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새벽이슬처럼

“금, 은, 귀한 보석”이나 “나무, 짚, 검불”

Hernhut 2014. 10. 9. 12:13

 

두 땅은 히브리서 6:7~8절에서 대조를 보입니다. 첫 번째 땅은 땅을 일구고 가꾸는 자들에게 채소를 냅니다. 이 땅은 하나님에게서 축복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 땅은 가시와 찔레를 냅니다. 이 땅은 버려지고, 저주가 가까이 있어 끝에서는 불살라 질 것입니다.

 

가나안 땅과 이집트 땅은 대조적인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가나안 땅은 한 면에서 히브리서 6:7절의 땅과 유사합니다. 하나님에게서 축복을 받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다른 면에서 이집트 땅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집트의 땅은 저주 아래에 있었습니다. 저주는 1,000년 즉 천년왕국 동안 풀리게 될 것이지만 이때의 끝에서 땅과 그 안에 있는 사역들은 불살라질 것입니다(벧후 3:10~13).

 

히브리서 6:8절에 있는 땅은 이집트 땅과 같은 것입니다. 가시와 찔레를 내고 그 끝은 불살라진다고 말했습니다. 7절에 있는 열매와 땅과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이집트 땅은 오늘날 사람이 사는 세상의 예표입니다. 이 세상은 가시와 찔레를 내는 저주 아래에 있습니다(3:17~18).

 

저주 아래에 있는 땅이든 천연적인 사람이 그 땅과 연결되어 있든 하나님께서 관련되어 계시는 한 총체적이고, 완전한 거부가 될 수 있을 뿐입니다. “가시와 찔레를 내는 것은 거절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히브리서에 있는 언급은 땅 위에서 구속받지 않은 사람입니다. 사실 그는 거절 되었습니다.

 

이 언급은 구속받은 사람이 땅을 일구고, 가꾸는 사람들에게 채소를 내는 땅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가시와 찔레를 땅을 찾으려는 것입니다. 이 언급은 가나안 땅과 관련하여 10명의 사악한 보고를 믿었던 가데스바네아에서 모세 아래에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그들은 앞에 놓인 가나안 땅으로 가기보다 오히려 이집트로 다시 돌아가려고 했던 사람들입니다(13:31~14:4).

 

이스라엘사람들은 일구고 가꾸는 사람들에게 채소를 내는 땅을 향해 가기보다는 오히려 가시와 찔레를 내는 땅을 향해 되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광야에서 그들의 전복(顚覆)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되돌아가려고 했던 이집트 땅에 관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셔야 했던 것에 완전히 일직선상에 있었습니다. 그들 앞에 놓인 그 땅과 그들의 부르심과 관련된 그들은 거절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신권(神權) 안에서 하나님의 맏아들로서 가나안 땅에 거주하도록 이집트로부터 불러내어진 자들입니다. 그들은 이 목표치에 미치지 못하여 광야에서 전복(顚覆)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경고는 같은 예를 따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같은 운명의 고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영원한 구원을 받았나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모세 아래에 있던 이스라엘사람들이 그들의 부르심의 목표에 이르지 못한 곳에서 피의 오른편에서 전복(顚覆)된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아래에 있는 그리스도인들도 동일한 유형에 따라 같은 이유로 같은 곳에서 전복(顚覆)될 수 있습니다(고전 9:2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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