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새벽이슬처럼

작물을 거두다.

Hernhut 2019. 3. 21. 10:43


 

시편기자는 기록했다.

하늘들에 앉으시는 분이 웃으시느니라.(2:4)

하나님께서 웃으시는 것 외에 우리와 같이 사람들과 함께 하실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분은 우리 안에서 거룩하고, 하늘에 속한 것들이 자라기를 원하신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의 길가의 빈번함, 작은 돌, 아름다운 가시들을 위해 그분과 싸운다. 우리는 그분을 만지는데 있어서 너무 선택적이다.

주님께서 종자를 뿌리시는 곳을 선택해서 뿌리시지 않는 것은 너무 좋은 것이다. 그분은 우리가 너무 빨리 변한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그분은 너그러우시다. 우리의 토양은 오늘 아주 좋지만 내일은 어떨까? 우리는 오늘 가련한 토양이 될 수 있지만 다음 주모든 것이 바뀔 수 있다. 주님은 어떤 사람이 작물을 거둘 좋은 땅일 것이라는 것을 아시고 종자를 뿌리신다.

빈번하게 오고가는 상태에서는 어렵지만 그래도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굳어지지 않도록 주님께서 우리를 만지시도록 해야 한다. 큰 바위들이 되어가는 상태에서 우리의 작은 돌들을 유지하는 것 또한 어렵지만 아니예요.”라고 주님께 말하면서 우리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면 우리 그리스도인 생활은 항상 그늘지게 될 것이다. 바위들은 좋은 직업을 갖고, 잘 살게 되고, 어떤 이웃과 어울려 사는 것과 같이 아주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돌들에서 나온다. 하지만 이 합리적인 것들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에 방해가 될 수 있다. 먼저 자기의 아버지를 장례치를 필요가 있어 주님을 따를 수 없었던 사람을 기억하라. 그가 두 번째 기회를 잡았다는 기록이 전혀 없다.

분주하지 않고, 돌들이 없다면 그 토양은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자랄 준비가 된 것이다. 하지만 왠지 가시들이 자라기 쉽고, 더욱이 가시들은 항상 우리가 식물을 키우고, 좋은 작물을 거두는 것보다 더 빨리 뿌려지고, 더 빨리 자라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라. 우리가 우리 안에 이 모든 토양이 있고, 주의 긍휼을 떠나서는 좋은 토양을 가지고 있을 가망성이 없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적어도 좋은 토양이라고 불리는 작은 구석의 땅뙈기가 있다. 종자를 뿌리는 자 몇은 그 땅에 뿌린다.

어떤 것은 자라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가 조금씩이라도 합병할 수 있다면 이 조그마한 구석은 커지고, 다른 토양을 합병시키기 시작할 것이다. 시간이 지나 그 토양들은 우리의 마음을 덜 차지할 것이고, 좋은 토양을 더 차지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갈망이다.

그러나 다른 것은 좋은 땅 속에 떨어지매 얼마는 백 배, 얼마는 육십 배, 얼마는 삼십 배의 열매를 내었느니라.(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