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행정이라는 진리는 많은 교회에서 분명하고, 충분하게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지도자, 가르침, 방언 등 역동적인 은사들 때문에 많은 교회행정과 같은 사역들이 한 단계 낮은 은사들로 인식되었다. 역동적인 은사를 가진 사람들은 많은 교회행정을 영적인 사역과 육적인 사역으로 나누게 되었다. 육적인 사역은 영적인 사역이 아니라고 시사한다.
다른 사람들은 은사들을 초자연적인 것과 천연적인 것으로 나눈다. 물론 교회행정은 두 번째 범주로 버려졌다. 그들이 주의해야 하는 것이 있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동일한 은사들(고전 12:28),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분(고전 12:27), 성령의 카리스마적인 은사에 대해 말한다(고전 12:31). 그러나 고린도전서 12:28절에 있는 돕는 성도들과 행정을 맡은 성도들의 천연적인 것들은 사도들, 대언자들, 가르치는 자들, 기적을 행하는 자들, 그리고 치료하는 은사와 타언어로 말하는 은사 사이에 끼워졌다. 다음 두 구절을 읽을 때 돕는 은사와 행정을 맡은 것은 언급되지 않고 31절에서 앞에서 나열한 은사들을 중 가장 좋은 은사 사모하라고 권면한다.
천연적인 능력과 영적인 은사 사이에 있는 다름에 관한 많은 논쟁이 있다. 나는 그들이 몸으로서 교회를 공평히 다루지 않거나 그리스도께 영광을 가져오지 않는 방법으로 그들의 능력을 적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면 이 영역에 있는 영적인 은사를 갖는 것으로 간주하지 않고, 사역에서 전문적인 교회행정을 맡은 성도들로 생각한다.
세속적인 곳에서 배울 것이 많지만 거기엔 분명한 다름이 있는데 먼저 교회는 계약적인 이윤관계이기보다 오히려 자원사회요, 두 번째로 교회는 정확하게 교회가 무엇인지에 관한 말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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