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새벽이슬처럼

주님께서 차별 없이 종자를 뿌리심

Hernhut 2019. 3. 16. 15:35


 

우리가 종자를 뿌리는 자에 대해 생각할 때 곡식이나 식물을 재배하는 곳을 결정하는데 있어 잘 검토하여 판단하고, 잘 돌볼 사람을 사용하려고 한다. 이것은 아주 정상적인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땅은 작물을 심기에는 너무 산성이다. 어떤 땅은 너무 그늘이 졌고, 어떤 땅은 메말랐다. 땅마다 심어야 할 작물이 있다. 다른 작물을 심으면 좋은 과실이나 곡물을 수확할 수 없다. 작물을 심어야 할 땅이 큰 차이를 만든다. 어떤 농부는 이러한 것을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주 예수님은 다르시다. 그분은 보통으로 종자를 뿌리시는 보통의 농부가 아니시다. 그분은 그분 자신을 뿌리신다. 그분은 어떤 땅을 고려하지 않고 뿌리신다. 그분이 뿌리시는 것 중 어떤 것은 길가에 떨어지고, 어떤 것은 자갈이 섞인 곳에 떨어지고, 어떤 것은 가시가 나는 곳에 떨어진다. 물론 이 여러 종류의 토양은 우리 마음을 대표한다. 그분께서 우리 마음속에 심으신 토양에 관심이 계셨다면 우리 중 아무도 자격이 없었을 것이다. 그분은 사람들을 분류하실 수 없으시다. 그분은 사람의 상태만을 분류하실 수 있으시다. 왜냐면 모든 사람의 상태는 변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좋은 땅일 수는 있지만 작년에 아니 몇 달 전에 길가의 땅이었을 수도 있다. 어느 날 우리는 자갈이 섞인 곳이었고, 다음엔 가시가 자라는 곳이었다. 어떤 때에는 우리가 자갈도 있고, 가시도 있는 토양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종자 뿌리시는 주님은 모든 사람이 있는 곳에 뿌리신다. 아무도 소외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무슨 종류의 토양인지를 묻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모든 토양이다. 다른 종류의 토양은 다른 때에 더 눈에 잘 띈다. 젊은 자매는 그녀가 약혼까지 아주 좋은 토양이 될 수 있다. 그런 후 그녀는 결혼 계획을 세우고, 바쁜 일정이 될 것이다. 결혼이 끝날 때까지 주님께서 뿌리시는 것은 차이가 없다. 주님께서 그녀 안으로 어떤 헌신을 뿌리시기 원하신다면 그녀는 금방 자기의 새신랑에 대한 마음의 여지만 있다고 그분께 말할 것이다. 주님께서 새신랑을 만지려고 하신다면 그녀 안이 빠르게 커다란 바위가 될 것이다. 그들이 아파트를 구입하고, 가구로 채우는 것처럼 모든 가시들이 자랄 것이다. 하지만 몇 년 후 그런 일들이 끝났을 때 좋은 토양은 다시 나올 것이다. 아이들이 태어날 때 또 다시 일어난다. 이 모든 것이 일반적인 것이고, 우리 각자에게 일어난다.

우리는 주님께서 항상 용서하는 것을 준비하시고,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실 것을 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때마다 영적인 생활에서 달아나기 쉽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우리의 상태가 어떠하든지, 우리가 얼마나 멀리 달아났던지 문제가 될 수 없고, 다만 주님께서 뿌리시는 것이 있느냐가 문제다. 주님께서 뿌리실 때 우리의 마음의 토양이 어떤 종류인가의 문제다. 결국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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