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와 에스더는 같은 책이다. 이 두 책에는 왕권에 관련되어 있는 결혼관계, 상속된 사건들이 나타나 있다. 룻기는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왕비로서 아내를 소유하는 아들로 끝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역사가 나타나 있다. 에스더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역사가 나타나 있다. 에스더는 하나님의 왕비로서의 회복된 아내를 소유하는 아버지로 끝이 난다. 두 책은 과거에서 시작했다. 오늘날 일어나는 사건들로 그리스도인들이 수행하고, 그리고 미래에 같은 점으로 끝맺을 것이다. 이 책들은 여자들의 이름을 붙인 유일한 책이다. 이런 면에서 두 책 다 일치한다. 하지만 두 책은 훨씬 크고, 더 중요한 면에서 일치한다. 두 책 다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완전한 이야기와 관련이 있다. 이 두 책은 성경에서 아주 일찍 정해진 결혼관계 안에 있는 왕의 원칙과 관련이 있다.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우리가 우리의 형상으로 우리의 모양에 따라 사람을 만들고 그들이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가축과 온 땅과 땅에서 기는 모든 기는 것을 지배하게 하자, 하시고”(창 1:26a)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으로 창조하신 남자는 땅을 다스리도록 창조되었다. 하지만 남자는 혼자서 다스릴 수 없었다. 남자의 일부에서 건축된 여자는 남자와 함께 왕비로서 다스려야 했다. 여자는 남자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 되었다. 남자는 여자 없이 완전한 존재로서 다스릴 수 없다(창 1:27-28, 2:23-24). 이것은 이브가 금과(禁果)를 먹은 후 아담의 행동을 설명할 것이다. 아담은 이브의 죄를 따라 생명의 나무를 먹을 수 없었다. 아담이 생명의 나무를 먹을 없었던 것은 완전한 존재로서 보좌에 오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브는 아담이 완전한 존재로서 다스리고 통치하게 하려고 타락 이전 차지했던 위치로 되돌아가야 했다.
그러므로 아담은 그 일을 구속하기 위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외에 선택할 여지가 없었다. 구속은 어느 날 남자를 창조하시고 남자의 지체에서 여자를 건축하신 하나님께서 의도하셨던 것처럼 보좌에 올라 생명의 나무를 먹는 위치에 있는 남자와 여자를 위한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 사건들의 순서는 구속을 위해 타락하고, 죄를 산출한 그리스도의 일부분인 그분의 신부를 찾는 마지막 아담, 두 번째 사람을 예표 하는 아담의 행동을 통해 정해졌다(고후 5:21, 엡 5:30-32, 엡 5:21-29). 실제에서의 구속은 예표에서와 같다. 구속은 하나님께서 남자 창조의 때 처음에 사람을 위해 의도하신 것처럼 어느 날 그리스도와 그분의 신부가 함께 보좌에 오르게 하시는 것이다.
두 번째 사람,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는 그분의 아내가 되는 구속된 신부 없이 통치하실 수 없으시다. 그분의 신부는 오늘날 그분의 몸의 지체요, 바로 그분의 존재에서 산출된 존재다. 신부 없이 통치하는 것은 세워진 성경적인 원칙을 위반할 것이다. 다가오는 메시아시대에 아들은 그분이 보좌에 오르시고, 땅을 통치하시려면 아내를 얻으셔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을 위해 신부를 찾으시는 오늘날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성령의 사역을 이해하는 것은 창세기 24:1-67절을 이해하는 것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은 2,000년을 따로 떼어 두셨다. 이 시대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위해 신부를 찾도록 세상에 성령을 보내신 때이다.
하지만 창세기에서 정해 둔 이 원칙에 대한 또 다른 방면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에스더에 관한 것이다. 아브라함은 천연적인 씨를 가졌고, 이삭과 야곱 역시도 천연적인 씨를 낳았다. 하지만 천연적인 씨는 구약성경에서 세워진 신권정치가 아닐 뿐만 아니라 메시야 시대에 신권정치로 다시 세워질 것이다. 이 일들은 메시아시대에 이스라엘 민족 곧 아브라함의 천연적인 씨에 관해 기록되어야 한다. 1) 이 이스라엘 민족은 그리스도의 아내의 일부로 산출되지 못할 것이다. 2) 다스리기 위해 이 민족은 교회가 그리스도와 함께 차지할 남편-아내 관계처럼 하나님과의 남편-아내관계를 차지할 것이다. 후자는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아내로 구약성경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관계는 구약성경 신권정치에서 다스리기 위한 붙잡아야 했던 입장이요, 신권정치가 회복되었을 때 다스리기 위해 붙잡아야 할 입장이다. 구약성경 시대에 이스라엘이 다스리고 통치하기 위한 이와 같은 관계를 가져야 했고, 메시아시대에 이스라엘이 다스리고 통치하기 위해 이와 같은 관계를 가져야 할 것이다.
이 본질의 관계는 과거에 존재했고, 창세기 1:26절에서 남자와 여자가 왕권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관계 때문에 미래에도 존재해야 할 것이다. 남자는 단순히 이 관계 외에 그의 창조에 대한 이유를 수행할 수 없다. 메시야시대에 신권정치는 하늘과 땅 두 부분으로 구분될 것이다. 오늘날 제도에서 얻은 아들의 아내는 하늘에 속한 부분에서 통치할 것이고, 과거 시대로부터 회복된 여호와의 아내는 땅에 속한 부분에서 통치할 것이다. 룻기가 하늘에 속한 부분을 다룬 것이라면 에스더는 땅에 속한 부분을 다룬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을 위해 신부를 성령의 찾으심과 관계있는 오늘날의 모든 시대는 에스더의 모든 곳에서 다뤄지지 않았다. 에스더는 하나님과 이스라엘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아들과 그의 아들, 즉 그리스도와 그의 아내에 관해 다루는 것을 피했다.
이런 방식에 따라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다루는 에스더는 과거에 이스라엘이 거절함과 장차 그 민족의 영접함을 둘러싸고 있는 사건을 다룬다. 에스더에서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즉 장차 땅에 속한 부분을 차지함에 대한 것이다. 에스더 대부분 과거 이스라엘의 거절을 둘러싸고 있는 사건을 다루지 않고, 이스라엘의 미래 영접에 대한 사건을 다룬다.
와스디-거절함
이스라엘의 과거 거절은 왕비 와스디의 체험에서 볼 수 있다. 이것은 에스더가 왕과 그의 왕국 소개를 시작한 방식이다(에 1:1-9). 와스디는 아하수에로 왕의 명령을 묵살했다. 와스디의 거절에 대한 광범위한 결과 때문에 왕은 격분하게 되었다. 와스디의 행동으로 왕에 대항하는 범죄를 저질렀을 뿐만 아니라 왕의 명령 아래에 있는 도시의 모든 사람들에게도 대항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왕은 왕비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또 다른 곳을 기기로 한 그녀의 왕실 소유의 땅을 주지 않기로 했다(에 1:10-19).
에스더의 이 부분은 모세시대부터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이스라엘에게 돌이키시고, 그 민족을 다루시기 시작할 미래의 때까지 확장되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다룬다. 에스더의 이 부분은 인류 역사의 3,500년의 때를 다룬다.
모세에서 침례자 요한까지
한 방면에서 이스라엘 역사는 하나님께서 말씀, 사탄에 의한 사람의 타락으로부터 시작되었을 수 있다(창 3:15). 여자의 씨는 4,000년 후 오신 이스라엘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이었다.
또 다른 하나의 방면에서의 이스라엘 역사는 셈과 관련이 있는 노아의 말로부터 시작되었을 수 있다(창 9:26). 온 인류의 후손이 된 노아의 세 아들 중 셈만이 하나님을 계시 받았다. 그러므로 셈의 후손은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으로 이어진다(엡 2:12-13).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과 명령으로 시작되었을 수 있다(창 12:1-3).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민족으로부터 오는 분, 메시야의 채널이 되도록 우르 밖으로 불려나온 자였다. 하나님께서 땅의 모든 민족을 축복하신다는 약속하신 것은 메시아께서 나시는 민족, 이스라엘을 통해서였다(창 12:3, 요 8:37, 갈 3:16).
또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들이 야곱과 관련된 것으로 하나님의 활동들로 시작되었을 수 있다(사 43:1-10). 하나님께서 둘러싸고 있는 모든 민족들로부터 구별하고 구분함으로 야곱으로 직계 후손을 정하시고 특별한 창조 사역을 수행하신 것은 야곱을 통해서였다.
신권정치에 의한 민족의 시작은 모세 시대 당시 전까지 볼 수 없었다(출 12:2). 하나님께서 신권정치에 의해 민족적 가치로 이스라엘을 다루시기 시작한 것은 모세시대 동안뿐이었다. 신권정치는 아들의 신분과 장자 상속권과 관련이 있다(출 4:22-23, 19:5-6, 40:34-38). 한 민족이 이집트 땅에서 유월절 밤에 태어났다. 죽음은 희생양을 통해 일어났고, 그 희생양의 피가 대신하여 적용되었으며, 주께서 그 피가 적용된 그 집안을 지나가셨다. 그런 후 매장(埋葬)은 홍해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중에 그 민족은 부활의 능력으로 바다 동쪽 둑에 서게 되었다. 이런 면에서 유월절은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월초(月初)로 나타냈다(출 12:2-50).
세상을 상징하는 이집트를 떠나 모세 아래에 있던 이스라엘은 궁극적으로 신권정치 안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땅에서 거주해야 했다. 하나님 자신은 그분의 백성들 한 가운데서 통치하셔야 했고, 이 통치는 이스라엘을 통해 이스라엘 때문에 축복을 받게 되는 땅의 모든 민족에게로 온 땅에 확장되어야 했다.
왕의 명령을 묵살한 것은 이스라엘이 통치해야 했었던 것과 축복을 받아야 했던 와스디 행동이 보여주었던 것에 확장인 것이다. 예표에서 와스디의 거절은 왕 뿐만 아니라 왕국에 있던 모든 이에게 확장된 광범위한 결과였다(에 1:1, 11-12, 16). 실제에서 이스라엘의 거절은 같은 광범위한 결과였다. 이와 같은 거절은 왕 뿐만 아니라 왕국 안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확장되었다(창 12:1-3, 사 43:1-10). 땅의 민족들은 하나님께서 신권정치 안에서 정하신 곳을 차지한 이스라엘을 통해 축복을 받아야 했다(창 12:3, 출 19:5-6). 이곳을 차지하고 있는 이스라엘에 의한 거절은 부정적인 결과를 낳았다(레 26:14-46, 신 28:15-68, 호 1:9). 이와 같은 거절을 통해 민족들이 축복받아야 했던 왕의 통치방식과 관련된 중요한 것들을 적용하는 데 실패했다. 그리고 이것은 이런 축복 안에서 공개되지 않은 결과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일부의 범죄는 하나님 자신을 향한 것뿐만 아니라 땅에 있는 이방 민족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스라엘 일부에서 일어난 이 천연적인 범죄는 정확하게 구약성경 역사에서 볼 수 있다.
신권정치는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최고봉에 이르렀다. 이 시기는 모세와 여호수아 이후 4세기가 지난 때였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의 신권정치 내에서의 조건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모세의 다스림 가운데 이집트 밖으로 불러 내셨을 때 그분께서 의도하셨던 것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다.
솔로몬이 죽고, 왕국이 나누어진 이후 일들이 훨씬 더 차질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문제들은 점차적으로 악화되었고, 선지자들의 목소리가 무시되었다(마 23:34-37, 행 7:51- 52). 이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 안에 이방 민족들이 오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그분의 백성들이 이방 민족들로 포로 되게 되었다. 이스라엘을 포로한 자들은 축복을 받게 되었다. 하나님은 B.C. 722년에 아시리아에게 무너뜨리게 하셨고 북쪽 10지파를 다스리게 하셨다. 그런 후 하나님은 B.C. 605년에 바벨론에게 무너뜨리게 하셨고, 남쪽 2지파를 다스리게 하셨다. 온 민족이 이방인 다스림 아래에 있다는 자신들을 알았다. 성경에서 그 기간은 이방인의 시간이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방인의 시대는 이방 민족들이 세상에서 왕권과 왕의 권세를 발휘하는 인자의 시대와 관계가 있다. 이방인의 시대는 신권정치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났을 때 시작했다. 이 시대는 신권정치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는 때에 끝이 날 것이다. 이방인의 때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루시는 것을 결론을 내는 다가오는 환란 끝, 이뤄지지 못한 다니엘의 70이레 끝 그 미래의 시대에만 끝이 날 것이다. 그 시대는 그 때가 될 것이다. 신권정치는 이스라엘에게 회복될 것이다.
요한에서 ~까지
이방인 시대가 시작한 후에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다루시기를 멈추지 않으셨다. 400년 전에 솔로몬에게 하신 그분의 약속은 항상 존재했던 것처럼 여전히 이어졌다.
내 이름으로 불리는 내 백성이 자기를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고 자기들의 악한 길들에서 떠나면 그때에 내가 하늘에서부터 듣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며 그들의 땅을 고치리라.(대하 7:14)
포로 이후 두 절정적인 점은 이 방면에 있어 이스라엘 역사에서 볼 수 있다. 하나는 과거요, 다른 하나는 미래다. 전자는 이방인 시대가 시작된 이후 600년 넘게 일어났고, 후자는 이방인 시대 끝에서 일어날 것이다. 즉 이방인 시대가 시작된 이후 600년이 지나 거의 2,000년 전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처음 보내셨을 때 이스라엘은 회개할 기회를 주셨고 이것은 사건들과 관련하여 이뤄졌고, 본질의 환경은 전에 그 민족에서 볼 수 없었다. 메시야 그분 자신께서 임재 하셨고, 하늘왕국이 이스라엘에게 제안되었다. 만일 그 민족이 받아들였다면 신권정치의 땅에 속한 부분의 회복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거기에는 전에 어떤 것도 이스라엘에서 보았던 것과 달리 권해진 왕국과 관련이 있는 표적의 징후가 있었다.
침례자 요한은 이스라엘의 회개하도록 하고, 하늘 왕국이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고, 메시야에 대해 선견자로서 나타났다(마 3:1-25). 그런 후 이스라엘 메시야 그분 자신이 민족의 회개케 하고, 유대인들에게 왕국을 확대 제안하기 위해 오셨다(마 4:17-25). 많은 유대인들이 그 메시지에 주의를 기울였지만 전체적인 민족은 구약성경시대 신권정치에서 했던 이스라엘 행위보다 훨씬 더 회개하지 않는 것을 계속했다(마 12:14, 22-24, 23:13, 요9:14, 33-34, 12:9-11, 19:5-14). 이때에 주님은 12제자, 70인을 이 민족에게 보내셨다(마 10:1-42, 눅 10:1-42). 하지만 이스라엘의 거절이 계속되었다. 이스라엘은 침례자 요한이 처음으로 갔고, 민족에게 선포한 분, 침례자 요한이 감옥에 들어갔을 때 메시지를 전하하신 분, 12제자, 70인을 세우시고, 보내신 메시야 그분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이 거절의 절정을 이뤘다. 이스라엘 메시야의 죽음, 매장, 그리고 부활 이후의 왕국에 대한 재 제안은 사도들과 다른 사람들에 의해 주어졌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여전히 거절했다. 그리고 그들은 메시지를 선포하도록 보내어진 이들을 핍박하고 심지어 죽이는 것을 계속했다(행 4:1- 21, 5:17-40, 7:51-60, 8:1-40, 마 23:31-36).
왕국에 대해 재 제안을 받은 후 그 민족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위한 사람들” 즉 이방인들을 불러내신 동안 따로 구별되어 있었다(행 15:14). 이스라엘은 한 시대 동안 구별되어 있었고, 성령께서는 세상에서 이미 이방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아들을 위해 신부를 산출하셨다. 이스라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이전의 모든 행위들은 에스더서에 있는 와스디의 체험에서 볼 수 있다. 그녀의 체험에서 와스디는 한 예표가 된다. 민족의 체험에서 이스라엘은 한 실제가 된다. 하지만 와스디의 체험은 불순종과 거절에 대한 이야기의 일부만을 형성한다.
또 다른 부분의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은 순종과 받아들임과 관계가 있다. 이 부분은 에스더의 체험에서 볼 수 있다.
에스더- 받아들임
오늘날 제도의 끝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로 다시 돌이키실 때 그분의 움직임은 그분의 받아들임과 민족의 회개에 이어서 이스라엘의 회개를 위한 것이 될 것이다. 유대인들이 회개의 장소로 올 것이고, 회개에 이어 하나님의 부분을 받아들일 것이다.
에스더 1장은 이스라엘의 회개와 관계가 있고, 2장은 이스라엘의 받아들임과 관계가 있다. 이스라엘의 과거와 현재를 예표 하는 와스디는 거절하였고(에 1:19), 이스라엘의 미래를 예표 하는 에스더는 받아들인다(에 2:17). 나머지 부분은 민족의 받아들임 직전과 바로 그 때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는 상세한 것들이 있고, 그것을 끝에서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체험을 통해 볼 수 있다.
에스더의 연대기에서 실제로 이 회복이 일어나기에 앞서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3:1-9:14) 하나님은 의로운 장소에 이미 회복된 것으로 이스라엘을 보여 준다(에 2:17, 5:2, 12, 7:1, 5, 7-8).
하만과 그의 열 아들은 적그리스도와 열 왕국 연맹체를 예표 한다. 하나님의 인정과 이스라엘의 회복에 이어서 실제에서의 이스라엘의 회개는 사건들로 확장되는 환란의 끝 무렵까지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회개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이어 환란직후에 일어나게 될 것이다. 회개의 장소로 이스라엘을 데려올 것은 하만과 그의 열 아들로 예표 된 자들의 행동에 중심되어 있다. 그 후 받아들이고 칭찬을 듣게 되는 이스라엘은 하만과 열 아들이 현장에서 제거가 된 이후에스더와 모르두개의 체험을 하게 된다.
실제에서 합당한 연대기와 일치하지 않는 것과 같이 에스더가 왕과 결혼을 한 것과 하만과 그의 열 아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건 전 후에 왕관을 쓴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계시에 있는 것을 사람에게 나타내신 방식에 완전하게 맞춰질 것이다. 하나님은 자주 그분의 계시 가운데 있는 문제를 나타내신다. 그 문제들은 실제로 일어나기 전에 이미 일어났던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는 인류의 역사가 발생하기 4,000년 전 세상의 시작부터 그분의 아들은 십자가에 못 박았다(계 13:8). 실제로 일어나기 2,000년 전 하늘로부터 사탄의 떨어짐을 보여주신다(눅 10:18).
또, 하나님은 연대기 속에 있는 일들에 대해 상세한 것들을 드러내기 전에 그분의 계시 속에 있는 완전한 연대기를 드러내신다. 요한계시록 12:1-6절은 사건의 완전한 연대를 드러내고 있고, 요한계시록 12:7-17절은 이 사건들에 대한 해석을 하고 있다.
사실상 모든 성경은 앞의 방식에 따라 구조되었다. 창세기 1:1-2:3절은 7,000년 덮고 있는 사건의 완전한 연대를 드러낸다. 그리고 나머지 성경은 앞의 창세기 1:1-2:3절을 해석하는 것이다.
에스더서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에 나타내시는 앞에서의 두 가지 방법이 갖추고 있다. 먼저 왕비가 되는 에스더에게 일어난 문제이고, 다음으로 왕비가 된 에스더를 둘러싸고 있는 해설하는 사건의 완전한 연대기가 주어졌다. 하나님은 에스더 1장에서 이스라엘의 과거와 현재의 거절에 대한 완전한 문제를 보여주신다. 이어서 2장에서는 민족의 받아들임에 대한 완전한 문제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나머지 부분은 2장에 대한 필요한 세부 사항을 해설할 뿐만 아니라 이 해설 전체에 하나님께서 민족이 높여진 위치를 차지하는 것으로 이스라엘을 보여 주신다(에 5:2, 12, 7:1, 5, 7-8). 에스더 3-10장은 에스더가 왕비가 되었다는 사실과 이스라엘이 왕비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반사하는 것이다(에 2:17). 이 사실은 해설 전체에 계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시간은 끊임없는 것이 아니고 상대(관계)적인 것이다. 하나님은 시간을 통해 쉽게 움직이실 수 있다. 하나님은 오늘날 시간 속에서 어디서든지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 가져오는 과거로 돌아가실 수도 있고, 미래로 향하실 수도 있다.
“지금까지 있던 것이 지금(과거는 현재) 있으며 앞으로 있을 것도 이미 있었나니(미래는 과거에 볼 수 있었던 현재) 하나님은 이미 지나간 것을 요구하시느니라(하나님은 추구하셨던 것을 찾으신다).”(전 3:15)
하만 -패배함
에스더 2장을 해석을 해주는 에스더 3-10장은 이 시대 이전 책에서 볼 수 없었던 하만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만이 소개된 시점부터 이 책 나머지 부분에서 볼 수 있는 사건들의 핵심의 위치를 차지하는 그와 그의 가족은 마지막 장을 남겨 두게 된다. 하만과 관련이 있는 계시는 왕과 함께 왕국에서 권력과 권세의 중요한 위치에 오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일들 뒤에 아하수에로 왕이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을 높이고 그를 승진시켜 그의 자리를 자기와 함께한 모든 통치자들의 자리보다 위에 두니라.”(에 3:1)
하만이 오른 위치 때문에 왕의 모든 종들은 하만에게 경의를 표하도록 명령받았다. 이런 경의, 추앙은 보통 무릎을 꿇고, 이마를 바닥에 대고 보여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 사람은 거절했다. 유대인인 모르두개는 그런 경의를 하만에게 표하기를 거절했다. 모르두개는 절을 하지도, 그에게 추앙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것은 아하수에로의 왕국에 있었던 모든 유대인을 멸하려고 했을 정도까지 하만을 화나게 만들었다(에 3:2-6).
왕국에 살던 모든 유대인들을 멸하기 원하는 하만은 특히 자신에게 명예를 부여하기를 거절한 모르두개를 향해 대항했다. 모든 것을 통제하는 하나님의 주권이지만 문제는 하만이 모르두개와 나머지 유대인들보다 오히려 파멸의 길로 치닫는 자신을 알게 되었다(에 3:7-15). 하만은 자신이 이 길에 있는 것을 알았지만 문제는 자신의 아내 세레스에 의해 자기의 처지를 정확하게 듣게 되었다.
“모르두개가 유대인들의 씨라면 당신이 그 앞에서 쓰러지기 시작하였으니 당신이 능히 그를 이기지 못하고 분명히 그 앞에 쓰러지리이다”(에 6:13b)
하만이 유대인들에 대항하기를 돌이킨 후 그는 자신이 영향력을 추구했던 것과 완전히 반대되는 일을 일으킨 상황과 환경, 완전히 자기의 통제를 벗어난 상황과 환경 안으로 들어갔음을 알았다. 그는 자신이 떨어뜨리려했던 모르두개를 왕에 오르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모르두개를 찌르려고 만들었던 바로 그 장대에 자신이 찔렸음을 나중에 알았다(에 6:1-7:10).
그런데 충분치 못했더라면 그의 열 아들들은 나중에 같은 장대에 찔려 처형되었을 것이다(에 9:10-14). 또 이 모든 일은 왕국의 합법적이고, 중요한 곳을 유대인들이 차지하도록 하만의 집에서 끊어졌다.
이 사건의 결과 문자적으로 어느 날 적그리스도의 왕국이 일어날 것을 전조한다. 그 외 요한계시록 6장에 있는 일곱 봉인된 두루마리의 첫 번째 인을 떼시는 것을 볼 수 있다(계 6:1-2). 왕이신 그분 자신은 적그리스도를 승격시킬 것이다. 아하수에로가 하만과 함께 했던 것처럼 적그리스도가 차지하는 운명이었던 권력의 위치에 그를 놓을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권을 통해 사람들의 왕국에서 통치할 분은 하나님뿐이다. 하나님은 그분께 소망하는 사람 누구에게든지 왕국을 주시고, 통치자를 세우시기도 하시고, 또 빼앗기도 하시는 분이시다(단 4:17-26, 5:18-28).
특히 왕, 권력의 위치에 오른 적그리스도는 하만과 같은 명예를 명할 것이다(계 13:2-8). 적그리스도는 이스라엘에 있는 많은 사람들과 이미 계약을 맺었을 것이다(단 9:27a). 하지만 많은 다른 유대인들은 이 계약을 거절할 것이다. 그리고 에스더에 비추어 보면 이 유대인들은 계약을 맺는 사람을 거절을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일 때문에 진노를 하는 적그리스도는 후반 3년 반에 전세계에 있는 유대인들과 대항하러 돌아 올 것이며, 하만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완전한 파멸을 추구할 것이다(단 9:27b, 마 24:15-51, 눅 21:20-38, 살후 2:3-17).
하지만 적그리스도가 유대인들에게 대항하여 돌아설 때 그는 이전에 하만이 돌이키지 않은 곳에 자신이 있을 것이다. 그 길은 하락의 길이 될 것이다. 적그리스도 자신만을 파멸로 이끄는 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들의 연맹체들도 파멸로 이끌 것이다. 이것은 지난 날 하만과 그의 10명의 아들들이 멸망되는 예표에서 보았던 것과 같을 것이다(단 2:33-35, 40-45, 7:7-12, 23-28, 계 19:11-21). 적그리스도가 유대인들을 대항할 때 시간이 지나갈수록 골칫거리가 뒤따라 증가한다. 이 기간은 요한계시록 6장에 있는 봉인된 일곱 두루마리의 두 번째 인이 떼어지기 시작할 것이고(계6:3-4), 봉인된 일곱 두루마리 인들이 떼어지게 함으로 마지막 심판을 통과하기까지 계속될 것이다. 심판은 일곱 번째 인이 떼어지고, 일곱 나팔소리가 들리고, 일곱 대접에서 흐르는 것으로 묘사한다(계 8:113, 16:1-21).
적그리스도 왕국의 상태는 목표가 주님의 간섭하시는 곳에 도달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인류가 문자적으로 멸망해 시간이 갈수록 점점 악화될 것이다.
“그 날들이 짧아지지 아니하면 어떤 육체도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로되”(마 24:22a).
이것은 가까운 장래에 사람들이 자신을 세상 시스템을 깨닫도록 앞에 놓이게 될 것이다. 인자의 날이 인류역사 6,000년 후에 끝이 날 것이다.
모르두개-높은 지위를 얻음
그런데 에스더에서 하만과 그의 열 아들들의 파멸이 끝나지 않는 것처럼 성경 끝에서도 적그리스도와 그의 열 왕국 연맹체의 파멸은 끝나지 않는다. 성경은 이런 방면에서 같은 방식으로 결론에 이르게 한다. 에스더는 같은 사건의 전조이고, 같은 결론을 가져온다. 에스더에서 대적들이 멸망한 이후 유대인인 모르두개가 왕국을 다스리게 되었다(신 30:1-10, 사 2:1-4, 욜 3:12-21). 적그리스도가 유대인들을 파멸시키려고 할 것이지만 하나님은 그분의 통치권을 통해 그분께서 자신의 갈망하시는 것을 산출하시려고 적그리스도의 노력을 사용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회개의 장소로 그분의 사람들을 데려오시고, 과도기에 땅 위에 있는 자들에게 닥칠 유례가 없는 심판을 책임지게 할 이 적그리스도를 사용하실 것이다(계 17:16-17).
문제는 모세시대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 있었던 다른 예표에서와 똑같이 될 것이다. 앗시리아 통치자의 속박에 있던 혹독함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부르심 외에 달리 선택해 떠날 곳이 없었다. 하나님은 그들의 끝으로 그분의 백성들을 데려가시려 이 앗시리아인들의 헛된 노력을 사용하셨다(출 9:15-16).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들의 울음소리를 들으셨다. 그분은 그분의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과의 언약을 기억하셨다. 그분은 그들을 건져내기 위해 모세를 돌려 보내셨다(출 2:23-3:10).
또 똑같은 일이 장차에도 일어날 것이다. 괴롭힘의 혹독함이 또 다른 앗시리아 통치자에 의해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곳으로 나아갔다. 하나님은 모세당시와 같이 그들을 끝으로 이끄시기 위해 앗시리아인 통치자의 헛된 노력을 사용하실 것이다.
모세 당시처럼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들의 울음소리를 들으실 것이다. 그분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하신 그분의 약속을 기억하실 것이다. 또 그분은 그들을 건져내기 위해 예수님을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신 30:1-3, 겔 36:16-28, 마 24:29-31).
에스더가 끝나게 되었을 때 왕은 하만의 집을 에스더에게 주었다(에 8:1, 7). 에스더는 모르두개의 통제 가운데 있었다(에 8:2). 또 에스더가 끝날 때 왕은 모르두개를 왕 자신 다음권력의 위치를 붙잡도록 높이 올렸다(에 10:2-3).
에스더와 모르두개는 장차 회복된 이스라엘의 완전한 그림을 표현한다. 하나님께서 적그리스도의 온 세상 왕국을 이스라엘에게 주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 그분 다음의 땅의 권력 위치에 오르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구출이 모세 시대, 에스더와 모르두개 시대에 일어났다. 마찬가지로 장차에도 이 일이 인자의 날과 주의 날에 일어날 것이다. 모든 일들의 통치권을 가지신 하나님은 선지자들에 의해 예언했던 것과 똑같이 모든 사건들을 통과시키실 것이다. 아무것도 실패하지 않고 이뤄질 것이다. 맨 끝에서 이스라엘은 신권정치 안에서 여호와의 회복된 아내로서 하나님과 땅의 민족들과 관계된 하나님께서 정하신 장소를 차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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