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뜰과 더불어 성막은 구약성경 전체에 있는 가장 좋은 그림이다. 그 성막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트라이윤하나님, 하나님의 사역, 그분의 갈망과 증거를 볼 수 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그분의 경륜을 보이시지 않으시고, 그분의 경륜이 우리의 영적성장을 통해 그분의 교회건축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를 드러내시지 않으신다. 아주 많은 각도로 많은 신성한 풍성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성막은 2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봉사했다. 하지만 성막은 아주 작았다. 하나님은 성막에 아주 인색해 보였다. 교회생활을 한지 30여년이 지나 이제 나는 교회생활이 나의 모든 영적체험을 담기에 충분히 크다고 말할 수 있다. 교회생활에서 우리는 좋아 보일 수 있고, 나빠 보일 수도 있다. 격려를 받을 수도 있고, 실망을 할 수도 있다. 기쁠 수도 있고 우울할 수도 있다. 이것이 교회생활이다. 우리가 성막의 것을 보면 볼수록 우리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롬 8:28b)는 것을 더 볼 수 있다.
내가 구원받던 그날 나는 성막의 체험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절대 나가지 않는다. 내가 젊었을 때 바깥뜰에서 시간을 보냈다. 나는 내 모든 죄를 없애신 희생으로서 예수님을 누렸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주님의 긍휼로 나는 결국 그분을 섬기기 위해 내 자신을 헌신했고, 신약성경 제사장 중의 한 사람으로서 성소에 들어갔다. 여기서 나는 진설병을 먹었고, 금등잔을 체험했다. 성소에 있는 등잔은 방짜로 만들어졌고(출 25:31), 많은 시간 나의 체험이 등잔과 연결된 것처럼 보인다. 주님은 내 주변의 이들과 내 환경으로 나를 두들겨 나를 만드시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두들김은 항상 진설병을 누리고, 나누는 것으로 왔다. 가끔 나는 하나님의 궤가 있는 지성소를 만졌다.
우리가 성막의 모든 방면을 완전히 인정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모든 영적체험이 거기에 그려져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우리가 체험하는 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우리의 체험은 몇 세대에 걸쳐 지성소에 있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를 좌절시키거나 괴롭게 하지 말아야 한다. 대신 우리는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따르고, 그분의 괌심을 위해 싸울 수 있다는 것을 주님께 찬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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