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새벽이슬처럼

주의 풍성하신 긍휼과 그분의 긍휼 안에 있는 그분의 역동적인 경영을 아는 것

Hernhut 2014. 2. 3. 14:45

주 예수께서 자신의 신성한 통치권을 알 사람들에게 왔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풍성한 긍휼과 그분 안에 있는 자신의 역동적인 경영을 알 사람들에게 오셨습니다.

 

누가복음 7:11~17절은 나인성에서 홀어미 아들이 죽은 사건을 기록합니다. 나인Nain초원, 풀을 뜯게하다, 환경을 의미하고, 더 나아가 은혜를 뜻합니다. 이것은 은혜 안에서 홀어미를 치료하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합니다.

 

주 예수께서 나인성에 도달하시지 않으셨지만 자신의 긍휼과 은혜를 발휘하실 목적을 가지시고 거리를 두시고 걸어가셨습니다. 그 때 외아들을 잃은 과부가 정말 슬퍼했습니다. 이 과부는 절망적이었습니다. 그 여인은 주님께 기도하고, 말하는 방법을 알지도 못했습니다. 군중들이 애도하고 있었을 때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누가복음 7:12~13절을 읽어 봅시다. 이제 그분께서 그 도시의 문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에, 보라, 죽은 사람이 실려 나오는데 그는 그의 어머니의 외아들이요, 그녀는 과부더라. 그 도시의 많은 사람들이 그녀와 함께하거늘 *[]께서 그녀를 보시고 그녀를 불쌍히 여기사 그녀에게, 울지 말라, 하시고

 

큰 무리가 그녀와 함께 있었을지라도 그녀를 돕거나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 대부분 함께 슬퍼해주고, 약간의 동정심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주 예수께서 그녀를 보시고, 그분은 그녀에게 동정에 이끌리시어 슬피 울지 마라.”고 그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까이 오셔서 관에 손을 대셨고 그 관을 나르던 사람들이 멈춰 섰습니다. 예수께서 청년아,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은 사람이 일어났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종이 되기 원하고, 여러분 안에서 주의 신성한 속성과 사람의 미덕을 주님께서 기르시기를 원한다면 조금씩 주님께서 여러분을 가르치시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치료하는 것을 알고, 증거하고, 주님의 통치권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여러분은 그분의 풍성하신 긍휼 안에서 주의 통치적인 경영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주의 종으로서 여러분은 여러분 안에서 하나님의 권능이 이루어지도록 주의 통치권 아래에서 살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은 가까이로 오셔서 관에 손을 대시고 죽은 아들에게 젊은 사람아, 일어나라.” 말씀하신 예수와 똑같이 긍휼로 가득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사람들이 여러분의 긍휼을 필요로 한다는 것과 그들이 여러분의 사역의 열매가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야합니다. 사람들은 기껍게 여러분의 열매가 되지 않습니다. 긍휼이 없는 사람은 주님께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원칙적으로 주의 종은 치료하는 사람입니다. 그의 가르침은 그의 증거요, 그의 생활입니다. 그런 후 그는 하나님의 통치권 아래에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동시에 사람들을 향해 긍휼로 가득해져야 합니다.

 

주의 종은 주님이 없고, 기쁨 없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는 긍휼을 베풉니다. 고통, 근심, 슬픔 중에 있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긍휼을 베풉니다. 소망이 넘치는 우리는 주님께 주님, 저는 당신의 긍휼 안에서 섬기고, 사역하고, 살기 위해선 당신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저는 긍휼하심 안에 저의 사역과 섬김이 있기를 원합니다. 또한 긍휼이 흐르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SJHC