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새벽이슬처럼

음녀의 딸들

Hernhut 2019. 6. 13. 21:39


 

로마카톨릭은 이런 행위만 있는 곳이 아니다. 요한계시록 17장에 따르면 그녀는 큰 음녀요, 음녀의 어머니다(17:1, 5). 그녀는 많은 딸이 있다. 그 딸들 역시 어머니 음녀가 하는 행동을 똑같이 따라한다. 우리를 포함한 그리스도인 모든 무리들도 사람들을 모으면 약간의 누룩을 기쁘게 추가시킬 것이다.

이러한 방식을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음녀의 딸들과 같다. 그들은 스스로 음녀가 아니고 큰 단체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음녀처럼 행동함으로써 그녀와 가까워지기를 원한다. 그들은 무언가를 하고 추가하는 것이 복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접하기 쉽고, 받아들이기 쉬운 것을 전람함으로써 사람들은 좋다고 느끼게 한다. 그들이 하고 있는 모든 것은 가루 안에 더 많은 누룩을 혼합시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추가하는 것은 영적인 것이어야 한다.

오래 전 한국에는 교회가 종을 치고, 십자가를 다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래서 정부는 종치는 것과 십자가 네온사인을 켜는 것을 막았다. 정부는 모이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고 그들은 복음을 전하거나 성경을 읽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한번은 큰 교회의 한 목사가 내게 와서는 화를 냈다. 그는 내가 그리스도의 실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라고 말하면서 그분의 십자가 형상에 관해 관심을 두지 말라고 한 것 때문에 쇼크를 받았다고 분을 낸 것이다. 결국 몇 년이 안 돼 교회의 종을 치지 못하게 됐고, 교회당 십자가의 네온사인에 불이 들어오지 못하게 됐다. 며칠이 안 되어 다시 나를 찾아와 그 목사는 흥분해서 말했다.

어떻게 된 건지 알아? 전깃불을 껐을 때 십자가 꼭대기에 큰 빛이 나타났어.”

이런 일은 믿기 어렵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누군가가 뭔가를 보고서 그것에 관해 말을 하면 할수록 더 확산되었거나 잠깐씩 스위치를 올렸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재미있다. 그들은 모든 것에 관심을 두지만 모두 그리스도를 위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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