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복음칼럼

순수함을 지키기

Hernhut 2016. 6. 28. 21:48

 

순수는 상대적이다. 어떤 순수가 순수함인가? 예를 들어 주님을 향한 순수가 있는가? 그것은 말하기가 어렵지만 한편으로는 말하기가 어렵지 않다. 영적인 것에 흥미가 있다는 사실은 적어도 어떤 것에 순수하다는 것을 가리킨다. 하지만 이것이 완전히 순수하다거나 순수성이 지속될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 믿었을 때 받았던 처음의 순수성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 이유다(고후 11:233). 주님을 처음 사랑하기 시작했을 때 그분의 긍휼이 있었다. 주님의 긍휼 없이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제가 제 자신을 주님께 드립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9:16). 그 최초의 순수성은 유지될 필요가 있고, 점점 성장해 가야 한다(딤후 2:22).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쉽게 잃어버릴 수 있다. 그리스도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마음에 끌렸고, 그분의 긍휼을 보았기 때문에 주님을 믿었다. 주님께서 얼마나 놀랍고, 사랑스러운 분이신지를 알았다. 많은 성도들이 그분께 주님, 전 당신께 속했고, 당신을 사랑합니다. 일생에서 당신을 섬기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함으로 헌신했다. 이것은 주님의 긍휼이었다. 이것이 그분에 대한 최초의 순수성이다.

이어서 교회 안에서 수년 동안 다른 방식으로 자란다. 예를 들어 생명과 진리와 주님을 섬김으로 자란다. 동시에 복합적으로 자란다. 많은 체험, 어려움, 그리고 좌절을 맞본 후 순수성을 잃게 되고, 아주 복잡해지고, 그리스도와 성도들 간의 단순함을 잃기 쉽다. 그리스도에 대한 순수성은 최초의 상태를 넘어 자랄 수 있기 때문에 주님의 긍휼이 여전히 필요하다. “주님, 제가 자라는 것처럼 여전히 당신의 긍휼이 필요합니다. 복잡함으로부터 저를 지켜주소서. 단순함을 유지하도록 저를 도우소서. 제가 당신을 사랑했을 때처럼 저를 순수하게 하소서. 저의 순수함이 자라고 또 성숙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주님을 사랑하는 순수성은 중요한 요소다. 긍정적으로 자라는 것처럼 동시에 부정적인 것이 자랄 가능성이 있다. 다른 성도들과 함께 주님을 사랑하고 추구한다면 생명과 진리와 섬김 안에서 자라고 성숙되는 것이 분명하다. 거기엔 탁월함이 있다. 동시에 복잡함도 자랄 것이다. 인간의 천연적인 능력은 자랄 것이다. 묘책(妙策)의 능력과 권모술수(權謀術數)가 자랄 것이다. 이 부정적인 것들은 주님보다도 그리스도인 자신의 능력을 신뢰하는 것이 자라게 할 수 있고, 주님의 이끄심 대신 사람의 방식을 신뢰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부정적인 것들의 성장으로 패배하지 않기 위해 순수함을 지킬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정말 주의해야 할 것은 항상 주님께서 순수하게 하시기를 간청해야 한다. “주님, 저는 당신의 광선에 엽니다. 저의 복잡한 것들을 드러내소서. 많은 날 저는 당신께 좌절합니다. 저의 불순한 동기를 폭로하소서. 저는 매순간 불순한 것들을 행합니다. 때론 그릇된 곳에 이끌리기도 합니다. 저와 다른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칠 저의 어떤 것을 드러내소서. 주님, 당신께서 드러내시고, 제가 기도하는 것은 죽음에 둘 것입니다. 저는 당신을 향한 것들이 복잡하고, 산만해합니다. 주여, 단순함으로 복잡한 것들을 죽이소서. 당신께서 죽음에 두는 것마다 당신 자신으로 대체하시고, 당신의 영적인 풍성으로 저를 먹이시고, 또 불어넣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