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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받은 사람이 언제든 잃을 수 있는가?

Hernhut 2016. 2. 1. 17:24


요즘 교회 안에 구원이 절실해서 다니는 성도들이 그리 많지 않음을 본다. 교회의 건물은 커지고 수많은 무리들이 많은 집회로 모이지만 그러한 것이 구원의 절정인 양, 최고봉인 양 구원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천주교의 구습을 따라 행하고, 절기들을 지키며, 그리스도의 생명보다는 교회의 프로그램과 형식을 지키며, 말씀선포에 도덕과 세상문화와 풍습들이 혼합되고, 그리스도의 말씀보다 사람들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는 시대가 됐다.

 

개인적 구세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그리스도인이 구원을 잃고, 죽어서 지옥이나 하데스에 가고, 결국 큰 백보좌에서 불 못으로 던져질 만큼의 죄를 지을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먼저 두 가지 질문으로 나눠서 살펴본다면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이다. (1)잃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2)구원받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잃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예수님은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구원하러 오셨다(19:10). 하나님의 눈에 잃은 자와 회개하는 죄인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왜 비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는가?(3:36)

 

우리가 한번 잃었었고,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는 죄인들은 하나님의 뜻과 성품에 미치지 못하는 죄와 관계되어 있다는 것이 본질적인 이유다. 우리가 죄를 짓기 때문에 죄인인가 아니면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나? 둘 다 맞다. 성경은 우리가 죄에 대해 개인적인 행위, 태도로 죄가 인정된다고 말한다(3:23, 3:10-18, 7:20-23). 또 성경은 우리가 죄의 본성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죄인임을 인정한다(51:5). 결국 우리의 조상 아담에게서 죄를 상속받았다. 성경은 아담의 최초의 죄로 모든 인류가 죄를 범하게 된 자들이 된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5:12).

 

우리 죄의 결과는 죽음의 벌칙이 있다.

아담의 죄의 결과로 인류에게 미치는 육신적인 죽음은 우리 장부에 맡겨졌다(5:12-14).

영적인 죽음은 우리 조상들을 통해 아담으로부터 우리에게까지 전달되었다(2:1, 5).

영적인 죽음의 연장선이자 정점인 영원한 죽음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혼이 영원히 분리되어 불 못에 들어간다(20:14).

 

성경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놓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의 우리 상태를 설명한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며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3:36)

 

 

구원받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세상에서부터 받은 구원은 주께로 온다(2:9). 구원은 부정적이기도 하고 긍정적이기도 하다. 우리는 잃은 상태에서 구원 받았고, 우리가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그 순간에 축복이 넘치도록 성도에게 공급되어 구원받은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이 축복들은 아주 포괄적이다. 왜냐면 우리의 구원을 잃어버린 자였던 구원받은 성도가 그리스도의 형상에 따라 영광 안에서 마지막 프레젠테이션을 하도록 모든 신성한 약속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인 모든 축복으로 복주셨다고 설명한다(1:3).

 

구원에 포함된 원칙적인 축복들이 있다. 부활은 믿는 죄 가운데 있는 사람 안에 새로운 본성이 들어가는 성령의 즉각적인 사역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령께서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서 영적인 생명으로 비그리스도인들을 믿는 이들로 변화시키신다(3:5, 10:10, 28, 요일 5:11-12). 하나님께서 설명하시는 의롭게 됨은 믿은 이들이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으로 옷 입은 이후 계속해서 의롭게 되었다(3:21-26). 죄의 지배와 통치에서 벗어났고(6:2-14), 아버지에서 아들에 이르기까지 선물로 주어졌으며(17:2-24), 그리스도의 영적인 몸 즉 교회로서 건축되었고(고전 12:13), 구원 받은 사람이 잃은 것들이 있다면 다시 되찾아야 했던 하나님의 긍정적인 일들이 있다.

 

구원 받은 사람이 다시 구원을 잃을 수 있는가?

의견이 분분한 질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을 잃을 수 있는가? 한번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의 선물을 받고,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난 사람이 다시 돌아가 그 구원이 취소될 수 있는가? 물론 그럴 수 없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생명의 그 본질을 영원히 받았다. 구원 받은 성도가 다시 그 구원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내가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노니 그들이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요 또 아무도 내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하리라.”(10:28)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이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났고,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성경적인 교리는 다시 잃을 수 없다는 영원한 담보다. 다른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성도들의 인내로 말을 한다. 후자의 표현은 성도들을 도우시려는 하나님의 인내를 말하는 것이 더 적당할지도 모른다. 왜냐면 우리 구원의 담보가 우리에게 달려있지 않고 하나님께 달려있기 때문이다. 구원은 아버지, 아들, 그리고 성령의 사역을 기초한다.

 

무엇이 우리의 구원을 영원히 담보하는 아버지의 사역인가?

성도들의 영원한 담보는 아버지의 목적에 달려있다. 아버지의 목적은 영원 과거에 구원으로 우리를 선택하시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들 되심으로 우리를 미리 정하시는 것 바로 그것이다(1:4-5).

 

더욱이 하나님의 권능은 구원 안에 있는 담보를 지키시겠다고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다(8:28-30). 아버지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미리 아셨고, 예정하셨고, 효과적으로 부르셨고(고전 1:21-24)의롭게 하셨고, 영화롭게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눈에는 이미 우리가 어느 날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의 형상에 합치되었을 그런 끝난 거나 다름없는 과거시제를 사용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그분 자신과 아버지의 손에 담보가 있음을 보증하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영원한 생명의 선물을 받은 각 성도의 안전을 지키실 것이다(10:28-29).

 

무엇이 우리의 구원을 영원히 담보하는 아들의 사역인가?

더욱이 우리의 담보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기도에 달려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속하셨고(1:7),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옮기셨기(3:25) 때문에 우리가 의롭게 되었고(5:1), 죄 용서함 받았고(2:13), 거룩히 구별되었다(고전 1:2).

 

오늘날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의 사역은 두 기도 사역이다. 하나는 예방하는 사역 즉 중보사역이요, 다른 하나는 치료사역 즉 변호하는 사역이다. 요한복음 17장에 있는 그분의 기도는 중보의 사역을 묘사한다. 예수님은 악한 자에게서 우리를 지켜주시고(15), 거룩하게 구별되고(17), 하나가 되고(21), 그분과 하늘에 있고(24), 그분의 영광을 보도록 기도하셨다(24). 그분께서 그러한 것들을 기도하신 이유는 우리를 위한 끊임없는 그분의 중보가 그분께서 완전하고 영원히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7:25).

 

오늘날 그리스도의 변호하는 사역은 요한일서 2:1절에서 볼 수 있다. 우리가 성도들로서 죄를 지을 때 그분은 아버지 앞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함과 깨끗케함을 우리의 변호인으로서 변론하신다.

 

 

무엇이 우리의 구원을 영원히 담보하는 성령의 사역인가?

성령의 부활사역으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받았다(3:5).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신뢰할 때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영원히 거주하는 사역을 시작하셨다(14:17). 그분은 또 우리의 장차 보상의 약속을 받는 날까지 아버지에 의해 우리 위에 도장을 찍어 놓으셨다(4:30). 그리고 그분은 우리가 그리스도 그리고 성도들의 몸 안으로 함께 연합되도록 침례를 주셨다(고전 12:13).

 

구원받은 성도가 그 구원을 잃을 수 있는가?

성도가 그의 구원을 잃는다는 것은 아버지, 아들, 성령의 이전 사역 모두를 무효화하고 뒤집는 것을 요구한다. 성도들의 담보에 대한 주요 쟁점은 구원 받는 성도에 영향을 준다. 사람이 자신의 구원담보에 책임이 있다면 그는 구원을 잃을 수 있고, 하나님께서 사람의 구원의 담보시라면 그 사람은 영원한 담보가 있는 것이다.

 

그런즉 이 일들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8:3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