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새벽이슬처럼

천국에 대한 가르침 (A)

Hernhut 2014. 8. 6. 13:00

이에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하늘의 왕국에 관하여 가르침을 받은 서기관마다 마치 자기 보고에서 새 것과 옛 것을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하시니라. (13:52).

 

하늘왕국을 둘러싸고 있는 메시지(13:11, 19, 24) 즉 왕국 말씀은 신약성경의 중심적인 메시지입니다. 복음서, 사도행전, 서신서, 요한계시록 등 모두 중심적인 메시지는 왕국과 관련된 것입니다. 이 메시지를 이해하는 사람은 그가 신약성경의 다른 부분을 연구함으로서 더 합당한 기초를 소유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메시지가 이해되지 않는 사람은 신약 성경의 어떤 부분을 연구해도 악영향을 줄 것이고, 합당치 않은 것을 소유할 것입니다.

 

이것은 왕국말씀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성도들이 집주인과 같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들이 성경으로 가서 옛 것을 가져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옛 것으로부터 온 것을 보기 시작할 수 있고, “새 것을 가져올 수 있을 것입니다. “옛 것은 이미 보고, 이해했던 것이요, “새 것은 아직 보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원문에 의하면 집주인은 하늘왕국으로 가르침을 받았기때문에 이것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성경에 대한 열쇠를 소유합니다. 이 열쇠는 그들이 닫혀있던 성경의 수많은 구절들을 열 것입니다. 이와 같이 왕국말씀에 관한 새로운 것들을 연구하고 배운 성도들은 계속해서 점점 더 많이 옛 것을 취하고, “새 것을 찾고, 이해하는 자신을 알 것입니다. 성도들이 왕국말씀을 이해하면 할수록 그들은 이런 방식으로 성경이 열리는 것을 볼 것입니다. 나중에는 옛 것과 끊을 수 없는 관계가 되고, 그것에 의지하게 됩니다.

 

왕국말씀을 이해하는 것은 성경지식을 추구함으로 각 성도들이 충분해질 것입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체험과 증거했었지만 그들이 말해야 할 때 이것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이 변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하게 왕국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 성경으로 갈 수 있도록 하며 새 것과 옛 것을 제한하지 않고 보물들을 이 창고에서 가져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왕국말씀을 이해하는 것을 제외하고 각 사람들이 진리들을 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고 할지 모릅니다. 다시 마태복음 13:52절을 봅시다. 이에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하늘의 왕국에 관하여 가르침을 받은 서기관마다 마치 자기 보고에서 새 것과 옛 것을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하시니라.” 하지만 그 같은 상황은 여기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이 왕국 말씀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현제도에서 말씀을 대항하는 사탄의 공격입니다. 이 모든 가르침의 중심은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왕국말씀에 대한 이해는 그리스도인과 관계가 있고, 또 사탄이 이것을 아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왕국말씀에 대한 이해는 성경을 이해하는데 큰 열쇠입니다. 사탄은 그가 왕국말씀과 관련된 수많은 다른 성경에 대한 합당한 이해로 문을 여는 것을 막고, 멸할 수 있다면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오늘날의 사역목적을 가장 좋게 이루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이 끝을 향한 사탄의 노력은 마태복음 13장에 있는 처음 네 비유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이 네 비유는 왕국말씀을 전복시키려고 하는 사탄의 일의 연대기에 나타나있습니다. 이 연대기는 온 제도 전반에 걸쳐 그의 일에 대해 점진적인 결과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처음 씨 뿌리는 자에 대한 비유에서 사탄의 공격(13:3~8, 18~23)은 왕국말씀을 들은 사람들에 대한 것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그 점에서 문제가 멈추기를 모색했습니다. 그는 이 메시지를 이해하는 것을 막고,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메시지에 반응하는 4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넷 중 셋은 사탄의 공격에 쓰러졌습니다. 넷 중 처음 셋은 넘어졌고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 사람에 대한 사탄의 공격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들었고, 말씀을 이해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사탄의 공격을 이겼고, 열매를 맺었습니다.

 

다음 비유는 알곡과 가라지 비유입니다(:24~30, 36~43). 사실 이 비유는 첫 번째 비유와 연결되는 비유입니다. 앞의 비유에서 열매 맺는 사람에 대항하는 사탄의 공격에 중점을 둡니다. 사탄은 열매 맺는 자들 한 가운데서 그들을 거짓 메시지, 거짓 교사들에게 맡깁니다. 사탄은 메시지를 전복시키려고 합니다. 왕국말씀을 받은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을 중지시키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사탄은 거짓메시지를 소개함으로 참된 메시지를 하락시키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참된 메시지의 선포로 인해 멈춰졌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열매를 맺음으로 멈춰졌습니다.

 

다음 비유는 겨자(머스타드)씨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앞의 알곡과 가라지 비유에 이어지는 것으로 이 거짓 메시지 때문에 이 제도가 흐름에 따라 기독교에서 일어난 것을 보여줍니다. 겨자(머스타드)씨는 발아되어 잠시 동안 정상적으로 성장을 했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난 후 그것은 비정상적으로 자라고, 결국 비정상적인 나무가 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 비정상적인 성장이 일어난 후 공중의 새들(첫 번째 비유에서 볼 수 있는 사탄의 사역자들) 이 그곳에 깃드는 장소로 알았습니다.

 

다음 비유는 완전한 그림이 되는 누룩의 비유입니다(13:33). 거짓 메시지는 제도 시작 무렵에 선포되었습니다. 거짓 메시지는 누룩으로 밀가루 서 말을 부풀게 했습니다. 신성한 완전을 의미하는 숫자는 “3”입니다. 밀가루는 주식인 빵을 만드는 것입니다. 누룩(부패시키는 물질)은 밀가루에 있었습니다. 결국 누룩은 빵을 부패시키는 것입니다. 이 누룩은 모든 빵이 부풀 때까지 일을 계속할 것입니다. 거짓 메시지는 계속해서 침투할 것이고, 참된 메시지를 하락시킬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가 왕국말씀과 관련 있는 거짓 메시지와 누룩에 대한 메시지에 이어서 왕국말씀과 관련 있는 참된 메시지를 갖는 다는 것을 직접 계시한 것입니다.

 

이 네 비유는 왕국말씀과 관련 있는 세상에 흩어져있는 기독교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이 신약성경의 중심메시지는 1세기 동안 교회에서 보편적으로 가르쳐졌습니다. 하지만 거짓 메시지의 가르침이 변개시켰습니다. 기독교 그 자체가 비정상적으로 자랐습니다. 이 비정상적인 성장은 결국 거짓교사들이 그들의 거짓 가르침을 통해 그들 스스로를 하락시켰습니다.

 

하락은 이 시점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누룩의 일은 계속되었고, 이 거짓 메시지가 모든 기독교에 속속들이 스며들 때까지 계속되었고, 계속될 것입니다. 원문에 의하면 이 하락의 과정은 모두가 누룩으로 부패될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볼 수 있는 견지에서 문제를 생각해 보면 누룩의 일의 끝은 무엇입니까? 제도가 끝에 가까워짐으로 오늘날 교회를 어디서 찾을 수 있습니까?

 

대답은 확인하기 쉽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왕국말씀과 관계있는 것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듣고 이해하고 보려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근본적인 왕국말씀을 언급하지 않는 교회는 이미 누룩의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어떤 사람은 공허하게 들을 것입니다. 누룩의 마지막 일터에서 발효시키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과 다가오고 있는 왕국을 둘러싸고 있는 성경적인 참된 메시지는 오늘날 기독교 전역에 실제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부패시키는 과정은 한이 없고, 장애물이 없습니다. 근본적인 기독교 그 자체가 누룩으로 속속히 물들었고, 부패되어 가는 것이 왕국말씀과 관계있으며, 개혁파 기독교와 같음을 압니다. 신학교, 교회의 설교단, 그리고 성도들의 자리까지 모든 기독교가 마태복음 13장에 있는 처음 4비유에서 계시된 것과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가 다 똑같은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근본주의자들은 부패하는 과정의 참된 본질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들을 이 부패로부터 벗어난 자들로 여깁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사람들은 전혀 그런 경우가 아닙니다. 왕국말씀에 대해 이해하고 선포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정통파 무리들은 개혁파 무리들과 같은 상태라는 것을 스스로 알 것입니다. 그들은 부패시키는 누룩을 통해 계속해서 스며들었다고 알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두 무리 사이에는 전혀 다른 점이 없습니다. 왕국 말씀에 대한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선포하지 않습니다.

 

근본주의 파와 개혁주의 파의 신학교는 모든 것으로 학생들을 훈련시키지만 한 가지 메시지는 자신들의 이해로만 성경을 연다는 것입니다. 이런 신학교들은 왕국말씀에 대한 완전히 빈 메시지로 교회의 설교단을 채우는 졸업생들을 배출하고 있습니다. 이 신학교 졸업생들은 중요한 진리를 알지 못합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모든 사역은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주님께서 돌보도록 맡기신 여러 무리들은 합당하게 양육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그들의 사역 아래에 있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천천히 기아선상으로 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 곳곳에 있는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메시지보다도 그들이 들어야하는 한 가지 메시지를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마태복음 13장에 있는 처음 네 비유에 주어졌습니다. 거의 2,000년 넘게 이어지는 누룩의 일은 기독교 곳곳에 확장되어 있는 부패를 산출했습니다. 이 누룩의 일은 왕국말씀을 둘러싸고 있는 메시지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이 부패의 결과로서 대부분 그리스도인들의 가까이에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앞에서 말한 사람들은 이 땅의 신학교에서 훈련받지 않았지만 왕국말씀을 이해하고, 종종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많은 사람들 보다 성경의 모든 것을 더 꽉 붙잡는 사람들입니다. 왕국말씀을 이해하는 사람은 성경의 열쇠를 소유합니다. 그는 성경 안으로 들어가 새 것과 옛 것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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