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시험

19. 시작이 끝날 때

Hernhut 2024. 7. 23. 12:07

모든 성도의 삶에는 다른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세 날이 있다. 즉, 태어난 날, 새로 태어나는 날, 심판의 날이다. 이 세 가지 중에서 사람의 심판 날이 가장 중요하다. 그날은 다른 두 날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날이다.

 

당신의 탄생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그것이 언젠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삶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당신의 새로운 탄생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그것이 새로운 삶과 생활 방식의 시작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계속된다면(골로새서 1:23) 당신의 심판에 따라 하늘의 보상을 상속받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의 심판 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 보라.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주님으로 거부한 사람들은 그날 돌이킬 수 없이 지옥으로 추방될 것이다. 태어나는 날부터 죽는 날까지 이전의 어떤 날과도 달리, 심판의 날에는 죄인이 회개할 수 있는 모든 기회가 끝난다.

이 삶은 우리 모두에게 시험이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원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일생을 주셨다. 우리는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고의적으로 불신앙을 계속할 것인가?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주님으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계속해서 자아와 사탄을 섬길 것인가? 우리의 결정에 따라 우리가 지옥에서 멸망할지 아니면 하나님의 왕국에서 영원히 살지 결정될 것이다.

 

성도는 불신자와는 달리 하나님의 첫 번째 시험을 통과했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더 이상 시험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믿음을 계속 유지하고 더 큰 축복과 책임을 받기에 합당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시험을 받게 될 것이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덜 헌신된 사람보다 헌신된 성도에게 더 많은 것을 맡기실 것이다. 이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보다 더 분명해질 수 없다. 그곳에서 모든 성도는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해 보상을 받고 하나님의 왕국에서 자신의 지위를 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참으로 은혜로 구원을 받았지만 우리의 행위에 따라 심판과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내용이다. 다음 세 가지 성구를 고려해 보라.

 

그런데 너는 왜 네 형제를 판단하느냐? 아니면 네가 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이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 하리라(로마서 14:10-12).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린도후서 5:10).

 

그러므로 기한이 되기 전에 판단하지 말고 오직 주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주님께서는 어둠 속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시며 사람의 마음의 뜻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그리하면 각 사람의 칭찬이 하나님께로부터 그에게 이르리라(고린도전서 4:5).

 

불행하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죽으면 하늘의 왕국에 가서 자신의 저택으로 이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다음 그들이 자리를 잡으면 하나님이 살고 있는 곳으로 산책을 가며 잠깐 이야기를 나눌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먼저 그분의 심판대 앞에 서서 그들 자신에 대해 답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것은 구원이나 저주를 결정하는 심판이 아니라 보상을 결정하는 심판일 것이다. 우리 각자는 신앙인으로서 행한 일에 따라 칭찬과 질책, 보상과 상실, 승영과 굴욕을 받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가장 작은 자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며 어떤 사람은 크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마태복음 5:19). 많이 맡길 수 있는 사람은 많이 맡을 것이고, 적게 맡길 수 있는 사람은 적게 맡을 것이다(마태복음 25:21, 23).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

 

하나님은 태초부터 영원한 목적을 가지고 계셨음을 알기 바란다. 바울은 이렇게 썼다. “이는 영원 전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된 것이라”(에베소서 3:11). 그분은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그분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 일해 오셨다. 그 계획에는 우리가 그분의 가족으로 입양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해지는 것이 포함되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사랑 안에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느니라(에베소서 1:4, 5a).

 

불행하게도 어떤 사람들은 이와 같이 성경을 왜곡하여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구원을 받고 어떤 사람은 저주를 받도록 예정하셨다고 말하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권리를 부여받은 자유 도덕 행위자임을 분명히 밝히는 수백 개의 다른 성경 구절을 무시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러므로 바울이 우리를 택하시고 예정하셨다고 말할 때, 그는 오직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기로 선택한 우리를 가리킬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선택하는 모든 사람을 거룩하게 하시기로 선택하셨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입양하기로 예정하셨다.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은 영원한 가족, 즉 그분을 사랑하고 섬기기로 선택한 자유로운 도덕적 행위자,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녀를 갖는 것이었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모든 자유 도덕 행위자는 누가 하나님의 왕국에서 영원히 살 자격이 있는지, 그리고 자격을 갖춘 사람들 중에서 미래의 왕국에서 더 크거나 작은 책임을 맡을 사람이 누구인지 결정하기 위해 시험을 받아야 한다.

 

보상에 관한 질문

 

이와 관련하여, 예수께서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말씀하신 친숙한 비유를 생각해 보라.

 

그러므로 이르시되 어떤 귀족이 왕위를 받으려고 먼 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니라. 자기 종 열을 불러 열 므나를 주고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였더니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절을 뒤에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매 이 사람이 우리를 다스릴 것이다. 그가 왕위를 받고 돌아와서 자기가 돈을 준 이 종들을 부르라고 명령하여 그들이 무슨 장사를 했는지 알고자 하였더라. 첫째 사람이 나타나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를 십 므나 더 벌었나이다 하니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라 하였느니라 둘째가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다섯 므나를 벌었느니라 하매 그에게도 이르되 너는 다섯 성읍을 다스리라 하였느니라 또 다른 사람이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내가 손수건에 넣어 두었던 당신의 한 므나입니다. 당신은 가혹한 사람이기 때문에 나는 당신을 두려워했습니다. 네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느니라. 그가 그에게 이르시되, 무익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리라.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았느냐? 그러면 너희는 어찌하여 그 돈을 은행에 넣어 두지 아니하였느냐 와서 내가 이자를 받아 거두리라 하고 곁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사람에게서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라  선생님, 그 사람은 벌써 열 므나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있는 자는 더 받아 가지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그러나 나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이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여라(누가복음 19:12-27).

 

대부분의 경우 이 비유의 의미는 분명하다. 예수님은 분명히 먼 나라로 갔다 다시 오시는 귀족이시다. 그분을 섬기기로 선택한 우리는 각자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 약간의 돈을 받은 노예들에 비할 수 있다. 돈은 우리가 주님을 섬기기 위해 주어진 은사와 능력과 기회만을 나타낼 수 있다. 귀족을 미워한 시민은 불신자를 의미한다.

 

신실한 두 종이 칭찬을 받고 더 큰 책임을 맡게 되었다는 점에 유의하라. 그들은 일정한 수의 도시를 통치하게 되어 있었다.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 기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고 다스릴 것이라고 가르치므로 이 비유는 그 진리와 완벽하게 연관된다(디모데후서 2:12; 요한계시록 2:26, 27; 5:10; 20:6). 하나님 왕국에서 우리가 갖는 권위의 위치는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의 우리의 신실함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주석가들은 이 비유에 나오는 신실하지 않은 종이 처음에는 신실한 성도였지만 신실하지 않게 된 사람을 나타내는지, 아니면 결코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나타내는지 논쟁한다. 그 질문에 대한 답과는 상관없이 몇 가지 사항이 잘 해결되었다. 즉, 우리가 신실하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상을 주실 것이다. 그러한 보상에는 미래의 하나님 왕국에서 권위 있는 위치로 승진하는 것이 포함될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보상이 전달된다면 성도들의 신실함은 지금 시험을 받고 있는 것이다.

 

어떤 보상을 받게 되나?

 

우리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나 그분의 성령에 순종하여 올바른 동기로 행하는 모든 선행은 보상을 받을 것이다. 예수님은 잘못된 동기로 행한 선행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상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자선을 베풀 때에 위선자들이 사람에게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충분히 받았느니라 그러나 너는 자선을 베풀 때에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되도록 하여라. 그러면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그리고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과 같이 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충분히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그리고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표정을 짓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자기의 외모를 버리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충분히 받았느니라 그러나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 금식하는 것이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보이도록 하라. 그리하면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태복음 6:1-6, 16-18).

 

우리는 다른 사람의 동기를 확신할 수 없지만, 주님 외에는 아무도 모르실 일을 행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동기를 점검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 어떤 행위가 보상을 받게 될지에 관해 몇 가지 중요한 통찰력을 갖고 있었다.

 

우리[바울과 아볼로]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니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나는 지혜로운 건축가로서 기초를 놓았고, 다른 사람은 그 위에 집을 짓고 있습니다(아볼로). 그러나 각 사람은 그 위에 어떻게 건축할 것인지 조심해야 합니다.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누구든지 금, 은, 보석, 나무, 풀, 짚으로 기초 위에 집을 짓으면 각 사람의 공력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날이 그것을 보여줄 것이며, 불이 각 사람의 일의 질을 시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남아 있으면 상을 받으리라. 누구든지 그의 업적이 불탔다면 그는 해를 입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신은 구원을 받을 것이나 불을 통과한 것 같으니라(고린도전서 3:9-15).

 

바울이 우리의 선한 일의 잠재적인 질을 나타내는 여섯 가지 재료, 즉 금, 은, 보석, 나무, 풀, 짚을 나열한 것에 유의하라. 분명히 3개는 매우 가치가 높지만 3개는 그다지 가치가 없다. 그리고 3개는 가연성이고 3개는 불연성이다.

 

바울은 어느 날 모든 성도의 행위가 “불 가운데서” 시험을 받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바울이 쓴 불은 비유적인 것일 수 있지만 나는 컨베이어 벨트가 달린 커다란 용광로가 그 불을 통과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싶다. 나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용광로의 한 편에 자신의 작품을 싣고 다른 편으로 걸어가서 불 속에서 무엇이 살아남는지 지켜보는 모습을 상상한다. 각 그리스도인의 행위, 즉 그의 기도, 헌금, 친절의 행위, 희생, 인내한 박해 등은 모두 불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물론 모든 그리스도인의 행위는 각기 다르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 불은 잘못된 동기로 행해진 모든 일과 하나님의 말씀이나 성령에 순종하지 않은 모든 일을 태워버릴 것이다.

 

이제 성공적인(그러나 이기적인 동기를 지닌) 설교자가 자신의 작품을 심판대에 가져오는 것을 상상해 보라. 그는 자신의 작품을 컨베이어 벨트에 싣고 용광로 반대편으로 어슬렁거리며 자랑스럽게 보상을 기다린다. 작은 잿더미만 남아 있을 때 그가 얼마나 놀랐는지 상상해 보라. “주님, 제가 설교하는 것은 모두 어떻게 됩니까? 내가 세운 교회는 어떻습니까? 내가 쓴 책들과 내가 설교한 십자군 운동은 어떻습니까?” 주님은 “네가 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행한 것이요 책과 설교로 가르친 것 중 많은 것이 비성경적이거나 인간의 지혜뿐이니라”라고 대답하셨다.

 

이제 수줍게 심판의 용광로에 다가가는 작은 노부인을 상상해 보라. 그녀는 겉으로는 작아 보이는 작품을 컨베이어 벨트에 올려놓고, 강력한 불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기 위해 온순하게 반대편으로 이동한다. 용광로에서 금괴와 은괴와 함께 다이아몬드와 루비 더미가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고 그녀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지 상상해 보라. “주님, 제가 무슨 짓을 해서 그런 일을 당할 수 있었습니까?” 주님은 이렇게 대답하신다. “36년 동안 어린이주일학교를 신실하게 가르쳤다. 당신은 비밀 기도의 용사였다. 당신은 내가 당신에게 하라고 부른 바로 그 일을 했다. 내가 너에게 열 도시를 다스릴 책임을 맡기겠다.”

 

그 심판석에서 우리는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될 것이다”(마태복음 20:16)라는 예수님의 경고를 더 잘 이해할 것이다. 그리고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라고 말씀하신다(누가복음 12:48).

 

그러면 “작은 행동”이라도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마 10:42).

 

일부 좌석은 이미 예약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 기간에 미래에 차지하게 될 권위의 자리 중 일부는 이미 예약되어 있는 것 같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아버지나 어머니나 자녀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영생을 상속하리라(마 19:28-29).

 

그러므로 천년왕국 동안 열두 지파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될 것이다. 예수님을 위해 무엇이든 희생한 사람은 그 시대에 그의 희생에 비해 여러 배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당신의 나라가 임하옵시며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이 붙은 책의 마지막 구절에 기록되어 있듯이 다니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 그러면 너희는 안식에 들어가고 세상 끝에 너희에게 할당된 몫으로 다시 살아날 것이다”(다니엘 12:13). 다니엘처럼 당신의 신성한 삶은 궁극적으로 미래의 왕국에서 실현될 것이다. 지금 이 땅에서 사는 삶에서 우리가 하는 일은 영원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함으로써 시험을 통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당신은 당신의 신성한 삶을 성취하시겠는가?

 

모든 것을 듣고 나면 이렇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키라. 이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실 것이다(전도서 12:1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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