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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상호보완주의와 평등주의, 어떤 이론이 성경적으로 옳은가?”

Hernhut 2014. 12. 22. 11:34

 

 

미향자매는 우리교회에 나오면서 불만스러움이 많습니다. 가끔 형제들에게 왜 형제와 자매를 차별하는가? 왜 형제들은 하는 일을 허락하고 자매들에게는 제한을 하는가? 다른 교회들은 그렇게 차별하지 않는데 우리교회는 차별을 두는가?’를 묻습니다. ‘자매님, 우리교회가 차별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교회는 지극히 정상적입니다. 자매들에게 제한을 두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평등한 것입니다.’라고 창수형제는 말합니다. 이 둘은 늘 이렇게 충돌합니다.

 

성경적인 형제자매들에 대한 상담에서 상호보완주의는 교회에서 지도자역할로 섬기는 일에서 자매들을 제한하시는 대신에 동등하게 중요한 상호보완적인 역할로 섬기도록 자매들을 부르셨다는 관점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평등성에서 평등주의는 교회에서의 성차별로 사역을 금지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다는 관점을 말합니다. 두 관점은 서로 성경적으로 근거했다고 주장합니다. 이 두 관점을 성경이 어떻게 말하는지를 완전하게 검토해보는 것은 지극히 중요한 것입니다.

 

한 면에서는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에 성()구분이 없다는 것을 믿는 평등주의자들은 지도자와 가정에서 기능적인 역할에 관해서라면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대개념은 상호보완주의자들로서 자신들에게 말하는 사람들을 따랐습니다. 상호보완주의자 개념은 사람들로서 형제들과 자매들의 본질적인 평등을 믿지만 상호보완주의자들은 사회, 교회, 그리고 가정에서의 기능적인 역할을 할 때 성()구분을 지킵니다.

 

상호보완주의에 대한 유리한 논쟁은 디모데전서 2:9~15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개념은 평등주의의 반대개념으로 보이는 것 같은데 디모데전서 2:12절을 읽어봅시다. 오직 나는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다만 조용할지니라.”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말을 했습니다. 너희의 여자들은 교회들 안에서 잠잠할지니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허락되지 아니하였고 또 율법도 말하는 바와 같이 그들은 순종하도록 명령을 받았느니라.”(고전 14:34) 바울은 자매들이 교회에서 형제들에게 권위를 행사하거나 가르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와 비슷한 구절들이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3:1~13, 디도서 1:6~9절입니다. 이 구절에서도 자매들은 형제들과 같은 교회 지도자직분이 제한받았습니다.

 

본질적으로 평등주의는 갈라디아서 3:28절에 근거를 두는 경우입니다. 이 구절을 읽어볼까요? 거기에는 유대인이나 그리스인이 없고 매인 자나 자유로운 자가 없으며 남자나 여자가 없나니 너희는 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이니라.” 평등주의 개념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별이 분리된 관계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갈라디아서 3:28절이 이처럼 이해될까요? 문맥이 이와 같은 해석을 보장합니까? 이 해석이 이 구절의 문맥에 손상을 입히기에 충분합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사역이 아니고 믿음만으로 의롭게 됨의 큰 진리를 증명하고 있습니다(2:16). 갈라디아서 3:15~29절에서 바울은 율법과 약속 사이에 다른 점으로 의로다 함을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3:28절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믿음으로 낳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된 상속자들이라는 바울의 논리에 정확하게 맞습니다(3:29). 이 구절의 문맥은 바울이 교회에서의 역할이 아니고 구원에 대한 말을 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다시 말해 구원은 민족성, 재정상태, ()등 외적요소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주어진 것입니다. 이 문맥이 교회에서 성() 역할에 적용된다고 질질 끄는 것은 바울이 말하고 있었던 것을 지나치게 상상하는 것입니다.

 

이 논쟁의 핵심과 많은 평등주의자들이 무엇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역할 안에서 다름이 질적인 것, 중요성, 그리고 가치의 차이와 등등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형제들과 자매들은 하나님의 시각과 계획안에서 동등하게 가치를 가졌습니다. 자매들이 형제들보다 열등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교회와 집에서 형제들과 자매들에게 다른 역할을 배정하십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능을 하도록 계획하셨기 때문입니다. 다름과 동등의 진리는 삼위일체 안에 있는 기능적 위계에서 볼 수 있습니다(고전 11:3). 아드님은 아버지께 복종하시고, 성령님은 아버지와 아드님께 복종하십니다. 이 기능적 복종은 본질에 대한 동등한 열등함을 암시하지 않습니다. 세분 모두 동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세분 모두 기능 안에서 다르십니다. 마찬가지로 형제들과 자매들은 평등한 존재들입니다. 둘 다 하나님의 형상을 동등하게 나누어 가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얻은 역할과 기능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오늘날 교회의 질서가 혼란스러울까요? 主護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