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18–22
로마서 8:18, 19에서는 ‘계시’라는 단어가 모두 사용된다. 첫째로, 현재의 고통은 우리에게 계시된(아포칼룹토apokaluptō) 영광과 비교할 가치가 없다. 둘째로,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계시(아포칼룹시스apokalupsis)를 기다리고 있다. 첫 번째 “계시”는 동사이고, 두 번째는 명사다. 헬라어 어근은 ‘떼어내다’라는 뜻인 아포apo와 ‘가리다, 숨기다’라는 뜻인 ‘칼룹토’로 구성된다. 아포칼룹토apokaluptō는 말 그대로 ‘덮개를 벗기다'’ 또는 ‘밝히다 또는 드러내다’라는 뜻이며, 명사 형태는 계시로 번역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영광의 계시가 있을 것이며, 피조물 전체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계시가 나타날 것이다.
학자와 해석가들은 이 구절에서 ‘창조’라는 표현에 대해 논쟁하고 있다. 다양한 해석가들은 이 단어를 다른 방식으로 제한하지만, 바울의 의도에서는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창조의 어떤 부분을 배제할 명백한 이유는 없다. 모든 자연, 즉 동식물을 포함하는 전체 창조물의 의미에서 이 단어를 받아들이는 것이 안전하다. 이는 이사야 11:1-10, 베드로후서 3:13, 요한계시록 21:1-7과 같은 다른 성경 구절을 고려할 때 놀라운 일이 아니다.
로마서 8:19에서 사용된 헬라어 아펙두오마이apekduomai는 ‘간절한 갈망’을 의미하며, 머리를 쭉 펴고 열심히 지켜보는 모습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접두사 아포apo로 강화된 이 단어는 ‘다른 모든 것들로부터 주의를 돌리고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는 것을 의미하며, 기다리는 환자’를 뜻한다(로마서 8:21). 피조물 자체가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로 들어갈 것이다. 이렇게 자유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스럽게 된 상태의 구성 요소로 묘사된다. 자유는 영광에 속한다. 이 영광스러운 상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나타나는 그 끝에 이르게 될 것이다(요한계시록 11:15-19; 21:21-26).
계시와 적용
고난과 영광
로마서 8:14-17의 영광에 관한 첫 번째 부분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는 것에 대해 필요한 지식, 즉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는 동료 상속자로서의 지위,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는 고난의 체험을 말한다.
고난을 받고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는 이 체험은 이 부분의 주요 체험이며 세 가지 측면이 있다(로마서 8:18-27). 첫 번째 측면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것이다. 이 방면을 깨달음으로써 로마서 8:18의 실재가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이 시대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느니라.” 두 번째 측면은 그영의 신성한 분배와 관련이 있고(로마서 8:23-25), 세 번째 측면은 신성한 작용과 관련이 있다.(로마서 8:26, 27). 우리는 고난과 영광의 체험의 첫 번째 측면인 하나님의 주권을 고려할 것이다.
고난에 대한 올바른 태도
로마서 8:18은 “내가 생각하기로는 이 시대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말한다. ‘고려하다’라는 단어는 로마서 6:11에서 ‘계산하다’에 사용된 헬라어 단어와 같은 단어다. 문자 그대로 ‘재고를 조사하다’를 의미하며 ‘계산하다, 고려하다, 추론하다, 헤아리다’로 번역될 수 있다. 대차대조표를 사용하듯이 우리는 오늘 우리가 겪는 고난을 고려하고 다가올 영광을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계산해 본다면, 우리가 겪고 있는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오늘의 슬픔과 고통은 그 당시의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한편으로는 미래에 대한 생각, 즉 현재의 고난은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가치가 없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반면에,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신성하고 주권적인 손 아래 겪는 고난은 오늘날 우리가 더 많은 영광을 받기 위한 것이다. 영화롭게 하는 것은 날마다 계속되는 생명의 성장 과정이다. 고통이 없으면 삶이 성장하고 발전하기가 매우 어렵다. 스트레스와 고난의 시기에 나무가 더 깊이 뿌리를 내린다고 한다. 하나님께 고난을 달라고 간구할 필요는 없지만, 어려운 환경이 닥쳤을 때 그것을 환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야고보와 베드로는 그들의 서신서에서 그러한 것들을 기록했다.
“나의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련에 부딪힐 때에 너희 믿음의 시험이 인내를 산출하는 것을 앎으로 모든 것을 기쁨으로 여기라”(야고보서 1:2, 3)
비록 지금 잠깐 동안, 필요하다면, 여러 가지 시련으로 괴로워할지라도, 불로 시험을 받을지라도 썩지 않는 금보다 더 귀한 너희 믿음의 증거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아 찬양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된다(베드로전서 1:6, 7).
하나님은 주권자이시다. 그분은 우리의 필요를 아시며 우리 안에서 더 많은 영광을 얻고 이루기 위해 다양한 환경을 완벽하게 측정하실 것이다. 그러한 측량은 그분의 선하신 기쁨에 따른 것이다. 우리는 현재 고난의 한가운데에 있기 때문에 그 고난이 우리에게 드러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계시, 영광, 끌림, 그리고 따름
영광은 계시에서 비롯되며 하나님 자신이 나타나신 것이다. 로마서 8:18은 장차 영광이 우리에게 나타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거나 계시하실 때 우리는 더 많은 영광을 얻는다.
하나님의 나타나심은 계시다. 아브라함이 메소포타미아에 살았을 때,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에게 자신을 나타내셨다(사도행전 7:2). 우리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의 모든 모습은 계시다. 각 계시는 우리에게 영광을 가져다주고, 우리를 끌어당기며, 주님을 따르도록 이끈다. 이 계시, 영광, 끌림, 그리고 따름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명에서 순환한다.
하나님의 모든 계시는 우리에게 영광을 드러낸다. 이것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끌 것이다. 우리가 그분께 끌릴 때, 우리는 그분을 따를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따를 때, 우리는 더 높은 계시와 더 큰 영광과 끌림과 따름을 받게 될 것이다. 이 순환은 매우 정상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실 때, 영광과 끌림과 따름은 자동적으로 생겨난다. 결국, 이것은 더 높은 계시로 이어진다.
왜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따를 때 그토록 피곤함을 느끼는가? 그것은 그들의 계시가 충분하지 않고, 그들이 지금까지 본 영광이 그들을 지탱하기에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따르는 것이 너무 어렵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주님과의 관계가 건강하지 않거나 친밀하지 않다는 것을 나타낸다. 주님의 계시 없이는 우리는 그분께 이끌리거나 그분을 따를 수 없다. 우리가 주님과의 친밀함이 부족할 때, 이것은 불충분한 계시와 영광으로 이어진다.
때로 우리는 주님을 따르는 것이 힘들고 스트레스가 많다고 느낀다. 그러나 우리의 계시가 분명해지고 주님이 너무나 선하시고 영광스러우시다는 것을 알게 되자마자 우리는 기꺼이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따를 것이다. 우리는 ‘주님, 당신의 영광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도록 당신을 더욱 많이 드러내시옵소서. 저를 끊임없이, 절대적으로, 너무나 깊이 끌어들여 당신을 따를 수밖에 없게 하소서. 주님, 제가 당신을 따를 때 더 높은 계시와 더 많은 영광을 허락해 주십시오.’라는 기도를 해야 한다.
계시는 영광을 낳고, 영광은 끌림을 낳고, 끌림은 따름을 낳고, 뒤따르는 것은 점점 더 높은 계시를 낳는다. 이것은 건강하고 정상적인 과정이다. 하지만 아브라함 시대와 마찬가지로 순종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우리가 주님께로 이끌리는 계시를 받았지만, 그분을 적극적으로 따르지 않는다면, 이 계시는 곧 사라질 것이다. 이 계시가 사라지면 우리의 비전과 헌신은 이전처럼 명확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본 계시에 따라 주님을 따르기 위해 기꺼이 대가를 치르지 않는 한, 주님께서 우리를 더 깊은 방법으로 영광을 체험하도록 인도하시는 것은 매우 어렵다. 영화롭게 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주님의 계시를 알고, 순종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데 실패해서는 안 된다.
영광의 계시
로마서 8:19은 “피조물의 간절한 사모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나이다”라고 말한다. 창조물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계시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영광은 우리가 지금 당하는 고난과 비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미래에 하나님의 아들들에 의해서도 드러날 것이다.
로마서 8:18, 19은 우리에게 두 단계의 계시를 공급한다. 첫 번째 단계는 우리에게 영광의 계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시고 우리에게 계시된 영광이 되신다. 두 번째 단계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피조물에 계시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인 우리는 모든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영광의 계시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계시되어 나타나고, 우리는 미래에 만물에게 계시될 것이다. 하나님은 언젠가 우리를 모든 피조물에 대한 계시로 만들기 위해 오늘 우리의 계시가 되신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계시는 지속적이며 점점 더 위대하고 높으며 풍성하다. 그것은 모든 피조물이 기다리고 있는 영광스러운 계시의 실재를 우리 안에 만들어 줄 것이다. 이 과정은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여러 달과 몇 년 동안 우리 안에 축적된 것이며, 우리가 매일 하나님을 충실히 따랐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 시대의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고, 모든 피조물이 간절히 기다리는 영광이다.
창조의 간절한 기다림
우리 안에 있는 영광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이 ‘허무한 것에 복종’하고 있고(로마서 8:20) ‘지금까지 함께 신음하며 출산의 고통을 함께 당하고 있는 것’이다(로마서 8:22). 오늘날 모든 식물, 짐승, 새, 물고기, 곤충은 언젠가 하나님의 아들들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바라며 함께 신음하고 고통받고 있다. 피조물이 헛되이 굴복한 것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한 저주의 결과이다(창세기 3:17). 인간의 타락은 속박의 저주를 가져왔고, 모든 피조물은 부패의 속박 아래 노예가 되었다. 포도와 오렌지를 생각해 보라. 한 포도는 매우 달콤하고 다른 포도는 매우 신맛일 수 있다. 하나의 오렌지는 매우 달콤할 수 있지만 다른 오렌지는 매우 신맛일 수 있다. 왜 일부 포도는 신맛이 나고 오렌지는 왜 모두 달콤하지 않는가? 그것은 그들이 저주 아래 있기 때문이다. 저주가 없다면 모든 포도와 오렌지는 달콤하고 맛있을 것이다.
피조물은 기꺼이 헛된 것에 굴복하지 않았으며, 부패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인 우리를 통해 모든 피조물에 영광스러운 계시가 된다.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이 영광이 우리에게 더해지도록 함으로써 이 영광스러운 계시가 된다. 이 과정을 통해 모든 피조물은 언젠가 저주에서 풀려날 것이다.
바로 지금,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계시가 전달될 수 있도록 간절한 갈망으로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피조물이 부패에 굴복한다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포도와 이야기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들이 너무 신맛이 난다고 비난할 것이다. 그러나 포도는 우리에게 ‘나는 내가 원하기 때문에 신 포도가 아니라 당신이 기대에 부응하지 않기 때문에 신 포도를 낸다. 당신이 신맛이 나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나는 오늘 신 포도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가 계시 안에 살면서 계시가 우리를 제한하고, 끌어당기고, 인도하도록 허용한다면, 언젠가는 포도가 더 이상 시들지 않을 것이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를 통해 나타날 때 썩어짐의 노예 상태에서 풀려날 것이다!
영광의 자유
모든 피조물이 오늘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꽃, 나무, 짐승, 새, 물고기, 곤충 모두 하나님의 아들들의 계시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그날이 되면 모든 장미와 사자는 온 마음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간절히 추구하며, 끊임없이 계시를 받고, 결국 영광스러운 계시가 된 것에 대해 감사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모든 피조물에게 나타날 때, 하나님의 왕국의 시대가 도래하게 될 것이다. 그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고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눕고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을 것이며 어린아이가 그들을 인도할 것이다. 암소와 곰은 풀을 뜯고, 새끼들은 함께 눕고, 사자는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다(이사야 11:6, 7). 이 얼마나 멋진 그림인가! 오늘날 포도나무는 ‘언젠가는 내 열매가 달콤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기다리고 있다. 호랑이들도 ‘언젠가는 사람을 해치거나 동물을 사냥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 나라 시대가 이르면 내가 패괴의 속박에서 풀려날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드러나고 영화롭게 될 것이며, 그들은 자유가 있는 영광의 영역으로 안내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모든 피조물이 저주에서 풀려나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다(로마서 8:21). 오직 하나님의 계시만이 영광스럽기 때문에 피조물 자체에는 영광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언젠가 영광에 들어가 영광스러운 나라를 가져올 것이다. 피조물 자체에 영광이 없더라도 하나님의 아들들의 영광의 영역에 들어가 소생하고 해방될 수 있다.
그날에는 모든 꽃과 풀과 나무와 짐승과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가 하나님의 아들들의 영광의 영역에서 되살아날 것이다. 그때 배는 ‘나는 자유롭다. 나는 당신이 원하는 만큼 달콤할 수 있다!’라고 말하게 될 것이고, 꽃은 ‘나는 자유롭다! 나는 당신이 원하는 만큼 아름다워질 수 있다.’라고 말할 것이다. 사슴은 ‘나는 자유롭다! 나는 네가 원하는 만큼 뛸 수 있다!’라고 말할 것이다. 모든 피조물이 외칠 것이다. ‘우리는 자유롭다! 우리는 부패의 속박에서 해방되었다!’
영광스러운 자유의 왕국
영광은 하나님 나라의 영역이자 통치 범위다. 자유는 우리가 이 영역에서 체험하는 것이다. 그러한 영광스러운 왕국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증거하고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발견되는 자유를 누리고 체험한다. 로마서 8:17의 결과는 참으로 대단하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는다면, 우리는 그분과 함께 영광을 받을 것이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영광을 받는 순간, 우리는 그분과 그분이 가지신 모든 것을 누리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결코 분리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분과 개인적으로 온전히 연합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로 가득 찬 그토록 영광스러운 왕국에는 헛됨도, 신음도, 부패의 노예도, 출산의 고통도 없다. 오늘날 우리는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그날에는 오직 하나님의 자녀들이 증거하는 영광과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우리가 누리는 자유만 있을 것이다. 피조물이 우리를 볼 때, 그것은 영광과 자유를 보게 될 것이다. 이 영광은 우리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며, 우리가 그리스도의 인격과 연합하기 때문에 우리에게서 빛날 것이다. 이것이 창조물이 보게 될 것이다!
오, 이게 무슨 그림인가! 무수히 많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영광스러운 자유의 왕국으로 구성될 때 얼마나 멋진 일인지 아무도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의 모든 자녀는 하나님의 빛나는 영광을 나타내고 이 영광의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아무리 많은 고난을 겪는다 해도 그날의 영광에 비하면 비할 바가 아니다. 오, 그러한 영광의 계시가 얼마나 좋고, 아름답고, 초월적이며, 하늘에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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