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은 우리가 우리의 놀라우신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도록 우리를 네 번째 계명인 안식일로 이끈다. 의로운 생활 가운데 있는 이 안식의 문제들은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고,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공급하신 많은 것들로 만족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대신한다. 이제 마지막 여섯 계명이 있다. 여섯 계명은 우리가 행동해야 하는 방식의 목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지만 생활하는 것에 대한 설명으로서 여섯 계명은 하나님의 통치권과 임재하심으로 우리의 유일하신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결국 이 매주의 안식일은 하나님의 만족을 위해 열매 맺고,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먹이는 안식년으로 확장된다. 우리 모두는 우리가 어떠한 것을 산출하기 위해 수고할 수 있는 어떤 땅을 찾아야 한다. 이 땅은 우리의 교회에서 어떤 봉사로 수고할 수도 있고, 어떤 새로운 것을 산출하기 위해 다른 먼 외국에 나가서 다른 사람들과 수고할 수도 있다. 창조적인 자들이 되라. 그것은 새로운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창조적인 사람이 되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하실 것을 알기 위해 성경연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을 위한 나의 가장 큰 관심은 그들이 안식년을 체험하기 위한 땅을 가져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안식년 끝 무렵에 우리는 다른 기간 동안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다음 안식년을 위해 준비할 때까지 우리의 성장을 위한 것이다. 이 시간 동안 우리의 동료들은 대개 우리가 우리의 수고로 일으켜 세워진 사람들이다. 우리가 많은 것을 하고 있다고 느끼지 못할 수 있는 반면 결국 우리는 모두 함께 성장한다.
이것이 나의 경험에도 있었다. 나는 주님께서 정기적으로 나를 어떤 장소에 가도록 하셨다고 느꼈다. 나는 매년 같은 장소에 네 번 가서 한 달씩 머물러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거기에 있는 형제들과 아침저녁으로 교제만을 나눴다. 이와 같이 몇 해를 지난 후 많은 교회들이 일어났고, 많은 형제와 자매들이 주님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것은 어떤 특별한 수고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안식년이 아니었을 때 동료들과 함께 교제를 나누는데서 나온 것이었다.
한번 우리가 어느 정도 자라면 주님은 새로운 수확을 위해 수고하도록 또 다른 안식년을 갖도록 우리를 이끄신다. 우리가 안식년에 들어갈 때 전에 얻은 형제들이 또 다른 형제들을 얻기 위해 수고하고 또 산출할 것이다. 나는 내가 전에 수고했던 곳에 이와 같은 동료들이 많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는 것으로만 만족하지 말고, 모임에 가고, 선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안식년을 체험할 땅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수고하고 열매를 맺으면 우리는 그것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이 열매들은 우리를 위한 것이고, 우리와 누릴 자들을 위한 것이다. 우리가 일으킨 성도들은 우리의 성장을 위한 우리의 동료들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