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끼

#7 확실한 근거

Hernhut 2024. 8. 7. 21:11

“그러므로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기초로 두나니,

곧 단련한 돌이요,

보배로운 모퉁잇돌이며,

견고한 기초로다.

믿는 자는 다급하지 아니하리로다.”

—이사야 28:16

 

믿는 사람은 성급하게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성급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그의 행동이 제대로 된 근거가 없기 때문에 불안정한 사람이다. 이 사람은 박해와 시련의 폭풍에 쉽게 흔들리고 흔들린다. 예를 들어, 시몬 베드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살펴보겠다.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경에 들어오셨을 때 자기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 곧 인자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더라.”(마태복음 16:13).

여러 제자가 예수님이 누구인지에 대한 군중의 의견을 열광적으로 공유했다. 예수님은 그들이 말을 마칠 때까지 기다리신 후, 그들을 바라보시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으셨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태복음 16:15).

제자들 대부분이 이 말을 숙고하면서 혼란스럽고 두려운 표정을 지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입을 반쯤 벌리고 말도 없었을 것이다. 갑자기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내세우며 말하고 싶어 하던 사람들이 잠잠해졌다. 아마도 그들은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진지하게 한 적이 없었을 것이다. 어떤 경우이든, 그들은 이제 대답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수님은 자신이 잘하는 일을 하셨다. 그분은 질문으로 그들의 마음을 찾으셨다. 그분은 그들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진정으로 깨닫게 하셨다. 그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예수님이 누구인지 확립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추측에 의지하여 살고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와 마주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로 이름을 바꾸신 시몬은 제자 중에서 유일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당신은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갑자기 말했다(마태복음 16:16).

예수님은 그에게 “바요나 시몬아, 너는 복이 있나니 이는 혈육이 이것을 네게 알게 한 것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알게 하셨음이니라”(마태복음 16:17)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에게 이 계시의 근원을 설명하고 계셨다. 시몬 베드로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거나 가르침을 통해 이 지식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계시하셨다.

시몬 베드로는 하나님의 것에 매우 목말랐다. 그는 가장 많은 질문을 했다. 그는 다른 열한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물 위를 걸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의견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입에서 직접 듣고 싶어 했다.

예수님에 대한 이 계시된 지식은 그의 감각을 통해 온 것이 아니라 그의 배고픔에 대한 반응으로 그의 마음에 밝혀진 선물이었다. 많은 사람이 시몬 베드로가 보고 목격한 것을 보고 목격했지만, 그들의 마음은 베드로만큼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요한일서 2:27은 “그러나 너희가 그에게서 받은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 기름 부음이 모든 일에 대하여 너희에게 가르치고 참되며 거짓이 아니니 너희를 가르친 것과 같이...”라고 말한다.

이 기름 부음은 시몬 베드로에게 가르치고 있었다. 그는 다른 모든 사람이 말해야 할 말을 듣고 나서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것을 마음속으로 들여다보았다.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된 지식을 받으면 아무도 당신을 흔들 수 없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무언가를 계시하실 때, 온 세상이 뭐라고 말하든 상관없다. 그들은 당신의 마음을 바꿀 수 없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와 나머지 제자들에게 “내가 이 반석[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지식의 반석] 위에 내 것을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이기지 못하리라”(마태복음 16:18)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에 확실한 기초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이 경우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빛나는 말씀

 

나는 설교할 때 종종 회중과 개인에게 내 목소리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고 말했다. 너무나 자주 우리는 메모하는 데 너무 바빠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기록한다. 이렇게 하면 성경과 그 해석에 대한 영적 이해, 즉 머리 속의 지식이 생긴다.

우리가 머리 속의 지식만 가지고 있을 때, 두 가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1) 우리는 쉽게 과장이나 감정에 빠지거나 (2) 우리는 지성에 얽매인다. 하지만 이것은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우는 확실한 기초가 아니다. 그분은 교회가 암기한 구절이 아니라 계시된 말씀 위에 세워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기름부음받은 목사의 말씀을 듣거나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우리의 영 속에서 폭발하는 단어나 구절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하시는 말씀이다. 그것은 빛과 영적 이해를 전달한다. 시편 기자가 말했듯이, “당신의 말씀의 입구는 빛을 주고 어리석은 자에게 이해력을 준다”(시편 119:130)라고 말한다. 우리의 마음에 그분의 말씀이 들어오는 것이다. 생각이 아닌 그분의 말씀이 빛나고 분명하게 해준다.

목사가 한 가지 주제에 대해 말하는 경우가 많지만, 하나님께서는 내 마음속에서 전혀 다른 것을 빛나게 하신다. 반면에 하나님께서는 그 목사의 정확한 말씀에 기름을 부으시고, 그 말씀이 내 안에서 폭발하실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그것은 나에게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것이 우리를 단순한(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성숙한(이해로 가득 찬) 상태로 바꾸는 것이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이 밝혀진 말씀은 예수님께서 그분의 교회가 기초를 놓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기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베일을 벗긴 말씀을 바위에 비유하셨다. 바위는 안정과 힘을 말한다. 우리는 바위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의 비유를 떠올린다. 박해, 환난, 고난과 같은 역경이 두 집을 덮쳤을 때,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무너지고 바위 위에 지은 집은 서 있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들어야 할 어떤 것들은 성경에서 찾을 수 없다. 예를 들어, 누구와 결혼해야 할까? 어디에서 일해야 할까? 우리는 어떤 교회에 가입해야 할까? 그리고 그 목록은 계속된다. 우리는 이러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의 결정은 불안정한 토대 위에 세워진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으로 계시하시는 것은 우리에게서 빼앗길 수 없다.

이것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를 눈멀게 하는 시련과 고난에 쉽게 화를 낼 것이다.

다시 한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말씀은 들으며 흥분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우리 마음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그것은 마음과 감정에 기쁨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아들이지만, 뿌리가 없어서 얼마 동안만 견디다가 나중에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즉시 화를 낸다(마가복음 4:16, 17)

우리는 뿌리와 기초라는 단어를 쉽게 바꿔 쓸 수 있다. 왜냐하면 둘 다 식물이나 구조물의 안정제와 힘의 근원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에 안정되거나 기초를 두지 않은 사람은 공격의 폭풍에 휘말릴 수 있는 주요 후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예수님이 마주했던 제자들과 똑같은가?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말하거나 설교하는 것을 듣고 살아간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진술은 성령의 조언이나 증거를 구하지 않고 진실로 여겨진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대로만 살고 선포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교회를 세우시는 것이다.

나는 한때 미혼 비서가 교회에서 일하는 청년과 행복하게 사귀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날이 갈수록 가까워졌다. 모든 사람이 이 관계가 결혼으로 끝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이미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고 있었다.

어느 일요일 밤 목사가 그들을 불러서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둘은 결혼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음날 아침 비서가 구름을 타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녀는 너무 흥분했다. 그녀는 그와 결혼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상담을 위해 그들과 만날 약속을 잡았다.

하지만 나는 불안했다. 그들이 내 사무실에 들어왔을 때, 내 마음은 혼란스러웠다. 나는 비서를 바라보며 이 젊은이가 하나님이 그녀를 위해 선택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지 물었다. 그녀는 열정적이고 확실하게 “예”로 대답했다.

그런 다음 나는 그를 바라보며 “당신은 이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잠시 입을 반쯤 벌린 채 나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숙이고 마치 “아니,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듯이 흔들었다. 나는 두 사람을 모두 바라보고 나서 그 청년에게 말했다. “음, 이런 결혼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누가 당신에 대해 예언했든, 무슨 말을 했든 상관없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두 사람은 멋진 커플이야’라고 말했든 상관없어. 만약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에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지 않으셨다면, 당신은 이 결혼 생활을 계속할 자격이 없어. 만약 하나님께서 이것을 당신에게 완전한 뜻으로 계시하지 않았는데 결혼한다면 폭풍이 올 때, 분명 그 폭풍은 올 것인데 그때 당신은 의문을 가질 것이다. ‘내가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면? 내가 이런 문제들을 겪었을까? 나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확인해야 했어. 나는 갇힌 것 같아.’”라고 말했고, 이어서 “그러면 당신의 마음이 지치고, 당신의 결혼 생활에 불어오는 역경에 맞서 싸울 수 없을 거야. 당신은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이 되어 모든 길에서 불안정해질 거야.”라고 말했다. 나는 그들을 보냈고 다시 만날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안도했다. 그녀는 매우 화가 났다. 그 다음 주 동안 우리 사무실은 매우 불편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진실을 말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그녀에게 시험의 시간이었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이 남자가 그녀의 남편이라고 정말로 말씀하셨다면, 그녀는 주님께서 그에게 그것을 계시해 주시고 나와 하나님께 불쾌감을 주지 않으실 것이라고 믿어야 했다. 나는 그녀에게 물러나서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을 주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렇게 했다.

3주가 지나고 그들은 또 다른 만남을 요청했다. 나는 즉시 기쁨을 느꼈니다. 이번에 그들이 사무실에 들어왔을 때, 그는 눈에 반짝임을 띠고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여자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결혼하도록 주신 여자라는 것을 의심할 여지 없이 압니다!” 그들은 7개월 후에 결혼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관계나 교회에 두셨다는 것을 알게 되면, 적은 당신을 내쫓는 데 훨씬 더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당신은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불가능해 보일 때에도 갈등을 헤쳐나갈 것이다.

 

다른 선택지가 없음

 

아내와 나는 결혼한 지 처음 5년 동안 매우 힘들었다. 우리는 서로를 너무 심하게 다치게 했기 때문에 한때 사랑했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우리를 함께 지켜준 것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우리 둘 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결혼을 정해 놓으셨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우리는 이혼을 선택지로 삼지 않았다.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유하고 변화시켜 주실 것이라고 믿는 것이었다. 우리 둘 다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이 과정에 헌신했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 결혼에 대해 주신 약속을 떠올렸다.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결합을 위해 계획하고 정하신 것을 끊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 중 하나는 아내와 함께 사역한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주셨을 때, 나는 그것이 쉽게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분의 손이 사역을 위해 우리 둘 위에 있다.

우리의 결혼 생활의 폭풍 속에서 나는 더 이상 그 약속을 분명히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의 결혼 생활에 들어온 갈등과 교만 때문에 자연스러운 희망은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내 마음에는 초자연적인 생명의 씨앗이 있었다. 그 약속은 내가 ​​필요로 할 때 닻이나 기초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관계를 치유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하게 만들어 주셨다. 우리는 서로를 용서하고 갈등에서 배우면서 갈등에서 성장했다. 우리는 이제 함께 사역한다. 나는 아내를 연인이자 가장 친한 친구일 뿐만 아니라 가장 신뢰하는 성도로 생각한다. 나는 다른 어떤 사람보다 그녀에게 더 많이 털어놓는다.

처음 5년 동안의 힘든 시기를 겪고 나서,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 둘의 삶에 결함이 있음을 보셨고, 우리의 관계가 그 결함을 빛으로 드러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우리가 남편과 아내로 결합된 것의 지혜에 경외감을 느꼈다. 아내를 만나기 전에 나는 언젠가 결혼할 여성을 위해 부지런히 기도했다. 그 선택은 내 인생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결정이었다. 복음에 순종하는 것 다음으로.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내제 배우자를 선택하실 때까지 기다렸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들이 결혼 생활에서 겪는 문제를 겪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오, 내가 얼마나 틀렸는지!

하나님께서는 내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는 아내를 선택하셨다.

하지만 그녀는 또한 내 안에 숨겨진 이기적인 미성숙함을 드러냈다. 그리고 많은 것이 있었다! 이혼을 선택하거나 그녀를 비난함으로써 갈등에서 도망치는 것은 나의 미성숙함을 공격이라는 또 다른 위조된 보호막 아래에 묻어버릴 뿐일 것이다.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이 나를 떠나지 않게 했다.

이 시점에서 나는 주요 요점에서 벗어나야 한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 중 일부는 내가 결혼했을 때 구원받지 못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제 결혼한 사람들에게 명령하노니 나로서가 아니라 주께서 명하시느니라. 아내는 남편과 헤어지지 말라. 비록 헤어지더라도 그냥 지내거나 남편과 화해하라. 남편은 아내를 이혼시키지 말라... 형제들아, 각자 부르심을 받은 그 상태로 하나님께 거하라”(고린도전서 7:10-11, 24).

결혼 언약에 대한 이 말씀을 마음에 굳건히 하여 범죄의 함정에 흔들리지 않도록 하라. 그런 다음 결혼을 위한 주님의 계시된 말씀을 구하라.

어떤 사람들은 성도로서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결혼하지 않았을 수 있다. 결혼을 위한 하나님의 축복에 들어가려면 결혼하기 전에 하나님의 조언을 구하지 않은 것을 회개해야 하며, 그러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실 것이다. 두 가지 잘못이 옳음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마음에 굳건히 하라. 범죄 때문에 언약을 어기는 것은 답이 아니다. 그런 다음 결혼을 위한 주님의 말씀을 구하라.

 

견고한 반석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삶과 사역을 세울 견고한 반석이다. 많은 사람이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교회나 사역 팀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그들이 하나님의 지시가 아니라 시련에 흔들리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그들은 상황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심하게 대우받았는지 극찬한다.

그들은 자신의 결정이 정당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그들의 추론은 그들이 범죄와 자신의 성격적 결함을 보지 못하게 하는 또 다른 기만의 한 겹일 뿐이다.

그들은 지금 소속된 사역이나 교회와의 현재 관계를 일시적 또는 지금은 여기가 하나님이 나를 두신 곳이라고 설명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 “저는 이 교회에 빌려졌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들은 상황이 어려워질 때 탈출구를 확보하기 위해 이런 말을 한다. 그들은 가는 새로운 곳에서 설 수 있는 기초가 없다. 폭풍이 그들을 다음 항구로 쉽게 날려버릴 수 있다.

 

우리는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누구라고 하는지 묻는 예로 돌아가면, 하나님의 계시된 뜻을 알 때 오는 안정감을 볼 수 있다. 시몬 베드로를 보라.

시몬이 아버지께서 그의 마음에 계시하신 것을 말한 후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또한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문들이 이기지 못하리라”(마태복음 16:18)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의 이름을 베드로로 바꾸셨다. 이것은 시몬이라는 이름이 “듣다”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중요다. 베드로라는 이름(헬라어는 페트로스petros)은 “돌”을 의미한다. 그는 마음속으로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돌이 되었다. 바위의 견고한 기초 위에 돌로 지은 집은 폭풍을 견뎌낼 것이다.

이 구절에서 바위라는 단어는 큰 바위를 의미하는 헬라어 페트라petra에서 유래했다.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에게 그가 이제 집이 세워질 물질로 만들어졌다고 말씀하셨다.

베드로는 나중에 베드로전서 2:5에서 “너희도 산 돌로서 영적인 집으로 세워지고 있느니라”라고 썼다. 돌은 큰 바위의 작은 조각이다. 힘, 안정, 권능은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의 바위에 있으며, 그것을 받는 사람의 삶에는 열매가 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살아 계신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힘으로 강해진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3:11에 기록한 대로, “다른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도 놓을 수 없느니라”라고 말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살아 계신 말씀이신 그분을 찾을 때, 그분은 나타나실 것이고, 우리는 확립될 것이다.

요한복음 5:16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이 땅에서 행하신 마지막 날들에, 그분의 사역 팀에게 삶이 더 어려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종교 지도자들과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박해하며 죽이려고 했다. 상황이 나아지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그분을 강제로 잡아 왕으로 삼고자 했을 때, 그분은 거절하고 떠나셨다(요한복음 6:15).

“그분은 왜 그런 일을 했을까요?” 그분의 제자들은 의아해했다. “이것은 그분의 기회였고, 우리의 기회였다.” 그들은 곤경에 처했다. 폭풍이 거세게 불었다.

“우리는 가족과 직장을 떠나 이 사람을 따랐다. 우리에게는 많은 것이 걸려 있다. 우리는 그분이 오실 분이라고 믿는다. 결국 침례 요한이 그것을 선포했고, 우리는 시몬 베드로가 카이사레아 빌립보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들은 두 증인이다. 하지만 왜 그분은 기존 지도자들을 계속 화나게 하시는 걸까? 왜 그분은 자신의 무덤을 파시는 걸까? 왜 그분은 자신의 제자들인 우리에게 ‘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는가?’와 같은 어려운 말씀을 하시는 걸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기로 한 이 사람들에게서 죄가 쌓이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궁극적인 일이 일어났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완전히 이단적인 것처럼 들리는 어떤 것을 전파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한복음 6:53).

“지금 무슨 말씀을 전파하시는 거지” 그들은 의아해했다. “이건 나에게는 너무 지나친 말이야!” 그뿐만 아니라, 그분은 가버나움 회당의 지도자들 앞에서도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이 제자들에게는 이것이 낙타의 등을 부러뜨린 짚이었다!

그러므로 그분의 제자 중 많은 사람이 이 말씀을 듣고 “이것은 어려운 말씀이로다. 누가 깨달을 수 있겠느냐?”라고 말했다(요한복음 6:60)

예수님의 반응을 주목하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이에 대해 불평하는 것을 스스로 알고 그들에게 “이것이 너희에게 거슬리느냐?”라고 말씀하셨다(요한복음 6:61).

이들은 그분의 제자들이다! 그분은 진실을 철회하지 않고 대신 이 사람들을 마주한다. 그분은 어떤 사람들이 잘못된 기초 위에서 살고 있음을 알고 계신다. 그분은 그 기초를 폭로하고 그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볼 기회를 주신다. 하지만 그들은 진리를 갈구했던 시몬 베드로나 다른 제자들과는 달랐다. 그들의 반응을 살펴보라. 그때부터 그분의 제자 중 많은 사람이 돌아가서 더 이상 그분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요한복음 6:66).

그들이 소수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하라. 그들은 많은 사람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의심할 여지 없이 카이사레아 빌립보에서 “어떤 사람들은 침례 요한,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 어떤 사람들은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 하나라고 한다”라고 재빨리 말했던 사람들과 같았다(마태복음 16:14). 그들은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늘날 많은 사람이 하는 일을 하게 된 지점까지 범죄를 키웠다. 그들은 속고 학대를 받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에 눈이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진실을 보지 못했다.

이제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질문하셨을 때 시몬 베드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살펴보라. 그러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가려느냐?”라고 물으셨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대답했다. “주님,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 주께는 영생의 말씀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당신이 그리스도이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알게 되었습니다”(요한복음 6:67-69).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들에게 “제발 떠나지 마라. 나는 방금 내 직원 대부분을 잃었다. 당신 없이 어떻게 지내겠느냐!”라고 간청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그들을 꾸짖으셨다.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기분을 상하게 할 기회와 씨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대답하는지 주목하라. “주님,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

그가 들은 말은 그를 혼란스럽게 했을 것이지만, 그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지식이 있었다. 카이사레아 빌립보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이 실제로 누구인지에 대한 계시를 받았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다(마태복음 16:16).

이제 이 시련의 열기 속에서 그는 그의 마음에 뿌리를 둔 것을 말했다. “우리는 당신이 그리스도이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카이사레아 빌립보에서 터뜨린 정확한 말이다. 그는 하나님의 살아 계신 말씀이라는 확립된 반석 위에 세워진 돌이었다. 그는 기분 나쁘게 떠나지 않았다.

 

압박 속에서의 반응

 

나는 종종 시련과 시험이 사람을 찾아낸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그것들은 당신이 영적으로 어디에 있는지를 결정한다. 그것들은 당신의 마음의 진정한 상태를 보여 준다. 당신이 압박 속에서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진짜 당신이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결정된다.

당신은 모래 위에 지어진 5층 높이의 아름다운 집을 가질 수 있고, 가장 정교한 재료와 장인 정신으로 장식될 수 있다. 태양이 비치는 한, 그것은 힘과 아름다움의 보루처럼 보인다.

그 집 옆에는 단층짜리 평범한 집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은 옆에 있는 아름다운 건물에 비하면 거의 눈에 띄지 않고 매력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보이지 않는 바위 위에 지어졌다.

폭풍이 닥치지 않는 한, 5층짜리 집은 훨씬 더 멋지게 보인다. 하지만 심한 폭풍을 만나면 5층짜리 집은 무너지고 파괴된다. 몇 번의 사소한 폭풍은 견뎌낼 수 있지만, 허리케인은 견뎌낼 수 없다. 평범한 1층짜리 구조물은 살아남는다.

집이 클수록 무너지는 것이 더 어렵고 더 주목할 만하다.

교회 안에는 카이사레아 빌립보에서 재빨리 말을 했지만, 나중에야 폭로된 제자들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힘, 안정, 아름다움의 상징인 5층짜리 그리스도인처럼 보일 수 있다. 그들은 몇 번의 사소하고 중간 크기의 폭풍을 견뎌낼 수 있다. 하지만 강력한 폭풍이 몰아치면 그들은 이전한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 위에 당신의 삶을 세우라. 계속 주님을 찾고 당신의 마음을 경청하라. 다른 사람들이 한다고 해서 무언가를 하거나 말하지 마라. 그분을 찾고 당신의 마음에 비추어진 것에 서라!

 

원수가 흔들리면 파괴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른 목적을 가지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