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새벽이슬처럼

가시들

Hernhut 2019. 4. 10. 15:20


 

이제 세 번째로 보아야 하는 것은 가시들이다.

더러는 가시나무들 사이에 떨어지매 가시나무들이 돋아나 그것들을 숨 막히게 하였느니라.(13:7)

가시들은 분주하게 돌아다니지 않고, 적은 양의 돌들이 있는 토양에서 잘 자란다. 가시들은 종자를 뿌리는 자가 뿌린 긍정적인 것을 포함해 모든 다른 것을 숨 막히게 하고 아주 잘 자란다. 가시들은 다른 식물이 자라지 못하게 하고, 퍼지게 못하도록 숨 막히게 한다. 가시들이 땅에 떨어지는 한 완전히 모든 땅을 장악할 때까지 퍼진다. 결국 다른 어떤 것이 자랄 여지가 없다. 땅은 쓸모없는 가시들의 밭이 되어 다른 식물이 들어갈 엄두도 못 낸다.

내가 어릴 때 서산에서 살았는데 그곳에서 이런 가시밭을 보았다. 어떤 밭은 넓게 가시들이 퍼져 있었다. 찌르는 고통을 주는 가시들을 피할 수가 없어 이 밭에 들어가는 사람이 없었다. 가시들은 얽히고설킨 엉망진창의 상태로 아무데서나 자랐다. 어른들은 나와 같은 꼬맹이들이 그곳 근처에서 노는 것을 막았다.

너희들이 그곳에 들어가면...

어른들은 말했다.

너희는 상처를 입을 거야. 그러니까 가시에서 멀리 떨어져서 놀아야 해!

이 경고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주님의 경고다.

가시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우리는 우리가 부활 안에서 이기고, 어떤 가시들도 우리를 만질 수 없다고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이 비유는 우리가 주의하지 않는다면 가시들이 우리를 감싸서 숨 막히게 할 것이라는 경고를 하고 있다.

결국 이런 가시들 때문에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이유를 알지도 못한다. 또 가시들 때문에 그리스도께 구별되지 않은 이유도 모른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 우리의 모든 삶은 달라진다. 가시들이 우리를 찌르고, 생명호흡을 막기 때문에 우리는 더 지배를 받는다.

주님은 가시들의 정체를 밝히셨다.

가시나무들 사이에 씨를 받은 자 또한 말씀을 듣되 이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속임수가 말씀을 숨 막히게 하므로 열매 맺지 못하는 자니라.(13:22).

가시들은 미묘하고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우리 삶을 지배한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질문을 하고, 세상의 이론, 정당성, 합리적 주장을 펴기도 한다. 과학을 내세우고, 인권, 인간의 도리도 주장한다. 그들은 자기에게 질문하기도 한다.

나는 일반적이고, 합리적인 삶을 살지 말아야 하는가?

내가 편안하게 사는 것을 말하지 말아야 하나?

우리가 이런 생각을 품으면 품을수록 그것들은 우리의 사랑을 숨 막히게 하고, 주님께 헌신하지 못하게 한다. 결국 우리가 이런 가시들을 품고 살다보면 우리 비그리스도인 이웃과 같이 아주 편안한 삶을 살 수 있겠지만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전척으로 주님을 봉사하는 것에서 멀어지게 된다.

어떤 이유로든 그 밭은 잃어버리고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불태우는 방법 밖에는 없다. 모든 밭에 있는 가시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불태워야 한다. 불태우는 일은 주님의 심판 때나 이 교회시대가 끝나고 야곱의 고난 때 일어날 일들을 의미한다(고전 3:1215). 가시들이 불로 소각된 후에만 그 땅이 회복될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한다.

자기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땅을 가는 자들에게 합당한 채소를 내는 땅은 하나님께 복을 받으려니와 가시와 찔레를 내는 것은 버려지고 저주함에 가까이 있어 마지막에는 그것이 불살라지리라.( 6:78)

이와 같은 제거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긍휼이다. 그렇지만 그분께는 영광이 아니다. 가시들을 조심하라. 가시들은 자기를 위한 얕은 생각과 얕은 사고만으로 시작한다. 가시들은 우리 개인적인 삶을 침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온 교회에도 침투할 수 있다. 교회가 새로운 사람들을 끌기 위해 교회질서와 행정들, 복음적 실행들을 기꺼이 낮추는 데 필사적이었다면 교회는 가시들의 밭이 될 위험성 있다. 그런 경우 작은 것부터 시작하고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그리스도 그분 자신의 머리되심에 손상이 간다. 아무도 감시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바르게 교회질서와 행정 그리고 성경적인 실행들이 손상을 입을 수 있고, 교파들, 자유그룹, 그리고 종교적 단체보다도 더 못하게 된다.

주의 긍휼로 그분은 계속 뿌리시고 계신다. 그분은 가끔 우리가 분주함, 돌들, 그리고 가시들로부터 해방될 것이라는 것을 아신다. 이런 해방의 상태는 오래가지 않을 수 있지만 그분이 항상 뿌리시고 계시기 때문에 그것으로 충분하다. 우리가 주의 임재 안에서 회복될 때 좋은 토양을 찾아 그분은 무엇인가 뿌리시고 그분의 개입으로 자란다. 우리가 분주함, 돌들이 섞이고, 가시들이 남으로 좌절하는 것을 이기기에 충분한 지혜가 있고, 주님께서 우리 안으로 뿌리시는 것을 주의 깊게 지키고, 물을 공급한다면 우리는 주님 안에서 아주 잘 자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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