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하나님께 실제적으로 오지 않고서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합니다. 하나님의 빛 안에 있던 바울은 자신이 죄인 중의 죄인이었음을 알았습니다(딤전 1:15). 하지만 우리가 “제가 죄인들 중의 죄인”이라고 주님께 말했을지라도 우리는 실제로 우리 자신을 미워하거나 경멸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죄인 중의 죄인”이라고 비난하는 것으로 너무 지나치게 하나님과 일치시켜 우리 자신을 사랑합니다. 우리가 회개를 하고 기도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죄를 얼마나 많이 비난하는지를 알지 못하고, 우리가 어떻게 비난해야 하는지를 모릅니다.
어느 날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러 오셔서 우리에게 철저히 빛 비추실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있을 때일 수도 있고, 말씀 안에서 하나님과 시간을 보낼 때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모든 천연적인 능력을 쓸 때일 수도 있고, 환경이 정말 어려울 때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주님께서 오심을 느낍니다. 그분의 임재 안에 있는 빛은 우리가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어 하고, 숨고 싶을 정도로 정말 힘듭니다.
이 빛 안에 있는 우리는 회개하는 방법조차도 모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릎 꿇는 순간 우리는 하늘로 우리 눈을 들 용기를 내지 못합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 앞에서 고개를 숙일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수 없도록 우리가 아주 작게 쪼그라질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분의 빛을 느끼고, 그분께서 거기에 계심을 압니다. 이 순간 우리는 부르짖고, 회개하고, 고백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비록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섬기고, 추구하고, 그분을 위해 열심을 내었을지라도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순수하지 않고, 단순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우리의 사랑이 거짓이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오래 전에 우리를 처벌하셨어야 했음을 느낍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엎드리도록 하셨을까요?
빛 비춤을 통한 이 체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판단하고, 비난하고, 경멸하게 하는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돌아오시지 않으셨지만 우리는 그분을 대면하는 것을 맛보는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비록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심판대에 계시지 않으실지라도 우리는 그분의 심판의 빛 안에 있는 것을 맛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빛은 우리를 꿰뚫습니다. 주님의 빛은 우리가 어디에 숨든지 폭로합니다. 우리는 도망갈 수 없습니다.
이 때 우리는 “주님, 아무런 자격이 없습니다. 다만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숨 쉬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의 긍휼입니다. 저 같은 죄인은 당신 앞에서 엎드릴 밖에 없습니다. 제가 당신께 엎드리고 기도하고 당신의 빛 비추심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당신의 크나 큰 긍휼입니다!”고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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