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장
하나님의 경륜으로 수행하는 것은 자매들의 축복된 경영
구약성경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는 경륜
“이것은 충만한 때의 경륜 안에서 친히 모든 것 즉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곧 그분 안에서 다 함께 하나로 모으려 하심이라.”(엡 1:10 흠정역)
“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 안에 세상이 시작된 이후로 감추어져 온 이 신비에 참여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든 사람들이 보게 하려 하심이라.”(엡 3:9 흠정역)
“꾸며 낸 이야기와 끝없는 족보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었느니라. 이런 것들은 믿음 안에 있는바 하나님의 뜻대로 세워 주는 일보다 오히려 논쟁을 일으키나니 그렇게 할지니라.”(딤전 1:4 흠정역)
이 부분에서 우리는 성경에 있는 4가지의 주된 항목을 살펴볼 것입니다. 이 4가지 항목들은 자매와 관련되어 있는 예화, 비유, 본보기, 그리고 가르침입니다. 성경에는 예화가 많이 있습니다. 예화는 아주 분명하지 않은 어떤 것입니다. 랜돔 하우스 사전(Random House Dictionary)는 또 다른 겉모습 아래에 있는 한 주제에 대한 비유적으로 다루는 것을 예화로 정의합니다. 예를 들어 만일 우리가 현대적인 예술을 본다면 그것은 많은 말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거기에는 빛을 대표하는 것이 캔버스 위에 어떤 선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예화와 같습니다. 비유의 예는 자화상입니다. 우리가 그림을 볼 때 우리는 예술가의 느낌들과 심리를 볼 수 있습니다. 세 번째 항목은 본보기, 모형 즉 분명한 초상화 같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꽃이나 사람을 그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금방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모본입니다. 마지막으로 성경에서 우리가 가장 흔히 보는 것은 분명한 가르침들입니다.
여자의 성경적인 관점에 관해 말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것은 성경 속에 있는 여인들이 많은 문제들의 원인이 되는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바울은 유혹으로 인류가 빠지게 하는 남자의 결점이 없었지만 오히려 먼저 유혹되었던 것은 여자였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아담이 속지 아니하고 여자가 속아 범죄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라.”(딤전 2:14 흠정역). 자매들은 처음부터 많은 문제들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브는 아담에게 문제였습니다.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문제였습니다. 이브 때문에 우리 모두 죄 된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라 때문에 우리 모두 오늘날 고통을 당합니다. 여자는 능력이 있습니다. 한 가지 잘못 때문에 여자는 주 예수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모든 인종의 고통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사라의 의견은 이 땅 위에서 영향을 미치게 하는 하나님의 경영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라의 개입 때문에 태어난 이스마엘의 후손들 때문에 아직 괴로워합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좋게 시작했습니다. 한 천사가 그녀에게 왔을 때 그녀는 주님을 높였습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내 혼이 주를 크게 높이고 내 영이 하나님 곧 내 구원자를 기뻐하였나니 이는 그분께서 자신의 여종의 낮은 처지에 관심을 두셨기 때문이라. 보라, 이제부터는 모든 세대가 나를 가리켜 복이 있다 하리로다. 능하신 분께서 큰일들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분의 이름이 거룩하며 그분의 긍휼이 그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대대로 있도다. 그분께서 자신의 팔로 힘을 보이사 자기 마음의 상상 속에서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강한 자들을 그들의 자리에서 끌어내리시며 낮은 지위에 있는 자들을 높이시고 주린 자들을 좋은 것들로 배부르게 하시며 부자들을 빈손으로 보내셨도다. 그분께서 자신의 긍휼을 기억하사 자신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으니 이것은 곧 그분께서 우리 조상들과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영원히 말씀하신 것과 같도다, 하니라. 마리아가 그녀와 함께 석 달쯤 거하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눅 1:46~56 흠정역).
하지만 12년 후 주님께서 외견상으로 잃었을 때 그녀는 하나님으로부터 들었던 명령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분께서 열두 살 되셨을 때에 그들이 이 명절의 관례대로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그 날들을 채우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님은 뒤에 남아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요셉과 그분의 어머니는 이것을 알지 못한 채 그분이 일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뒤 자기 친족과 친지들 중에서 그분을 찾되 발견하지 못하였으므로 그분을 찾으면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니라. 그들이 사흘 뒤에 그분을 성 전에서 발견한즉 그분께서 박사들 한가운데 앉으사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시며 그들에게 문제들을 묻기도 하시니 그분의 말을 듣는 자들이 다 그분께서 깨닫고 답변하시는 것들로 인하여 깜짝 놀라더라. 그들이 그분을 보고 심히 놀라며 그분의 어머니는 그분께 이르되, 아들아,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며 너를 찾았노라, 하매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반드시 내 아버지의 일에 관여해야 함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그들은 그분께서 자기들에게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그분께서 그들과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그들에게 복종하시더라. 그러나 그분의 어머니는 이 모든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니라. 예수님께서는 지혜와 키가 자라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호의를 입으시더라.”(눅 2:42~52 흠정역).
심지어 그것보다 더 예수께서 경영하시기 시작하셨을 때 그분께서 수행하신 첫 번째 그분의 어머니 때문이었습니다. “셋째 날 갈릴리 가나에 혼인 잔치가 있어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 있었고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도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았더라. 그들에게 포도즙이 떨어지매 예수님의 어머니가 그분께 이르되, 그들에게 포도즙이 없다, 하니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여자여,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하시거늘 그분의 어머니가 종들에게 이르되, 그분께서 너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거기에 유대인들의 정결하게 하는 관례에 따라 물 두세 통 담는 돌 항아리 여섯 개가 놓여 있더라.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물 항아리들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그들이 아귀까지 그것들을 채우니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떠서 잔치를 맡은 자에게 가져다주라, 하시매 그들이 그것을 가져다주었더니 잔치를 주관하는 자는 포도즙이 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그 물을 떠 온 종들은 알더라.) 잔치를 맡은 자가 신랑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모든 사람이 처음에 좋은 포도즙을 내고 사람들이 충분히 마신 뒤에 덜 좋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즙을 남겨 두었도다, 하니라. 예수님께서 기적들 중의 이 처음 기적 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사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그분을 믿으니라.”(요 2:1~11 흠정역). 주님께서 그분의 때가 아니었다고 그녀에게 말씀하셨지만 그녀는 주장하였습니다. 이것에서 여러분은 여자가 얼마나 힘 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예들은 여자의 부정적인 면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하지만 모든 성경에서 여자의 긍정적인 면이 있다는 것이 숨겨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사람의 타락 후 사람은 인도를 받았습니다. 구약성경에는 많은 사람들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피상적(皮相的)인 방법으로 성경을 읽을 뿐이라면 여러분은 결코 여자의 풍성한 경영을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다.’ 라는 세계적인 속담은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여러분의 남편을 성공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것을 언급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한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가정생활에서 문제의 원인이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자매들이 교회를 성공하게 하려 한다면 온 교회는 문제 안에 있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남자가 정말로 성공한다면 그의 아내는 남편 뒤에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생활이 정말로 지배적이게 된다면 그것은 자매들이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사람과 함께 사역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다루시는 여자를 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신약성경은 예수의 계보로 시작합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시요,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세대에 대한 책이라.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고 다윗 왕은 우리야의 아내였던 여자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요시야는 여고니야와 그의 형제들을 낳았는데 그 무렵에 그들이 바빌론으로 끌려가니라. 그들이 바빌론으로 끌려간 뒤에 여고니야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를 낳고 아소르는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킴을 낳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고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님이 태어나시니라.”(마 1:1~16흠정역). 이 계보는 14세대씩 3부분으로 언급했습니다. 이 계보에는 모두 5명의 여자가 언급되었습니다. 이것은 숨겨진 어떤 것이지만 여자들이 언급된 것은 매우 결정적인 것입니다. 남자들의 이름은 두드러져 보이지 않지만 여자가 이름 불렸을 때 의미심장합니다. 이는 온 성경에 덮여있는 영적인 원칙입니다. 주님께서 어떤 것을 과감하게 수행하실 때마다 여자가 포함되었습니다. 그들은 두드러지지 않을지도, 어떤 문제들의 원인이 될지도 모르지만 어떤 이유로 하나님께서 그들 없이 그분의 갈망하시는 것 모두를 수행하실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여자들은 감추어진 방식으로 아주 결정적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여자들을 연구하는 것은 여러분이 예화, 비유, 본보기, 그리고 가르침들을 이해해야 합니다. 남자를 연구하는 것은 쉽습니다. 여자를 연구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렵습니다. 왜냐면 성경은 아주 적은 수만 언급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영적 통찰력 갖지 못하고 여러분은 여자에 대한 경영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만일 여자에 대한 경영을 여러분이 이해하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은 예화, 비유, 본보기, 그리고 확실한 가르침들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 4가지의 주된 항목들을 결코 이해하지 못하면 여러분은 그 가르침을 가질 뿐입니다. 여러분은 아내들이 그들의 남편들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아내들아, 너희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엡 5:22 흠정역). 하지만 여러분은 그렇게 돼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여자의 권리운동 안에서 그들에게 이 구절을 언급했었더라면 그들은 몹시 당황해 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것이 여자들을 반대하는 성차별이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여러분이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요? 그들은 확실한 가르침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이 결코 그 본보기를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여러분이 가르침에 올 때 여러분은 정말 감동되기 위해서 먼저 4가지 항목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개요
I. 하나님의 경륜에 따른 하나님의 목적
A. 하나님의 유기체로서 사람을 가지심
이 표현은 극도로 명확한 것입니다. 대개 우리는 사람이 하나님의 표현, 형상, 그리고 모양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분의 유기체로서 사람을 갖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다른 말로 맨 처음부터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갈망은 유기적인 확대를 갖는 것 이었습니다. 그분은 광대하신 하나님이시지만 보기에는 그분 또한 외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겉으로 나타나는 방법이 아니라 유기적인 방식으로 증가하는 것을 통해서 확장이 필요로 하셨습니다. 이 말은 이해하고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이상을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본을 따라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이 20대에 처음 집을 사는 것은 아주 작습니다. 나이가 들어 여러분이 산 집은 좀 더 큰 집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큰 집이든 그것은 여러분의 부분이 아닙니다. 결국 여러분이 거기서 떠나기까지 그 집 안에서 살 수 있을 뿐입니다. 비록 여러분의 집이 이동식이거나 자주 이사를 다닐 수 있다고 할지라도 그 집은 유기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갈망은 유기적인 것입니다. 그분은 단지 증식을 갈망하지 않습니다. 그분의 갈망은 유기적인 것이며, 이 유기적인 것은 그분의 확장과 증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우리가 우리의 형상(形像)으로 우리의 모양에 따라 사람을 만들고 그들이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가축과 온 땅과 땅에서 기는 모든 것을 지배하게 하자, 하시고 이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시니라.”(창 1:26~27 흠정역)
1. 그분의 모양으로
2. 그분의 형상으로
3. 그분을 확대하는 것
4. 그분을 대표하는 것
처음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그분은 우리의 외모적인 모양에 관심을 집중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내면의 본성에도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형상은 하나님의 본성의 어떤 것이요, 모양은 하나님의 모습의 어떠하심이지만 이 모습은 틀림없이 육체적인 것은 아닙니다. 이 모습은 또한 신성한 속성에 대한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창조됨으로서 우리가 그 신성한 속성을 체험할 때 어떠한 모양이 나왔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 우리는 사악했었습니다. 심지어 선하게 되려는 우리의 시도도 사악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구원받음으로 우리는 셋-하나이신 하나님과 함께 유기적인 것입니다. 우리 안에 신성한 속성들이 있으며,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은 인간적인 미덕들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거리에서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 거지를 볼 때 우리가 이것을 해야 하는 이유도 이해를 하지 않고서 조금의 음식을 사서 그에게 그 음식을 줄지도 모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이것은 신성한 속성에 대한 우리의 누림 때문에 자주 생기는 것입니다. 이 속성들은 우리의 인간적인 미덕이 되도록 우리가 산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은 그분께서 우리를 창조하셨을 때 선한 사람들, 사악한 사람들로 우리를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분을 확대하고 대표하는 것으로 그분의 형상, 모양으로 신성한 유기적인 부분이 되었을 것입니다.
B. 그리스도의 합병된 몸을 갖는 것
“교회는 그분의 몸이니 곧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의 충만이니라.”(엡 1:23 흠정역). 실제 안에서 오늘날 신성한 유기체는 틀림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합병된 몸입니다.
1. 그분께 연합되는 것: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그 안에 거하면 그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나니 나 없이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요 15:5 흠정역). 예수께서 “나는 참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들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a. 같은 생명과 본성
b. 그분과 하나 되는 것: “우리는 그분의 몸과 그분의 살과 그분의 뼈들에 속한 지체들이니라. 이런 까닭에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결합하여 그들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엡 5:30~31 흠정역). 남자가 자신의 부모를 떠나서 그의 아내에게 결합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생각이 아닙니다. 우리는 아버지가 남편에게 결합되도록 아내를 데려다가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 구절은 남자가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결합되고 둘이 한 육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에서 여러분은 여자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따라 남자는 여자와 혼인을 합니다. 이것은 여자들이 얼마나 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구절에서 인용하는 나의 부담은 여자들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이 구절이 우리가 주님과 하나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배필이 되는 것: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나는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갈 2:20 흠정역).
C. 하나님의 솜씨에 대한 과정
1. 하나님께서 남자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우리가 우리의 형상(形像)으로 우리의 모양에 따라 사람을 만들고 그들이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가축과 온 땅과 땅에서 기는 모든 것을 지배하게 하자, 하시고”(창 1:26 흠정역). 하나님은 어떻게 그분의 목적을 이루셨습니까? 먼저 그분은 남자를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에서 남자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 히브리어가 4단어입니다. 창세기 1:26절에서 하나님은 자신께서 남자를 만드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1:27절에서 하나님은 “창조하다”라는 말을 사용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에서 어떤 것을 만들 수 있을 뿐입니다. 마치 테이블은 나무로 만드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창조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어떤 것을 나오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남자를 만드실 때 그분은 몸, 혼, 영으로 그를 만드셨습니다. “창조하다”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른 관점을 가지셨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창조는 원료가 쓰인 것이 없었던 완전한 생명의 어떤 것이 되었습니다. 27절에서 하나님은 모든 인종을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유기체를 증가시키셨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2:7절에서 또 다른 단어가 쓰입니다. 그 단어는 “형성되었다”입니다. 남자는 형성되었습니다. 형성된 어떤 것은 귀중한 것이 아닙니다. 틀은 물체를 형성시키기 위해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내 시계는 형성되어 있습니다. 또 그것은 건축되어 있는 부분입니다. 겉껍데기는 형성되어 있는 것이지만 안의 부분은 건축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2:27절에서 여자는 “건축”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남자를 형성케 하신 후 그분은 껍질만이 있는 것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으셨습니다. 다른 말로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게 보셨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남자가 홀로 있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합당한 협력자를 만들리라, 하시니라.”(창 2:18 흠정역). 그러므로 하나님은 남자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협력자를 건축하셨습니다. 그분은 여자를 건축하셔서 남자의 내용물을 채우도록 하셨습니다.
2. 하나님은 여자를 건축하셨다.
“주 하나님께서 남자에게서 취한 그 갈비뼈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녀를 남자에게로 데려오시니”(창 2:22 흠정역). 이제 여러분은 남자들과 여자들이 어떻게 서로 균형을 잡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남자들은 표면적인 방법 안에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들은 여자들이 없이는 아주 공허하고 비어있을 것입니다. 교회생활 안에서 겉으로 여러분은 아주 많은 지배적인 형제들을 보지만 교회생활은 자매들이 내면적으로 건축되지 않고는 결코 건강하지 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남자는 형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여자는 건축되었습니다. 남자는 겉껍질이고 여자는 내용입니다. 교회생활 안에서 여러분은 형제들을 볼 수 있지만 교회생활의 실재는 자매들입니다. 교회의 진정한 가치는 형제들이 껍질이라는 것이 정말 놀라운 기초에 둔 것뿐이고 사실상 자매들이 내용이라는 것이 놀라운 기초에 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이 왜 그런지를 물을 수 있습니다. 남자는 형성되었지만 여자는 건축되었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필요,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관점으로 건축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나의 시계가 좋은 껍데기를 가지고 있을 수 있지만 시계가 돌아가도록 만드는 것은 안에 있는 부분입니다. 만일 안에 있는 부분이 합당하게 건축되지 않았다면 비록 그 시계가 롤렉스이라고 할지라도 온 기계는 작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남자가 되는 것은 간단합니다. 왜냐면 남자는 단순하게 틀로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목표와 주의 깊은 설계로 아주 미묘하게 건축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경륜에 올 때 우리는 이것을 이해하는 것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갈망은 신성한 유기체이고 오늘날의 그 유기체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는 형제들과 자매들에 대한 이 원칙이 있습니다. 형제들은 형성이 되고 자매들은 건축됩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경영되는 원칙입니다. 교회생활은 남 앞에 내세울 만한 형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경영되기 위해 진정한 교회생활의 원인이 되는 것은 자매들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D. 사람의 타락
남자와 여자가 창조되고 나서 곧바로 여자는 그 도를 넘어섰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모든 것을 행했습니다. 그 후 남자는 빠져들었습니다. 이것은 아주 제한적으로 구약성경에서 특별하게 여자들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사실 여러분이 구약성경에 기록된 역사를 읽은 것처럼 여러분이 보는 것 대부분은 남자에 대한 경영입니다. 표면적인 여자들은 언급함이 없습니다.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움직이심을 위해 어떤 것을 수행하는 아벨, 셋, 에녹, 노아, 아브라함, 그리고 다른 꽤나 많은 사람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II. 구약에 있는 4가지 주된 예화와 예표
구약성경에서 우리는 4가지 예화와 4가지 예표를 통해 4가지 주된 문제들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아주 많은 남자들이 있는 한 눈에 띄는 4명의 여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는 가장 결정적인 것이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나타난 4가지 결정적인 문제들: 생명, 언약, 구속, 왕국이 있습니다. 생명의 노선은 이브로 시작하여서 생명나무와 생명강이 있는 새 예루살렘에서 완결될 것입니다. 이 생명을 깨닫게 된 우리는 언약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눈에 구·신약성경은 사실상 옛것과 새것의 언약이 있습니다. 사람의 하락 때문에 우리는 구원이 필요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백성과 그분의 의도에 우리를 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구원된 사람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에 가도록 할 수 있기 위해서 싸울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결정적인 것들이 있습니다. 비록 성경 안에 있었던 사람들이 많은 성격들을 가지고 있었을지라도 4가지 결정적인 문제는 4명의 여자들로 묘사된 생명, 언약, 구속, 그리고 왕국이 있습니다.
A. 구약성경 기간(4,000년) 곳곳에서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그분의 끊임없는 경영하심에 대해 말하는 것
이 4,000년은 두 기간으로 나누어집니다. 열조시대와 마지막 약 2,500년의 율법시대입니다.
1. 열조 시대 – 이브와 사라
2. 율법의 시대 – 라합과 룻
B. 이브 – 모든 생명의 어머니
“아담이 자기 아내의 이름을 이브라 하였으니 그 까닭은 이브가 모든 산 자의 어머니였기 때문이더라.”(창 3:20 흠정역). 아담이 여자에게 준 “이브”라는 이름은 “모든 생명의 어머니”라는 의미입니다. 비록 이 세상에 아주 많은 문제와 갈등의 원인이 되었을지라도 그녀는 계속해서 모든 생명의 어머니였습니다.
C. 사라 – 언약의 실재
“그것들은 풍유니라.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인데 하나는 시내 산에서 나와 종이 되게 하는 자니 곧 하갈이라.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이요, 지금 있는 예루살렘에 해당하는 곳으로 자기 아이들과 더불어 종노릇 하느니라. 그러나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로운 자니 곧 우리 모두의 어머니라.”(갈 4:24~26 흠정역). 바울이 갈라디아교회에 쓴 편지를 보는바와 같이 사라는 새 언약의 실재입니다. 사라는 은혜를 따른 언약을 대표합니다. 사라의 여종 하갈은 법을 따른 언약을 대표합니다. 사라는 심히 복잡한 여자였습니다. 그녀는 하갈과 결혼하도록 자신의 남편 아브라함을 용기를 준 사람이었지만 사라가 이삭을 낳았을 때 그녀는 하갈을 질투했었고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과 함께 사막으로 쫓아냈습니다. 이 행동은 그녀의 인간성 문제를 여러분에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약속을 따른 언약으로서 사라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나는 자매들이 장로들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말할 때를 몹시 걱정하고 있습니다. 자매들은 제안을 하기 위해서 심히 좋은 영으로 올 수는 있지만 그것은 자매들이 더 연약한 그릇들이기 때문에 조언을 받지 않고 장로들에게 말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장로들과 남편들은 자매들을 기분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을 배워야하지만 그들은 또한 자매들을 다루지 않는 것을 배워야합니다.
사라의 추천은 많은 문제들의 원인이 되었지만 하나님의 눈 안에 있는 그녀의 존재는 하나님의 경영을 위한 매우 가치 있는 것이었습니다. 형제는 자신의 행동으로 교회를 축복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지만 자매가 그녀의 실수를 통해 교회를 축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기본적인 이해를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브는 많은 문제 안으로 들어갔지만 아담은 모든 생명의 어머니로 그녀를 불렀습니다. 사라의 인간성은 때로는 부족해 보였지만 그녀는 약속을 따라 언약을 대표합니다.
자매들은 자신들을 정말 소중히 여기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심지어 자매들은 ‘주님, 감사합니다. 제가 이브가 될지 모르지만 생명의 어머닙니다. 제가 사라가 될지는 모르지만 새 언약입니다. 제 안에 있는 어떤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라고 주님께 말해야 합니다.
나는 주님께서 새 언약을 대표하도록 남자를 사용하시지 않았던 것을 주님의 통치권이라고 믿습니다. 남자들은 율법이 가득한 권위있는 모세처럼 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있는 모든 남자들 배후에 두 여자로 대표되는 이브와 사라라는 생명과 새 언약이 있습니다. 교회생활을 하기 위해 새 언약과 조화를 이루는 것은 자매들이 합당하게 경영되어 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D. 라합- 타락한 이방 죄인이 하나님의 왕국을 위한 합당한 열매를 산출하도록 하나님의 백성으로 합병됨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마 1:5 흠정역). 여리고의 라합은 부도덕한 여자였지만 하나님의 증거에 합병함으로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녀는 하나님의 왕국을 위한 열매를 산출 했습니다. 라합은 다윗과 그리스도의 조상 아들 보아스를 낳았습니다. 왜 형제가 아니고 자매가 그 같은 깊은 것에 대해 언급되어 있습니까? 이것은 자매에 대한 경영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E. 룻- 왕국에 대한 룻의 순수함과 실재 안에 있기를 추구하는 것을 통해서 죄 있는 이방인들에 대한 죄를 용서하시는 구속 주를 낳음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마 1:5 흠정역). 룻은 성경에서 가장 아름답고 매력이 있는 성격을 가진 여인이 될지 모릅니다. 그녀의 시어머니 나오미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떠나가기를 거절하고 말하기를 “어머니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시오, 어머니의 백성들은 나의 백성들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룻은 아주 순수하고 단순했지만 그녀가 때어난 죄 있는 이방에 계속해서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왕국에 대한 자신의 순수함과 실재에 남아있기를 추구함을 통해 보아스로 말미암아 구속되었습니다. 결국 다윗은 룻의 후손 중의 하나입니다.
성경에 있는 이 주된 4가지의 항목들 즉 생명, 언약, 구원, 그리고 왕국은 재매들로 모두 대표됩니다. 이것이 이 모든 요점들에 대한 실재가 교회생활 안에서 자매들로부터 솟아 나와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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