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려라는 단어의 헬라어는 파라클레시스paraklēsis다. 이 단어는 두 단어의 합성어인데 파라para는 “곁에 있다”를 의미한다. 다른 사람들을 격려를 할 때 합당하게 격려하려면 계속해 나가도록 만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어떤 것이 계속해 나가는 그들과 하는 것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격려는 다른 사람들 곁에서 함께 걷는 것을 말한다. 클레시스klēsis는 “부르다”를 의미한다. 생각은 목적 있는 지지(支持) 중 하나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의 가치 있는 행동을 하고, 강화하도록 다른 성도들과 옆에서 걷는 것을 말한다(빌 1:27).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격려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수행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에 의해 세워진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격려는 일반적으로 서로 권하는 많은 경우의 격려와 아주 다르다. 어떤 형제가 좌절하고 낙담해 있다면 주변에 있는 성도들은 “힘 내! 내일 잘 될 거야. 예수님을 바라 봐.”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바울이 말한 격려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격려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모든 것과 그분께서 모든 것이라는 것에 근거한 격려다. 그리스도인들이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을 보고, 이해하고, 체험하기 시작할 때 참된 격려를 체험한다. 이와 같은 격려는 거룩한 부르심으로 하나 되는 것에서만 온다. 이런 격려는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게 한다. 거룩한 계시로 사로잡히면 사로잡힐수록 이 격려를 체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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