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복음칼럼

야곱은 브니엘에서 하나님과 씨름했다.

Hernhut 2014. 7. 2. 14:30

 

그 밤에 그가 일어나 자기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데리고 얍복 여울을 건넜더라. *그가 그들을 데리고 가서 시내 너머로 보내며 자기의 소유도 보내었더라. *야곱이 홀로 남았는데 어떤 남자가 날이 새도록 그와 씨름하다가 *자기가 그를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넓적다리의 우묵한 곳에 손을 대매 야곱의 넓적다리의 우묵한 곳이 그와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그가 브누엘을 지날 때에 그의 위로 해가 솟았고 그는 넓적다리로 인해 절뚝거리며 걸었더라.” (32:22~25, 31).

 

야곱이 이 씨름하는 체험을 예견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예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그의 모든 능력을 다 써버렸음을 아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때가 적절한 때임을 아셨습니다. 야곱이 자기 보호를 위해 자신의 모든 노력을 다 썼을 때 하나님은 그와 씨름하러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과 씨름하신 것처럼 우리와 씨름하십니다. 이 씨름은 우리 삶의 성장 기본적인 문제를 다룹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씨름하시고, 뼈가 탈구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 천연적인 힘을 소진시키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힘으로 살려고 할 때마다 다리를 절게 됩니다.

 

 

(하나님)가 이르되, 날이 새려 하니 나를 가게 하라, 하매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나를 축복하지 아니하면 내가 당신을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 *그가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거늘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하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이라 하리니 이는 네가 통치자로서 [하나님]과 견주며 사람들과 견줄 능력이 있어 이겼기 때문이니라, 하니라. *야곱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원하오니 당신의 이름을 말해 주소서, 하매 그가 이르되, 어찌하여 네가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그가 거기서 그를 축복하므로 *야곱이 그곳의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이는 그가 이르기를, 내가 얼굴을 마주 대하여 [하나님]을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존되었다, 하였기 때문이더라.”(32:26~30) 브니엘에서의 하나님과 씨름한 체험은 야곱의 삶 가운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브니엘 이후 욕심 많은 대체자 야곱은 하나님의 통치자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천연적인 능력이 소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런 체험을 갈망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방법과 계획이 가득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능력, 재능,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의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지만 우리 자신을 신뢰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천연적인 능력이 소진되도록 적절한 환경을 일으키십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시도하고, 우리가 약하다고 느끼고, 뜻을 이룰 수 없음을 느낀 후에만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이 없음을 알고, 앞으로 나갈 수 없음을 압니다.

 

우리는 우리의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다리를 절고, 우리의 힘, 방법, 능력을 사용할 용기를 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지시기를 기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씨름을 하시고, 우리는 대면하여 그분을 본 후에 우리는 우리의 브니엘 체험인 전환점을 가질 것입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을 신뢰하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야곱과 같지 않습니다. 우리는 대면하여 육신적으로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넓적다리를 만지실 때까지 그분과 씨름을 할 수 없지만 브니엘에서의 체험에서 우리는 영적인 원칙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천연적인 능력의 가장 강한 부분을 만지실 것이고, 가장 좋아하고, 확신하는 부분을 만지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뽐내고, 자랑스러워하고 하나님보다 더 믿는 것을 만지실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우리의 천연적인 능력은 소진됩니다. 우리가 여전히 우리의 방법, 지혜, 재능, 은사를 이용하려고 할 수 있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이 다리를 절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가 빠르게 걸으려고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리를 절뿐입니다. 이것이 브니엘의 체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