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ethren/연(輦)모임 메시지

화목제물로 공개적으로 표현함

Hernhut 2023. 7. 4. 16:53

 

 

로마서 3:25

 

화목제물이라는 용어는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의 일치에 대한 열쇠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하다. 여기서 화목제물에 사용된 헬라어 힐라스테리온hilastērion속죄(장소 또는 사물), 자비의 자리, 화목제를 의미한다. 신약성경에서 유일하게 다른 용법은 히브리서 9:5에 있는데, 거기서 속죄의 자리로 번역되어 있다. 이 단어는 구약에서 증거궤 위에 놓인 덮개를 직접 언급한다.

 

하나님은 출애굽기 25장에서 먼저 모세에게 속죄소를 지으라고 지시하셨다. 그것은 증거궤 위에 놓이게 되어 있었고, 두들겨 만든 금으로 된 두 그룹으로 가려져 있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가장 놀라운 말씀을 하셨다. “속죄소 위에서,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너희에게 명령할 모든 것을 너희에게 말하리라”(출애굽기 25:22). 따라서 속죄소는 하나님과 사람이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그곳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자비를 베푸실 수 있는 곳이었다.

 

로마서 3:25은 하나님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가 화목 또는 속죄의 자리로 나타나셨다고 말한다. 그분은 인간과 하나님이 함께 모일 수 있는 곳이다. ‘그분의 피로라는 문구는 그리스도께서 이 속죄소가 되시기 위해 겪으신 과정, 즉 십자가에서의 희생적인 죽음을 나타낸다.

 

계시와 적용

 

죄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다(골로새서 1:21).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으로 화목제로 삼으셨다. 화목제물은 구약의 긍휼의 자리이며,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푸는 곳이다(출애굽기 25:22). 구약에서는 속죄소라고 불렸다. 여기 신약성경에서는 그것을 화목제물이라고 부른다.

 

하나님과 인간을 위한 화해의 장소

 

그리스도는 속죄소의 모형, 즉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고, 화해하고, 서로 만족할 수 있는 장소의 완성이다. 얼마나 멋진가! 하나님은 사람 예수님이 되셨고 속죄소가 되는 과정을 거치셨다. 하나님께서 이 시은좌를 보시면 우리를 의롭게 하실 수 있다. 우리가 이 속죄소를 볼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하셨다는 것을 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의를 예수님께 나타내시고 우리를 의롭게 하시기 위해 속죄소로 삼으셨다. 이게 얼마나 달콤한가! 우리가 주님을 믿는 순간, 이 시은좌는 우리가 영원히 설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사실, 우리의 영적 성장은 이 땅, 이 자비의 자리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히브리서 기자는 구약의 제사로는 하나님을 온전히 만족케 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히브리서 10:4-6).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은 하나님을 완전히 만족케 하는 것이었고 결코 반복될 필요가 없다. 자비의 자리에서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과 의롭다 하심을 받은 우리는 둘 다 완전히 만족한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속죄소로 세우셨기 때문에 우리는 자녀들이 아버지의 기쁨을 보고 나눌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기쁨을 보고 나눌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된다(로마서 5:1). 그분은 하나님과의 문제를 영원히 돌보아 주셨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이 속죄소를 통해 이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조화로운 관계가 있을 수 있다.

 

그분의 피로

 

화목제물의 기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구속이다. 바울은 하나님이 자기 피로 화목제로 공개적으로 나타내신 자라고 썼다(로마서 3:25). 신약시대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나타내신 속죄좌이시다. 그리스도가 어찌 하나님의 모든 요구를 만족케 할 수 있나? 그분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통해서만 이것을 할 수 있었다.

 

예수님은 자비로우시고 신실하신 대제사장이시다.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해 화목제물이 되셨고 자신의 피로 성소에 들어가심으로써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다(히브리서 2:17; 9:12). 구약에서 속죄소는 언약궤 위에 놓였으며 그 위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두 개의 금 그룹이있었다(히브리서 9:5). 속죄좌 아래에는 언약의 상이 있었는데(히브리서 9:4), 이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의로우심을 증거하는 증거였다.

 

대제사장은 일 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화평을 가져오기 위해 속죄소 위와 주위에 황소와 염소의 피를 뿌렸다(레위기 16:14, 15). 이 피를 뿌림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죄를 범함으로써 야기된 모든 문제를 해결시켰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요구의 세 가지 측면인 거룩함, 의로움, 영광을 충족시켰다. 이 불완전한 화목제물을 기초로 하나님은 속죄소에서 사람을 만나셨고, 사람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았으며, 하나님은 마음의 소원을 사람에게 나타내셨다.

구약 시대에 제사장들은 주님 앞에서 황소와 양을 도살하여 사람들을 대신하여 속죄 제물을 드렸다. 또한, 속죄일은 특별한 희생의 날이었으며, 그 후에 대제사장은 주님과 직접 대화할 수 있었다. 레위기 16:14, 15은 이 순간을 위한 준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또한, 그는 황소의 피를 가져다가 동쪽의 속죄소에 손가락으로 뿌릴 것이다. 또한 속죄소 앞에서 손가락으로 피를 일곱 번 뿌릴 것이다. 그때에 백성을 위한 속죄 제물의 염소를 잡아 그 피를 휘장 안으로 가져와서 그 피로 황소의 피로 하듯 하고 속죄소와 속죄좌 앞에 뿌리리라.”

 

대제사장은 왜 피를 일곱 번 뿌렸는가? 성경에서 일곱이라는 숫자는 하나님의 사역이 온전함을 의미한다. 창조 일곱째 날에 하나님이 그의 사역을 완성하시고 안식하셨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창세기 2:2).

피를 일곱 번 뿌린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완전함을 상징한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덮음 아래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화해와 완전한 만족이 있다.

 

증거궤의 풍성함

 

구약성경에서 가장 빽빽하게 채워진 그림 중 하나는 만남의 장막으로, 사람이 하나님을 체험하고 구원을 누리는 것을 상징한다. 집회의 천막은 뜰, 성소, 지성소의 세 부분으로 나뉜다. 성소와 지성소를 합쳐 성막이라고 불렀다. 예수님의 피 흘리심은 뜰에 있는 제단의 형태를 이루었고, 화목제물이 지성소에 있는 궤 위의 속죄소의 형태를 완성한 것과 속죄소에 바른 피는 하나님의 의로운 요구를 만족시켜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고 방주 안에서 모든 부를 누릴 수 있게 했다(레위기 16:15, 16).

 

구약성경에 명시된 예표에서 대제사장들은 시은좌에 설 수 있는 지성소에 들어가기 위해 절차를 거쳐야 했다. 그들은 먼저 봉헌의 일종인 놋제단으로 가야 했고, 그 다음에는 성령의 정결케 하는 일종인 놋대야로 가야 했다(출애굽기 30:18). 그런 후에야 그들은 성막에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가 제단에 올라가지 않으면 성막에 들어갈 수 없다. 우리가 자기 생각과 야망으로 가득 차 있다면 우리는 성막에 들어갈 수 없다. 자신의 것을 구하지 않고 성령의 깨끗하게 하심 아래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봉헌하는 사람만이 성막에 들어갈 수 있다. 성막 안에서 우리는 임재의 떡으로 대표되는 삶을 누릴 수 있고, 금 촛대로 대표되는 빛을 받을 수 있으며, 금 향단으로 대표되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경험할 수 있다.

 

이러한 성소의 체험을 통해서만 우리는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다. 지성소에는 오직 한 가지, 즉 증거궤가 있었다. 언약궤 안에는 세 가지가 놓여 있었는데, 곧 언약의 상, 만나를 담는 금항아리, 싹이 난 아론의 지팡이였다(히브리서 9:4).

 

돌판에 기록된 십계명은 하나님의 본성과 존재를 묘사했다. 만나는 우리의 하늘에서 누리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싹이 튼 지팡이는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 있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우리의 체험을 상징한다. 상은 하나님의 존재를 나타내고, 만나는 하나님의 공급을 나타내며, 싹이 트는 막대기는 하나님의 역사하심, 징계하심, 인도하심, 책망하심, 다스리심, 제한하심을 나타낸다. 우리는 오늘 부활을 통해 이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성막 중앙에는 증거궤가 있었는데, 그 궤에는 언급된 세 가지 물건이 놓여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계시하시고, 우리를 위한 공급하심과 누리심, 그리고 부활을 주시는 능력과 지원과 인도하심이 모두 궤 안에 있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모두 화목제물, 속죄소를 통해서만 우리의 실제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주님의 존재와 공급과 주권적인 역사가 모두 우리의 체험이 될 수 있도록 속죄소가 되신 주님께 감사해야 한다.

 

믿음을 통해서

 

로마서 3:25의 첫 부분은 하나님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자기 피로 화목제로 공개적으로 나타내신 자라고 말한다. 화목과 화해의 기초는 예수의 피다. 우리가 화목제를 체험하는 수단은 믿음이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심으로 긍휼의 좌가 되셨고, 이제 우리는 믿음으로 이 긍휼의 좌를 체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믿음은 다른 사람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며 스스로 생산할 수도 없다. 믿음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역사와 사역의 결과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고 일하시도록 허용하여 우리 주님이시며 구속주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우리의 긍휼의 좌의 실재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