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빛의 광선이 비출 때 내적 존재의 모든 것이 드러난다(엡 5:13). 빛에 의해 부정적인 것은 죽고, 긍정적인 것은 공급 받는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 날 영화를 보고 있을 때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을 위한 것이지?”라는 생각이 마음속에서 들려왔다. 그럴 때 그들은 내면에서 싸우기 시작한다. 영화의 노예가 되었다는 깊은 깨달음을 갖지 못하고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이 체험 후 영화를 봐야할 것인지를 논쟁을 할 것이다. 복음은 노예 상태를 폭로하고 해방시키는 빛의 광선이다(요 8:32–36). 그들은 “주님,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의 광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한다면 영화에 흥미를 잃기 시작한다. 이것은 어떤 영화를 절대 보지 않겠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고, 더 이상 영화에 노예가 되지 않겠다는 의미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T.V와 영화와 오락에 노예가 되어 있다. 그들에게 주님의 광선이 비춰질 필요가 있다. 주의 광선은 이런 것에 노예 된 것을 죽인다.
광선이 비춰질 때까지 어떤 것에 노예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주님의 빛의 광선이 심판을 하고, 순수함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영적인 일만 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것은 노예가 된 영화, 스포츠, 취미, 그리스도께 집중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에서 구출되는 것을 의미한다. 광선이 비춰진 후에도 여전히 그런 일을 하겠지만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그러한 일을 할 것이다. 광선으로 말미암은 사람은 한번 노예된 것을 사용할 수 있다. 스포츠, 취미로 노예 되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사용할 수 있다.
비춰지는 광선은 노예가 되는 것에서 해방할 뿐만 아니라 부적절한 것을 죽인다. 노예가 되게 하는 것을 포기하도록 싸우는 대신에 기쁘게 하고 노예가 되게 하는 것에 대해 흥미를 잃게 한다. 어떤 사람이 “그토록 좋아하던 것을 왜 하지 않죠?”라고 묻는다면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주님을 찬양해요!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더 이상 그런 것에 흥미가 없어요. 전 주님을 사랑해요.”라고 말할 수는 있다. 주님의 광선 아래에 있기 때문에 아주 단순해진다. 주님은 성도들의 어떤 것으로 괴로워하신다. 광선은 인간의 방식으로 주의 임재 안에서 살 수 있게 하는 것과 불순하고, 부적절한 것을 죽인다.
주의 빛의 광선은 노예 됨에서 해방함으로, 건강하지 못한 것을 죽임으로 깨끗케 한다. 이것은 방사선으로 암을 치료하는 요법과 같다. 방사선이 특정한 세포를 계속 쬘 때 결국 암이 죽는다. 하지만 경건하고 영적인 광선은 방사선 치료보다 훨씬 더 좋다. 왜냐면 영적인 광선은 건강치 못한 것을 죽일 뿐만 아니라 영 안으로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주입하고 생명을 공급하기 때문이다(요 8:12).
주님은 순수하게 되려고 이를 악물고, 힘들이기 원치 않으신다. 자기의 의지로 오는 영적 승리는 진짜가 아니다. 광선이 비춰질 때 어둠이 폭로되고, 부적절하고, 부당한 것이 드러나고, 건강치 못한 것이 죽고, 영적인 양분이 주입되고, 생명이 공급된다. 광선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를 분배한다. 결국 이것은 순수하고, 경건한 사람을 산출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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