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퍼런스/왕국의 비밀

보물비유

Hernhut 2017. 6. 1. 13:19


 

또 하늘의 왕국은 마치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으니라.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면 숨겨 두고 그것의 기쁨으로 인해 가서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13:44).

 

마태복음 13장의 마지막 세 비유는 처음 네 비유와 같지 않다. 이 세 비유는 그리스도께서 집으로 다시 돌아오신 후에 주신 것이었다. 처음 네 비유는 집밖 바닷가에서 주신 비유였으며, 마지막 세 비유는 집 안으로 다시 돌아와 주신 것이다(13:1-3, 36).

다섯 번째 비유의 시작은 그리스도께서 이 앞의 비유에 덮고 있었던 주제와 전혀 다른 상황이 존재했다. 이스라엘이 그림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이 마지막 세 비유를 주시기 전에 집 안으로 들어가셔야 했다.

 

처음 네 비유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왕국말씀에 대한 선포와 관계있는 문제로서 오늘날 현제도의 전부를 다룬다. 이 메시지에 대한 선포가 관련이 있는 한 현제도는 이 비유에 따라 끝날 것이고, 기독교는 완전히 부패된 상태가 될 것이다(13:33). 현제도에서 기독교의 지속적인 악화를 산출하도록 누룩이 일하고 있기 때문에(2:1-3:22) 현제도의 끝 상태는 라오디게아교회로 묘사된 것처럼 될 것이다(3:14-21). 현제도 끝에서의 왕국말씀에 대한 선포와 충성에 관하여 이 시대에 존재할 교회는 누룩의 일하고 있는 것 때문에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으로 요한계시록 3:17절에 묘사되었다.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땅에서의 사역하셨을 때에 같은 상황에 대한 묘사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땅에서 믿음을 보겠느냐?”(18:8b)

 

이 질문방식은 헬라원문에서 부정적 반응을 지적된 말이다. 사람의 아들 곧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 때에 땅의 교회들에게 가르쳐진 믿음을 찾을 수 없으실 것이다. 여기서 믿음이란 왕국말씀과 관계된 특유한 표현을 말한다. 오늘날 이 제도 처음 1세기 교회에 우주적으로 가르쳐진 왕국말씀은 이 제도 끝의 교회에서 완전하게 가르쳐지지 않을 것이다. 대신에 어느 많은 방면에서 마귀들의 교리와 더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 가르쳐지게 될 것이다(딤전 4:1-3). 오늘날 제도에서의 누룩의 일은 천천히 변질시킬 것이다. 이 변질이 종착역을 향해 치달을 것이고, 이 제도 끝에 왕국말씀에 대해 완전하게 부패된 기독교로 끝날 것이다.

 

이런 방면에서 첫 번째 네 비유는 현 모든 제도를 통한 개인적인 것을 다룬다. 다섯 번째 비유에서 일곱 번째 비유로 옮겨가며 다루는 것은 현제도를 지난 사건과 관계가 있다. 이 마지막 세 비유는 교회가 땅에서부터 옮겨진 후 즉 휴거 후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다시 다루신 후 일어나는 사건들과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이 세 비유는 이전의 네 비유처럼 바닷가에서 주어질 수가 없었다. 이런 시점에서 이런 비유로 묘사된 사건과 관계있는 하나님은 이방인들 가운데서 그분의 이름을 위해 사람들을 옮기시는 그분의 일을 완료하실 것이다. 그분의 일은 집에서 그분의 나오심과 바닷가로 내려가심에서 묘사되었다.

 

이 마지막 세 비유는 집 안으로 돌아와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은 이때에 교회를 다루시는 것을 끝내게 될 것이고, 이스라엘 민족을 다시 다루실 것이다(15:14-17).

 

이 비유에서 다룬 것이 먼저 땅에 있는 이스라엘과 관계가 있고, 하나님의 백성과의 언약, 민족적 다루심에 대한 하나님의 재개에서 야기된 것일 수 없지만 이 비유들은 하늘에 속할 교회와는 불과분의 관계가 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 마지막 세 비유는 왕국말씀과 관계된 연속되는 사건과 관계가 있다. 비록 이스라엘이 보일지라도 이 마지막 세 비유는 이전 네 비유와 연속되는 사건들이다. 이 일곱 비유는 이스라엘에게서 나온 하늘왕국과 관계가 있다(21:43). 교회가 이스라엘로부터 나온 수신자가 된 이후 세 비유에 있어 교회를 다루시는 하나님과 분리할 수 없다. 비록 이미 본 것처럼 교회는 더 이상 땅에 속해 있지 않을 것이다.

 

보물과 밭

그리스도께서 집으로 다시 들어오신 후에 주신 첫 번째 비유는 한 사람(그리스도)이 찾아 밭에 숨겨둔 보물과 같다. 이를 따르면 한 사람(그리스도)이 나가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팔았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보물이 숨겨진 곳을 사셨다. 이 비유는 미래의 사건을 다루기 위한 기본적인 근거와 뼈대를 세우기 위해서 과거 사건을 돌아보게 한다. 이 비유의 중심적인 주제는 보물이 숨겨진 곳을 샀다는 것이다. 밭을 사기 위해 하는 일은 그리스도 초림에서 일어나는 과거 사건과 관계가 있다. 하지만 밭을 사는 것 자체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사건과 관계가 있다. 밭을 사는 일은 환란이 일어나는 동안에 일어날 것이고, 그리스도의 재림 직후 환란 끝에서 일어날 것이다. 밭을 사는 것은 이스라엘이 실제 안으로 돌아왔을 때 일어난다. 또 밭을 사는 것은 이 비유의 중심적인 내용이다. 모든 것이 이전 네 비유와 마찬가지로 이 다섯 번째 비유의 첫 번째 부분에서 말한 것은 밭을 사는 것에 대한 합당한 이해와 그 장소를 이해할 수 있도록 배경적 자료를 만들어 낸다.

 

마태복음 13장에 있는 연결된 일곱 비유에 계시된 연속에서의 밭은 구체적으로 세상에 대해 말을 한다(13:38). 그리고 다른 성경을 비교하면 보물은 이스라엘이라고 밝혀질 수 있다(19:5-6, 135:4). 그리스도의 초림 때 그분은 하늘왕국에 이스라엘민족이 포함되도록 사람들에게 제안하기 위해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들을 위해서만 오셨다(4:17-25, 10:5-6, 15:24). 하지만 이스라엘은 그 제안을 일축해 버렸고, 하늘왕국은 그 민족에게서 멀어졌다. 그런 후 이스라엘은 따로 떼어졌다. 완전히 새로운 독립체 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새사람에게 이스라엘에게 거절된 제안을 빼앗아 제안하셨다(21:33-43, 벧전 2:9-10).

 

과거에 일어나는 세 사건을 언급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 보물을 찾고, 숨기고, 모든 것을 파는 사람,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에게 사역하시고, 보물을 찾으신다. 또 이스라엘을 따로 떼어놓고 보물을 숨겨놓고, 갈보리에서의 그리스도의 마지막 일 즉 그분께서 가진 모든 것을 파신다. 갈보리에서의 마지막 일 이후 그리스도는 보물(이스라엘)을 구매하시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분은 보물이 숨겨있던 밭을 구매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분은 세상을 사시고 계신다. 이 구매는 일반적으로 가르친 것처럼 갈보리에서의 그리스도의 마지막 사역을 통해 세상에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한 구원의 구매로 언급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가지신 모두 파시는 것은 그분께서 구매하신 밭과 동의어가 아니다. 이와 같은 가르침은 이 비유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믿음을 통한 은혜로의 구원을 중심적으로 다루는 비유가 되게 할 것이다. 믿음을 통한 은혜로의 구원을 다루기보다 이 비유들은 누구도 이 비유들의 주된 문제를 오해할 여지가 없이 일곱 비유 각각에서 말한 왕국말씀, 하늘들의 왕국에 관한 것이다. 갈보리에서의 그분의 마지막 사역과 동의어인 이 구매, 밭을 사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잘못된 관점은 문맥적으로 완전히 비유가 없을 뿐만 아니라 비유의 전달된 주제가 분명해졌다.

 

이 비유에서 밭을 구매하는 것에 대해 성경으로 성경을 비교하는 것은 분명해진다. 오늘날 이 땅은 다가오고 있는 시대에 그리스도와 그분의 아내에 의해 소유된 상속을 이룬다(2:6-9, 8:17-23, 2:26-27, 3:21). 그리고 이 밭(상속)은 하늘에서부터 땅에 이르기까지 통치가 시작되는 아들의 새로운 방식(체제)에 앞서서 사야하고, 구속받아야 하는 것이다(8:18-21, 2:5, 10). 보물의 비유에서 밭의 구매는 상속된 구속, 땅의 구속과 관계가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과거, 완료된 갈보리의 사역 때문에 가능하게 된 그분의 미래 사역이다. 이스라엘(보물), 세상(), 그리고 갈보리의 마지막 그리스도의 사역(그리스도께서 가지신 모든 것을 사람에게 주시는 것)에 주의하는 것은 상속구속(, 세상)에 대한 어떤 언급에 앞서 필요한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미래 구속 사역과 관련된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인도되고, 그 기초가 된다.

 

 

세책

요한계시록과 다니엘서는 성경에서 같은 책으로 간주되었다. 하나의 책이 다른 책을 설명해 주고, 조명해 주는 책이라는 말이다. 이 두 책 사이의 이런 관계는 옳다.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책이다. 다니엘서가 요한계시록을 설명하는 것을 돕고, 요한계시록이 다니엘서를 설명하는 것을 이해하도록 한다. 서로의 책 없이는 서로의 책을 합당하게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다니엘서는 요한계시록에 이런 예표적 계시를 전달하기 위해 구약의 유일한 책은 아니다. 오히려 다니엘서는 요한계시록의 계시의 본질 전달하기 위한 많은 구약성경의 책들 중 하나다.

 

예를 들어 출애굽기는 구약성경의 재앙(종말)로 간주될 수 있다. 전체적으로 예표-실제의 골격이 되어 있는 출애굽기는 요한계시록 1-20장과 같은 기간과 정확히 같은 내용으로 짜여 있다. 두 책은 현 제도의 시작과 메시아 왕국의 끝 기간을 다루고 있다. 두 책은 같지만 다른 시각을 다룬다. 하나는 다른 책을 빛 비춰 주고, 설명할 것이다. 그런데 보물비유에 대한 목적 때문에 이 주제는 요한계시록과 같은 계시를 다루는 구약성경의 다른 두 책에 제한될 것이다. 그 책들은 바로 룻기와 에스더다.

 

룻기는 요한계시록에서 볼 수 있는 똑같은 방식으로 교회와 구속된 상속을 다룬다. 또 요한계시록에서 볼 수 있는 7년 환란과 그 후의 이스라엘을 중심적으로 다룬다. 룻기, 에스더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살펴보는 것만으로 마태복음 13:44절의 보물비유에서 밭을 사는 것을 합당하게 이해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섯 번째, 진주를 사는 여섯 번째 비유를 합당하게 이해될 수 있다. 룻기, 에스더서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요한계시록에서 볼 수 있다. 이 각 책들은 다른 두 책의 빛을 연구해야 한다. 이런 방면에서 룻기, 에스더, 요한계시록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마태복음 13에 있는 5-6번째 비유가 합당하게 이해 될 수 있다.

 

덧붙여 말하자면 마태복음 13장의 5-6번째 비유에서 다뤄진 사건들은 룻기, 에스더, 요한계시록의 다른 부분에서 볼 수 있다. 이 두 비유에 관해 룻기는 구속의 과정과 그리스도의 아내로서 이방인을 택하는 것으로 상속을 구속하는 부유한 유대인을 다룬다. 에스더는 종말 시대에 적그리스도의 열 왕국 연맹체 아래에서 책임을 맡고 이방세계 권력을 전복시킨 후 이스라엘 회복과 이방세계 권력의 끝 무렵을 다룬다. 또 요한계시록은 룻기와 에스더와 다른 상세한 부분을 다루고 있다.

 

하나님의 성령님은 양면을 보여주기 위해 룻기와 에스더서를 사용하신 것이다. 그러면서 신약성경의 하나님의 성령님은 요한계시록에 룻기와 에스더서를 담고 있다. 이것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룻기와 에스더를 다시 말하는 요한계시록으로 가는 것이다.

 

 

1) 요한계시록 1-4장의 계시

 

요한계시록 처음 네 장은 현 시대, 이 시대 이후 심판대, 그리고 심판대에서 결정과 판결이 내려진 직후 왕권과 관련되는 것이지만 환란 앞에 있는 교회를 다룬다. 1장 처음 부분에서 그리스도와 관련된 서언 이후 교회에게 일어날 미래의 시간을 보여준다. 교회는 제도의 끝 무렵에 있고, 휴거의 때에 있으며, 땅의 인자의 시대에서 옮겨져 하늘에 있는 주의 시대에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1:10). 1장 나머지 부분은 하늘에서의 그리스도의 임재 안에 있는 교회를 드러낸다. 그리스도는 심판자로서 볼 수 있다(1:13-16). 완전한 교회(모든 그리스도인) 2-3장에 있는 일곱 모든 교회는 완전성을 보여주는 숫자 7로 심판을 받기 위해 그리스도의 임재 안에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1:12-13, 20).

 

요한계시록 2-3장은 그 자체가 사실적인 심판임에도 불구하고 1장에서 계시된 것을 계속 잇는다. 2장의 각 짧은 서신은 같은 방식, 사역으로 구성되었다. 이 서신들은 성도들이 이기거나 이기게 되는 것을 기록한다. 각 서신에서 이기는 자에 대한 약속은 이루어짐의 범위 안에 계신 구주시다. 요한계시록 3장에 들어가자마자 볼 수 있는 것은 볼 수 있는 것은 오늘날 제도 끝 무렵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기 위해 하늘 안으로 옮겨지는 그리스도인들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것은 다른 성경 말씀에서도 계시하고 있는 중요한 문제다.

 

땅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옮겨진 후 그리스도인들은 사역을 기초로 심판 받아야 함을 스스로 알 것이다. 이김은 그분의 왕국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인정된 입장이 되느냐 아니면 차지하느냐와 관계가 깊다(16:24-17:5, 24:45-51, 25:14-30, 12:42-46, 19:11-27, 고전 3:11-15, 고후 5:9-11, 설전 1:5-10, 4:16-5:9, 살후 1:5-11).

 

다른 관점에서 보여준 2-3장은 마태복음 13장의 처음 네 비유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의미의 교회역사를 보여준다. 성경의 두 부분은 왕국말씀을 위한 교회역사를 보여준다. 성경의 두 부분은 그리스도인의 처음시대 열매를 많이 맺고(13:8, 23, 2:2-3), 기독교의 끝 무렵에는 완전하게 부패된 상태를 볼 수 있는 것을 계시한다(13:33, 3:15-17). 그런데 4장은 교회가 땅에서 하늘로 옮겨지는 것으로 이미 1장에서 볼 수 있었던 같은 점을 다시 한 번 시작한다(4:1-2). 하지만 이것은 다음 사건 곧 심판대에서 있는 어떤 것을 계시할 뿐이다(1:1b-3:22). 그것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그들의 왕관을 던짐으로서 자신들의 권리를 포기하는 24장로들을 계시하는 것이다(4:4, 10-11). 이 사건은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싸고 있는 무지개를 보여줌으로서 심판대의 결정과 판결 직후 일어날 것이다(4:3). 성경에서의 심판은 심판이 일어난 후, 심판이 지나간 후 나타난다. 이 무지개는 성경에서 첫 번째로 볼 수 있었던 방식이다(9:11-17). 이것은 바꿀 수 없는 첫 번째 원칙으로 세워졌다. 무지개는 요한계시록 4:3절에서 보좌를 둘렀다. 이것은 성경을 읽는 이들에게 심판대 사건이 지나간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1:1b-3:22).


요한계시록 4장의 마지막은 심판대에서 보여줄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어떤 것과 결부되어 있다. 이 부분은 24장로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자신들의 면류관을 던지는 장면을 보여준다. 다가오는 시대에 땅 위를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는 이기는 그리스도인들은 땅에 대한 다스림과 관계있는 면류관, 통치와 관계있는 면류관을 쓰게 되는 것이다. 이 면류관은 태곳적부터 존재했고, 하나님께서 처음에 땅에 대한 다스림을 세우신 이후부터 존재했다. 이 면류관은 타락한 상태에 있는 사탄 아래의 천사들에게 씌워졌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최고의 권력과 권위에 대항하여 모반을 꾀한 후 이 면류관들은 천사들의 두 번째 무리들에게 씌워졌었다. 천사들의 한 무리는 본래 사탄 아래에서 통치하려고 하였으나 미수에 그친 쿠데타를 따르기를 거절하고 다른 무리는 사탄과 함께 계속해서 다스리기를 시도했다. 24장로인 전자의 무리는 기꺼이 자신들의 면류관을 내어 놓는다. 이들은 사탄 아래 천사들의 2/3을 대표하는 무리이고 12씩 두 무리를 대표한다. 하지만 요한계시록 12:4절에 있는 후자의 무리는 힘을 갖게 되는 면류관을 기꺼이 내려놓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나오는 숫자 123에 관해 잠시 정리하고 가야겠다. 숫자 12는 다스림의 완전을 말하는 숫자요, 숫자 3은 신성의 완전함을 나타내는 숫자다. 면류관을 쓴 통치자들의 12의 세 그룹은 미수에 그친 사탄의 쿠데타 이후 땅을 다스리는 권력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통치 권력의 신성한 완전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땅 위를 다스리도록 하는 회복된 신성에 속한 완전함은 123무리에게서 받은 면류관, 땅위의 사탄과 함께 통치하는 천사들의 대표단에게서 빼앗은 면류관이 다시 한 번 모아서 사람에게 주어진 메시야 시대에 다시 한 번 존재할 것이다.

 

기꺼이 자신의 면류관을 포기하는 이들은 심판대 사건 직후 그렇게 할 것이다. 따라서 이 때 인류 역사 처음으로 사람들이 이 면류관을 받아쓰는 권한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또 인류 역사 처음으로 이 천사들은 메시야 시대에 그들에게 씌워진 면류관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들의 면류관을 포기할 수 있게 된다(2:5). 하지만 사탄과 함께 계속해서 통치하는 천사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자신들의 면류관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포기한 이들의 면류관은 힘을 붙잡게 될 것이고 그 때 그들의 손에 있게 될 것이다. 인류역사 최초로 사람들이 이 면류관을 쓰게 되는 자격을 부여 받고, 보좌에 오르게 될 것이다.

 

2) 요한계시록 5장에서 19장까지

 

요한계시록 5장은 성경의 마지막 책의 터닝포인트임을 보여준다. 이 이전의 자료는 제도 전체를 덮고 있는 교회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고(2:1-3:22), 또 제도의 끝에 있을 사건들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1:1b-4:11). 교회의 옮겨짐의 시작이 일어나는 사건의 중심인 처음 네 장(1:10, 4:1-2)은 심판대를 둘러싸고 계속되고(1:1b-3:22), 24장로들이 하나님 보좌 앞에 자신들의 면류관을 던지는 것으로 끝이 난다(4:4, 10-11).

 

교회의 옮겨짐은 심판대 사건 전 제도의 끝에 일어날 것이고, 24장로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자신들의 면류관을 던지는 것은 심판대 사건 이후 환란 시작 전에 일어날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들은 일어났고, 이 사건과 관련된 모든 문제들은 보호되었고, 책에서의 관심은 즉각적으로 박탈된 상속에 대한 구속으로 향했다. 5장에 있는 사건은 문제를 제시하고, 6장부터 19장까지는 구속사역과 관련이 있는 수많은 사항들을 제시한다(8:20-22).

 

마태복음 13장의 처음 여섯 비유에서 볼 수 있는 사건의 순서와 요한계시록 처음 19장에서 볼 수 있는 사건의 순서 사이가 정확한 비유다.

 

마태복음 13장의 비유에서 바닷가로 나가서 주신 왕국말씀과 관계있는 그리스도의 교회 다루심은 처음 네 비유에서 볼 수 있다. 그런 후 그리스도께서 집으로 다시 돌아오시는 것처럼 마지막 세 비유는 그분께서 이스라엘로 돌아오셔서 상속을 구속하신다. 하지만 교회는 여전히 이 구속과 관계가 있다. 요한계시록에서도 왕국말씀에 관하여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다루심은 처음 네 장에서 볼 수 있다. 그런 후 5장 처음에 이스라엘로 돌아오시고, 상속을 구속하신다. 하지만 교회는 여전히 구속과 관계가 있다.

 

룻기와 에스더를 요한계시록과 마태복음 13장의 처음 여섯 비유를 비교할 때 같은 것을 볼 수 있다. 룻기 처음 세 장은 배경과 기초자료다. 요한계시록 1-4장이나 마태복음 처음 네 비유를 비교해 볼 수 있다. 룻기 4장의 보아스의 구속행위는 밭에 대한 그의 구매와 관계가 있고, 그것이 그의 상속에 대한 구속이다. 요한계시록 5-19장과 마태복음 13장 처음 부분에서 볼 수 있다.

 

에스더서는 밭을 구매하고, 상속을 구속하는 문제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6-19, 13장의 5-6번째 비유, 30:7, 9:24-27). 룻기 처음 세 장처럼 네 번째 장에서 분리될 수 없고, 마태복음 13장의 처음 네 비유처럼 마지막 세 비유에서 분리될 수 없으며, 에스더에서 밭을 구매하고, 상속을 구속하는 문제를 분리할 수 없는 것처럼 요한계시록 처음 네 장은 이어지는 요한계시록 전체를 분리할 수 없다. 요한계시록 5장은 단순히 4장의 연속이다. 보아스가 룻기 4장에서 자신의 구속행위를 실행하고 있었을 동안 룻이 여전히 보여주고 있는 만큼 교회도 여전히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일들은 마태복음 13장의 비유에서 정확하게 똑같이 보여야 했다. 그리스도께서 다섯 번째 비유 처음에 집 안으로 되돌아 오셨지만 교회는 상속구속에 관해서 여전히 남아있다.

 

 

a) 구속자

 

룻기에서 보아스는 구속할 수 있었던 가까운 친척이었다. 그는 친척이 그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을 더 가까운 이로서 구속하고, 필요한 값을 지불하고, 필요한 구속적 행위를 수행할 수 있는 자이다. 보아스는 룻이 가족의 일원이 되고, 자신의 밭에서 이삭을 줍고, 추수 하는 동안 줄곧 이삭을 줍는데 열심히 일을 하고, 보아스를 만나기 위해 자신을 준비하고, 한밤중 타작마당에서 보아스를 만나는 데 이어서 구속행위를 수행했다.

 

룻기의 처음 세장은 온통 오늘날의 제도를 말하고 있다. 그와 같은 내용이 마태복음 13장 처음 네 비유와 요한계시록 4장 처음에 묘사되고 있다. 이것은 좋은 위치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것들은 현 제도의 교회사와 같다. 현 제도 끝에서 하늘에 있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타작마당에 있게 된다.

 

그런데 보아스의 구속행위는 요한계시록 5장 처음 사건과 밭의 비유에서 밭을 구매하는 사건과 아주 유사하다. 이 장에서 봉인된 일곱 두루마리를 뗄만한 분, 구속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의 오른편에서 볼 수 있다. 강한 천사는 소리를 높여 선포하고 있다.

 

또 내가 보매 한 힘센 천사가 큰 음성으로 공포하기를, 누가 그 책(두루마리)을 펴며 그것의 봉인들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되 하늘에나 땅에나 땅 아래에 있는 어떤 사람도 능히 그 책을 펴거나 들여다보지 못하더라. 그 책을 펴서 읽거나 들여다보기에 합당한 사람이 보이지 아니하므로 내가 많이 울었더니 장로들 중의 한 사람이 내게 이르되, 울지 말라. 보라, 유다 지파의 [사자](獅子) 곧 다윗의 뿌리가 이기셨으므로 그 책을 펴며 그것의 일곱 봉인을 떼시리라, 하더라.”(5:2-5)

 

모든 권세의 근원을 암시하고, 모든 권세의 중심이고, 모든 권세가 뿜어져 나오는 곳인 하나님의 보좌 한가운데 계신 이가 이제 유다지파의 사자이기보다 오히려 어린양으로 묘사되었고, 그분이 아버지의 오른편으로 와서 두루마리를 취하신다. 그분만이 자격이 있으셨다. 그분께서 자격이 있으셨던 이유는 바로 다음 구절에 그 자격을 강조하고 있다. 구체적인 것은 그분의 갈보리 사역에 대한 언급만으로 그분이 어린양이 되신다고 말한다. 그러고 나서 그분이 아버지의 오른편에서 두루마리를 받은 후 살아있는 네 생물과 24장로들은 성도의 기도 즉 그 향기로 가득한 대접과 하프를 사자가 아닌 어린양 앞에 던졌다(5:6-8). 그런 후 살아있는 네 생물과 24장로들은 새 노래를 불렀다.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어린양으로서)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하리로다 하더라.”(5:9b-10)

 

천천, 만만으로 묘사된 무수히 많은 천사들이 보좌와 짐승(살아있는 생물)들과 장로들 주변에 나타났다. 이 수많은 천사들이 큰 목소리로 선포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5:12)

 

이후에 하늘, , 땅 아래와 바다에 있는 모든 창조물들이 수많은 천사들이 선포하는 선포와 비슷하게 일제히 선포하게 된다.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5:13)

 

계속해서 유다지파의 사자보다도 오히려 어린양에 대해 언급했다. 왜 그런가? 그 답은 간단하다. 그것은 어린양으로서 그분의 사역에 근거한다. 그분만이 아버지의 오른편에서 두루마리를 가져다가 두루마리에 있는 인봉을 떼기에 합당한 분이시다. 구속은 고려중인데 그것은 몰수된 상속을 구속하고 이 구속사역을 수행할 자격이 있는 과거 어린양으로서의 그분의 사역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문제가 밭을 구매하기 전 그분이 과거에 가진 모든 것을 판 보물비유를 한 이유다. 그것은 어린양으로의 그분의 과거사역에 모든 기초가 된다. 이 과거사역을 제외하고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공동상속자들을 기다리는 미래 구속된 상속을 받을 수 없다.

 

구속은 항상 사자를 통해서가 아니고, 어린양을 통해서 주게 된다. 그리스도는 요한계시록에서 단 한번 사자로 언급되었지만 그분은 요한계시록에서 28번 어린양으로 언급되었다.

 

 

b) 구매한 소유에 대한 구속

 

상속과 관련이 있는 실제적 구속사역은 요한계시록 6장의 사건으로 시작하여 19장 끝의 사건으로 전개된다. 19장에 있는 사건 또한 이 구속사역의 다른 방면과 관계가 있다. 그 사건들은 그리스도의 아내가 되는 신부와 관계가 있다(19:7-9). 이 사건은 교회가 상속구속을 둘러싸고 있는 그분의 완전한 사역으로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일어나는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되는 것과 관계가 있다(19:11-21). 이 사건은 룻기에서도 분명하게 볼 수 있다. 보아스의 구속사역을 통해 그의 아내가 되는 룻(4:1-10)이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상속구속 하실 뿐만 아니라 이 구속적 사역을 통해 어린양의 아내가 될 것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들의 상속구속 때에 볼 수 있는 심판은 요한계시록에서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으로 나타난다. 일곱 씩 3세트다. 이미 보았던 것처럼 “3”은 신성을 포함한 완전수이다. “7”은 또 완전함을 보여주는 수다. 그러므로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은 이 심판 안에 있는 신성을 포함한 완전과 아들의 상속구속 안에 있는 신성을 포함한 완전을 보여주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5장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인을 떼기에 합당한 분은 오직 한 분뿐이었다. 5장에서 그분이 나팔소리를 내고, 대접을 붓기에 합당치 않다고 말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 이유는 분명하다. 나팔소리를 내고, 대접을 붓는 것에서 볼 수 있는 심판은 일곱 인이 떼지는 심판 범위에서 계속되는 것이다. 나팔심판은 일곱 번째 인을 떼는데서 나오고(8:1- 2), 대접심판은 일곱 번째 나팔소리가 울릴 때임을 볼 수 있다(10:1-7, 11:15-19, 15:1-8). 그러므로 나팔심판과 대접심판은 일곱 번째 인에 속해 있다. 모든 심판은 봉인된 일곱 두루마리의 범위에 있는 것이다.

 

봉인을 푸시는 그리스도는 이 모든 구속과정을 이루실 것이다. 상속은 심판을 통해 구속될 것이다(6-19). 이미 심판대에 계시되고, 선택된 신부(1b-3)는 룻기 4장에서처럼 완전히 그리스도의 아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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