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퍼런스/신부를 찾으라

신부를 찾았다.

Hernhut 2023. 4. 12. 12:53

 

 

 

 

리브가가 일어나 그녀의 소녀들과 낙타를 타고 그 사람을 따랐고, 그 종은 리브가를 데리고 그의 길을 갔다(창세기 24:61).

 

하나님의 그영은 사람의 영원한 구원과 관련 있는 사역을 수행하시려고 거의 6,000년 간 세상에 계셨다. 사람의 날에 그영은 생명 없는 자 안으로 생명을 호흡하셨다. 그리고 그분은 죽음과 피흘림으로 이것을 행하셨다. 성령님이 인간을 구원하는 일뿐만 아니라 죽음과 피 흘림의 필요하다는 가르침이 창세기 처음 네 장에 기록되어 있다. 그영은 죽음과 피흘림을 통해 타락한 사람 안으로 생명 호흡을 하셨다. 그리고 이러한 기본적인 진리들, 즉 첫 번째 언급의 원칙을 세운 것은 이후의 모든 성경 전체에 걸쳐 변하지 않고 남아 있다.

 

이런 점에서 성령님의 일은 창세기의 처음 두 장에서 황폐해진 창조(창세기 1:2b)가 회복과 관련된 것으로 본 것과 창세기 2:7에서 하나님의 호흡을 통해 사람에게 주어진 생명이 소개한다. 하나님의 영은 이전에 어둠만이 우세했던 폐허가 된 물질적 창조물을 향해 나아가셨다. 이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빛이 존재하기 전,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구분하기 전에 가장 먼저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둠만이 지배하고 있는 오늘날 폐허가 된 사람과 정확히 같다. 타락한 사람은, 그 후에 파괴된 창조물로서, 세워진 본과 정확히 일치하여 회복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그영은 파괴된 창조물 위에서 움직이신다. , 그영은 생명이 없는 사람에게 생명을 호흡하신다. ‘'호흡'은 구약성경의 히브리어로 루아흐Ruach’이고, 신약성경의 헬라어로 프쉬케Pneuma’이다. 그리고 그영은 죽어 쓰러진 사람에게 생명을 흐르게 하셔서 피가 흐르게 하신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동물 희생으로 예표된 그리스도의 갈보리에서의 완성된 사역을 하셨다. 이 일은 하나님이 인정하신 것으로 갈보리 사건이 일어나기 4,000년 전에 창세기 1, 2장에서 이미 예표된 사역을 성령님이 하신 것이다. 성령님이 개인에게 생명을 불어넣으면, 빛이 존재하게 된다. 불법과 죄로 죽은 자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다음 하나님은 빛과 어둠, 새사람과 옛사람, 영적인 것과 혼적인 것을 예리하게 구분하신다(창세기 1:3; 요한복음 1:5; 고린도후서 4:6; 히브리서 4:12). 그러므로 이런 점에서 그영의 근본적인 일의 기초는 창세기 1, 2장에서 볼 수 있다. 하나님의 그영은 타락한 사람 위에서 움직여 그분의 호흡을 통해 생명을 나눠주신다. 그러고 나서, 그영이 이러한 방식으로 생명을 가져오는 한 가지 근거 즉 죽음과 피 흘림은 갈보리를 두고 4,000년을 가리키며 창세기 3, 4장에서 볼 수 있다. 창세기 3장에서 사람이 타락한 후에 하나님이 회복하시려고 가장 먼저 하신 일은 아담과 하와에게 동물 가죽을 입혀 이전의 명백한 죽음과 피흘림을 보여 주셨다. 그리스도 자신은 두 번째 사람이시요, 마지막 아담으로서 4,000년 후에 그 대가를 치르셨다. 그리고 창세기 4장에서 4000년 후에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죽였던 것처럼 가인은 아벨을 죽였고, 다시 죽음을 보여주고 피를 흘렸다.

 

그러나 창세기의 첫 장에서 광범위하게 다루어진 것은 은혜에 의한 구원만이 아니다. 이 장들은 또한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후, 성령님이 그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인간과 함께 계속해서 일하는 기본적인 진리들을 다룬다. 첫날에 일은 영원한 구원과 관련된 하나님의 일이다. 이후 5일 동안의 일은 구원과 관련된 하나님의 지속적인 사역과 관련이 있으며, 완전한 회복은 인자의 날이 완료되기까지 기다리는 6일 동안의 사역이다. 그리고 이 지속적인 사역은 혼의 구원과 관련이 있다. 그것은 7일째 이 땅의 안식일 즉 메시아 시대가 되어야 완성될 것이다. 창세기 1장에서 엿새 동안 보았던 사건들은 하나님의 모든 일의 완성이 일곱째 날에 이뤄질 인자의 날 동안 언제든지 하나님의 일에 적용될 수 있었다. 그러나, 창세기 1:2b-2:3에서 7일 동안 일어난 주변 사건들에 이어, 하나님은 그분의 계시를 인간의 두 부분인 이스라엘과 교회와 관련된 기초 자료를 제공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이것은 나중의 계시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사람들은 나중에 이스라엘을 통해 먼저 분배된 후에 교회를 통해 분배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복원 이후 메시아 시대에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교회를 통해 인류를 전반적으로 분배할 것이다. 창세기의 처음 세 장에서 이스라엘과 관련된 것보다 교회에 관한 것이 먼저 언급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교회와 관련된 진리는 창세기 2-3장에서 볼 수 있고, 이스라엘과 관련된 진리는 창세기 4장에서 시작하여 그다음 장에서 계속해서 볼 수 있다. 창세기 2장을 보면 그리스도의 신부는 그분의 몸 전부가 아닌 몸 일부에서 건축되고, 2-3장 모두에서 특히 그리스도와 그분의 신부와 관련이 있고 사람이 처음에 창조된 이유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부부 관계에 관한 기본적인 진리가 제시된다. 그리고 4장에서 이스라엘과 관련된 사건들이 시작된다. 가인은 아벨을 죽였고, 이스라엘은 4000년 후에 그리스도를 죽였다. 그리고 아벨의 피가 땅에서주께 부르짖듯이 그리스도의 피는 아벨의 피보다 더 좋은 것을 말한다(창세기 4:10; 히브리서 12:24). 그리고 창세기 5장 이상으로 넘어가면 노아는 홍수를 무사히 통과하는 이스라엘의 한 예표다. 홍수 너머에 새로운 시작이 있었던 것처럼, 다가오는 멸망의 시간 너머에 새로운 시작이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창세기 11장에서 시작되는 아브라함의 삶으로 이어지고 계속된 이후의 계시를 제외하고는 거의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창세기 21-25장에서 아브라함의 삶의 후반부에 계시 된 다섯 장의 과정에 집중되지만, 이 모든 처음 스물다섯 장은 그 뒤에 이어지는 계시 외에는 거의 이해할 수 없다. 창세기 21장은 그리스도의 초자연적인 탄생을 말하고, 22장은 그리스도의 갈보리 사역 즉 그분의 제물과 희생을 말하는 데 이는 이미 창세기 3-4장에서 이미 본 계시로 사람의 구원과 관련해 연결할 수 있다. 그런 다음 창세기 23-25장까지는 이미 창세기 1-9장까지 계시 된 이스라엘과 교회의 관계를 말한다. 그리고 창세기의 이 다섯 장은 이 모든 것들을 분배하는 틀이 되었다.

 

그다음에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모두에 걸쳐 풍성한 양의 계시가 뒤따르며, 이는 이전에 밝혀진 것을 기반으로 계속해서 건축되는 것이다. 그리고 창세기 21장부터 25장까지 주어진 이 모든 계시는 그리스도인들이 인자의 날과 미래의 주님의 날에 사람과 지구와 이 땅에 관련된 하나님의 사역에 관해 완전히 그리고 자세히 설명해 주는 완전한 말씀 그림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신약성경에 나타난 것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열쇠는 모세와 예언자들, 특히 창세기에 나타난 것을 먼저 이해하는 데 있다. 바꿀 수 없는 진리와 원리는 모두 앞선 계시에서 먼저 제시되었다. 그리고 나중의 계시는 단순히 이전의 계시에 대한 해설을 형성하며, 성령님이 나중에 사람들을 펜으로 움직이게 한 것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이전의 계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계시 전체를 '영적인 것을 영적으로 비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고린도전서 2:9-13).

 

 

창세기 24장으로

 

 

구원과 관련된 성령님의 사역처럼, 하나님의 아들을 위한 신부를 찾는 성령님의 사역도 있다. 하나님이 창세기에 성령님의 사역에 대한 근본적인 진리를 두 영역 모두에서 확립했다면, 이후의 시점에서 두 영역 모두에서 어떠한 변화도 일어날 수 없었다. 예표와 실제 두 분에 성령님은 계십니다. 성령님은 두 번 이스라엘이 제쳐졌을 때(23)와 이스라엘이 회복될 때(25) 사이에 그분의 찾음이 수행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서 이 찾음을 행하십니다(24). 이 경우에 하나님의 백성은 이 이스라엘 연방에서 온 이방인, 모든 영적인 축복이 이방인들에게 흘러 들어가는 나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방인 중 하나 또는 그 이상이 될 수 없다(창세기 12:1-3; 2:12). 따라서 이방 민족 중 어느 민족도 성령님께서 신부를 찾으실 수 있는 장소로 고려될 수 없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따로 떼어 놓으시고, 이방 민족을 위한 복의 통로가 되도록 하셨고, 이스라엘이 차지하도록 정해 놓으신 곳에서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유대인도 이방인도 아닌 완전히 새로운 민족이 존재하게 해야 했다. 그리고 이 새로운 민족은 유대인도 이방인도 아니어도 아브라함의 씨앗이 되어야만 했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은 이전에 영적인 축복이 아브라함과 그의 씨앗을 통해서만 흘러야 한다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창세기 12:1-3; 22:17, 18). 이러한 아브라함과의 연결을 제외하고는, 이 새로운 민족은 영적 축복의 범위 밖에 있을 것이며, 이 점에서 이방 민족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이 새로운 민족을 둘러싼 문제들을 통과시켰는지 주목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신부 찾는 사역을 수행할 수 있는 이스라엘이 아닌 하나님의 백성을 성령님에게 제공하셨다. 이 새로운 민족은 성령님이 이미 생명을 불어넣어 주셔서 그영이 충만하게 되었다). 이것은 A.D. 33년 오순절에 시작된 것으로, 분배 과정을 통해 오늘날 교회 시대까지 계속된다. 성령님의 충만은 구원받은 개인을 그리스도 안에들어가게 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창조물을 건축된다(고린도후서 5:17). 이것은 성령님이 생명이 없는 사람에게 생명을 불어넣을 때 일어난다.

 

이 시간 전에 어떤 사람이 유대인이었다면, 그는 유대인이 아니게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이 시간 전에 그 사람이 이방인이었다면, 그는 이방인이 아니게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유대인도 이방인도 없고 새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모든 사람은 새사람을 이루고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갈라디아서 3:26-29; 에베소서 2:15).

 

그리고 성령의 침례를 통해, 그영이 신부를 찾고 만나기 위해 민족으로 들어가는 모든 자격이 충족된다. 이 민족은 오순절 날에 존재하기 시작했으며, 이스라엘이나 이방 국가와는 별개의 민족이다. 그영께서 신부를 찾으려고 움직이실 새 민족이다. 그러면,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 안에서차지하는 이 입장은 새사람이 하늘에 속한 영적 축복을 얻기 위한 자격을 가지려고 반드시 아브라함의 소유를 취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의 씨이시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사람들은 그분의 몸을 이루며 아브라함의 씨이기도 하고 약속대로 상속이기도 하다(갈라디아서 3:29).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부분은 창세기 24장에 따르면 신부가 가족에게서 나올 뿐만 아니라 창세기 2장에 의하면 몸에서 나온다. 첫 사람이자 첫 번째 아담의 신부는 아담의 몸 일부로 건축된 것이지 그의 몸 전체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것은 두 번째 사람, 마지막 아담의 신부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그분의 몸 전체가 아닌 그분의 몸 일부로부터 건축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그영은 오늘날 옛사람으로 살고, 세상에 속해 있고, 육신에 속해 있는 것으로 계속되는 일, 즉 생명이 없는 사람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계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그영은 또한 오늘날 세상에 존재하며 교회에서 독특한 일을 혼자서 수행하고 있다. 그영이 생명을 불어넣은 사람은 그영 안에 적셔져 그리스도의 신부를 찾기 위해 그영에게 보내어진 사람들 사이에서 그 신부를 찾을 수 있는 위치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찾음은 2,000년의 기간에 걸쳐 일어난다. 그영은 이 새 민족 안에서 이 사람과 함께 가겠느냐?’(창세기 24:58)라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응답할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영은 이 신부들을 시대마다 찾으신다. 2천년 내내 찾으신다. 각 세대의 신부들은, 그영 안으로 잠기게 되고, 계속해서 한새사람에 더해지고, 그영이 신부를 계속 찾으실 수 있다. 하지만 그영의 찾음은 끝나야 한다. 그영께서 그분의 찾음을 수행할 수 있는 한새사람에 더해진 최종 세대가 있어야 하며, 교회 시대가 종료하게 된다. 아브라함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백성 가운데서 행한 일은 창세기 24장에서 예표로 완성되었다. 그리고 이와 동일하게 실제에서 그영의 사역에서도 통과되어야 한다.

 

 

끝에 가까워짐

 

 

성경은 하나님이 인자의 날에 세 번의 분배 사역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하나님은 각각 다른 가정의 종들 즉 한 분배를 다른 것과 구별하는 것과 이러한 가정의 종들을 통해 세상 전체를 다룬다. 그리고 각 분배 사역은 정확히 2,000년 동안 지속되며, 이 세 가지 분배는 인자의 6,000년의 날을 완성한다. 인자의 날 중 첫 번째로 분배되는 동안, 하나님은 특정한 민족을 구성하지 않은 가정의 종들을 다루셨다. 그리고 일반적인 세상은 이 종들을 통해 사역하셨다.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 온 세상을 다스리셨고, 아담에서 노아로 이어지는 다른 가정의의 종들과 노아에서 아브라함으로 이어지는 가정의 종들을 세우셨다. 이 분배는 아담의 창조에서부터 아브라함의 탄생까지 확장되어 인류 역사의 첫 2,000년 동안 이어졌다. 하나님은 이삭이 태어난 지 사백 년이 지난 후에 이스라엘 민족을 세우시고 가정의 종들을 두 번째로 다스리셨다. 이 종들을 통하여 세상을 다스릴 것이다. 이스라엘은 신정국가 안에서 열국의 우두머리로 다스리고, 땅끝까지 하나님의 증인이 될 것이다(출애굽기 4:22, 23; 19:5, 6; 이사야 43:10). 인자의 날 중 두 번째 2,000년의 기간을 다스리는 이 분배는 아브라함의 탄생에서 메시아 왕국이 도래할 그 시간까지 확장된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민족의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박았을 때, 이 분배는 완료되기 7년 전에 중단되었다. 이스라엘 민족의 죄는 정점에 다다랐고, 이스라엘의 악한 잔은 가득 찼다(창세기 15:16). 그리고 하나님은 백성들의 일에 개입하여 사람에 대한 그분의 분배로 다스림에 변화를 가져오셨다. 하나님은 두 번째 분배 때에 시간을 세는 시계를 멈추고 이스라엘과 연결을 끊고 53일 후 오순절에 그영이 보내졌고, 새로운 가정 종들을 통해 사역을 시작하셨다. 그러고 나서 인자의 날에 세 번째 분배가 뒤따랐다. 그리고 하나님은 완전히 새 가정의 종들을 다스리시기 시작했고,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사람'인 새 민족을 세우셨다. 그리고 세상은 이 새 가정의 종들을 통해 다스려져야 했다. 이제 한새사람은 왕의 약속과 축복의 용기(容器)가 되고 하나님의 땅끝의 증인이 되었다(마태복음 21:43; 사도행전 1:8; 베드로전서 2:9-11). 이 분배는 오순절에서 휴거에 이르기까지 확장되며, 인자의 날 세 번째 2,000년의 기간을 포함한다. 이 분배가 진행되면, 그 한새사람은 옮기게 될 것이고,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관계를 회복하실 것이며, 이전 분배의 마지막 7년이 완성될 것입니다. 이 마지막 7년은 인자의 6,000년의 날을 완성할 것이고, 그러고 나서 주님의 날, 네 번째 분배인 메시아 시대가 시작될 것이다. 이 네 번째 분배는 1,000년 동안 지속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기다리는 안식일 날은 아담의 창조로부터 이어진 일곱 번째 천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일곱 번째 천년은 성경 전체가 6일을 시작으로 안식일이 뒤따르게 될 것이다(창세기 1:2-2:3)

 

 

1) 믿음에서 불신으로,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분배가 멈추는 방식 사이에 유사점을 볼 수 있으며, 이는 하나님이 개입하여 새로운 분배 체계 내에서 인간을 다스리기 시작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각각의 경우, 믿음은 분배가 진행됨에 따라 불신이 뒤따른다. 그러면, 불신은 하나님이 사람의 일에 개입하여 변화를 일으키기 전에 정점에 도달하도록 한다. 첫 번째 분배는 인간 창조와 타락에서 시작되었다. 사람이 궁극적으로 그분의 창조 목적을 처음에 도달할 수 있도록 구원이 시작된 후,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신을 알리기 시작하셨는데, 이는 아담이 창조된 지 2,500년이 지난 모세의 날까지 존재하지 않은 쓰여진 계시가 아닌 다른 수단을 통해 이루어졌을 것이다. 사람이 그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기록된 계시 이전에 알려진 그자신, 그의 계획, 그리고 그의 목적은 하나님이 인정되어야 한다. 인간은 이 시기에 신앙을 가졌고, ‘신앙은 단순히 하나님이 밝혀주신 것을 믿는 것으로, 그에 따라 자신의 삶이 통치되는 결과를 낳는다. 아벨, 에녹, 노아와 같은 사람들은 첫 번째 분배(히브리서 11:4-7) 동안 혼을 구하는 믿음(히브리서 10:35-29)’에 따라 행동했다. 그러나 이것은 분배가 끝나는 방식으로 보이지 않는다. 분배는 셈의 후손이 바빌론 지역 우르의 우상 숭배와 관련된 가정에서 나오는 것으로 끝이 난다(여호수아 24:2; 창세기 10:10; 11:1-9).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우르에 있는 그의 집을 떠나 다른 땅으로 여행하는 것과 관련된 지시로 나타나시기 전에 두 번째 분배에서 70년의 세월을 허락하셨다. 그는 그것을 유산으로 받기로 되어 있었다(창세 11:31, 32). 그리고 아브라함은 이 시기에 믿음을 발휘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데, 이것은 그가 이전에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구원받는 문제는 성경에서 실제로 다루지 않는다. 성경은 아브라함의 출생과 결혼에 대한 간략한 언급 외에 그가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의 구원을 소개하고 있으며(창세기 11:26-31), 성경은 이 문제를 거슬러 올라가 다루지 않는다. 로마서 4:3은 종종 아브라함의 구원과 관련이 있다고 언급한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옳지 않다. 로마서 4:3은 창세기 15:6을 인용한 것이다(야고보 2:21-24). 그리고 창세기나 로마 시대의 구절의 맥락은 약속된 유산과 관련된 아브라함의 부름과 관련이 있다. 영원한 구원을 둘러싼 가르침은 성경의 어느 부분에서도 보이지 않는다(창세기 15:7-21; 로마서 4:13-22).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으며, 믿음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히브리서 11:8-22). 그리고 비록 실패가 때때로 발생하기는 했지만 믿음에 의한 구속적이고 전진해 가는 삶이었기에(창세기 12:10-20; 16:1-4) 아브라함은 믿음의 아버지로 알려지게 되었다(로마서 4:11).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나온 민족도 이삭과 야곱을 거쳐 모세의 믿음으로 나아갔다. 그들은 430년 후에 이집트를 떠났고, 바로 그날까지 거슬러 올라가 하나님이 우르에서 아브라함에게 처음 나타났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갈라디아서 3:16-18; 창세기 12:1-3; 출애굽기 12:40, 41).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세 이후 책임 있는 세대의 삶과 행동을 통해 처음으로 보여 주었고,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유대인들에게 회개할 수 있는 수 세기의 기회를 준 후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백성들을 이방 국가들, 즉 처음에는 북부 10개 부족 즉 기원전 722년경 아시리아인들에 의해, 그리고 그다음에는 남부 2개 부족 즉 기원전 605년경 바빌로니아인들에 의해 포로로 잡혀가는 결과를 낳았다. 기원전 586년경, 영광이 성전에서 떠나면서 모세의 날 시나이에 세워진 신권정치에 종지부를 찍었다(에스겔 10, 11).

 

전 족속이 포로로 잡힌 지 70년이 지났다(다니엘 9:2; 예레미야 25:11). 포로 생활에서 돌아간 자는 스룹바벨 휘하의 땅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였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돌아 자는 몇 년 후 에스라와 느헤미야 휘하에 속했다. 성전은 재건되었지만, 영광의 회복은 없었고, 따라서 신정주의도 없었다. 그리고 비록 포로였던 자들이 그 땅으로 돌아왔지만, 대다수 유대인은 그 후 몇 년 동안 이방 국가들 사이에 계속 흩어져 있었다. 오늘날 유대인들이 온 세계에 흩어져 존재하는 상황과 유사하다. 포로로 붙잡혀 있던 유대인들이 그 땅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들은 성전을 재건하려고 했다. 그러나 영광을 되찾지는 못할 것이며, 따라서 신권정치도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유대인 대부분은 이방 민족들 사이에 흩어져 있다. 스룹바벨 휘하로 돌아온 지 500년이 넘도록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무렵까지, 불신은 이스라엘에 확고히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최종적인 결과는 유대인의 왕, 구원자 예수님을 거부하고 궁극적으로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이 시점에서, 비록 분배가 아직 7년이 남아 있었지만, 하나님은 다시 한번 인간의 일에 개입하셨다. 민족이 행한 일로 초래된 불신은 정점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때 하나님은 사람에 대한 그분의 섭리적 거래에 변화를 가져오셨다.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보듯이, ‘신앙발휘는 이 세 번째 분배의 시작을 알렸다. 그러나 그 분배는 첫 번째 분배가 끝났을 때와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끝날 것이었고, 두 번째 분배가 중단되는 결과를 초래한 정확히 같은 조건으로 하나님의 사람들 사이에서 불신으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세 번째 분배가 끝났을 때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서 불신의 표현은 성경에서 분명히 여러 곳에서 예언되었다. 그리스도 자신은 처음 오실 때 그런데도 사람의 아들로 오실 때, 땅 위에서 믿음(그 믿음)을 찾으랴?’고 물었다(누가복음 18:8). ‘신앙은 특히 왕국의 말씀과 관련된 표현이다(사도행전 6:7; 디모데전서 6:10-15; 디모데후서 3:8; 4:7, 8; 유다서 1:3). 그리고 이 질문이 헬라 원문에 단어로 표현되는 방식은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낸다. 이 구절에서 그리스도는 바울의 경고(사도행전 20:29-31; 디모데전서 4:1-3)와 베드로의 두 번째 편지(베드로후서 2:3)와 유다서와 완전히 부합되고, 이 구절들에 의하면 땅 위에서 믿음을 찾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분배의 시작에는 혼의 구원과 관련된 믿음의 메시지였다. 그것은 교회 전체에 걸쳐 보편적으로 선포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는 조건이 완전히 뒤바뀌게 될 것이다. 고립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메시지가 이 땅의 교회에서 선포되는 것을 전혀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대신에 이 메시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알려지지 않거나, 그리스도인들에게 미움을 받고, 경멸당하고, 거부당하고, 반대되는 말을 하게 될 것이다. 성경에는 신약성경 전반에 걸쳐 이 점에 있어서 교회의 역사를 예언하는 두 곳이 있다(마태복음 13:3; 요한계시록 2:1-3:22). 하나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지상 사역 중에 제자들에게 주셨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께서 승천 후에 요한에게 주신 것이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설명, 특히 세 번째와 네 번째 비유(마태복음 13:31-33)는 다음 두 가지 방법을 통해 그리스도교회의 역사와 상태를 보여 준다.

 

a. 세 번째 비유인 겨자씨가 발아하여 비정상적인 성장으로 큰 나무가 된 겨자 나무의 나뭇가지에 공중의 새가 묵고 있는 것은 사탄, 세상의 강한 힘을 묘사한다(마태복음 13:4, 19, 32).

b. 네 번째 비유인 완전한 발효 과정을 거친 누룩이 있다(마태복음 13:33). 그리고 두 비유는 왕국의 말씀과 관련하여 분배의 끝에서 완전한 부패를 보여준다(마태복음 13:31-33).

 

이어 요한계시록의 첫 장에서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대해 밝힌 내용을 통해 그리스도교의 악화 된 역사를 보여준다. 분배의 시작에서 보이는 조건들은 첫사랑을 떠난 에베소의 교회로 묘사되며(요한계시록 2:4), 분배의 끝에서 조건들은 궁극적으로 라오디케아교회의 조건에 의해 묘사된다(요한계시록 3:17). 그리고 마태복음 13장의 비유에서 보듯이, 이것은 왕국의 말씀과 관련하여 분배의 끝에 있는 완전한 부패를 보여준다. 왕국의 말씀이 성경의 두 부분 모두에서 당면한 핵심 쟁점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마태복음 13장의 비유에서, 이것은 비유의 서론을 형성하는 서술된 주제(마태복음 13:3-9, 18-23)이며, 이 주제는 나중에 나열되는 비유(마태복음 13:19, 24, 31, 33) 내내 계속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서, 이것은 명백한 중심 주제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체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역들은 왕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위치를 극복하고 차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 일곱 개의 편지들의 각각의 중심 주제를 다룬다. 그리고 각각의 편지들은 이 점에서 정확히 유사하게 구성되어 있다. 마태복음 13장의 첫 네 개의 비유와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의 일곱 개의 편지는 각각 다른 관점에서 동일한 주제를 다룬다. 두 구역 모두 은혜에 의한 구원과 관련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성경의 두 부분에 있는 모든 문제는 현재와 미래의 구원, 즉 영혼의 구원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성경의 이 구절들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이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불신앙은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사람에 대한 그분의 섭리적 처리를 변경하시는 세 번 각각에서 볼 수 있습니다. 두 가지가 이미 이루어졌고 세 번째도 곧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일단 세 번째가 일어나면, 이것은 하나님이 다시 한번 이스라엘과의 거래를 시작하고 이전 세대의 성취되지 않은 7년을 가져오도록 허용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유대 민족에게 적용되는 진리를 보지만 인자의 날에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다스리는 마지막 7년 동안 불신앙이 이스라엘 진영에 계속 존재할 것임을 주목해야 한다. 불신앙 상태에 있는 열방에 흩어져 있는 유대 민족을 발견하고 어떤 면에서 이 불신앙은 다니엘의 69주 말에 도달한 정점에서 계속되는 불신앙일 것이다.

 

다니엘의 칠십 이레 예언의 시간과 관련하여 환란이 시작될 때 (다니엘의 예언으로 시간이 다시 시작될 때) 유대 민족은 시간적으로 그들의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위치에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날의 유대인 세대 즉 분명히 현재 지상에 사는 동일한 세대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2,000년 전에 메시아가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살았던 유대인 세대와 마찬가지로 이 행위에 대한 죄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에 일어날 특정한 관련 사건 예를 들어, 구약 성도들의 부활, 이스라엘의 땅 회복, 이방 세계 강국의 멸망에 이어 하나님의 섭리적 다스림의 변화가 다시 한번 일어날 것이다. 지난 2,000년 동안 유대인의 다음 세대는 항상 이전 세대와 마찬가지로 죄를 지었다. 시간의 흐름과 세대의 흐름은 이 점에서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마태복음 23:34-39; 누가복음 13:33). 그런 다음 메시아의 재림과 이스라엘의 민족적 회개와 회심에 이어 유대민족이 그들이 찌른 그분을 바라볼 때 불신앙이 믿음으로 바뀔 것이다. 그리고 이때 일어날 특정한 관련 사건 즉 예를 들어, 구약 성도들의 부활, 이스라엘의 땅 회복, 이방 세계 강국의 멸망에 이어 하나님의 섭리적 다스림의 변화가 다시 한번 일어날 것이다.

 

 

2)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지 못함

 

 

메시아가 유대 민족에게 처음으로 나타날 대략적인 시간을 예언한 다니엘의 70주 예언을 근거로,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유대 민족에게 적용되는 진리를 보지만 그리스도인에게로 옮겨졌을 때 이와 동일한 진리를 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재빠르게 이 예언을 지적하고 다니엘의 예언의 시간인 끝 무렵에 사는 유대인 세대가 메시아가 나타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고 그들이 준비했어야 했다는 사실에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다. 유대 민족은 그들의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들의 메시아가 나타날 때를 준비했어야 했다. 그들은 때가 가까웠다고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게 있었다. 그러나 이와 동일한 측면에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보지 못하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시간이 가까움에 관한 평행 진리가 있다. 그리고 이 문제에 관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지식과 준비는 그리스도의 초림을 목격한 유대인 세대의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기 위해 오직 한 가지, 즉 경륜과 인자의 날과 관련된 연대기를 살펴보기만 하면 된다. 오늘날 교회시대는 정확히 2,000년 동안 지속될 것이며, 인자의 날은 정확히 6,000년 동안 지속될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은 뒤를 돌아보고 몇 가지 간단한 수학적 계산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2,000년 전에 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은 것과 같은 일이다.

 

그러나 약간의 문제가 있다. 하나님은 명백히 인간이 사용하는 달력이 바뀌도록 허용하신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렇게 많이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재림하시는 정확한 연도나 날을 알 수 없지만, 대략적인 시간은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의 초림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때가 가까웠다는 것을 알려주는 연대계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무시되었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셨을 때 사람들은 준비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와 동일한 점에서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있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그때가 다시 한번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연대계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무시되고 있으며, 이스라엘 백성과 같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나타나실 때 준비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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