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복음칼럼

사람의 타락은 하나님의 생명과 연합되는 것이 아니다.

Hernhut 2014. 4. 25. 10:58

사람타락의 첫 번째 이유와 따르는 이유의 각 뿌리는 하나님의 생명과 연합되는 것이 아니었다.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는 동산 중앙에 있었다(2:9). 아담과 이브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지 않았다. 반대로 그들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생명과 연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은 하나님, 우리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나요? 뱀이 우리에 우리가 그것을 먹는다면 우리가 당신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하나님께 물을 수 있었다. 그들이 그렇게 물었더라면 그들은 구원받았을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에 관해 잊어버렸다는 것은 유감스런 일이다. 그들은 생명의 느낌을 갖지 못했다. 그들은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늘날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사이에 있는 우리들 중 많은 이들도 다른 느낌이 아닐 수 없다. 대부분의 우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귀하게 여긴다. 특히 종교적인 선은 더 귀하게 생각한다. 구원받은 지 오래된 사람들은 믿지 않는 자들의 선한 일이 하나님 앞에서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지만 믿는 자들의 선한 일도 동일하게 가치 없음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생명나무를 따라 사는 방법을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수행하고 예언을 한 자들에게 악한 것을 버리고 주님 자신에게서 떠나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결코 알지 못하였노라.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라, 하리라.”(7:23). 하나님은 악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선을 포함해서 선을 비난하신다.

 

우리는 종교적으로 선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눈에 높은 가치기 있다고 여전히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 안에서 살지 않는다면 우리가 선을 행하든지 악을 행하든지 우리는 타락한다. 어떤 것을 행하든 우리의 생명과 일은 하나님의 생명과 연합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바쁜 섬김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겸손하게 처신할 수 있다. 사람들은 우리를 좋아하고 심지어 칭찬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지 않는다면 우리의 행동은 가치가 없다. 우리의 삶과 섬김이 하나님의 생명과 분리도어 있는 한 우리의 섬김은 하나님의 눈에 가치가 없다.

 

생명나무는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나무와 반대다. 창세기 2장은 하나님의 생명공급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동산 중앙에 있는 두 나무를 말한다. 하지만 창세기 3장은 사람의 타락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만을 말한다. 우리가 생명의 나무를 잊을 때 우리는 자동적으로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에 초점을 맞춘다. 그것이 우리가 타락하는 순간이다.

 

어떤 것들은 분명하게 악하지만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말하기가 어렵다. 우리가 옳음과 그름에 관심가지면 가질수록 생명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름으로서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빠르게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고전 4:3~5). 비판은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과의 연합이 결핍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생명공급이 적을 때 자신도 모르게 쉽게 선악의 영역 안으로 빠진다.

 

하나님으로부터 계속해서 떠나 있게 하는 것은 악의 지식뿐만 아니라 선의 지식이다. 심지어 이것은 영적인 지식을 포함한다. 우리가 성경연구에 참여할 수도 있다. 우리가 지식을 아는 것을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지식의 영역 안에 있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님의 영이 아니고 우리의 지식만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가 얻은 모든 것들은 사탄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는 사탄을 대표한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사탄을 주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표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사탄을 표현한다(6:23). 하나님을 흘러 나타내지 않으면 사탄을 흘러 나타낼 것이다. 둘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2:17) 하나님과의 생명연합이 없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우리가 그분과의 생명연합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선악의 지식영역 안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선악의 지식의 것들을 만질 때 우리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선악의 지식으로 채워진 자들은 개인적인 생활과 교회생활에서 비판과 요구와 비난으로 채워져 있다. 그들의 모든 비난들이 옳은 것이었을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죽음의 결과를 가져온다. 그것들은 사탄의 것이다. 우리의 생활은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끊기 때문에 비난과 요구가 채워져 있다.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활동하고 있었다면 비난과 요구는 우리에게 멈추라고 소리를 냈을 것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비난을 막 시작할 때 그 비난을 멈추게 하는 어떤 것을 느껴야 한다. 우리는 조용하게 있어야 한다. 이것이 생명이다.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은 우리와 연합된 것이다. 한 면으로 이 생명은 적극적인 모든 것들로 우리에게 공급하고 다른 한 면으로 소극적으로 우리에게서 제거한다. 이 생명이 우리 안에서 흐를 때 이 생명은 우리의 배필이신 하나님, 생명나무, 생명강, 그영을 우리에게 공급한다. 이 생명은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나무와 관련된 관념과 행위의 모든 것을 제거한다. 여기서는 선과 악이 보이지 않고, 지식도 보이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의 생명만이 있을 뿐이다.

 

때로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진리에 관해 논쟁을 하지만 우리가 이기든 지든 우리는 특별한 느낌을 갖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가 생명과 멀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죽음을 가져오는 선악의 지식을 만지지 않는다면 않고 생명 안에서 살고, 생명누림 안에서 산다면 우리는 생명의 풍성으로 채워질 것이다.

 

그것은 생명 안에서 하나님과 교통하기 쉽다. 바울은 “[하나님][]에 의해 인도 받는 자들은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니”(8:14)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그영은 계속적으로 우리를 이끄시고 계신다. 바울은 계속해서 너희는 다시 두려움에 이르는 속박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 삼으시는 []을 받았느니라. 그분을 힘입어 우리가, 아바, [아버지], 하고 부르짖느니라.”(8:15)라고 말했다. 우리가 그영의 이끄심을 따르지 않을 때 우리는 우리가 속박 안에 있고, 하나님을 접촉하기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약하고 어둡고 패배했어도 우리는 여전히 그영이 있다. 우리는 생명을 갖기 위해 예수께 올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영화 보러 가는 것을 두렵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말 무서운 것은 영화 보고 있는 동안 주님의 이름을 부를 용기가 없다는 것이다(고전 1:2). 우리는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주님께 다가갈 수 있다. 아무리 우리가 약하고 타락했을지라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비밀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영 안에 있을 수 있고, 우리의 영을 해방될 수 있고, 우리의 영을 훈련할 수 있다. 결국 우리는 생명으로 돌이키고 주님과 연합될 수 있다. 이것이 없이는 우리는 약해질 것이요, 타락할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졌기 때문에 타락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에 타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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