 기능은 로마서 16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우리를 위해 많은 수고한 마리아에게 인사를 하라.”(16:6 흠정역)고 말합니다. 우리는 마리아가 어떻게 수고를 했고, 어떻게 바울에게 봉사를 했는지를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히 이 자매로 바울이 필요로 했던 것이 돌보아졌습니다. 이 마리아는 주님을 섬겼던 사람을 위해 수고를 했습니다. 주님을 사랑을 하는 것, 그분께 바치는 것, 그분과 함께 서 있는 것, 주님을 계속 추구하는 것, 그들의 가정을 열고 난 후 자매들은 또한 주님을 위해 수고하는 것을 또한 배워야 합니다.

 

 

교회의 건강은 교회생활 안에서 얼마나 많이 수고하고 있는지에 관련이 있습니다. 만일 그들이 혼인을 했고 아이들이 있다면 이것은 자매들에게는 쉽지 않습니다. 한 두 아이들이 있는 자매는 수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이 되어서 너무 중압감을 느낄 것입니다. 모든 자매들은 자신들에게 휴식을 위한 몇 시간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성경에는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을 위해 수고했던 마리아라는 자매가 있습니다. 자매들은 수고하는 방법을 배워야합니다. 이 구절에서의 수고는 생명을 산출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수고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이 수고는 농장에서 일을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농장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생명을 더 산출할 수 있기 위해서 생명의 어떤 것을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 수고하는 것은 생명을 산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자매들의 기능 중 하나입니다.

 

 

어떻게 정상적인 방법으로 자매가 기능을 발휘해야 합니까? 자매의 첫 번째 기능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매는 주님께 드림, 그분과 함께 서 있음, 그분을 따른 추구로서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녀의 두 번째 기능은 침해받을 정도로 자신의 가정을 여는 것입니다. 그녀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기 위해서 자신의 가정을 열고 사생활을 잃어야 합니다. 그녀의 세 번째 기능은 수고하는 것입니다. 가끔 우리는 세 번째의 것을 갖고 있지 않고 첫 번째 두 번째 것을 갖고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바치고 그분과 함께 서 있고 그분을 따라 추구하고 성도들에게 우리의 집을 엽니다. 하지만 우리는 생명을 산출하는 순종의 수고는 부족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가정을 열지는 모르지만 그 결과는 수고보다는 더 사회적인 생활에 대해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것들에 관해서 말하는 것을 끝을 내지만 거기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거기에 생명이 없는 이유는 우리가 생명을 산출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합당한 수고는 생명에 대한 것들을 다루고 생명을 전달하고 산출하는 것입니다. 생명이 없이는 수고하기가 어렵습니다. 자매들이여, 여러분은 생명에 대한 여러분의 수고를 풍성히 가지고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생명을 전하고 다루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와 같은 수고로 가주어질 때 그 수고는 효과를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자매들의 또 다른 정상적인 기능입니다.

 

 

아굴라의 아내 브리스길라와 예

 

 

정상적인 방식으로 기능을 발휘한 신약성경에 있는 자매의 또 다른 예는 아굴라의 아내 브리스길라입니다. 이들은 주님께 아주 많이 쓰임을 받았던 부부입니다. 그들이 사도행전에서 처음으로 언급되었을 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로 불렸습니다. 하지만 로마서에서 바울은 그들을 브리스가와 아굴라로 부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나의 협력자들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 인사하라.”(16:3 흠정역). 바울이 아굴라 앞에 브리스가를 언급한 것은 아주 특이한 것입니다. 어떤 의미로는 이와 같이 말한 바울은 합당한 순서를 부인하는 것이었습니다. 브리스가가 그녀의 남편 앞에 이름이 불린 것은 그녀의 기능이 특별하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사실상 그녀의 기능은 정말 정상적인 것이었습니다.

 

 

자매가 자신의 남편 앞에 서는 방법과 남편의 부담을 지원하는 방법을 알 때 결국 자매는 나타나게 됐을 것입니다. 그녀는 교회에 풍성한 축복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굴라가 또 다른 장소로 가서 증거를 일으키기를 갈망했을 때 브리스가는 남편 아굴라와 함께 서는데 값을 지불했습니다. 아굴라는 인도하였고 브리스가는 그와 함께 섰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생명 안에서 브리스가가 자랐고 나타내어졌습니다. 결국 이들이 로마에 있었을 때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를 따르는 사역자 브리스가와 아굴라로 그들에게 문안했습니다. 이것은 부리스길라가 자매로서 효과적인 일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예는 자매가 자신을 얕보거나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취급하지 말아야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자매들은 자신의 몫을 존중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주님께서 교회생활 안에서 자라도록 엄청난 기회를 자신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자매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기능을 발휘하는 것으로 성장의 과정을 통과할 때 그녀는 교회에 커다란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