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메시지/교회생활과 자매들의 역할

자매, 아내, 그리고 어머니로서 경영되기

Hernhut 2012. 6. 24.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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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 아내, 그리고 어머니로서 경영되기

 

 

남자의 창조와 여자의 건축

 

 

우리는 남자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만들어 졌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남자가 하나님의 모양과 같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남자가 겉으로 보기에 하나님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자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남자가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실질성(實質性)을 가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생명으로 그분을 영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남자 마음속에 사람의 영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목적을 수행하시기 위해 이 방법으로 남자를 만드셨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목표는 남자만을 위한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신성하신 지혜로 하나님은 완벽하고 온전한 이 남자가 되도록 모든 남자를 위해 상대자인 여자를 건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원한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는 한 독립체로서 함께할 남자와 여자가 필요합니다. 성경에 따르면 여자는 나자의 돕는 자입니다. 이것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 동등하지 않다는 것을 시사 하는바가 큽니다. 가정 안에서 남자는 머리요, 여자는 하나님의 안배에 따라서 복종 안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월과 열등의 문제가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는 단일체요, 각자는 하나님의 창조에 따라서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여자가 처음 언급될 때는 그녀가 사람의 한 부분으로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성경이 사람의 창조에 대해 말할 때를 말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시니라.”(1:27 흠정역). 그래서 사람 안에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것은 여자였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사람으로 불리는 단일체입니다.

 

 

남자의 기능 안에서 그의 필요를 채우게 하려고 설계되어지는 여자

 

 

이 단일체가 경영되려고 사람이라고 불렸을 때 가장 눈에 띄게 경영되어지는 것은 남자입니다. 여자는 쉽게 눈에 띄지는 못하지만 남자의 기능을 발휘하는 것 안에서 남자의 필요를 채웁니다. 이것은 큰 문제입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남편은 아내가 요리, 집안 청소하기, 아이들을 치다꺼리하기, 그리고 다른 실제적인 것을 한다면 그는 좋은 아내라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관념은 아주 훨씬 낮은 것이요, 이러한 기능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좋은 아내는 남편의 기능과 경영 안에 있는 그의 필요를 채우는 사람입니다.

 

 

자매들이여, 여러분은 여러분의 사람- , , -과 지능, 성격(기질), 능력, 그리고 심지어 약함조차도 모두 가장 가능성이 있는 방법으로 남편의 필요를 채우려 하는 한 목적에 기여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없는 것을 어떤 사람이나 어떤 것이 되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의 설계는 남편과 여러분이 함께 하나님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서 여러분이 남편을 돕게 되기에 완벽합니다. 여러분은 정확하게 남편을 위한 가장 좋은 아내이며, 어떤 것입니다. 이것은 진실로 영광스런 깨달음입니다. 자매들은 이 이상을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남편으로 특별하게 건축되었습니다. 여러분은 남편의 목적을 위해 완전히 일치하는 사람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요리를 잘 할 수 없다면 여러분의 남편이 요리를 할 수 없는 아내를 필요로 한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이 균형 있는 가계부를 운영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여러분의 남편이 균현 있게 가계부를 운영할 수 없는 아내를 필요로 했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은 질적으로 나쁘고 좋은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모든 자질은 여러분의 남편의 필요에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생활 안에서의 말씀과 그영(the Spirit)을 위한 필요

 

 

우리는 또한 이 계시가 말씀 안에서 물로 씻음을 통해서만 특별하게 깨닫는 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시 성경을 읽겠습니다. “이것은 그분께서 말씀을 통해 물로 씻음으로 교회를 거룩히 구별하고 정결하게 하려 하심이요”(5:26 흠정역). 우리는 그영(the Spirit)과 말씀이 필요합니다. 혼인생활이 그영(the Spirit)과 말씀으로 넘칠 때 그 혼인생활은 하나님의 갈망하심으로 만족될 수 있습니다.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과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은 그들이 서로의 위치에 있기를 요구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장점들은 그영(the Spirit)으로부터 와야 합니다. 우리는 결혼생활의 달콤함을 드러내기 위한 말씀과 그영(the Spirit)의 누림이 필요합니다. 가정이 말씀 안에서 물로 지속적으로 씻을 때 그 가정은 교회에 축복될 것입니다.

 

 

자매들의 3중의 경영: 자매, 아내, 그리고 어머니로서

 

 

이제 우리는 자매들의 3중 경영에 왔습니다. 자매들은 자매, 아내, 그리고 어머니로서 3가지의 다른 능력을 경영합니다. 물론 이 경영은 상호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좋은 자매, 좋은 아내, 좋은 어머니가 되는 방법을 설면하고 있는 아주 적은 구절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원칙들을 벗기시고 각각의 자매들에게 그 원칙들로 일하는 것을 그만하도록 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랑하는 자매들은 합당한 자매, 아내, 그리고 어머니가 되기 위한 길을 확신하는 공식으로 덮여있기를 좋아할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결코 공식을 주지 않습니다. 성경은 원칙들을 공급받는 것과 우리 생활에서 이 원칙들을 공급받아야 할 것을 위해 우리 각자가 주님을 바라보아야 뿐입니다.

 

 

그들의 남편을 위한 아내들의 사랑

 

 

우리는 성경이 아내를 사랑하라고 남편에게 충고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남편을 사랑하라고 아내에게 명령하는 성경구절은 없습니다. 이는 여자 안에는 남편을 사랑하는 천연적인 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원칙적으로 여자가 결혼을 하면 그녀의 사랑은 자신의 배우자를 위해 자동적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좀처럼 남편을 사랑하라고 아내를 충고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자매가 단순하게 어떤 사랑과 결혼을 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녀는 누가 있든 개의치 않고 그를 사랑할 것입니다. 혼인하기 전 자매는 결혼할 형제에 대해 합당한 느낌을 가져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하나님의 창조의 부분입니다. 자매가 결혼을 하면 그녀의 사랑은 남편을 위해 자동적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한 방면에서 오늘날의 문화 때문에 남편을 사랑하라는 아내에게 충고 할 어떤 것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아내의 온 생명은 남편에게 모아졌습니다. 남편은 날마다 일을 하고 집안에 재정적인 지원을 하기 위해 집에서 나갈 것이고 아내는 남편과 가족을 위해 온 생활을 집중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아내들에게 집중되도록 하고 아내들을 향한 합당한 사랑을 보여주도록 남편들을 상기시킵니다. 하지만 오늘날 자매들이 직업과 사회생활을 더 가지고 있어서 그들 역시 남편을 사랑하는 것에 관한 상기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자매들이여, 여러분의 생활의 중심은 남편 이외에 어떤 것들이 되지 말아야합니다. 여러분의 남편은 여러분의 생활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더 약한 그릇으로서의 자매

 

 

베드로전서 3:1, 7절은 말합니다. “아내들아,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것은 누가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여도 그들 또한 말없이 아내의 행실을 통해 얻고자 함이니”, “남편들아, 이와 같이 너희도 지식에 따라 아내와 동거하고 그녀를 더 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을 자로 여기고 존중하라. 그리하여야 너희 기도가 방해를 받지 아니하리라.”(흠정역). 우리가 이 구절을 함께 읽을 때 우리는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고 남편은 아내의 기능을 합당하게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좋은 남편은 아내가 다룰 수 없는 일로 그녀를 결코 혹사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가 견딜 수 없는 일들로 그녀를 압박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신 남편은 아내가 더 약한 그릇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은 남편이 지식을 따라 아내와 함께 동거하기 위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에 따르면 자매들은 더 연약한 그릇들입니다. 비록 약하다부서지기 쉬운이라는 의미라 할지라도 그것은 또한 합당하게 자신의 능력을 사용할 수 없게 되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자매가 속상해할 때 남자들은 대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데 반해 그녀는 자주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는 것을 잃습니다. 자매의 마음은 아주 들뜨기 쉽고 가치가 없는 일을 걱정하기 쉽습니다. 자매는 어떤 유혹 즉, 쇼핑, 휴일을 누리는 것, 등을 견딜 의지가 그녀에게는 부족하기 때문에 참을 수가 없게 될 수 있습니다. 자매가 더 연약한 그릇이 되는 것은 그녀의 정상적인 인간의 능력이 항상 합당하게 일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반면 더 연약한 그릇이 되는 것은 또한 마음, 감정, 그리고 의지가 아주 강하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자매들이 너무 강할 때 그들은 사실상 약하게 됩니다. 자매의 마음은 완강하다고 할 정도로 아주 강하고 강하게 될 것입니다. 감정 또한 비논리적인 것이 될 정도로 아주 강하고 강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의지 또한 굽힐 수 없을 정도로 심히 강하고 강하게 될 수 있습니다. 자매들이여, 여러분의 이 사실상 여러분의 약함이 될지 모른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 저의 약함 안에 긍휼을 갖게 하소서.’라고 기도하기에 좋은 이유입니다. 여러분이 이 깨달음을 갖는다면 여러분은 보호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더 연약한 그릇이기 때문에 아내들은 남편에게 계속해서 복종해야 합니다.

 

 

자매들은 형제들과 다르고 자매들은 다루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매들은 빈번하게 난 나의 남편에게 어떻게 복종할 수 있을까? 난 그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몰라. 남편은 영적은 것이 없어.’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성실하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자매들은 남편이 누구인지에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남편의 그릇은 더 강하기 때문에 그의 마음(생각), 감정, 그리고 의지는 더 큰 지위를 가질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깨닫고 여러분의 다루는 것으로 남편을 받아들일 때 여러분과 가정은 틀림없이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직입니다. 이 관점은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하나님의 창조를 따른 것입니다. 만일 자매가 아직 혼인을 하지 않았다면 그녀가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장로직분에 복종하기에 좋은 이유입니다. 이런 방식 안에서 비록 자매가 혼인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녀는 더 연약한 그릇으로서 다루어질 수 있습니다.

 

 

나오미의 예

 

 

이제 우리는 룻의 시어머니인 나오미의 예에 갈 것입니다. 나오미는 성경에서 가장 큰 자매 중의 하나이며, 복종에 대한 가장 좋은 예 중의 하나입니다. 나오미는 주님을 결코 포기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녀는 남편이 타락한 사람이었고, 많은 고통과 절망으로 그녀를 인도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은 지켰습니다. 룻기에 따르면 나오미는 모압 땅으로 가기 위해 유다 땅으로 남편을 따라갔습니다. 그녀의 남편 때문에 나오미는 두 아들과 함께 좋은 땅을 떠났습니다. 그 후 남편은 죽었습니다. 남편이 죽은 후에 두 아들은 모압사람들 가운데에서 아내들을 위했고 그 중의 하나가 룻이었습니다. 이 후에 두 아들도 죽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나오미와 두 며느리가 남았습니다. 모든 남자들은 죽었고, 3명의 여인들은 그곳을 외로이 떠났습니다. 의심할 것도 없이 그들은 괴롭고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오미의 마음은 넓었습니다. 왜냐면 나오미는 주님 앞에서 아내로서 발휘하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에 또한 이 상태를 합당하게 다룰 수 있었습니다. 나오미가 유다 땅으로 돌아갈 결심한 후에 그녀는 며느리들에게 나오미가 자기의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가서 각각 자기 어머니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와 나를 친절히 대한 것 같이 주께서 너희를 친절히 대하시기를 원하며”(1:8 흠정역). 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자매가 남편과 아들을 잃은 후 이와 같은 상태가 될 수 있을까요? 이와 같은 체험을 한 후 나오미는 주님의 선대하심을 위해 그분께 두 며느리를 천거했습니다. 여기에 놀라운 원칙이 있습니다.

 

 

나오미는 자신이 더 연약한 그릇이었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그녀의 남편이 비록 타락 되었던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오미는 남편 아래에 있는 것을 배웠습니다. 나오미의 남편은 주님의 왕국을 위해 싸우지 않았습니다. 대신 좋은 땅을 향해 떠났습니다. 그는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나오미는 계속해서 그에게 복종했습니다. 나오미는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으로 주님 앞에 있는 아내로서 그녀의 입장을 취했습니다. 나오미는 심지어 남편이 없었을 때지만 남편에게 복종했던 것을 하나님의 목적에 헌신했었습니다. 그녀의 관점은 심히 분명했습니다. 나오미는 단순한 자매였지만 큰 원칙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녀는 아내로서의 입장에 있었던 것, 그녀가 그에 맞춰서 자신을 발휘했던 것으로 주님으로부터 선대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녀는 건강하지 않은 머리의 아내였지만 그녀는 이 선대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다음 그녀의 남편이 죽고 떠난 후에는 이와 같이 고적한 상태에 있던 그녀가 하나님을 향한 반항하게 될 좋은 이유를 가졌을 것입니다. 그녀가 그녀의 모든 믿음을 따른 것이 부당하게 대접받았습니까? 나오미는 주님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믿음이 있었고 변함이 없었습니다. 결국 나오미는 하나님의 경륜을 계속 수행하는 방법을 하나님께 받았습니다. 그녀는 이와 같이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녀의 며느리 룻은 좋은 땅 안으로 그녀와 함께 왔습니다. 룻은 결국 보아스와 혼인을 했고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자매들이여,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덮여있지 않았던 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부분을 붙잡아야하고 교회생활과 결혼생활 안에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남편이 영적인 사람이 아니라면 여러분은 노심초사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영적인 남편을 얻기 위해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며 심지어 지배적인자매가 되려고 여기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 원칙 또한 우리의 교회 안에 있는 장로직분과 관련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장로직분에 관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면 여러분은 여러분과 관련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남편에 대한 영성과 장로직분에 대한 건강은 여러분의 헌신이 아닌 어떤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책임을 맡으려 한다거나 여러분의 것이 아닌 인도직분을 맡으려 한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상태를 악화시킬 뿐입니다. 대신 여러분은 주님께 놀라운 헌신을 하는 놀라운 자매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께 하는 여러분의 헌신은 교회생활 안에 있는 자매와 여러분의 남편에게 아내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안정에 대한 자매의 미덕

 

 

그들이 될 수 없는 어떤 것이 되려는 것보다 오히려 자매들은 교회생활에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과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미덕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자매의 가장 큰 미덕중의 하나는 안정입니다. 교회생활에 있는 형제들은 자주 나는 완전히 하나님의 경륜을 위해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에 이어 그들은 난 인근에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움직이고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들은 안정적이지 않습니다. 자매들은 형제들이 소유하기 어려운 안정의 미덕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매들이여, 이것을 깨닫고 그에 맞게 산다면 여러분은 교회생활에서 안정적인 요소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심지어 형제가 좌절에 빠지게 될 때도 여러분은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형제들이 패배를 맛보았을 때에도 여러분은 패배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교회생활에서 안정의 요인이 될 것입니다. 나오미들처럼 경영하는 많은 자매들이 되어야 합니다. 나오미기 유대로 돌아왔을 때 그녀가 자신을 쓰다, 괴롭다, 고통스럽다.”라는 의미로 마라고 불렀습니다.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 부르라. 전능자께서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느니라.”(1:20 흠정역). 그녀의 괴로운 체험조차도 주님께 헌신하는 것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안 좋은 상태에 있는 그녀는 멈추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그녀는 안정을 유지했고 하나님의 목적을 수행했습니다. 형제들은 종종 일시적으로 지배적이지만 그 후에는 그들의 열정을 잃어버리는 체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매들은 더 괴로운 것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포기 할 때도 기도를 계속할 수 있습니다. 나오미들처럼 경영하는 많은 자매들이 있을 때 교회는 건강합니다. “나오미는 지배적인 자매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녀는 체험이나 환경 안에 쓴 어떤 것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오미는 자신에게 선대하셨다는 것을 믿고 있는 여인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자매는 교회에 축복입니다. 왜냐면 그녀는 교회생활 안에서 안정의 요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은혜를 공동으로 상속받는 자들

 

 

베드로전서에서 생명의 은혜를 공동으로 상속받는 자로서 아내를 여기고 존중하라.”고 남편들에게 말합니다. “남편들아, 이와 같이 너희도 지식에 따라 아내와 동거하고 그녀를 더 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을 자로 여기고 존중하라. 그리하여야 너희 기도가 방해를 받지 아니하리라.”(벧전 3:7 흠정역). 복종하는 것과 생명의 은혜를 공동으로 상속받는 자가 되는 문제는 함께 가는 것입니다. 한 방면으로 자매는 그녀의 남편에게 복종 안에 있는 것을 배워야만 합니다. 하지만 다른 방면에서 형제는 그녀가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을 받는 자가 되기 때문에 아내를 존중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생명의 은혜는 남편과 아내가 공동으로 받습니다. 남편이 생명의 풍부한 은혜를 누리려면 아내가 필요합니다. 반대로 아내도 생명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려면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남편과 함께 공동 상속자가 되는 자매의 좋은 예요,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는 아내와 함께 공동으로 상속받는 남편의 좋은 예입니다. 이 두 이야기는 남편과 아내 사이에 하나님의 경륜 안에 공동으로 참여하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예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부르며 그에게 순종한 것같이 너희가 잘 행하고 어떤 놀라운 일에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면 사라의 딸들이 되느니라.”(벧전 3:6 흠정역). 이 말씀에 의하면 사라는 아브라함이 실수했을 때조차도 자신의 남편에게 순종하는 법을 알았습니다. 사라는 자신의 로 여겼습니다. 주께서 처음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고 그의 땅과 일가친척을 떠나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그의 아버지와 조카를 함께 데려갔습니다. 사라가 아마도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불순종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녀는 복종함으로 어찌되든지 그와 함께 길을 떠났습니다. 나중에 아브라함이 자신의 누이로 사라를 되씌우려고 했을 때 그녀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그의 책략을 따랐습니다. “아브람이 이동하여 남쪽을 향해 갔더라.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이집트로 내려가 거기 머물려 하더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이집트에 가까이 이르러 들어가려 할 때에 자기 아내 사래에게 이르되, 이제, 보라, 당신은 보기에 아름다운 여인임을 내가 아노라. 그러므로 이집트 사람들이 당신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 여인은 그의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되 당신은 살려 두리니 원하건대 당신은 내 누이라고 말하라. 그리하면 내가 당신으로 인하여 잘되고 내 혼이 당신으로 인하여 살리라, 하니라. 아브람이 이집트로 들어갈 때에 이집트 사람들이 그 여인을 보고 그녀가 심히 아름다운 것을 보았으며 파라오의 통치자들도 그녀를 보고 파라오 앞에서 칭찬하므로 사람들이 그 여인을 파라오의 집으로 데려가매 파라오가 그녀로 인하여 아브람을 선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수나귀와 남종과 여종과 암나귀와 낙타들을 얻었더라. 주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로 인하여 파라오와 그의 집에 큰 재앙으로 재앙을 내리시매 파라오가 아브람을 불러 이르되, 네가 내게 행한 이 일이 도대체 무엇 이냐? 네가 어찌하여 그녀를 네 아내라고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녀는 내 누이라, 하였느냐? 내가 그녀를 취해 아내로 삼을 뻔하였도다. 그런즉 이제 네 아내를 보고 그녀를 데리고 네 길로 가라, 하며 파라오가 자기 사람들에게 그에 관하여 명령을 내리니 그들이 그와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12:9~20 흠정역). 그들이 생활하는 곳곳에서 사라는 자신의 이상으로 남편의 이상을 취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말씀하셨든지 그녀는 자신을 위해 받아들였습니다. 결론적으로 그녀와 아브라함은 함께 이삭을 낳았습니다. 사라와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공동으로 참여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마노아와 그의 아내의 예

 

 

삼손의 아버지와 어머니인 마노아 부부이야기는 아내가 주님께로부터 받았던 모든 것을 남편에게 주어야 했던 것을 묘사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너무나 외로운 상태에 있었을 때 여호와께서 자신의 천사를 마노아의 아내에게 보내셔서 40년 동안 팔레스타인의 손 안으로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두셨습니다. 그는 마노아의 아내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주의 천사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서 이르되, 이제, 보라, 네가 수태하지 못하므로 낳지 못하였으나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 그러므로 이제 원하건대 주의하여 포도즙과 독주를 마시지 말며 부정한 것은 아무것도 먹지 말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 그의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지니 그 아이는 모태에서부터 하나님께 바친 나사르 사람이 되리라. 그가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건져 내기 시작하리라, 하니라.”(13:3~5 흠정역). 마노아의 아내가 이 계시를 받자마자 그녀의 남편에게 말하려고 갔습니다. 그녀는 주님의 사람에게서 어떤 지시를 받아 즉시 남편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녀가 자신의 체험에 대해 마노아에게 말했을 때 그녀는 주님의 임재 안으로 자신의 남편을 데려갈 수 있었습니다. 마노아는 약간의 음식을 여호와의 천사에게 주었습니다. 그는 거절했으나 주님께 번제 제물을 드릴 것을 그에게 말했습니다. “마노아가 주의 천사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우리가 당신을 위해 염소새끼 한 마리를 준비할 때까지 당신은 우리와 함께 머무소서, 하매 주의 천사가 마노아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머물게 하려 하나 내가 네 빵을 먹지 아니하리라. 네가 번제 헌물을 드리려거든 반드시 주께 하니라. 마노아는 그가 주의 천사인 줄 알지 못하였더라.”(13:15~16 흠정역). 그런 후 마노아와 아내는 주님께 제물을 드렸습니다. 여호와의 천사는 불꽃 속으로 올라갔습니다. “불꽃이 제단에서부터 하늘로 올라갈 때에 주의 천사가 제단의 불꽃 가운데서 올라갔으므로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그것을 보고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니라.”(13:20 흠정역). 바로 그때에 마노아는 자신의 영적 미성숙함이 드러났습니다. 마노아는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13:22 흠정역)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주께서 우리를 죽이기를 기뻐하셨더라면 우리 손에서 번제 헌물과 음식 헌물을 받지 아니하셨을 것이요, 이 모든 일을 우리에게 보이지도 아니하시고 또한 지금처럼 이런 일들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이다, 하였더라.”(13:23 흠정역)고 대답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종에 대한 탁월한 발휘를 봅니다. 마노아의 아내는 마노아보다 훨씬 더 영적인 안목을 가졌지만 그녀는 영적으로 탁월하게 되는 것에 대한 어떤 느낌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와 반대로 그녀는 여호와의 천사가 처음 나타났을 때 자신의 남편에게 갔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여호와의 천사에게 저녁식사를 가져다주는 아주 어리석은 것을 행했습니다. 번제를 드린 후 하나님께서 그들을 죽이실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는 겁먹게 되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그를 책망하거나 얕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너무나 지혜로웠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을 결코 위험에 노출시키지 않았습니다.

 

 

이 여인은 자신의 남편이 자신의 영적 발휘에 대해 반대하는 자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복종에 대한 높은 관점을 줍니다. 복종은 단지 순종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내가 자신의 남편에게 복종한다는 것은 그녀가 자신의 합당한 위치를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분별과 발휘의 범위와 방향을 압니다. 그녀는 심지어 자신의 위치를 수단으로 하지 않고 자신의 남편을 돕는 방법을 압니다. 여자가 이런 입장 안에 있을 때 그녀가 주님께 받은 것이 무엇이든지 생명의 은혜를 공동으로 상속받을 자로서 자신의 남편의 유익을 위하게 될 것입니다.

 

 

합당한 어머니가 되기

 

 

합당한 어머니가 되는 것과 관련하여 성경에 있는 가르침을 찾기란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또 너희 아버지들아, 너희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육과 훈계로 양육하라.”(6:4 흠정역). 여기서 부모가 되는 것에 대한 경고는 아버지에게 주어졌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아이들을 화를 유발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를 위한 특별한 길 안내는 없습니다. 우리에게 지시 대신 성경은 합당한 어머니가 되는 방법에 대한 살아있는 예를 제공합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한 예로 모세의 어머니를 볼 것입니다. “레위의 집의 한 남자가 가서 레위의 딸을 취해 아내로 삼으니라. 그 여인이 수태하여 아들을 낳아 그가 준수한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로 만든 궤를 가져다가 진흙과 역청으로 바르고 아이를 그 안에 담아 강가의 부들 사이에 두니 그의 누이가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보려고 멀리 서 있었더라. 파라오의 딸이 강에서 목욕하러 내려오고 그녀의 시녀들은 강가를 거닐었는데 그녀가 부들 사이에서 그 궤를 보고 자기 시녀를 보내어 그것을 가져오게 하니라. 그녀가 그 궤를 열고 아이를 보니, 보라, 아기가 울더라. 그녀가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르되, 이것은 히브리 사람의 아이들 가운데 하나로다, 하니 그때에 그의 누이가 파라오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와 그녀가 이 아이에게 젖을 주게 하리이까? 하매 파라오의 딸이 그녀에게 이르되, 가라, 하거늘 그 소녀가 가서 그 아이의 어머니를 불러오니라. 파라오의 딸이 그녀에게 이르되, 이 아이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네 삯을 주리라, 하니 그 여인이 아이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니라. 그 아이가 자라매 그녀가 그를 파라오의 딸에게 데려가니 그가 그녀의 아들이 되니라. 그녀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고 이르되, 내가 그를 물 속에서 건져 내었기 때문이라, 하였더라.”(2:1~10 흠정역).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모세가 아기였을 때 그의 어머니는 갈대 바구니에 그를 넣어 모세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강에 띄워 보냈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신성한 안배였을지라도 모세는 파라오의 딸에 의해 발견되었고 파라오의 딸의 귀한 아들로 취했습니다. 하지만 모세의 친 어머니는 모세가 젖을 뗄 때까지 모세의 보모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모세가 히브리의 어머니의 품에 안기어 처음 몇 년 동안 지냈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것은 작은 일이 아닙니다. 이 몇 년이 모세의 온 생애에는 중요했었습니다. 모세 자신이 히브리인이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그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한 하나님의 갈망에 대해 어떻게 알았나요? 초기 몇 년 동안 모세의 친 어머니는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들과 만유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조그만 아이에게 스미게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강한 원칙을 우리에게 줍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하나님의 목적을 조그마한 아이에게 스미게 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하는 헌신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초기 몇 년 동안의 어머니의 수고였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형통하게 되는 것은 어머니 때문에 크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버지는 항상 아이들을 짜증나게 하는 위험이 있고 아이들에게 화를 돋웁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들을 일으키고 하나님에 대한 것들로 그들을 양육합니다. 모세는 그가 아주 어렸을 때 어머니의 사람-, , -으로부터 어떤 것들을 배웠습니다. 그는 그의 어머니가 산 것으로부터 강한 인상을 받아야 했습니다. 의심의 여지도 없이 이것은 그의 온 생애에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이 우리에게서 배우기에는 너무 어리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그리스도를 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도록되어야 합니다.

 

 

자매들이여, 아이들은 주님을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당신을 보고 주님 앞에 있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들은 여러분을 보고 여러분은 그들의 생애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서 여러분은 진리로 그들에게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모세의 어머니가 모세를 도왔던 방식으로 영적인 것들을 알도록 그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도록 여러분의 아이들을 준비시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