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장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성취와 관련되어 있는 자매들에 대한 경영
이 메시지는 자매들의 기능과 관련된 본보기가 어떤 생활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줄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그분께서 겪으셨던 과정에서 사랑하는 자매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주님의 과정 끝까지 많은 자매들이 그분을 후원하려고 움직였습니다. 주님께서 오시기 전에 자매들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땅에 오신 것은 순수하게 주님께 순종하는 믿음 있는 어떤 자매들이였습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수행하시기 위해 땅에서 실행하시고 계신 동안에 몇 명의 자매들이 그분을 후원하고 섬기기 위해 그분과 함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계셨을 때 4명의 자매들과 1명의 형제가 주님 곁에 있었고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처음 증거한 사람도 자매였습니다. 마침내 형제들과 자매들이 이구동성으로 교회생활의 실재를 가져왔습니다.
이 모든 점들은 교회생활 안에서 경영의 원칙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교회생활은 4복음서와 마찬가지로 같은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4복음서에는 그리스도의 생애가 있습니다. 교회생활 안에는 그리스도의 임재가 있습니다. 4복음서에는 구원에 대한 준비가 있습니다. 교회생활에는 구원의 수행과 성취가 있습니다. 4복음서에는 이방사람들에게 가도록 할 왕국이 필요합니다. 교회생활에는 땅 위에 있는 모든 이들이 듣게 될 복음이 필요합니다. 복음서에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교회생활에는 시련의 시간이 있습니다. 복음서에는 부활이 있습니다. 교회생활에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체험이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이 모든 체험들이 생애를 제외하고 형제들만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형제들은 항상 전람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실재는 자매들의 믿음 있는 발휘로부터 옵니다.
I. 안나: 그리스도의 생애에 더하여 그분의 재림에 대한 기도생활을 발휘함
“과부가 된 지 팔십사 년쯤 되니라. 그녀가 성 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밤낮으로 금식(禁食)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섬기더라.”(눅 2:37 흠정역).
안나는 어려서부터 주님께서 오시기를 밤낮 기도하려고 성전에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자매들이 주님의 재림을 위해 필사적으로 기도할 같은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모임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고 결부시키지 마십시오. 곧바로 주님의 재림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II. 마리아: 그리스도의 생애에 더하여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그분의 살아계신 임재를 위한 순수와 순종함을 발휘하기
“마리아가 이르되, 내 혼이 주를 크게 높이고 내 영이 하나님 곧 내 구원자를 기뻐하였나니”(눅 1:46~47 흠정역).
2,000년 전 주님은 육체적으로는 유대 가운데서 사셨습니다. 원칙적으로 오늘날의 교회에서 우리는 주님의 살아계신 임재가 필요합니다. 그분의 살아계신 임재는 형제들의 말하는 것과 권고하는 것으로 교회생활에 올 뿐만 아니라 자매들의 순종과 순수함으로도 옵니다. 여러분이 성경에서 높은 것들을 이해하기 원한다면 먼저 여러분은 순수해져야 합니다. 성경에서 자매들은 빈번하게 순수함의 본으로 쓰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살아계신 임재로 가득한 교회생활을 보기 원한다면 그 비밀은 많은 자매들이 주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을 발휘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그녀가 “내 혼이 주를 크게 높이나이다. 내 영은 하나님 곧 내 구세주를 크게 기뻐하나이다.”라고 말했을 때 심히 순수했었습니다. 마리아는 그녀가 주 예수의 어머니가 되신다는 것을 너무 크게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천사가 아들 주 예수를 마음속에 품고 낳을 것이라고 그녀에게 말했을 때 그녀의 반응은 ‘난 틀림없이 주님께 순종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것이 실재가 되리이다. 나의 혼과 영은 주님께 맞춰져 있습니다.’였습니다.
지배적인 교회생활의 비밀은 이 같은 순수함을 발휘하려고 하는 자매들의 모임에서 옵니다. 자매들이 많은 것에 너무 관련되었다는 것이 유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가치가 있다는 것은 모든 자매들이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내 혼이 주님을 높입니다. 그리고 내 영이 내 구세주를 높입니다. 내 일상생활에서 주님의 말씀을 순종합니다.’라고 증거할 수 있을 때입니다.
신약성경에 있는 제자들은 이러한 방법으로 주님께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베드로는 “그때에 베드로가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하매”(마 19:27 흠정역)라고 주님께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감동을 받았을 때 주님을 따르기 위해 낡은 고기잡이 배, 그물을 버리고 작은 바다를 떠났습니다. 군중들이 주님을 찾고 있었을 때 베드로의 보상이 될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주를 높였고, 하나님 곧 자신의 구세주를 크게 기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만드신 것에 따라 그들 사이가 달라집니다. 자매들이여, 하나님의 주신 여러분의 본성을 바꾸려 하지 마십시오. 아주 따뜻하고, 순수하고, 순종적인 자매가 되십시오. 여러분의 순수와 순종의 결과는 교회생활에서 주 예수의 살아계신 임재가 될 것입니다.
성도들이 죽고 메말라가고 있다고 여러분이 느낄 때 교회를 비판하지 마십시오. 교회가 죽어갈 때 모든 자매들이 해야 할 것은 주님을 사랑하고 크게 높이고 그들의 구세주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임재는 돌아올 것입니다. 자매들은 일들이 교회생활에서 어떻게 배열되든지 관심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 앞에서 아주 순수하고 순종하는 자가 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지 주님의 임재는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형제들 또한 교회에 축복이 되지만 다른 방식으로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자매들의 입장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분의 임재를 누리는 것입니다. 자매들은 교회생활 안으로 주님의 임재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III. 주님과 교회의 필요와 평안을 공급하기 위해 사랑과 부지런함을 발휘하는 것
교회는 필요가 있습니다. 그 필요 중 하나는 편안을 위한 필요입니다. 교회는 평안한 집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종교적일 때 여러분은 평안함이 없고 가혹합니다. 종교적이 된다는 것은 주관적으로 어떤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은 어떤 형제가 옳다고 믿을 수도 있지만 또 다른 형제는 옳지 못하다고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니면 여러분이 어떠한 일이 일어났거나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믿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적인 것입니다. 평안은 원칙적으로 자매들에게서 옵니다. 주님의 생애 말에 주님께서 그분의 사역을 수행할 준비가 되었을 때 그분께서 몇 가지 일들을 하실 필요가 있었습니다.
첫째로, 그분은 유대에서 이방으로 중심을 바꿔야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그분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정리하고 아주 건강하고 합당하게 예배하는 것을 만들 필요가 있었습니다. 셋째로, 그분은 구세주로 그분 자신을 만들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분께서 이런 일들을 행하시고 계실 때에 그분은 베다니 마을에 머무셨습니다.
IV. 구원을 위한 주님의 준비
A. 구원을 위한 주님의 준비는 베다니에서 시작되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명령하기를 마치시고 그들의 도시들에서 가르치시며 선포하시려고 거기를 떠나시니라. 이제 요한이 감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들을 듣고 자기 제자들 중의 두 사람을 보내어 그분께 이르되, 선생님이 오실 그분이오니이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리오리이까? 하니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가서 너희가 듣고 보는 그것들을 요한에게 다시 보이되 곧 눈먼 자들이 시력을 받으며 다리 저는 자들이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정결하게 되며 귀먹은 자들이 들으며 죽은 자들이 일으켜지며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선포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로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할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그들이 떠나매 예수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기 시작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느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느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보라,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들의 집에 있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느냐? 대언자냐? 그러하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대언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 기록된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얼굴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예비하리라, 하신 말씀이 가리키는 자가 곧 이 사람이니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가 낳은 사람들 가운데 침례자 요한보다 더 큰 자가 일어나지 아니하였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의 왕국에서 가장 작은 자가 그보다 크니라.”(마 11:1~11 흠정역).
여러분은 예수께 아낌없이 대접하는 것에 관련된 것을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예수께서는 절대로 자신 스스로 여행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열두 제자들과 다른 남자들, 여자들을 포함하여 그분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주님을 돌보는 것 또한 그분과 함께하는 자들을 돌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시련의 시간을 통해 가실 수 있으셨고 마리아와 마르다 때문에 그분께 약속되었던 것을 수행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들은 극도로 주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심지어 마리아는 옥합을 깨 값비싼 향품(연고)으로 주님의 발에 성유를 부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 필요한 것을 제공하여 사실 수 있도록 평안과 부지런함으로 모든 것을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성도들을 돌보는 부지런함과 사랑과 같은 방식으로 발휘해야 합니다. 마리아가 주님께 너무나 많은 이들이 그분과 함께 있어 그들을 모두 돌볼 수 없다고 말했더라면 그분은 그렇게 평안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매일 밤 그분은 자매들의 섬김이 그분을 인정했기 때문에 좋은 휴식을 취하실 수 있었습니다. 매일 밤 주 예수님은 그 다음 날의 시련을 위해 스스로 준비하시려고 자매들의 부지런한 섬김을 통해 표현한 달콤한 사랑을 누리러 가셨습니다.
자매들이여, 자신을 경멸하지 마십시오. 교회생활은 이런 후원이 필요합니다. 성도들에게 시중드는 것은 놀라운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와 성도들에게 평안입니다.
B. 그분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다.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그분께서 시장하시더니 잎사귀가 달린 무화과나무가 멀리 떨어진 곳에 있음을 보시고 혹시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거기로 가셨으나 거기에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는 아무것도 없더라. 이는 아직 무화과의 때가 아니기 때문이더라. 예수님께서 그 나무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그것을 듣더라.”(막 11:12~14 흠정역).
이 행동은 유대인에게서 이방인으로 왕국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C. 주님께서 성전을 깨끗케 하셨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예수님께서 성 전에 들어가사 성 전 안에서 사고 파는 자들을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자들의 탁자와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뒤집어엎기 시작하시며 아무도 성 전을 통해 기구를 나르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시며 가르치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모든 민족들에게 기도하는 집이라 불리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가 그것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도다, 하시매”(막 11:15~17 흠정역).
성전을 일소하는 것은 힘 있는 행동이셨습니다. 주님은 테이블을 엎으셨고 채찍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분은 전날 밤 자매들의 사랑어린 봉사, 세심함 아래에서 휴식을 취했기 때문에 이것을 행할 수 있으셨습니다. 그분은 그날 밤 그분이 다정함과 사랑으로 시중을 받으려고 다시 베다니로 돌아오게 될 것을 아셨습니다.
D. 그분은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장로들, 헤롯당사람들,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에게서 시험과 검증을 받으셨다.
“그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오니라. 그분께서 성 전에서 거니실 때에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그분께 나아와 그분께 이르되,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들을 행하느냐? 또 누가 이런 일들을 행할 권위를 네게 주었느냐? 하거늘”(막 11:27~28 흠정역)
“그들이 그분의 말씀으로 그분을 책잡으려고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 중에서 어떤 사람들을 그분께 보내매(막 12:13 흠정역)
“그때에 부활이 없다고 말하는 사두개인들이 그분께 와서 그분께 물어 이르되”(막 12:18 흠정역)
주님은 그분께서 죽으시려고 십자가로 갈만한 자격이 있으셨다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이 모든 사람들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9개월 동안 마리아의 자궁에 갇혀있기란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주님의 십자가에 못 박하시기 전 시험받는 이 시간이 더 어려웠다고 말할 것입니다. 주님은 왕국에 대해 옮김을 돌보고, 예배의 방식을 일소하시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 시험을 받으실 필요가 있으셨습니다. 이 당시에 그분을 누가 돌보고 있었습니까? 제자들은 골칫거리를 그분께 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매일 저녁 예수님은 도시 밖으로 가셨고, 베다니에 있는 두 자매의 집에 머무셨습니다. 그분은 거기서 이 자매들의 부지런함을 통해 격려를 받으셨습니다.
E. 시험을 받는 이 시간은 두 개의 동전을 헌금하는 가난한 과부의 이야기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어떤 가난한 과부는 와서 이 렙돈 곧 일 고드란트를 넣으니라.”(막 12:42 흠정역)
과부의 헌금은 자매만이 그리스도께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드리는 이 순수함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자매가 주님께 자신을 드릴 때 그녀는 중요한 자신의 사람-몸, 혼, 영-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형제가 자신을 주님께 드릴 때 그는 자신의 경력, 미래, 직업, 교육, 그리고 성공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남자는 여자보다 더 복잡합니다. 주님의 시험의 시간이 끝날 무렵 합당한 헌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헌신은 아무것도 없었던 가난한 과부에게서 왔습니다. 그녀는 주님께 자신을 드리는 것에 너무 단순했습니다.
V. 가나안 여인: 우리 자신의 겸손함과 하나님의 왕국 안에 있기를 절실하게 갈망하는 것
“그녀가 이르되, 주여, 참으로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자기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빵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마 15:27 흠정역)
이 가나안 여인은 귀신들린 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딸이 고침을 받는 것을 절실히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조용하게 오지 않고 “다윗의 아들이여, 내게 긍휼을 베푸소서.”하고 부르짖으며 주님께 왔습니다. 제자들은 그녀를 멀리 떨어지게 하려고 주님께서 기적을 행하시기를 원했습니다. 그녀의 집념은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만을 위해 보내어지셨다는 예수의 제자들에게 말하시는 것과 또 아이들의 빵을 개에게 던지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그녀에게 말씀하시는 주님께 간청을 했습니다. 그녀의 반응은 적은 개도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을 수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유대인들에게 거절되셔서 이방인의 땅을 통과해 여행을 하셨습니다. 이 가나안 여인은 주님과 함께 있을 기회를 선뜻 붙잡았습니다. 이점에서 주님의 경륜은 이방인들에게 갔습니다. 이 커다란 돌이키심은 자매의 겸손한 부르짖음 때문에 왔습니다. 자매들은 하나님의 왕국과 주님의 긍휼을 위해 필사적인 기도하고 부르짖는 것으로 될 수도 있습니다!
VI. 교회생활 안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와 함께 서 있는 것으로 자신의 생명을 부인하기를 발휘하기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그분의 이모요 글로바의 아내인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라가 서 있더라.”(요 19:25 흠정역)
주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 계셨을 때 형제들은 달아났지만 자매들은 거기에 머물러 있습니다. 특히나 주님을 뜨겁게 사랑했던 사람들이 십자가 위에 계신 주님을 보기란 아주 어려움을 가져야 했었습니다. 주님께서 교회생활에서 이와 같은 자매들을 일으키실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 저는 탐욕스럽지 않습니다. 저는 장로나 사도의 아내가 될 것에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당신의 죽으심 안에서도 당신과 함께 서서 전력을 다해 제 자신을 부인하는 어떤 사람이 되기를 사모합니다.’라고 주님께 말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귀한지요! 이런 방식으로 교회생활 안에서 많은 자매들이 발휘한다면 교회가 정말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VII. 교회생활 안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는 것과 추구하는 것을 순수함과 사랑으로 발휘하기
“주의 첫날 일찍 아직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라가 돌무덤에 와서 돌이 돌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그러나 마리아는 바깥의 돌무덤에 서서 슬피 울더라. 그녀가 슬피 울면서 몸을 구부려 돌무덤 속을 들여다보고는.....그녀가 이렇게 말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 알지 못하더라.”(요 20:1, 11, 14 흠정역)
VIII.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형제들과 함께 하나가 되어 교회생활에서 변함없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사역하기
“그들이 들어가서 다락방으로 올라가니라.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와 빌립과 도마와 바돌로매와 마태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 시몬과 야고보의 형제 유다가 다 거기 머물더라. 이들이 다 여자들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분의 형제들과 함께 한마음이 되어 기도와 간구를 계속하더라.”(행 1: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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