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남자가 홀로 있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합당한 조력자를 만들리라, 하시니라......*{주} [하나님]께서 아담을 깊은 잠에 빠지게 하시니 그가 잠들매 그분께서 그의 갈비뼈 중의 하나를 취하시고 그것 대신 살로 채우시며 *{주} [하나님]께서 남자에게서 취한 그 갈비뼈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녀를 남자에게로 데려오시니 *아담이 이르되, 이는 이제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 그녀를 남자에게서 취하였으니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그러므로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연합하여 그들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창 2:18, 21~24)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생명공급의 네 번째 그림을 시작한다. 여기서 성경은 생명의 하나에 관해 말한다. 히브리어에서 “합당한, 적절한”이라는 단어는 “상대, 배필, 친구” 등을 말한다. 우리가 노부부를 볼 때 우리는 그들이 남편과 아내임을 알게 된다. 그들의 얼굴, 성격, 그리고 생활이 그들이 오랫동안 교제를 나눈 것처럼 꼭 맞다.
“{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남자가 홀로 있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합당한 조력자를 만들리라, 하시니라.”(창 2:18) 그런 후 하나님은 온갖 종류의 동물들을 그들에게 이끄셨다. 아담이 모든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지만 동물들이 그의 배필로서 합당하지 않았다(창 2:19~20).
하나님께서 아담을 잠에 빠지게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담의 옆구리를 여시고, 그의 갈비뼈 하나를 취하셨다(창 2:21). 하나님께서 갈비대로 여자를 건축하시고 아담에게 그 여자를 이끄셨다. 아담은 “이는 이제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 그녀를 남자에게서 취하였으니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창 2:23)라고 말했다. 이브는 아담에게 완전하게 맞았다. 아담과 이브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상징한다(엡 5:30~32). 비록 우리 하나님께서 모든 것의 주이실지라도 그분의 배필로서 교회가 없는 그분은 혼자이시다. 그분의 교회만이 그분을 만족케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우리의 생명성장이 우리에게 하나님과의 하나 됨을 가져오는지를 이 이야기가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또 다른 천사로부터 온다. 생명성장에서 산출된 것만이 그분의 배필로서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 우리가 죄와 세상에 속한 것들을 드릴 수 없지만 우리는 교리, 성경지식, 어제의 영적훈련도 드릴 수 없다. 그분과 일치하는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나온 것만이 그분을 만족케 하고, 그분께 가져올 수 있다. 우리의 생명성장의 결과는 하나님으로 가득한 자가 되는 것이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하나님과 사람을 만족케 하지 못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동물들의 이름을 짓는 아담과 같다. 그는 자신과 맞는 배필을 자신이 이름 지은 동물 가운데서 찾지 않았다. 세상에 있는 어떤 것도 우리와 맞을 수 없다. 어떤 것이 우리에게 왔을 때 우리는 아담이 한 것처럼 그것들의 이름을 지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세상의 것들을 알 수 있지만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그것들에게 사로잡히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그것들을 지배하고, 사용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배필로서 그것들과 결혼하지 말아야 한다. 아담은 땅 위의 모든 동물을 대면했다. 그 동물들이 예쁘든 추하든 날아다니든 걷든 달리든 뛰든 크든 작든 그는 이름만을 지어주었고, 따로 떼어 두었다. 그에게 새가 날아 왔을 때 “이것은 새다.”이름을 지어 주고 따로 떼어 두었다.
우리는 다르다. 우리는 즉시 이름을 지어 주지 않았지만 먼저 보고서 겉모습의 아름다움에 놀란다. 관심을 갖는 우리는 연구하고 더 가까워지기 위해 우리 곁에 오랫동안 둔다. 우리가 어떤 직업을 가질 때 우리는 “어떤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활용하기 위해 그것을 우리 곁에 둔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이 생명의 소망이요, 미래다. 나는 좋은 경력을 가진 생활을 원하다. 이것이 나의 삶의 방식이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아담이 있던 곳에 있었고, 코끼리가 우리에게 왔다면 우리는 “정말 큰 동물이네! 코가 정말 길군. 다리가 튼튼하다. 난 코끼리와 결혼하고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을는지도 모른다.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상황이다. 우리는 우리의 경력과 조건과 결혼한다. 몇 년 후 우리는 빈 것임을 발견하고 우리는 그것을 따로 떼어 둔다.
아마 우리는 세상으로 끌리지 않지만 영적인 것들과 체험들로 끌린다. 심지어 이런 것들이 우리의 배필로서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성경연구가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자동차와 같다. 우리가 “성경연구”라고 이름 지은 후 우리의 동반자가 될 수 있지만 우리의 배필은 아니다. 성경연구는 우리가 하나님과 전체적으로 하나 되도록 성장하기 위해서 유용하고, 필요하다. 하지만 하나님 자신만이 우리의 배필이 되실 수 있다.
우리는 단지 지식과 교리로서 창세기 2장 처음부분을 붙잡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성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성장하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버리지 않고 공허한 말을 한다. 창세기 1장은 여섯 단계에 있는 생명성장을 묘사한다. 창세기 2장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성장을 위해 우리에게 주시는 네 가지의 생명공급을 묘사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 안에서 성숙할 때 우리는 시편기자의 묘사와 같아진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나이까? 땅에서는 주 외에 내가 사모할 자가 아무도 없나이다.”(시 73:25) 우리는 일을 알고, 일을 감사하고, 일을 활용하지만 그것들 모두 우리의 지배 아래에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 안에 살고, 하나님 안으로 산다. 이럴 때 우리는 완전하게 하나님과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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