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새벽이슬처럼

의로운 롯

Hernhut 2014. 10. 10. 13:07

 

의로운 롯에 대한 체험(벧후 2:7~8)은 또 다른 구약성경의 다른 관점입니다. 구속된 사람을 세상으로부터 땅으로 불러내심은 세상에서 옮기신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 있는 말씀은 영적인 영역 안에 어떤 깊이 있게 행동하는 육욕적이고 세상에 속한 사람의 무능력과 관련된 것에 정말 유익함을 줍니다.

 

롯은 아브라함이 창세기 14장에서 왕들과의 전쟁에서 구한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기록에는 멜기세덱이 이 전쟁 이후 빵과 포도주를 내놓았을 때 롯이 아브라함과 함께 있었던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멜기세덱으로부터 아브라함만이 축복받았고, 세상이 주었던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에 관해 충분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14:18~24).

 

한 가지 측면은 롯이 아브라함의 씨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 체험에 들어가는 것에서 롯은 배제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멜기세덱의 나타남으로 하나님의 언약이 아브라함과 그의 씨와 약속하고, 다루심이 아닌 구원받은 두 사람이 있습니다.

 

이 측면에서 가르치는 것은 다가오는 왕국이 그리스도인들과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께서 멜기세덱의 제사장직분을 발휘하실 때 나타날 것이지만 모두가 축복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아브라함과 롯은 히브리서 6:1~6절과 맞을 것입니다. 한 사람은 멜기세덱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을 이해하기 시작하게 되었지만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의 배경을 보면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분명한 것은 이듬해 이들 두 사람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는 정말 교훈적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구릉지역 헤브론 근처 마므레 초원에서 살았습니다(13:18, 14:13, 18:1, 23:17~19, 35:27). 반면 롯은 낮은 지대인 요르단 초원에 있는 소돔에서 살았습니다(13:10~12, 14:12, 19:1).

 

이 두 곳의 차이는 예루살렘과 여리고 사이의 차이와 유사할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구릉지역에 위치하고 있었고, 여리고는 요르단 남쪽 끝 사해 근처 낮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과 여리고는 성경에서 서로 현저한 대조를 보입니다. 하나는 다가오는 시대에 땅의 민족들에게 축복이 흐를 위대한 왕의 도시”(48:2, 14:1~21)지만 다른 곳엔 저주가 가득 채워질 것입니다(6:18, 26). 아브라함과 롯이 살았던 두 곳은 현저히 상반된 곳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롯의 내리막은 창세기 13:10절에서부터 19:1절까지 다른 위치를 볼 수 있고, 그의 내리막의 결과는 창세기 14:12~24, 19:1~38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롯은 눈을 들어 요르단 초원을 바라보았습니다. 요르단 초원에는 우물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요르단 초원을 선택했고, 초원 도시에 거주했으며, 소돔에 그의 장막을 쳤습니다. 이것을 행하는 과정에서 그는 아브라함에게서 자신을 분리했습니다(13:10~12). 그것은 육욕적으로 믿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믿는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분리한 것입니다.

 

롯이 다툼이 생겼고, 아브라함에 의해 구해지는 그날이 왔습니다(14:12~16). 초원과 관계있는 그의 갈망은 왕들의 전쟁 후 멜기세덱이 나타났을 때 멀리 바라보는 것을 막았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14:18~24). 그가 멀리 바라보는 것을 실패한 것은 초원의 도시와 관계되기 이전의 그의 갈망과 결부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소돔에서 살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도시의 일들과 연결되었습니다(19:1). 도시의 일들은 롯과 같이 문에 앉아있던 사람들에 의해 수행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에 롯을 구하고 소돔에서 의로운 자를 대신해서 기도할 때를 제외하고는 아브라함은 초원의 도시에서 옮겨 구릉지대에서 거주했습니다(14:14~16, 18:23~33). 요르단 초원에서 사람들의 일은 그에게 순간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초원의 도시들이 멸망에 이르렀던 그날 완전히 대조적인 구원받은 두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날이 이르게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 6:7~8절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각각의 영역에서 하나는 가치 있는 것으로 다른 하나는 가치 없는 것으로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고전 3:12).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멜기세덱과 관련된 가르침을 계속해서 볼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의 관심은 요르단 초원에 놓여있는 것이 아니고 구릉지역에 있는 것들에 관심을 갖습니다.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롯처럼 멜기세덱의 가르침을 보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의 관심은 구릉지역이 아닌 초원의 것에 관심을 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