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새벽이슬처럼

전파하기

Hernhut 2019. 3. 14. 11:17


 

하나님의 시편을 쓴 다윗왕은 말했다.

내가 너를 훈계하며 네가 가야 할 길로 너를 가르치고 내 눈으로 너를 지도하리로다.(32:8)

여기서 주님은 가르치고, 훈계하실 것을 우리에게 약속하시고, 우리를 주의 눈으로 지도하실 것을 약속하신다. 그분의 눈은 우리에게 그분의 갈망을 전송하신다. 이것은 우리가 주의 뿌리심을 아는 세 번째 방법이다.

젊은 남녀가 사랑에 빠졌을 때 그들의 눈으로 대화하는 것을 빠르게 배운다. 그들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랑의 메시지를 보낸다.

조금 더 말해!

거기까지만 말해!

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을 알아듣는다. 기쁨과 분노도 눈만으로 쉽게 대화가 된다. 그들이 서로를 위한 눈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누구에게도 메시지를 전할 수 없다.

비록 우리가 주님을 볼 수 없을지라도 그분의 눈은 항상 우리에게 그분의 갈망을 전송하고 계신 듯하다. 우리가 행하는 것으로 그분의 기쁨과 불쾌감을 보내신 적이 없었는가? 우리가 옆길로 샐 때에도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가? 그분은 우리의 마음이 찢어졌을 때 그분을 사랑하도록 끌어당기지 않으시는가? 그분은 끊임없이 그분의 말씀으로 돌아오게 하고, 그분의 몸과 교제하도록 하시지 않으시는가? 그것은 옳고 그름의 무제도 아니요, 종교적 의무에 대한 것도 아니다. 그분은 그분의 눈으로 호소하시고, 얻으신다. 빌립이 마차에 앉아 있는 에티오피아 내시를 보았을 때 그 영의 음성을 들었다.

가까이 가서 이 병거에 합류하라.(8:29b)

나는 잘 들리는 단어로 성령께서 빌립에게 말씀하셨다고 믿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이 단어가 눈으로 전송되었다고 믿는다. 빌립이 내시를 보자마자 복음으로 그에게 가야한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가끔 어떤 사람이 혼자 앉아 있을 때 이런 느낌을 갖지 못하는가? 우리에게 있는 갈등은 우리가 거의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빌립은 순종했다. 결과적으로 복음은 교회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프리카로 전파되었다. 오늘날까지도 아프리카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성경, 기름부음, 하나님의 살아있는 전도는 우리 안으로 주님의 뿌리심이다. 이 세 항목은 겹친다. 또 이 세 항목은 같은 것을 말해야 한다. 주님은 결코 자신을 부인하시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가 그분의 뿌리시는 것을 느낄 때 우리는 우리 안에 풍성하게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취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3:16). 그러면 주님께서 뿌리신 것이 뿌리를 내릴 수 있고, 그분이 갈망하시는 열매를 맺을 때까지 우리 안에서 자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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