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강해/사도행전

사울이 구원받다. -1-

Hernhut 2015. 4. 4. 10:15

 

그리스도인들을 감옥에 넣고, 핍박하고, 비난한 교회의 큰 대적이 누구였는가? 그는 유대인 사울이었다(8:1~3, 9:1). 후에 그는 바울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13:9, 1:1). 이 사람은 스데반이 돌팔매질을 당할 때 그 자리에 등장했었나? 그렇다. 그는 그곳에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짐작컨대 그도 비난하고 돌을 던졌을 것이다(22:19~20).

 

어느 날 사울은 다마스커스로 가서 계속해서 믿는 성도들을 붙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다마스커스로 가는 도중에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

 

 

하나님은 사울의 눈이 보이지 않게 하셨다.

....일어나 눈을 떴으나 아무도 보지 못하므로.... 9:8

하나님은 하늘로부터 밝은 빛을 비추셨다.

....갑자기 하늘로부터 빛이 나와 그를 둘러 비추더라. 9:3

하나님은 사울에게 말씀하셨다.

.....한 음성이 있어 그에게 이르시되....9:4

 

 

부활하신 주께서 사울에게 나타나셨다(고전 9:1). 사울이 당신은 누구십니까?” 라고 질문했을 때 예수님은 네가 핍박하는 예수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사울은 교회(성도)를 핍박하고 있었으나 예수님은 네가 나를 핍박하고 있다.” 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골로새서 1:8절에서 우리는 주 예수께서 교회인 몸의 머리이시라는 것을 배운다. 예수님은 머리시시다. 그리고 성도들은 몸을 구성한다. 어떤 사람이 당신의 발가락을 밟고 있었다면 당신의 머리가 그 통증을 느낄까? 몸이 상처를 입고 고통을 받을 때마다 머리는 그것을 느낀다. 고통은 항상 신경의 통로에 의해 뇌로 전달된다. 당신은 머리를 상처와 고통을 주지 않고 몸을 상하게 할 수 없다. 같은 방식으로 당신은 교회의 머리에 고통을 주지 않고는 교회에 고통을 줄 수 없다. 사울은 몸을 핍박하고 있었으나 머리이신 예수께서 그것을 느끼셨다. 사람들이 교회인 몸에게 하는 일이 머리이신 예수께 하고 있는 것이다.

 

다마스커스 도상에서 이 놀라운 일이 있은 후 하나님은 아나니야라고 하는 믿는 성도에게 말씀하셨다(9:10). “일어나 곧은 거리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사울이라 하는 다소 사람을 찾으라.”(9:11) 고 말씀하셨다. 당신이 아나니야였더라면 당신은 이렇게 하기를 두려워했었을까? 아마 대부분 그러했을 것이다(9:13~14). 아나니야는 하나님께 순종했는가? 그는 곧바로 사울에게 가서 안수를 하고 눈으로 보게 했다(9:17).

 

아나니야가 행한 일 중의 하나는 사울이 예수의 이름을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을 것인지를 말했다(9:16).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쉬운 생활이 아니다. 바울의 생활은 고통의 삶이었음을 의미했다. 바울이 통과했던 고통이 어떤 것이었는가? 그들이 그리스도의 사역자냐? (내가 어리석은 자처럼 말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더욱 넘치도록 하고 매도 지나치게 맞고 감옥에도 더 자주 갇히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내가 유대인들로부터 마흔에서 하나 뺀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몽둥이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을 당하여 한 밤과 한 낮을 깊음 속에 있었으며 *자주 여행하면서 물들의 위험과 강도들의 위험과 내 동포로 인한 위험과 이교도들로 인한 위험과 도시에서의 위험과 광야에서의 위험과 바다에서의 위험과 거짓 형제들 가운데서의 위험을 당하였고 *또 지치고 아프고 여러 번 밤을 새우고 굶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금식하고 추위를 당하고 헐벗었노라. *밖에 있는 그 일들 외에도 날마다 내게 닥치는 것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후 11:23~28) 사울은 예수를 위해 기꺼이 고통을 받았는가? 그는 그 고통을 기꺼워했다(20:22~24, 2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