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주님은 말씀하셨다.
『그러나 좋은 땅 속에 씨를 받은 자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마13:23a)
말씀을 깨닫는다는 것은 삶에 적용하도록 여러 사람이 말해낸 것을 받아 넣어 두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단순하게 우리 생각으로 이해하는 차원이 아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적용할 방법을 아는 것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사는 방법을 말하고 계실 때 어떤 것을 행하라고 말씀하고 계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주님께서 그분께 우리의 생명을 헌신하기 원하실 때 우리가 모임에 가면 그분께서 행복해 하신다고 생각할 수 있다. 주님은 우리의 행함이 아닌 우리를 따르시지만 이것은 우리의 이해를 요구하시는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대학교를 졸업할 때 대학교를 가거나 사회에 진출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결정적인 요인은 학교나 전공이 아니다. 그가 얼마나 이해하고, 알고 있는가의 문제다. 수많은 학교가 있고, 전공이 있으며, 직업이 있다. 그가 영적인 깨달음이 없다면 그가 선택하는 것이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선택을 한다. 하지만 주님께서 원하시는 식견을 갖고, 주의 말씀을 적용하는 것을 안다면 그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의 선택은 그리스도의 머리되심 아래에 있는 것이요, 앞으로 길게 보았을 때 결국에는 그의 삶에서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이 깨달음의 수준은 식견을 요구한다. 우리가 식견을 가질 때 우리는 우리의 선택, 일, 사역 등의 가치를 안다. 바울은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 안에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고후 4:7).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질그릇들이다. 우리의 질그릇에 가득 채워진 것이 우리가 어떤 가치가 있는지, 우리가 영적인 일 가운데 얼마나 많은 식견과 깨달음을 자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많은 교회의 세미나, 컨퍼런스,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앉아 있지만 우리가 가치 있는 것을 붙잡는 방법을 알지 못하면 우리를 좋지 못하게 할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열정적이지만 어떤 식견이 없다. 그들은 순수하게 주님을 섬기고 기쁘시게 하기 원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주님과 하나 됨이 없다. 그들은 주님을 소유하지 못한다. 그들은 깨달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을 붙잡을 수 없다. 이것이 우리가 우리 교회생활에 관심 두어야 하는 이유다. 교회생활은 우리가 합당하게 성장할 수 있는 곳이며, 영적인 식견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건강한 교회생활 없이 합당하게 자라기 어렵다. 우리가 살아내야 하는 생명은 하나다. 우리는 그 생명을 잃고 싶지 않다. 우리는 가치 있는 것을 배워야 한다.
좋은 땅으로 대표된 사람들은 깨달음이 풍성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마음에 순수함이 있고, 다른 것들과 섞이지 않았으며, 투명하다. 세상은 세상의 방법이 있지만 그들은 계속 세상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좋은 땅의 사람들은 주님과의 사이에서 관심에 대한 갈등이 없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그들도 원한다. 그들이 주님과 하나이기 때문에 그들의 목적은 그분 자신이다. 그들은 하늘에 속한 식견과 땅에 속한 식견을 다 가지고 있다. 그들은 기꺼이 주의 말씀을 얻어 그들 안에서 생명을 성숙케 하고 열매로서 산출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