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퍼런스/모세

신성한 약속을 전달하는 사람(7)

Hernhut 2017. 7. 12. 20:31


 

성막은 2백만 이스라엘사람들이 경배할 장소가 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꽤 작았다. 하나님은 광야에 계셨고, 심지어 세상에 계셨고, 함께 일해야 했지만 그분은 너무나 작게 디자인하셨다. 그 벽 바깥은 소위 사역, 종교적 행위라고 불리는 모든 일을 위해 많은 방이 있었지만 그 안은 하나님의 경륜(經綸)만 있었다. 그분이 사이즈를 강조하기 원하시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그 모든 항목들과 그분의 갈망으로 대표하는 영적인 실제를 전달하는데 더 관심이 있으셨다.

 

심지어 사람과 하나님이 만나는 지성소였던 궤가 아주 작아 보이지만 하나님은 방식에 따라 설계되는 것을 기뻐하셨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들은 시팀나무로 궤를 만들되 그것의 길이가 이 큐빗 반, 너비가 일 큐빗 반, 높이가 일 큐빗 반이 되게 할지니라.”(25:10)고 말씀하셨다. 궤는 하나님 자신을 대표하지만 모든 치수는 0.5큐빗(22.86cm) 단위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는가? 하나님은 풍성함, 완전함이시고, 부족한 것이 없으시다. 하지만 그분께서 사람과 만나러 오실 때 그분은 0.5만 그분 자신을 나타내신다.

 

하나님의 필요

하나님은 어떤 것이 부족하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인성 없이 그분은 왠지 부족하시다. 그렇다. 하나님은 그분 자신 안에서는 완전하시지만 궤의 치수 안에 계신 그분은 그분께서 5큐빗(2.286m) 되시려고 2.5큐빗(1.143m), 3큐빗(1.3716m)이 되시려고 1.5큐빗(68.58cm)이 되신다고 증거하셨다. 우리는 우기가 하나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필요로 하시는지를 생각하지 않는다. 교회가 그분의 치수로 확장되지 않고는 하나님은 불완전과 불만족을 느끼신다.

 

젊은이는 자만심을 느끼는 것만으로 자랄 수 있다. 그는 강할 수 있고, 재능이 있을 수 있고, 자기 자신에 신경을 쓸 수 있다. 많은 방법으로 괜찮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젊은 여성이 자신의 삶 속으로 올 때 그는 자신이 반쪽뿐인 것을 갑자기 발견한다. 그녀 없이 그는 불완전함을 느끼고,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어떠한 것을 할 것이다. 그는 그녀에게 전화를 하고 저녁엔 외식을 하고 꽃을 사 줄 것이다. 필요하다면 그녀를 만나려고 한 시간을 운전해 갈 것이다. 그녀의 미소가 줄어들면 미소를 다시 짓도록 재빠르게 움직일 것이다. 그는 자신이 전에 하지 않았던 것을 그녀를 위해 할 것이다. 그런 식으로 그는 그녀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느끼시는 것과 똑같다. 복음은 그분께서 0.5이시고, 또 다른 0.5가 필요하시다고 그분이 온 우주에 선포하시는 것이다. 그분은 우리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하시고 계신다.

 

많은 사람들은 이처럼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그분이 풍성하시고, 전지하시고, 편재하시고, 전능하시다고 알지만 그들은 그분께서 어떤 것을 더 원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하나님은 그분의 배우자, 신부로서 교회를 갈망하신다. 사도바울은 남편들아, 너희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사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 같이 하라.”(5:25)고 말했다. 그분께서 교회를 그분 자신의 배우자로 얻을 때에만 완전함과 만족함을 느끼실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의 이유

하나님의 모든 사역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사는 이유다. 하나님은 2.5큐빗(1.143m)이시고, 2.5큐빗(1.143m)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행하시고 계신다. 이것이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이유요, 육신을 입으신 이유요, 사람으로 사신 이유요, 우리를 위해 죽으신 이유다. 이것이 우리가 고집스럽고, 반항적일지라도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와 함께 일하시는 이유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시작하신 분이시요, 우리가 그분 안에서 믿도록 하신 분이시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도록 하신 분이시요, 그분께 우리 자신을 드리게 하신 분이시다. 결국 우리가 영원에 들어갈 때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해야 하고, 찬양해야 한다. 그분은 교회가 그분의 배우자, 신부, 그분의 2.5큐빗(1.143m)으로 우리를 준비시키려고 모든 것을 하신다.

 

사도요한은 기대가 넘쳐 사랑하는 자들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니라.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되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분과 같게 될 줄 아노니 이는 우리가 그분을 지금 계시는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라.”(요일 3:2)고 말했다. 요한은 어떻게 주님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가 그분과 같이 될 것이라고 그렇게 담대한 말을 했을까? 그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만나기를 갈망하신다는 것과 하나님이 만날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을 하시고 계심을 알았다.

 

마찬가지로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곧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분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정하사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셨나니 이것은 그분이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처음 난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8:2829)고 말한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우리에게 맞추기 위해 모든 것을 사용하실 것을 확신했다. 그는 우리가 이 목적을 따라 예정되었다고 확신했다. 모든 것이 우리의 완전한 구원, 하나님의 배우자 산출, 그리고 2.5큐빗(1.143m)을 만나기 위해 일을 한다. 그는 그런즉 이 일들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8:31)라고 결론을 맺었다.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이 확신은 하나님의 사역의 핵심이요, 아무것도 그것을 멈출 수 없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만족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은 시작하시는 분이시요, 공급하시는 분이시요, 이루시는 분이시다. 모든 것이 하나님과 시작하고 끝난다. 이것이 성막에 관해 모세에게 하신 하나님의 계시가 어색한 0.5큐빗(22.86cm) 단위로 증거의 궤를 시작하신 이유다. 하나님은 그분께서 우리를 얼마나 많이 필요하신지를 말씀하시려고 하는지 필사적인 것 같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그분을 무시하고, 무관심한 말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 안에서의 하나님의 경영은 너무도 강하시다. 우리는 무관심하지만 그분은 움직이신다. 바울은 너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그 일을 이루실 것 바로 그것을 확신하노라.”(1:6)고 말했다. 하나님은 그분께서 시작하신 것을 끝내실 것이다.

 

모세시대부터 오늘날까지 하나님은 그분과 만날 또 다른 2.5큐빗(1.143m)을 산출하시려고 일하시고 계신다. 그분은 또 다른 2.5큐빗(1.143m)을 산출할 때까지 계속 일하실 것이다. 그런 후 그분은 재림하실 것이다. 요한은 재림의 날과 관련해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그분께 존귀를 돌릴지니 [어린양]의 혼인 잔치가 이르렀고 그분의 아내가 자신을 예비하였도다.”(19:7)고 말했다. 그 때에 하나님은 자신을 만나는 신부를 취할 것이고, 마침내 만족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