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 그리스도에 대한 구약성경의 가장 좋은 그림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은 구약성경에서 교회에 대한 많은 그림을 계시하셨다. 아담, 이브,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을 통해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실제, 교회의 실제, 예수님을 사랑하는 이의 성장과 전진에 관한 많은 것을 계시하셨다.
이 모든 것에 따라 구약성경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어떻게 얻으셨는지를 계시하신다. 모세 앞에 갔던 모든 이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개인적으로 주님을 체험했다. 하지만 모세의 체험은 달랐다. 그가 하나님과 개인적인 거래를 한 반면 또 하나님의 자녀들을 모았고,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제사장에 속한 왕국을 세웠으며, 하나님에 대해 증거했다.
모세의 전 생애는 신성한 사역과 계시로 채워졌다. 모세를 통해 하나님은 구약성경에서의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가장 강하고 중요한 예표와 그림자를 계시하셨다. 안식일과 절기를 포함한 율법, 제사장직분과 제물을 포함한 성막이 바로 그것이다. 이 계시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그림은 십계명이요, 교회에 대한 그림은 성막이다. 성막은 하나님의 마음의 갈망, 하나님의 사역의 원칙, 하나님의 공급,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사역,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성을 위한 구원과 소망을 설명한다.
이것이 모든 구약성경에서 성막이 꼭대기에 있는 그림이요, 가장 좋은 그림이요, 우리가 생각할 가장 풍성한 그림인 이유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은 성막을 알고, 인정하고, 이해하고, 체험하고, 누리고, 실제에 참여하고, 성막에 따라 합당하게 자라야 한다.
두 가지 문제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이는 장막을 건축해야 한다는 것을 밝히신 것처럼 그분은 특별한 주문을 하셨다. 그분은 지성소에 있는 증거 궤에서 시작하셔서 성소에 있는 진설병 떡 상과 금등잔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깥뜰 놋제단으로 나가 일을 하셨다. 이 일엔 네 항목이 있었다.
하지만 모세가 지혜로운 장인(匠人)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함께 성막을 건축한 것처럼 하나님은 두 항목을 더 추가하셨다. 하나님께서 놋대야와 금향제단을 추가하심으로 여섯 항목을 만들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두 항목을 추가하신 것은 제사장들이 바깥에서 들어오고, 반대 방향에서 왔기 때문이었고, 놋제단에 그들의 제물을 두고 성막 바깥뜰로 들어옴으로 첫 번째 문제와 부딪혔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아무리 많이 드렸어도 여전히 깨끗하지 않았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씻을 대야가 필요했다.
그들이 진설병과 금등잔을 누리기 위해 성소로 들어간 후 그들은 하나님께 악취를 풍기는 두 번째 문제와 부딪혔다. 그들은 그들이 지성소에 있는 증거 궤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마지막 목표에 도달하기 전 향제단에서 향을 피울 필요가 있었다.
우리의 목표
성막의 그림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도달하기 원하시는 목표가 지성소에 있는 증거 궤에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 궤는 하나님 자신을 대표한다. 하지만 우리 중 극소수가 이 목표를 세웠다. 우리는 더 작은 것들로 훨씬 만족될 것처럼 보인다. 우리 중 더 영적인 이가 바깥뜰과 성소에 있는 항목에 대한 체험에 목표를 둔다. 바깥뜰과 성소의 체험은 교회생활 가운데 깨끗케 하는 피를 체험하는 제단, 씻는 물을 체험하는 대야, 생명의 빵을 체험하는 진설병, 하나님의 빛 비춤을 체험하는 금등잔으로 이뤄진다. 이러한 각 체험은 놀랍고, 영적이고, 하나님께 속한 것이지만 증거 궤의 하나님의 목표에 미치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은 높은 학력, 승진, 더 큰 집과 같은 성막 밖의 것에 눈을 돌린다. 이런 것들이 필요하지만 신약성경 제사장들로서 우리는 “나는 증거 궤의 원칙 안에서 하나님의 목표에 도달하고, 주님의 증거를 전할하기를 갈망한다. 나는 아무것에도 눈을 돌리지 않는다.”고 선포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목표가 우리의 목표라면 다른 모든 것은 이 목적을 섬길 것이다.
브살렐과 오홀리압
하나님은 지혜로운 장인(匠人) 브살렐과 오홀리압 둘을 임명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성막과 관련해 모세에게 보여주신 모든 것을 건축하도록 하셨다(출 31:1–6). 그들은 지혜, 명철, 지식, 그리고 장인적인 정신과 기술 안에서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했었다(출 31:3). 이 각 사람은 하늘에 속한 성막을 건축하시는 그리스도의 어떠함을 상징한다(계 15:5).
브살렐은 “하나님의 그늘 아래서,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 아래서”라는 뜻이다. 그리스도는 항상 하나님의 그늘과 보호 아래에 숨는다. 우리 또한 우리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긍휼에 의지하려고 하나님 안에 숨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늘과 보호 아래에 숨지 않고는 하나님의 목표에 도달할 방법이 없다. 오! 우리는 우리의 구세주로서 그리스도 얼마나 필요한지!
오홀리압은 “아버지는 나의 장막”을 의미한다. 우리가 성막생활을 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장막생활을 한다는 느낌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오늘 여기에 있지만 우리가 내일 있을 곳은 주님께 달려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산 아브라함과 같다. “믿음으로 그는 낯선 나라에 머무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머물렀고 자기와 함께 동일한 약속의 상속자가 된 이삭과 야곱과 함께 장막들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기초들이 있는 한 도시를 바랐기 때문이라. 그것의 건축자와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시니라.”(히11:9-10) 우리는 우리가 영원까지 영구적인 거주지를 얻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
성막은 그리스도 자신에 대한 계시다. 그리스도는 어떤 죄도 알지 못하는 분으로서 오셨고, 그분 안에는 증거 궤의 실제가 있었다. 비록 그분이 증거 궤로서 오셨을지라도 그분은 진설병 떡 상으로서 죄인들 가운데 사셨다. 그분은 “내가 곧 생명의 빵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것이요, 나를 믿는 자는 결코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고 증거하셨다. 생명의 빵으로서 그분은 교회를 통해 표현된 그리스도의 몸인 금등잔을 산출하도록 움직이셨다(계. 1:20). 결국 그분은 죄 없는 분으로서 하나님께 증거하셨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세상에 들어오실 때에 이르시되, 희생물과 헌물은 주께서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나이다........그 뒤에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오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내가 주의 뜻을 행하러 오나이다, 하셨으니 그분께서 첫째 것을 제거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히 10:5, 9) 그분은 우리를 위해 그분의 준비된 몸을 드리고, 십자가에서 그분의 흘리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께 그분 자신을 완전히 헌신함으로 놋제단이 되셨다.
사도요한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그분은 피뿐만 아니라 물도 흘리셨다고 우리에게 말한다(요 19:34). 이러한 놀라운 구원을 이루시는 그분은 주님께 헌신하고, 주님을 섬기려고 준비하고, 그분께 자신들의 삶을 드리고, 그리스도 안으로 살고, 한 가지의 관점을 갖고, 그리스도를 얻는 목표만을 갖는 이들을 위해 대야를 준비하셨다.
우리가 오늘날 신약성경 제사장들이 되기를 갈망한다면 구원받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우리가 너무 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을지라도 주님께 우리 자신을 완전히 헌신해야 한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소유하고, 예수님을 추구하는 이들만이 놋제단(헌신)과 놋대야(자신의 약함과 한계를 앎)를 통해 성막의 풍성함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런 후에만 우리는 성막의 모든 풍성함에 들어가 누릴 준비가 된다.
신약성경 제사장직분은 구원을 외치는 것 이상이다. 섬기는 제사장은 지불해야 할 값이 있다. 그들이 돌아봐야 할 삶이 있다. 그들이 소유해야 할 실재가 있다. 제사장들은 자신들의 죄가 예수님의 피로 용서되었음을 설명해야 할 뿐만 아니라 준비되고, 주님 안으로 더 깊이 기꺼이 이끌려져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교회생활이 필요하다. 교회생활 없이 섬기는 사람이 되기는 매우 힘들다. 주님 긍휼을 베푸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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