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는 눈을 크게 뜨고 거리를 위아래로 쳐다보았다. 그는 어디에 있었을까? 그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더 중요한 것은 그는 누구였을까?
그는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기억할 수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붐비는 거리가 보였다. 어디론가 서둘러야 해.'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 말과 함께 그는 군중에 합류하여 어딘가로, 어디인지도 모른 채 서둘렀다.
자연이는 속이 으르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너무 배가 고팠다! 그는 몇몇 소년들이 빵을 찾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는 것을 보았고, 그래서 그들과 합류했다.
이런 식으로 며칠이 지났다. 어느 날 자연이가 리안과 부딪히기 전까지는.....
자연이는 리안을 알아봤고, 그 인식과 함께 다른 기억들이 홍수처럼 밀려왔는데, 리안이가 말을 시작하면서 기억이 더 커졌다.
“자연아, 뭐 하는 거야? 너희는 주님을 찬미하고, 섬기고, 주의 초청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이곳에 파견되었는데, 정처 없이 이리저리 헤매는 것 같다. 무슨 일이야?”
진리가 자연이의 머릿속에 물밀 듯이 밀려왔다. 주님—그분의 연회. 그는 이제 기억했다. 주님은 그가 자신의 범죄에 대해 사형 선고를 받은 무력한 거지였을 때 그를 찾았다. 주님은 대가를 치르고 그를 입양했다.
이제 자연은 주님이 그를 영원히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 돌아오기 전에 거리에 남겨진 짧은 시간 동안 해야 할 일이 주어졌다. 그는 어떻게 그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는가? ‘내가... 깜빡했어.’ 자연은 중얼거렸다.
‘알겠습니다.’ 리안의 대답은 은혜로운 이해로 가득 차 있었다. ‘나도 전에 잊어버렸어. 기억상실증은 우리의 가장 큰 적 중 하나인 것 같다. 말하자면, 반쯤 굶어 죽은 것 같은데, 주님의 음식도 잊어버렸어?’
주의 음식! 오, 자연이가 그것을 잊고 있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베드로후서 3:1, 2)
“그러나 오늘이라고 불리는 동안 매일 서로 권면하십시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속임수로 말미암아 완악해지지 않도록 하라.”(히브리서 3:13)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에베소서 2:11-13)
영적인 망각을 피함
기억해야 할 것이 있을 때, 나는 그것을 상기시키기 위해 포스트잇 메모, 목록, 휴대폰 알림, 타이머 등 필요한 모든 것을 한다. 알림이 없으면 사소한 일에 휘말려 중요한 것을 잊어버릴 수 있다!
우리는 잊어버리기 때문에 알림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에게 지상의 것들을 생각나게 하는 것들이 필요하다면, 하늘의 것들을 생각나게 하는 것들이 얼마나 더 필요하겠는가?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그분이 주관하신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이 땅이 일시적이라는 것을 안다. 우리는 그분이 우리의 구원을 위한 일을 마치셨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방식에서 이러한 진리를 잊어버리는 것은 너무 쉽다.
영적인 기억의 속삭임을 살펴보라. 잊어버렸을 때 하나님의 진리를 상기시키는 습관이 있는가? 당신은 정기적으로 그분의 말씀 안에 있는가? 당신이 길을 잃었을 때 진리를 상기시켜 줄 다른 신자들과 함께 해 본 적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